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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04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북 청년회하니 야인시대의 명동파 이화룡과 시라소니가 떠올르네요.이 둘이 서북청년회를 대표하는 주먹들이지요.

펠릭스 2025-04-04 09:48   좋아요 0 | URL
네, 우리 현대사에 ˝서북지역˝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한 독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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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25-03-16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당연합군에 의해 계백장군이 패(660년 8월 20일, 계백장군 전사)한 이후 백제부흥운동 또한 663년 9월 백촌강 전투 패배로 백제의 주요성이 투항하거나 항복한다. 지수신은 최소 2달 동안 농성함.

흑치상지의 말년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백제부흥운동을 다룰 때 반드시 언급되는 것에 반해, 지수신은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임존성(예산군 봉수산) 함락 이후, 백제부흥운동은 664년 4월 사비성에서 일어난 백제 유민 봉기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임존성 함락으로 맥이 끊김.

이후 당나라가 부여융을 내세워 웅진도독부를 통해 백제를 당의 괴뢰국으로 부활시켜 신라를 견제하려 했으나 나당전쟁 초반인 672년 이후 당도 백제전역에서 광탈.

흑치상지(흑치 조상 부여씨로 흑치 지역에 봉해지면서 흑치를 성씨로 삼음)는 백제의 장수로 태어나 혈기왕성한 시대에 조국 백제의 멸망을 지켜보았고 적국인 당나라로 건너가서 무장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결국 죽임을 당함.

특히 노중국과 예산 지역의 향토 사학자들은 ˝흑치˝를 ‘검은니‘의 훈차로 보고 흑은 ‘검다‘는 의미로 금, 치는 물, 또는 내천이라는 의미로 물로 해석하여 백제 금물현이 있던 충남 예산군 덕산면, 고덕면, 봉산면 및 충남 당진시 합덕면 일대로 비정하고 있다.

또한 그의 아들 흑치준은 요절하였으나 흑치상지는 중국 북망산 묻히게함. 흑치상지 장군은 당나라의 ˝번장제도˝(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장수를 기용하는 제도) 때문에 당의 장수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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