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갈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3
사쿠라기 시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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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의 바닥을 걷다 [유리 갈대]

 

 

[유리 갈대]는 세 번째로 만나는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다.

[순수의 영역] 이라는 장편 하나와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 이라는 단편집 하나를 읽었을 뿐이지만 작가가 표현하는  분위기는 밝은 편이라기 보다는 어두운 편에 속한다.

작가가 홋카이도 구시로에서 태어나 계속  그 곳에 살았기에 작품 속 배경은 거의 홋카이도다.

거센 바닷바람에 맞서는 대가 센 여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음지 특유에 사는 사람들의 스산하면서도 음습한 기운이 문장 사이사이에 베어들어 있다.

 

<순수의 영역> 나의 리뷰 중.

질투의 감정을 다룬 소설이라면 좀 더 빠르고 적대적이고 불꽃튀는 드라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처연하고 스산하고 차갑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질투라는 감정의 성질이 잘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 나의 리뷰 중. 

여자라서 여자의 이야기를 더 잘 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또한 여자라서 관능적이고 섹시한 묘사, 올바른 몸가짐을 가진 진짜 무희의 삶을 진지하게 적어내려간 작가의 이야기에서 더 깊은 떨림을 맛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 두 권의 리뷰를 찾아 읽어보았다.

그래. 이런 분위기를 간직한 작가였어.

 

이번 [유리 갈대]는 작가가 창조한 기존 캐릭터와 견주어  인생 역정이 기구하기로는 비교할 데 없는,  세쓰코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세쓰코가 단가 모임에 나가 쓴 글 중의 하나다. <유리 갈대> 라는 제목의.

아마도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텅 빈 허무함, 가슬가슬해서 부드러움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메마른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 읽는 내내 <유리 갈대> 구절이 되뇌어지니 말이다.

 

고작 서른 살인 세쓰코는 오랜 세월 어머니의 애인이었던 남자를 가로채서 러브호텔 안주인의 자리를 꿰찼다. 이쯤 되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세쓰코의 인생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에게 얻어맞지 않으려고 감정을 죽이며 살아왔던 것이 이런 일에까지 이르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스즈란긴자 골목에서 잔술집을 하던 세쓰코의 어머니는 어린 딸을 이용해 돈을 벌었고 급기야 자신의 남자에게 딸을 주기까지 한다. 세쓰코가 남편을 "아빠" 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사정을 알면 이해가 된다.

 

 

멀쩡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오자 세쓰코는 남편의 행적을 추적한다. 남편이 사실은 '직장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전 애인이었던 세쓰코의 어머니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살'격인 교통사고를 낸 것도 알게 된다.

 

"아빠, 어제 여기 왔었지?"

-72

 

돈으로 유혹받아 돈으로 맺어졌다고 믿었던 남편과의 사이에 "어머니"가 끼어들자 세쓰코는 마음이 아파온다. 애써 죽이고 덮어두었던 감정이 어딘가에서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세쓰코가 결혼 후에도 러브호텔의 재정을 맡아 주고 있는 젊은 세무사 사와키와 관계를 갖는 것을 들춰낸다.

 

사와키와 세쓰코 관계와 기이치로가 리쓰코와 끊어진 적 없었다는 사실이 과연 상쇄할 수 있는 일일까. 사람의 마음을 상쇄할 수 있기는 할까.-73

 

화가 난 세쓰코는 어머니를 밀쳤고, 어머니는 쓰러졌다.

 

 

한편 단가 모임에서 만난 우아한 부인 사노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는 겉으로는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행복한 가족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는 곪을 데로 곪아 "인간다움"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세쓰코는 남편이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은 다른 데 신경을 안 쓰려 하지만 꼬마 마유미의 유난히 맑은 눈동자가 괜시리 신경 쓰인다. 마유미의 걷어진 소매 속에 얼핏 보이던 얼룩덜룩한 멍자국!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삼키고 화도 못 내며 울음 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 받은 영혼을 그 투명한 눈동자 속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겉과 속이 다른 어머니 미치코에게 맞은 건가, 했지만 곧 의붓 아버지의 짓임을 알게 된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계획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마유미를 이틀간 보호하게 되고 마유미의 아버지는 그 이틀간 마유미가 유괴되었다 주장하고 세쓰코는 도마뱀같은 마유미의 아버지에게 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어떡하나...아이와 아이의 어머니는 "인형의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다 '유괴된 아이의 아버지는 자살' 하게 되는가. 짤막한 한 편의 미스터리 드라마가 솜씨 좋게 들어앉아 있다.

 

세쓰코는 혼자 러브호텔을 경영할 수 없다며 직원에게 호텔을 양도하고 마지막으로 사와키와 함께 어머니의 집을 찾는다. 잠시 후 세쓰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잔술집 '바비아나'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까맣게 탄 주검만이 사와키를 기다린다. 이른바 분신자살이라고 하는 건가.

이십대의 세쓰코와 관계를 맺는 도중 세쓰코가 러브호텔 사장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밝혔을 때 사와키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결혼이란 속박에 매이지 않기 위해서였기도 했고, 세쓰코의 몸에 흐르는 처연함 때문이기도 했다.

세쓰코의 죽음에 망연자실해 있던 사와키는 유리 갈대같던 세쓰코를 자꾸만 곱씹는다.

그런다고 살아돌아오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안고 그녀의 흔적을 좇는 사와키만은 실낱 같은 빛을 보았으면 좋겠다.

 

 

속이 텅 빈 갈대 속에 모래가 흐른다고 했던가.

인생이 날개 달고 한 번 위로 솟구쳐 본 기억을 선사해주지 않아서, 이들은 자꾸만 공허함의 바닥을 걷는가.

그들이 끌고 가는 회색의 그림자가 오그라든다.

 

속이 비어 여린 것 같으면서도 한 번에 꺾어지 않는 갈대는 스산함 속에 강인함을 숨기고 있지만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면 또 한 번의 일격에 쨍 하고 깨져버릴지 모른다.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인생의 반려를 제대로 만났더라면 깨지지 않고 손상되는 일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스스로 노래할 수 있었을 텐데.

웃고, 울고 , 화내는 어린 아이로 살았더라면 아름다운 여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거센 풍랑에도 굴하지 않는 홋카이도 여자의 안간힘을 본다.

 

충격적인 막장 드라마로도, 관능적인 성애 소설로도, 으스스한 미스터리로도 손색 없는 [유리 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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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나이트 레베카 시리즈
오사 라르손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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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여름, 어둠이 파고든다. [화이트 나이트]

 

 

 

백야, 태양이 빛나는 여름, 늑대, 여목사, 마녀사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묘한 데서 만난다.

[화이트 나이트]는 뭐랄까,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백야' 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좀 낯선 느낌이 강하다.

깜깜해야 할 한밤중에도 해가 떠 있어서 사방이 밝은 곳, 북유럽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 속에 스웨덴이 떠오른다.

요 네스뵈가 사는 곳 노르웨이에도 백야는 있지만 요 네스뵈가 묘사하는 백야는 <미드나잇 선> 속에서 남성적인 분위기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스릴러의 배경이었다면

스웨덴 출신 오사 라르손의 백야는 심리적인 면에 중점을 둔, 정적인 분위기가 독보적인 범죄소설이다.

 

오사 라르손의 [블랙 오로라]에 나왔던 여주인공  변호사 '레베카'의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블랙 오로라]를 보고 난 뒤 보는 것이 여러 모로 분위기 파악에 도움이 된다.

간접적으로 드러난 몇 몇 상황들에 의해서만 '레베카'의 이야기를 유추해야 해서 초반에는 [화이트 나이트] 만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시리즈는 역시 1권부터 봐야 해...

 

 

짧게 뚝뚝 끊기는 문장들이 긴박한 상황을 제대로 드러내준다.

초반에 범죄 사실이 이렇게 밝혀지는데, 범인은 꽤 잔혹한 형태로 살인을 저지른다.

'가슴속 성난 괴물같은 개"가 광기의 세계로 달려 나가는 것에 비유할 만한 것이니만큼,

범인의 행위는 잔악하고, 그 마음 속 들끓는 분노의 원인은 미처 짐작하기 어렵다.

이제부터 서서히 범인의 분오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면서 읽어가야 하리라.

 

폐쇄적인 마을 분위기가 짐작되는 한 교구의 교회에서 목사 밀드레느 닐손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예배당 앞쪽 오르간 파이프에 긴 쇠사슬로 묶인 채 늘어뜨려진 시체.

교회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수법으로 살해를 저지르다니. 꽤 입맛이 쓰다.

여목사에 대한 원한이 꽤 깊어 보인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을 힘들여 끌고 와서 저런 식으로 묶어 놓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키루나의 형사 안나마리아와 스벤에리크가 사건을 맡아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벌인다.

여성 운동과 야생 늑대 보호, 교회 개혁 등 지역의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던 밀드레드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그녀와 껄끄러운 관계였다.

이권이 개입된 문제로 대립하던 사람들은 밀드레드에게 날을 세우고 있는 상태다. 은퇴한 경찰에 사냥 클럽 정예팀 대장인 라르스군나르는 말할 것도 없고 유카스예르비의 목사인 베르틸, 스테판도 마찬가지. 사냥 클럽 멤버인 망누스는 그녀에 대한 증오를 대놓고 드러내는 판국이다. 이렇다할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2년 전 키루나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던 변호사 레베카가 죽은 목사가 남긴 서류를 정리하다 복사본과 편지를 전해준다.  되도록 이번 사건에 관계하지 않으려 했던 레베카는 경찰들에게 도움을 주려다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밀드레드가 만든 여성 성경 공부회 '마그달레나'의 회장인 리사'와 몇몇 여인들만이 밀드레드에게 호의적이며 그 중에서도 리사는 밀드레드와 은밀한 비밀을 나누어 갖고 있는 최측근이지만 웬일인지 나서서 해명하려 들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섞여 들어가 있는 늑대 '노란 다리'에 대한 이야기는 늑대 사냥에 반대했던 밀드레드의 분신 이야기인 것 같아 강렬한 인상을 준다.

무리 속에 섞여 들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려 하지만 결국에는 내쳐져 홀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 외로운 암늑대의 고군분투.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과 밀드레드의 관계를 파헤칠수록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숨겨왔던 두려움의 근원, 외로움의 근원들이 차츰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며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

밝은 백야와는 상반되게 마음 속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한 사람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가는 과정을 읽다 보면 심리 서적 못지 않은 깊은 통찰을 볼 수 있다.

키루나에서 또 한 번 범죄에 휘말려 지하실에 갇힌 채 시시각각 조여드는 불안함, 고통에 시달리는 레베카는 차마 보고 있기 힘들다.

흔히 복지사회의 대명사라 일컫는 북유럽이라도 조용한 어느 마을 한켠에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지역사회의 폐쇄성, 일그러진 종교상 등이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 곳에 개혁의 불씨를 당기려던 여목사 밀드레드의 처참한 최후가 고독한 암늑대 '노란 다리'의 일생과 자꾸만 겹쳐진다.

요 네스뵈와는 다른 차분하면서도 안정된 전개가 돋보이고 특히 심리 묘사 부분, 죄어오는 공포의 묘사가 압권이다. 시리즈로 읽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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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힘
마셜 골드스미스.마크 라이터 지음, 김준수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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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힘 [트리거]

 

어제 오전, 요가 수련을 하던 중 갑자기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었죠.

낮에 일하느라 바쁘다며 짬을 내지 못했던 '아는 언니'가 걷기 운동 하러 가자며 전화한 것이었습니다.

요가 수련 후, 간만의 통화에서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합니다.

휴대폰 앱 'S헬스'에서 제가 자꾸 걷기 '도전'을 하는 바람에 오기가 생겨서 한 번 이겨보려고

같이 '걷기 운동' 하러 가자 전화했다는 겁니다.

그 언니의 승부욕에도 깜짝 놀랐고, 휴대폰 앱 하나로도 즉각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언니가 놀랍고 존경스러웠죠.

아마 휴대폰 앱에 뜬 '도전 수락', '승리하셨습니다.'라는 문구가 그 언니에게는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트리거'가 되지 않았을까요?

살을 빼야지, 빼야지 하면서도 무거운 엉덩이를 자리에서 떼지 못하거나 먹을 것의 유혹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언니는 당장 실행에 옮기니, 역시 강력한 동기가 있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세계적인 리더십 구루 골드스미스 박사는 조직행동론, 리더십 컨설턴트 분야에서 유명한 분인 것 같아요.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아는 바대로, 또는 계획한 대로 행동하지 못할까?

이 화두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그는 먼저 허시와 블랜차드의 '상황적 리더십'을 내세우네요.

블랜차드는 아마,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이네요.

예전 교육학 배울 때 살짝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블랜차드가 이 블랜차드인 줄~ 이제야 알았네요.

어쨌든, 상황적 리더십에서는 리더와 직원들 간의 관계를 지휘형, 코치형, 지원형, 위임형 네 가지 스타일로 구분하고 각각 어울리는 상황을 활용해서 리더들이 동료나 직원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고 해요.

 

먼저, 저자는 "트리거"를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모든 자극이라고 정의하고 트리거와 행동 사이에 충동, 자각, 선택이라는 세 가지의 중요한 간격 사이에 넣었습니다.

커피숍에서 좀처럼 줄지 않는 긴 줄, 왜 아직 결혼 못했냐고 물어오는 육촌 형제, 애완견이 길에다 눈 똥을 치우지 않는 이웃,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동료, 비행기에서 끊임없이 우는 아기 등의 순간들이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충동을 건드리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충동이 이끄는 대로 경멸감을 드러낼 것인가, 한숨 들이쉬고 현명한 선택을 내리겠는가?

우리 삶을 뒤흔드는 트리거는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합니다.

삶은 이렇게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트리거에 대응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하네요.

트리거가 무엇이기에 우리의 변화를 막는지, 그걸 어떻게 해야 깰 수 있는지, 그리고 변화를 지속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풍부한 사례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변화의 시작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만이 변화의 지름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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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용도 (양장)
니콜라 부비에 지음,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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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본래의 나를 내던지는 것 [세상의 용도]

 

 

 

니콜라 부비에라는 생소한 인물이 나를 매혹시킨다. 장장 661페이지에 달하는 여행기가 소설책 읽듯 휙휙 넘어간다. 여행기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혹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라마지 않았던 소소한 기록 뿐만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생동감 있는 인물, 그리고 직접 가보지 않으면 담아오지 못했을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색깔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금 현재의 기록이 아닌, 1950년대의 기록이기에 더욱 놀랍다.

한국전쟁으로 시름에 젖어 있었을 우리네 1950년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계여행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민속적 아름다움과 각기 다른 사람들이 뿜어내는 자연적인 매력들이 가득하다.

굵은 선들로 이루어진 투박한 그림들은 묘한 생동감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보고, 듣고, 느끼는 그대로의 것들을 포착하고 자신만의 사유 속에 녹여내어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이는 누구인가?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인 니콜라 부비에는 작가이자 사진가이자 고문서학자, 시인이다. 어쩐지 그의 문체에서 시의 향기가 물씬 풍기더라니. 같은 것을 보아도 보다 명료하고 보다 섬세하고 보다 깊이 있게 적어내고 또렷이 형체가 떠오르는 비유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1929년생인 그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도서관 사서, 어머니는 '가장 실력 없는 요리사'였다고는 하나, 높은 교양을 갖춘 부르주아지 집안을 꾸린 것은 분명하다. 그의 부모들은 토마스 만, 마르그리스 유르스나르,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헤세를 손님으로 맞았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와 동시대를 살았다고 했는데, 그 시절에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헤세도 또한 여행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부비에는 여행을 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일어나서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집에 있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상의 용도] 마지막 장에서도 그런 분위기의 문장이 나온다.

 

자기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겠다니! 원래의 어리석은 자로 그냥 남아있겠다니! 그래서 그는 별다른 걸 보지 못한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마치 샤일록처럼, 여행자에게 '살덩어리를 떼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645

 

1953년 6월 부비에는 티에리 베르네와 함께 피아트를 타고 인도로 출발했다. 한 사람은 작가, 한 사람은 화가였다. 둘이 함께 하는 여행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중단되지만 부비에는 혼자 여행을 계속하여 인도와 실론으로 간다.

1953년에서 1954년 사이 두 스위스 청년은 제네바에서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칸의 카불까지 다녀왔다.  

지도를 보면 그들의 여정이 한눈에 드러난다.

 

 

 

20대의 청춘들은 9주간 쓸 수 있는 돈을 들고 '느린 여행'을 실현하기로 한다.

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간은 넘쳐났다며,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만을  누리기로 했단다.

 

차 지붕은 열고 엑셀러레이터는 살짝 당겨놓았으며 좌석 등받이에 걸터앉아 한쪽 발은 핸들 위에 올려놓은 채 시속 20킬로로 느릿느릿 길을 갔다.-84

 

지금처럼 네비게이션이나 숙박 어플, 여행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할 유유자적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일단 도착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즐기고 누리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부럽다.

물론, 스위스의 삶과는 다른 가난하고 유목민적인 생활,  각국의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생소함, 그들을 덮친 더위와 추위, 그리고 모르는 새에 엄습해오는 병마 등이 그들을 힘들게 했지만 젊은 그들은 가난함 속에서 반짝이는 기쁨을 발견하고 흥분과 열정이 드글대는 춤과 노래가 가득한 잔치를 즐기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속에서 진정한 여행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마하바드-291

벽토로 지어 푸른색으로 문을 칠한 집들, 이슬람 사원의 뾰족탑, 사모바르 주전자에서 솟아오르는 김, 그리고 강가의 버드나무. 3월 말의 마하바드는 다가오는 봄의 금빛 레몬색에 잠겨 있었따. 대마 부스러기를 연상시키는 검은 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빛이 황새들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둥지를 튼 평평한 지붕에 스며들었다. 중심가는 챙 달린 검은색 모자를 쓴 시아파와 챙이 없는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의 펠트모자를 쓴 자르도슈티파, 작달막한 키에 머리에 터번을 쓰고 쉰 목소리로 격론을 벌이며 이방인을 빤히 쳐다보는 쿠르드족이 줄 지어 지나다니는 웅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급한 일이 없는 사람들은 상체를 앞으로 약간 기울이고 뒷짐을 진 채(그들은 항상 뒷짐을 졌다.  입고 있는 바지에 호주머니가 달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걸음 떨어져 우리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여행자이기도 했다가, 돈이 떨어지거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마을에  몇 개월씩 머무르며 그림을 그리고 칼럼을쓰고 프랑스어 과외를 하는 생활인이기도 했다. 애써 적어 놓은 원고를 도둑맞고는 쓰레기장 속에서 몇 장을 건져내기도 하고, 차가 고장나 힘들 때 마을 사람들의 무한한 호의에 기대 도움을 받기도 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경,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한 순간에 머물렀던 기억들을 빼곡히 적어 놓은 문장을 사랑한다. 뚝뚝 끊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무한히 이어지는 감동적인 광경들의 나열들도 똑똑 떨어진 물방울이 한지에 베어들 듯, 내 마음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점점이 뿌려진 것들이 그들이 다녀온 지도위의 점을 연결한 것과  같은 길다란  선으로 기억된다.

두툼한 책이어서 처음엔 생경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두툼해서 더욱 행복한 책으로 남는다.

본래의 나를 내던지는 진정한 여행을 다녀온 이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진짜 여행이 뭔지 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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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보쟁글스
올리비에 부르도 지음, 이승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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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꼬리도 없지만 행복한 바보들의 이야기가 담긴 프랑스 소설 [미스터 보쟁글스]

 

 

 

독특한 이름의 '미스터 보쟁글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일 줄 알았다. 내내 보쟁글스를 찾고 있었다.

주인공은 '나'인데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버지는 '조르주'라 불리긴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진짜 이름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고 어머니의 이름은 숫제 매일 바뀌어서 진짜 이름은 애시당초 알아야겠다는 기대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미스터 보쟁글스는 등장 인물이 아니다. 다만, 표지에서처럼 춤 추기를 좋아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춤을 출 때면 항상 턴테이블에 올리곤 하는 니나 시몬의 노래 <미스터 보쟁글스>에서 그 이름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보쟁글스라는 남자를 알았지

그는 당신을 위해 닳아빠진 구두로 춤을 췄어

은빛 머리칼, 누더기 셔츠와 배기팬츠

그는 사랑스런 소프트 슈 댄스를 춰

그는 높게, 높게 점프했다가

부드럽게 내려앉지

 

(...)

 

미스터 보쟁글스,

미스터 보쟁글스,

미스터 보쟁글스,

춤을 춰줘

 

 

유튜브에서 1971년 니나 시몬이 노래하는 미스터 보쟁글스를 찾아 들어보라.

구슬프게 읊조리는 미스터 보쟁글스 라는 가사가 귀에 들어와 박힐 것이다.

책에 따르면 주인공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완전 행복에 가득한 상태에서 춤을 출 때 이 노래와 함께 했다는데, 생각보다 느리고 음울하다.

이 노래의 어느 부분에 흥을 돋우는 곳이 있단 말인가.

사뭇 비극적인 분위기의 음율 속에서 이들은 춤을 추었다? 뭔가가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평범하지 않은 이 부부의 삶은, 첫시작은 매우 유쾌했다.

아버지가 써서 남겼다는 소설에는 어머니를 처음 만난 부분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사람들의 기분을 북돋우려 했던 아버지의 눈에

이상하리만치 아름답게 비춰진 어머니의 기이한 행동이

둘만의 독특한 사랑을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반짝이게 만든다.

차량 건강검진이 법제화 되자 '카센터 개업자'가 된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었고 아름다운 아내와 흥청망청 써댔다. 멋진 이야기를 잘 들려주는 아버지는 스스로 "행복한 바보"라 부르며 진 토닉 마시며 보디빌딩하는 '짐 토닉'을 실시했고 밤 늦게까지 일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존댓말을 하는 어머니가 시간을 함께 보내달라고 하자 카센터를 정리하고 집에서 글을 썼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정상이 아닌 부모, 자주 찾아와 식구가 되다시피 한 자칭 상원의원 '쓰레기', 재두루미 '아가씨'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화려한 사교생활을 영위하는 동안 집에는 손님들이 들끓었고 매일 춤추고 파티를 벌였다. 하지만 '나'가 태어나고 몇 해 뒤, 어머니는 변신을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한계를 살짝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광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멋지고 사랑스러웠던 어머니는 슬픈 광기의 웃음을 보이고 화를 내는 변덕을 부리기를 반복했다.

 

"당신이 날 사랑하는 건 잘 알죠. 그런데 이 광적인 사랑을 난 어찌해야 합니까? 이 사랑을 난 어찌해야 합니까?"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절규하곤 했지만 결국엔 어머니의 치명적인 매력에 그의 사랑을 저당잡힌다.

어머니는 알몸으로 가게에 나가 물건을 사고 열정이 들끓을 때면 소설 쓰기, 아파트 페인트칠하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나'가 장을 보러 간 사이 집에 불을 지른 어머니는 병원에 보내지고 만다.

 

병원에 갇힌 어머니는 어느날 자신을 '납치'해달라며 계획을 말했고, 이들은 미친 짓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소원대로 어머니를 납치해 스페인의 별장으로 도주한다.

미쳐가는 어머니를 돌보며 아버지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고, 자신이 지어낼 수 있는 기발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스페인의 마을에서 큰 축제가 벌어지던 날 부부는 너무도 행복한 모습으로 춤을 추었다.

이것이 아마도 최초의 춤, 최후의 춤.

 

"잘 썼고, 재미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네요."

"세상 어느 책에 머리랑 꼬리가 달렸다는 거야, 있으면 나도 좀 보자!"-19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아버지가 쓴 책에 머리도, 꼬리도 없는 행복한 이야기로 남았다.

머리도 꼬리도 없지만 행복한 바보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는 동안 답답함과 속상함을 훨훨 벗어던질 수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아주 멀리 도피해서 살아가는 이 활력넘치는 미치광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쏘옥 든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오늘 마음껏 먹고 마시고 놀며 춤추고 노래하라!

대책 없이 무사태평한 이들의 거짓말 같은 찰나의 환희에 대신 흠뻑 젖어들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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