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복수의 밤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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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나 등에 문신을 새기고 끝없이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사내를 보면 누구나 한심한 인생이라고 혀를 찰 것이다.

 

이름보다 1752번같이 수형번호로 불리는 게 편한 사내.

 

교도관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출소하는 그에게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찾으라고 한다. 

 

"교도관님 말씀처럼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1쪽

 

무심히 읽었던 이 대사가 전체를 다 읽고 나니 너무나 마음 아픈 결심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

(내용 유출 주의)

 

쉰아홉인 가타기리라는 재소자는 스물일곱 살에 교도소에 처음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끝없이 범죄를 일으켜 사회와 격리되어 간다.  

 

아내와 딸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가타기리는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조직폭력배에게 상해를 입힌 것으로 구금되어 결국 가정을 잃는다. 그 후 가타기리는 얼굴에 커다란 문신을 새기고 기이한 범죄를 반복하며 전국의 교도소를 떠돌다 잠시 출소한 사이 공장에서 팔을 잃고 그러고도 범죄를 계속해 수감된다.

 

자신의 부인을 구하다 가타기리가 범죄를 저질렀기에 부채감을 지니고 있는 기쿠치, 한심한 아버지를 한순간 외면해 허망하게 보낸 후 가타기리에게 이끌렸던 변호사 나카무라, 가정이 와해되고 외삼촌을 아버지라 믿고 성장한 히카리, 가타기리의 삶을 파괴시킨 가지와라에게 인생을 저당잡힌 아야코,  자신의 범죄를 뒤집어쓰고 가타기리가 교도소에 간 덕에 아들의 임종을 지킨 아라키, 이렇게 다섯 사람의 시선으로 가타기리가 왜 그렇게 범죄를 반복하여 살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간다.

 

인생을 걸고 한 여인을 사랑했고 결국 그 여인을 죽게 한 남자를 찾아 전국의 교도소를 떠돌다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고야 안정을 찾은 가타기리가 너무나 불쌍하고 한스러워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도 한숨이 나왔다.

 

굉장히 90년대 홍콩 누아르 풍의 이야기이고 신파 그 자체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부인과 딸을 위한다는 그 자체에 매료되었나보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자신의 생을 파괴해야만 완성되는 사랑이라니 처절하다.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절망감은 더욱 크지. 하지만 그런 존재가 마음속에라도 있으면 불행한 삶을 버텨나갈 힘이 되기도 해." 94쪽

 

다섯 사람이 가타기리를 대하는 시선과 그들의 내면, 표면상으로는 중범죄자이지만 그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가타기리의 상황이 잘 그려진다.  

 

특별한 반전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건 이런 풍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가철이나 후텁지근한 여름밤에 볶음우동에 맥주를 마시며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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