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보다는 소설에서 배워라 - 명작에서 훔친 위대한 통찰
안상헌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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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거 노인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다. 퇴근 후에 자신과 함께 할 가족이 없는 직장인이나 노년의 가족 해체로 종일 혼자서 말할 상대를 찾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공회전하는 자동차와 같다. 늘상 피곤하며 긴장되어 모든 사물이 차갑게 느껴진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독거인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에서 노인은 좀 다르다. 책속의 노인은 하나 뿐인 아들이 죽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고독속에서 홀로 아무런 의욕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노인은 소박한 결심을 하게 된다. 나무 재배법을 연구하고 좋은 씨앗을 골라 땅에 심는 일이 노인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고 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는 그만의 '멋진 방법'을 찾은 노인은 계속해서 나무를 심으며 늙은 농부로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1시간씩 꾸준히 시간을 내어 오랫동안 무엇을 한다면 제법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속적인 변화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 노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반복이었다. 구체성을 가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의 영혼을 담는 그 순간 자신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자신(개인)의 지겨운 일상은 극복된다. '지구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개인'이라며 환경보호를 실천한 사람이 있다. 그는 '지구를 걷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폴 콜먼'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누구에게나 노년은 오기 마련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을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는 다르게 쌓인다. "손에 잡힌 경제" 처럼 쉽고 짧아 생활인으로서 공감되는 책이다. 20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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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쓰기 그리고 살기 (양장)
김열규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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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저자는 서강대 명예교수로 한국학의 거장이였다. 1991년에 미국의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삶을 살겠다며 고향인 경남 고성군 하일에서 22년간 저술과 연구에 매진했다. 또한 '노년의 즐거움'의 저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것은 인간 원리다. 읽기는 발굴하기며 발견하기다. 쓰기는 창작이요 창조다. 학생으로서만 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문서를 쓰고 서류를 씀으로서 직무가 되고 소임이 된다.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이메일을 쓰면서 각자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서 그랬는지 읽기 쓰기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채 국민 학교에 입학했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도 읽는데 힘들었다. 


 그때의 난독증이 내안에 불안을 심어 놓았다. 지금의 영어 독해력 부족도 그렇다. 그런 두려움이 나를 소심하게 했다. 어머니는 읽기 쓰기가 원활치 못하셨다. 전쟁과 가난에 의한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온 세상, 온 사물, 온 사건, 온갖 현상을 통틀어서 쓰고 읽으면서 살아간다. 어느 시대에나 통하지만 오늘날에는 더한층 심각하게, 다급하게 통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부작용도 있다. 첫 번째, 화면의 '스크롤'때문에 읽기가 급해지고 빨라진다. 난독이 되고 만다. 두 번째, 전달되고 읽히는 대상이 주로 정보라는 점이다. 정보 읽기에서는 생각이나 사고의 깊이, 무게가 들어설 틈이 없다. 급기야는 정서가 메마르고 감정이 무뚝뚝해지는 부작용이 따른다. 


 세 번째, 필경은 혼자라는 사실이다. 세계인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중 속의 고독 또는 군중 속의 소외를 낳는다. 쌍방향 정보 소통을 크게 능률화 할 수록 반사적으로 '쌍방향 소통의 고독'은 심화된다.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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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논평전 - Lennon Legend
신현준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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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싸이'의 미국 빌보드 챠드 순위 7주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존 레논이 뉴욕에서 암살된 1980.12월쯤에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두환 군부가 정권을 잡고 민주세력이 위축된 혹독한 겨울이었다. 암살자의 손에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지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었다. 

 비틀즈(Beatles)는 1960년 영국 잉글랜드 리버플에서 결성된 룩 밴드이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우리의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난 시기로 세계적인 68혁명의 태동기였다. 프랑스의 총파업과 투쟁, 미국의 신좌파와 페미니즘 운동, 체게바라 사망, 국내에서는 김진조 사건이 있었다.

 비틀즈는 처음으로 1964년에 빌보드 1위 곡 'I want a hold your hand' 를 7주 연속 히트시킨 이후로 1965년에는 우리에게 잘 알여진 'Yesterday'가 4주 연속 챠트 1위를 차지했고 '비틀즈'가 해산되는 1970년에는 'Let it be' 등이 2주간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놀라운 것은 10년 동안에 20곡이 빌보드 1위를 석권했다는 사실이다. 이 중심에 '존 레논'이었다. 이 룩 구룹은 새로운 악상이 떠오르면 데모테잎에 기타로 주 선율이나 리프를 일단  녹음 한 뒤에 그걸 바탕으로 연주하며 다듬어 완성했다. 즉 악보에 전혀 의지하지 않았다.

 레논이 태어난 리버풀은 아일랜드계 및 웨일스계의 후손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1840~50년대 아일랜드의 감자대기근으로 인해 10년 동안 약 200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대거 이주해  있었다. 이중에  일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일랜드계들이다. 레논도 그 후손으로 레논의 두번째 아들의 이름을 '존'의 아일랜드식 이름인 '숀'으로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레논의 부모인 줄리아와 프레디도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었다.

 비틀즈와 존 레논의 음반은 '시대를 초월한 명반'으로 그의 음악을 청취하고 그의 삶을 반추하는 다종다양한 사람들, 다중이 복수의 상상을 만들어 내고 그 상상들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그가 창조하고 연주한 음악은 다기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과 부단히 접속한다. 상업적 스타덤으로부터 아방가르드 예술, 혁명적 좌파 정치를 거쳐 페미니즘적 일상생활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특유의 자기고백적 메시지를 강렬한 비음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1960년대의 시대상황과 연계되어 있다.

 현재 우리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도전하는 슈퍼스타 K 등의 현상들은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염증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낳은 일종의 지구적 카타르시스를 우리의 '싸이'라는 동양계 작은 말춤이 휩쓸고 있다.  201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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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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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사건에서 놀라웠던 것은, 동료들의 그 어떤 집단행동도 없었다. 그들은 깊이 침묵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이도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등장한 '먹고사니즘'이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을'이라도 되는 상황을 감지덕지한다. '갑'의 행패에 원칙대로 대응한 사무장은 복종을 다짐하는 세상에서의 자유인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갑'질은 경제적뿐만 아니라 애써 관계를 유지하려는 데서부터 나온다. 이는 오래전부터 자연과 배치되는 부당한 권력으로 우리 의식의 내면에 뿌리 내려왔다. 따라서 자유에 대한 사랑이 인간 본성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6세기였다. 18세 청년의 손에서 나온 이 짧은 글이 오늘까지 생생하게 살아남아, 현대사회의 모순을 해석하는 데 핵심적인 영감을 주는 언설로 남아 있다. 저자는 절대군주가 행사하는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글이 세상에 나온 때는 프랑스혁명을 즈음으로 '몽테뉴'가 상속자다.

 

 '라 보에시'가 말하는 복종의 가장 큰 이유는 '습관'이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망각'이다. 대부분의 복종은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왜 우리는 복종하는가? 사람들은 권력의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예를들면 명품에 대한 현대 사회의 숭배, 자본에 대한 눈물겨운 숭배 역시 물질의 노예들이 행하는 자발적 복종이다. 이런 삶은 자유 대해 절실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은 그저 살아내야 하는 고통의 과정일 뿐이다. 즉 기계를 굴리기 위해 박혀 있는 나사에 불과하다.

 

 사로 잡힌 동물들은 자유를 상실한 불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잃어버린 자유를 애석해하는 분노에 시달린다. 감정을 가진 모든 세상 만물이 구속을 경험하는 순간, 자유를 향해 질주한다. 인간의 본성을 변질시키고, 존재 양식에 대한 기억을 지우며, 자유를 갈망하는 본질적 존재로 돌아가려는 욕구마저 무기력하게 만드는 '자발적 복종'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앞서 읽었던 'John Stuart Mill'의 '자유론' 탄생의 배경은 18세기의 산업혁명을 계기로 농업국이었던 영국은 공업국 전환기였기 때문이다. 민중의 수중에 정권이 옮겨진 후에 민중의 이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정부의 권한은 팽창하고 각종 간섭과 강제가 새로이 출현했다. 이는 밀의 공리주의적 개인 자유에 대한 역설이다.  201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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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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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자매가 여행 중이라 집안은 조용하다. 덕분에 챙겨야 할 집안 일은 많아 졌다. 식사며 빨래 등 손을 놓으면 쌓인다. 남은 사람의 연휴도 여행이다. 혼자 찾은 고향길도 순례길처럼 여유롭다.


 사별하면 3년이 고비다. 이성 간의 사랑도 비슷하다. 사랑의 호르몬인 도파민(신경전 달물질)에 의해 열정은 지속된다고 한다. 책은 사랑하는 언니를 잃고 난 후 슬픔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가 독서를 통해 평안을 얻은 저자(동생)의 독서 일기이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독서일기'라하면 장정일 작가의 책이 유명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더구나 치료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니나 상코비치'는 여름이면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추리소설을 읽는 집에서 태어났다. 그가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빌린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야'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혼란스러웠던 대학 시절의 연애는 소설 '버거의 딸'로 구원받은 책벌레였다.
  
 그가 4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언니가 세상을 떠난다. 슬픔을 잊으려고 3년 간 방황했지만,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그에게 불쑥 찾아 오곤 했다. 그러던 그가 400쪽이 넘는 '드라큘라'를 하루 만에 읽고,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그는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이 책 뒷편에 매일 읽었던 365권의 책이 소개 되어 있다. 일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 사람 얘기를 들으면 가능할까 싶었는데 가능 한 일이다. 

저자는 몇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읽었다. 
 - 마흔여섯의 생일에 시작한다. 
 - 읽은 책에 대해서는 서평 꼭 쓴다.
 - 한 저자의 1권 이상은 읽지 않는다.
 - 새 책, 새 저자의 책을 고른다. 
 - 선호 작가의 옛 책을 읽는다.
 - 300쪽 이하의 책을 택한다. 
 - 언니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읽는다.

 인생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괴로운 감정을 잊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한다.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고,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불쑥 자신을 찾아와 무기력하게 만든다. 저자는 책속에서 가족을 만난다. 그는 일상에서 가족간의 갈등과 삶의 역경에 대한 이해 등을 책의 캐릭터 상황에서 해답을 얻어 낼 줄 아는 독서의 고수이다.

 저자의 이런 능력은 한 권의 소설 책을 읽는 행위로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평을 썼던 힘이 축적된 결과로 짐작된다. 특히 작가는 언니를 난소암으로 보내고 느끼는 슬픔을 매일 매일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삶속으로 들어가는 문학적 도피를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책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회복능력의 대가이자 증거라는 사실을 터득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월호 가족에게 슬픔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약은 없다. 함께 살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잃은 사람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기대와 흥분감을 품고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언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돌아 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언니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기억을 공유할 수 없는 그 슬픔은 누구에게나 한 번 쯤은 격게 될 순간이다. 지금의 '사이 좋음'은 살 수 없는 자신만의 시간임을 되새겨 본다. 모처럼 자매의 여행이 그들의 삶속에 풍성하게 기억되길 바란다.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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