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스져춘 외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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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근대 중국작가들의 작품을 선별해 모은 소설집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중국 근대문학 이후부터에 1949년까지의 시기에 창작된 것이다. 즉 청조말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이었던 중국의 근대사를 반영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암울하게 읽힌다. 혼란스러웠던 중국의 근대사가 작품 곳곳에 스며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무심코 길가를 쳐다보았다. 한 여자가 가게 카운터 앞에 앉아 있었다. 우울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내 아내처럼 보였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져춘,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229쪽) 


 

   표제작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이 책을 통해서 국내에는 첫 소개되는 작품이다. 스져춘의 대표작인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을 우선 먼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상하이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 '나'는 퇴근길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빗속에서 만난 한 여자를 통해 '나'는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빗속의 여자는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고 다른 세계의 환상과 설레임을 제공한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착각, 판타지에서 그친다. 비가 그쳐 우산을 접는 순간 우산이 쓸모를 다해 거추장스러워지듯이 그 여자와의 만남은 일시적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빗속의 여자와 현실의 아내가 대립하는 형상을 보인다. 두 여인의 대립 이미지는 판타지와 단조로운 일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이 소설집의 제목으로 손색 없지만, 그 작품의 내용이 이 소설집 전체를 대표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 축축하고 암울한 작품집 전반의 분위기가 장마 속 저녁의 이미지에 잘 반영되어 있지만, 비 내리는 퇴근길 한 중년남자의 판타지는 마음에 울림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에 수록된 작품들은 암울한 국세() 그려내고 있는 만큼 그 소재나 내용 면에서도 무겁고 참담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루쉰의 <아큐정전>, 쳔충원의 <샤오샤오>, 마오뚠의 <린씨네 가게> 같은 작품은 비록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고는 해도 상당히 해학적이며 재미있다. 그 중에서도 <샤오샤오>는 여타의 작품보다 흥미롭게 읽힌다.

 


 그때 남편은 산아래로 가서 산딸기를 따가지고 왔고 바둑이는 노래를 여러 곡 불렀는데 마지막에는 샤오샤오를 위해 불렀다. 예쁜 아가씨 집 앞 비탈길 다른 사람은 적은데 사내들은 많네 쇠신 짚신이 다 닳은 것이 그대 아니면 누구 탓일까? 그러고는 샤오샤오에게 말했다. "나 너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쳔충원, 샤오샤오, 135쪽) 


 

   어린 신랑에게 시집가는 열두 살 소녀 '샤오샤오'(주인물이 작품의 제목이다)는 남편보다 9살이 많다. 꼬마신랑이라 하면 우리 나라의 옛 풍습과도 유사한 면이 상당해서 친근하게 읽힌다. 여주인공 '샤오샤오'의 삶에 대한 태도가 주목할 만하다. 그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데, 그 모습이 익살맞게 표현되어 있어서 자칫 엄숙해지거나 근거없는 낭만으로 빠져들지가 않는다. 세계사의 주류에 휩쓸려 국제정세가 혼란스러웠지만, 샤오샤오의 거주지는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듯 보인다. 그들 세계에 침입자처럼 등장하는 '여학생'이란 존재(근대화의 한 표상으로 등장한다)도 그들의 전통사회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남편이 아닌 딴 사내의 아이를 낳은 샤오샤오가 후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며느리를 얻는다는 내용으로 끝맺는 이 소설은  원형구조를 띠고 있다. 돌고 도는 반복적 순환. 소설의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원형구조는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테두리(여기서는 전통사회의 관례)를 더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샤오샤오의 순응적이며 동시에 긍정적인 삶의 자세, 익살맞은 문장 속에 살아있는 샤오샤오의 모습은 근대화 속 중국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의중이 엿보인다.

 

 

   <샤오샤오>와 더불어 주목할 작품은 먀오뚠의 작품 <린씨네 가게>. 상하이 사변은 역사적으로 거대한 참사였다. 일본의 외침과 부패한 정부관료들, 그 속에서 민중만이 피해를 본다. 일본의 잔악함이 참변으로 묘사된다면, 그 이면에 존재했던 중국 국민당 관료들의 무책임한 횡포 속에서 몰락하는 소시민의 참담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수록된 작품들 중에는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된 것들이 있다. 번역서는 역시 번역자의 수완에 따라 작품의 생명이 좌우된다. 작품집을 읽는 내내 번역자의 각고의 노력이 투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탁월한 단어 선정, 깔끔한 문장이 좋았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이 되어 있는 친절한 구성도 마음에 든다. 창비세계문학의 의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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