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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가을>(글항아리) 영국인 아편전쟁을 통해 청나라에 무역 개방을 강요한 최종 결과로 나타난 '하나의 엄청난 혁명', '태평천국의 난'(1851-1864)은 중국사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중국의 거대한 내전'이었다. 이 책은 '홍경래의 난'이라면 모를까, 마치 '왕좌의 게임'을 보는 듯 그 생생한 내란의 혼돈속에 빠져들고 만다.

 

시작은 이상주의를 공유하는 신흥 종교집단이었다. 과거시험에 급제해 집안을 일으켜세울 인재로 기대를 모았던 '홍수전'은 거듭된 낙방으로 좌절한다. 네번째 과거까지 낙방한 홍수전을 구원한 건 기독교였다. 자신이 예수의 동생이자 백성을 구원할 구세주라고 확신하게 된 홍수전은 '배상제호'를 조직했고 교세를 급속히 키웠다. 이에 1851년 청나라 정부군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인간의 이상과 욕망,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한 편의 대서사시로 펼친다. 1851년부터 13년 동안 지속된 태평천국으로 잔혹한 전투와 전염병과 기근이 2000만 명을 희생시켰고, 이후 천 왕조는 이전의 힘을 회복할 수 없었다. 중국은 19세기에도 세계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고 폐쇄된 사회도 아니었다.


중국 청나라의 태평천국의 난(1850-1864)조선의 홍경래의 난(1811-1812)은 모두 19세기 봉건 사회의 모순과 농민의 고통을 배경으로 발생한 대규모 봉기이다. 태평천국의 난은 종교를 기반으로 국가를 세우고 근대적 개혁을 꿈꾼 장기적 내전이었던 반면, 홍경래의 난은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과 수탈에 맞선 단기적이고 폭발적인 민중 항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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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공산당 정부가 일종의 종교단체인 파륜궁을 매우 철저하게 탄압하고 있는 것은 바로 태평천국의 난 덕분에 청나라가 멸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그리고 실제 중국의 왕조 교체기에는 늘상 종교단체들의 반란(예를 들면 후한말의 황건적이나 원말의 홍건적 모두 종교 단체에서 파생된 농민 반라군이었죠)이 제국을 멸망시키는 토대가 되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목동 2026-01-12 17:3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카스피 2026-01-14 00:52   좋아요 1 | URL
태평천국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태평천국의 교주 혹은 황제라고 할 수 있는 홍수전(고려원-절판)을 같이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목동 2026-01-14 12:32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2000년) 7월부터 신문의 <책의 서평>을 읽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책의 향기>, 조선일보 <Books책마을, Books책>, 한겨레 <책과 생각>, 경향신문 <책과 사람, 책과 삶>, 중앙일보 <책속으로, 행복한 책읽기>, 광주일보 <책>, 무등일보 <Book>. 처가 자주 사용했던 빨간색연필로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에 밑줄그었다. 신간이나 중고 책을 알라딘에 주문했다. 토요일 신문에 소개된 서평을 읽는 즐거움이 책읽는 습관을 만들었다. 주말이 기다려졌다. 그때부터 모았던 신문을 여태 버리지 못하다 금일에야 다 보냈다. 호기심을 자극했던 많은 글에서 나를 놓아 주었다. 그때의 논객, 작가, 교수, 정치인, 취미 또는 활동가는 어디서 무탈한지 궁금하다.  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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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에게는 추석 연휴지만 나에게는 평일 연휴다.", 연휴 중에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 긴 연휴를 보내다 보면 후유증이 생긴다.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좀 나르려라 싶다.

 

 2주이상 여행을 다녀와도 그렇다. 자신이 시공간의 불일치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 곳을 떠날 때 자신은 남는다. 기억이 희미해진 훗날, 가야만 찾을 수 있는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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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초가는 되었던가
    from 고립된 낙원 2019-03-06 07:56 
    일본이 우리 땅을 유린 적은 7년전쟁(임진왜란)때도 있었다. 그리고 조선 말기 썩은 정치 권력계층이 있었다. 그 썩은 권력 때문에 자발적인 동학혁명이 촉발되었다. 부패한 권력이 불러들인 일본에 의해 나라는 망했다. <아리랑>(조정래)은 생생한 민초들의 유린 된 삶을 보여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작가는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미래를 향하지만 역사의식 만이 균형감을 일깨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조정래의 <아리랑>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소록도를 다녀 오면서 지나쳤던 홍암 나철 기념관을 볼 작정이었다. 그 동안 홍암 관련 대표적인 책을 읽었던터라 작년 11월에 개관한 기념관을 보고 왔다. 홍암은 나주나가 직장공파다.

 

 나철(1863~1916,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 생) 평전은 선생이 살았던 한일합병 전후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단군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단군조선시대 또한 우리 역사에 어떠한 표상이었는지를 밝힌다.

 

  홍암은 민족의 실존에 관한 뿌리, 민족혼의 바탕을 우리의 역사 시작인 단군에서 찾았다. 그리고 고려 때까지 이어져 오던 신교(단군교)를 7백 년 만에 겨레의 얼을 담은 민족 종교로 중광(부활)했다.

 

  이에 역사 주권을 지키는 것이 곧 자주민족의 길임을 깨달은 많은 애국지사들이 선생이 중광한 대종교에 동참했다. 김교헌, 윤세복, 이회영, 서일, 김좌진, 박은식, 신채호, 주시경, 신규식, 정인보 선생 등 학자와 언론인, 독립투사들이 대종교 교도로서 국내에서는 우리글과 말을 지키고 만주에서는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다.

 

  다가오는 10월 3일 개천절은 나철 선생이 단군의 개국입도(나라를 열고 도를 세움)를 기리는 명절인 개천절을 경축일로 정하고 상해임시정부가 국경일로 정한 데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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