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필요한 시간 -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사랑 인문학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자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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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인문학 [사랑이 필요한 시간]

 

 

 

아이가 간밤에 독감으로 열이 펄펄 끓었다.

39.6도라는...

우리집 체온계로는 39도로만 기록되던 열이 응급실에 가니 39.6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열에 들뜬 얼굴을 옷 속에 푹 묻어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딸아이를 제대로 이끌고 가야 하건만

마음이 바빠 병원 입구조차 제대로 찾지 못했다.

어두컴컴한 입구가 나란히 둘 있었는데 하나는 장례식장 입구였고 하나는 병원 입구였다.

정신줄을 잠시 놓았던지 내 발이 장례식장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뒤에서 "빵"하는 경적 소리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그 쪽이 아니잖아. 정신 안 차려?"

펴뜩 눈을 들어 보니 붉은 색으로 빛나는 장례식장 입구라는 간판이 그제서야 보였다.

이런...

아직은 그 쪽으로 발 돌릴 때가 아닌데...

사랑하는 아이의 어깨를 부축해 얼른 병원 입구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런저런 응급 처치를 마치고 나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12살이라 좀 컸다고 수액 맞을 주사를 꽂는 동안에도 잘생긴 청년 간호사에게

"정말 안 아파요? 아플 것 같은데..." 처럼 엄살도 떠는 걸 보니 제법 의젓해진 것 같았다.

독감으로 입원까지 해야 했던 몇 년 전보다 훌쩍 큰 느낌이다.

때마침 아이 옆 베드에 2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들쳐 업고 부모가 들어왔다.

독감인 아이가 열이 떨어지지 않아 응급실로 온 모양이었다.

입원을 결정하고 수액을 맞는데 그 조그만 손에 바늘을 꽂으려니 아이가 그만 자지러지게 운다.

"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

우는 소리 내내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응애도 아니고 엉엉도 아닌 엄마엄마 소리가 가슴 속에 훅 들어왔다.

남의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2살 즈음의 내 아이가 나를 찾는 듯해서

갑자기 울컥했다.

남편이 묻는다. "왜 울어? 이제 열만 떨어지면 될 텐데..."

응급실에 와서 열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우리 아이를 보고 이제 그만 안심이 되어 눈물을 흘리는 줄 안 남편이 위로랍시고 무뚝뚝한 말을 건넨다.

옆 베드 아기 울음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올 것 같아

휴지를 들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잠자야 할 시간에 누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병원행을 하게 된 둘째가 문을 삐걱 열고 나와 내 옆에 섰다.

"엄마 왜 울어?"

아이구...그래도 엄마 걱정이 돼서 따라 나왔나 보네.

입 안 가득 울음이 차서 한 마디 입 밖에 내면 와르르 슬픔의 쓰나미를 보여줄 것 같기에

애써 눈물을 닦으며 뒤돌아 섰다.

짧은 몇 시간 사이에 여러 가지 감정이 마구 뒤섞인 경험을 했다.

그 시간 동안 느낀 감정 속에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게 몇 가지나 될까.

 

아이와 엄마, 남편과 아내 같은 가족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내 아이 또래의 다른 아이에게도 미루어 번져간 사랑도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때로 사람을 아프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지만

중간중간 희미한 웃음을 짓게도 하고 너무 기뻐 주체할 수 없이 크게 웃게도 한다.

 

[사랑이 필요한 시간]이란 책에서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사랑'이라는 영원한 수수께끼에 접근한다.

몇 장 넘기지 않아

우리 모두가 궁금해 마지 않는

'사람은 왜 사랑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툭 던진다.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혼자서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

 

사랑은 인간의 근원에 가까운 욕구, 어떤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의 근원.

이 말을 들으면 아이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같이 눈물 짓게 되는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사랑의 힘에 주목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고전문학, 역사, 종교, 철학, 영화 등 다양한 관점의 인문학적 고찰을 통해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한다.

사랑에 대한 깊은 물음에 빠져 있다면, 이 책을 읽고 함께 답을 구하는 여정에 동참하기 바란다.

아직도 열이 내리지 않아 발그레한 볼을 한 아이가 눈에 밟혀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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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의 비밀 - 중국 역사에 나타난 관리들의 생존법
천웨이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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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가르침[관리의 비밀]

 

 

 

TV청문회를 보면 울화가 더 치민다.

속시원히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서 답답함을 풀어주어야 할 터인데,

질문이며 답변이며 어디 하나 명쾌한 데가 없다.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진실' 에 가까운 '썰'들은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제정신이기는 한가,

묻고 또 되묻게 만든다.

기자들이 팩트에 양념을 좀 쳤다는 걸 감안하고 들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판국이다.

지금의 국민들을 얕봐도 너무 얕보는 처사 아니냐 말이다.

촛불집회로 국민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기 전에는

권력을 가진 자의 말 한 마디, 눈 부라림 한 번으로 모든 언로를 막아두는 것이 관리들의 몫이었나, 싶다.

진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데,

호가호위도 분수가 있지.

민의를 수렴하여 정치를 해나가야 할 사람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 행동하는 꼴이 우습다.

나라의 녹을 먹고 국가의 관리가 되면

그 말은 천금과 같고 행동은 발자국 하나 떼는 것조차 준엄하게 행해야 할 것인데

지금은 당연히 행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우니 어찌할 것인가.

 

[관리의 비밀]은 사실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책 속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더 깊은 수렁으로 발을 내딛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중국에서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거나, 더 나은 곳으로 옮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남몰래 이 자리를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관리가 지켜야 할 46가지 법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얄팍한 술수만을 배워 자신의 몸을 보전하는 데에 활용할까 싶어 염려하는 것이다.

문맥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

그렇게까지 해서 관리의 직을 이어가려고 노력한 이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의 처신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인데

표면의 일화들만 읽고 무작정 따라하면 어쩌나...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마냥 근심만 가득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바로 벼슬살이다. 만일 벼슬살이마저 할 수 없다면 그야말로 쓸모없는 인물이다. -이홍장

 

이 말을 시작으로 이 책 속에서는 하찮은 벼슬자리를 벼슬살이를 한 방법이 주루룩 흘러 나온다. 

2천여 년 동안의  중국 봉건 사회 역사 속에서 한 무리의 하찮은 인물들은 권세를 누리고 관료 사회의 잠언이나 철학을 남긴 인물들처럼 '덕 쌓기'나 '학설 세우기'는 할 수 없었다.

대신 '공적 세우기'는 할 수 있었으니 이들의 벼슬살이 방법은 오로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수신을 위한 내경과 관계학을 혼합해서 사용하며 안팎으로 수련하여 영원히 쓰러짐 없는 든든한 자리를 확보한다'

 

면벽십년, 끈기 있게 오랫동안 수신을 하다 결국 쓰임새 있게 활용된 인물로

제갈량을 든다. 인내심의 대명사로 고적, 강인한 의지의 소진, 만능박사 강태공, 분명하게 처신하기 유국태 등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참으로 재능 있는 인물들이 낭중지추로 쓰이기 위해 어떻게 몸을 닦았는지를 깊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인물 외에

중국의 역사 속 혹은 소설 속 인물들은

관리가 되기 위해

혼인으로 인척 되기, 세도가 부인에게 접근하기, 예물로 출세하기 등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다소

황당한(?) 방법들이라 할 수 있으나

그 시절 관리들의 처신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단서다.

바로 이 지점은 또한 온갖 비리의 모태가 되는 곳이기도 해서

한 발 잘못 내딛은 이들이 유혹의 구렁텅이에 쉽게 빠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머리를 조아리며 어리석은 체하기, 재능을 드러내지 말로 꼬리 내리기,

사소한 일은 참고 큰일 꾀하기, 꼬리를 흔들어 출세하기.

여러 방편들이 있으나 아무래도 이러한 것들은 관료 사회의 소인배로 낙인 찍히기에 딱 맞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평생의 삶을 보장해주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 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출세하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뛰어난 시인으로 알고 있는 이백과 두보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감투를 얻기 위한 '찾아 헤매기' 즉 '간알'을 행했는데 이것은 하찮은 인물이 벼슬길에 들어서기 위한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수준이 낮은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간알의 길에서는 재능이 아무리 많은 인물일지라도 '좀 고쳐주십사'고 머리를 조아릴 수박에 없다. 왜냐하면 벼슬길에서는 청렴하고 고결한 자존심은 없고 오로지 뻔뻔스러움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43

 

예로부터 선비는 권세 있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로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알랑거리며 아부나 하며 벼슬살이하는 하찮은 인물들을 경멸했다. 하지만 일단 자기 자신이 벼슬길에 뛰어들려고 할 때에는 굽실굽실 비굴하게 알랑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353

 

관리의 길에 들어서려는 사람들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역사의 인물들이 벼슬길에서 벌이는 행동에서

반짝이는 행동만을 금과옥조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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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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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대리사회]

 

 

 

저자는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대학에서 8년간을 현대소설 연구자로 살아왔지만 2015년 12월,

안락하다면 안락하고 불안정하다면 한없이 불안정한 대학에서 나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와 아이 둘 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실의 암담함을 느끼고 기꺼이 '노동자'라는 이름을 감수한 것이다.

남들이 보면 번듯한 화이트 칼라지만 그 안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에겐

화이트 칼라는 무슨, 번듯한 건강보험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유령'일 뿐이었다.

지방대 시간강사의 안과 밖에서 느끼는 괴리, 그 거대한 틈을 과감하게 까발리고

기어이 대학의 틀을 벗어났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 추켜세우고 싶지만 그가 살아내고 부딪쳐야 할 현실이 녹록지 않기에

그 감탄의 말조차 내기 조심스럽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사회가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고 했다.

나자신의 두 발로 우뚝 서서 살아가는 주체적인 인간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뜬금없는 강펀치를 날리는 셈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7

 

대학의 연구자가 아니라 거리의 언어를 기록하는 작가로 서있는 그가

바라보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연 그러한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대학이라는 곳에 대한 애정을 과감히 차버리고 삭막한 사회로 들어선 저자의 눈으로 보기에

지금 우리가 처한 사회가 균형잡힌 평균대 위에 똑바로 놓인 채 서술되었다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신성한 노동의 현장에서

두 발로 직접 뛰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거리의 인문학을 펼쳐낸 것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첫 손님에게 뛰어가면서 그에게 어떤 첫마디를 건네야 할지, 그를 무엇이라 호칭해야 할지, 계속해서 시뮬레이션했다. 1.5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걷고 뛰고 하는 동안, 노동은 운동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44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우치게 해주었다. 대리 운전석에 앉는 순간, 주체로서의 저자는 사라지고 대신 대리로서의 인간이 그 자리를 채운다.

타인의 운전석에서는 호칭을 결정할 권한이 없고, 내 코는 냄새의 주인이 아니며, 나는 내 귀의 주인도 아니다. 

 

마침내 자신이 가장 합리적인 공간으로 믿었던 '대학'도 역시 우리 사회의 욕망을 최전선에서 대리하는 공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이제 스스로 주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고 박사과정의 논문을 쓰고 강의 하는 동안 그는 계속 '경계인'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제는 대학에서 밀려난(?) 처지가 되었지만 그는 스스로 한 걸음 물러설 용기를 내어 다시 거리로 나아갔다.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기고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것이라고 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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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잇 스노우
존 그린.로렌 미라클.모린 존슨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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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풋풋,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 오면 [렛잇스노우]

 

크리스마스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영화는 [그린치], [나 홀로 집에], [러브 액츄얼리] 등이다.

[러브 액츄얼리]는 특히 오프닝 장면부터 내내 기억에 남아 있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혹은 우연히 OST를 들을 때마다 명장면들이 떠오른다.

 

세상 사는 게 우울해지면 히드로 공항을 생각한다.

세상은 증오로 가득 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남편과 부인,

남자친구와 여자친구,

오랜 친구 사이에도

911 테러의 희생자들이 죽어가는 순간에 남긴 건

모두 사랑의 메시지였다.

찾아보면 사랑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러브 액츄얼리

 

[렛 잇 스노우]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사랑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의 풋풋달달한 사랑의 장면을 줌인 해서 보여준다.

세 명의 작가들이 '크리스마스 이브', '폭설'이라는 배경을 공통으로 해서 가기 다른 주인공들의 러브 스토리를 엮어 낸다.

이어지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들이 은박지 할아버지라든지 눈 때문에 멈춰버린 기차, 열 네 명의 치어리더 등의 화제를 공통으로 심어놓아 그로 인해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다.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작가인 존 그린을 비롯해 로렌 미라클, 모린 존슨 등 현재 미국 청소년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 세 명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어난 아름다운 로맨스로 독자의 마음을 따스하게 채워준다.

이것들을 잘 엮으면 로맨스 코미디 영화 한 편 나오겠다, 싶었는데 정말 2017년 영화화 된다고 한다.

 

독특한 이름의 여주인공 '주빌레'가 등장하는 <주빌레 익스프레스>가 연작의 처음을 연다.

주빌레의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아낌없이 투자하는 '플로비 산타 마을' 도자기 모형을 사 모으기 위해 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경찰에 연행된다. TV에까지 날 정도의 큰 사건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친구의 집에서 열릴 근사한 파티를 기대하던 주빌레는 어쩔 수 없이 기차를 타고 할아버지네 집으로 가야만 한다. 그런덴 50년 만의 폭설로 기차가 멈춰서고 만다. 열 네 명의 치어리더들이 떠들고 정신 없이 설쳐 대는 북새통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던 주빌레. 기차에서 내려 가까운 와플 하우스에 가서 몸이나 녹이려다가 거기서 만난 스튜어트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어쩌나...이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달달한 기운은 스튜어트네 오지랖 넓은 엄마와 함께 독자 모두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인데.^^

 

다음 이야기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이어진다.

의사 부모님이 학회에 참석했는데 마침 폭설로 크리스마스 기간에 맞춰 집에 돌아오지 못한단다. 토빈은 집에서 친구들과 비디오나 보며 얌전히 기다리려고 했지만 마침 울리는 전화벨로 이들은 인생 최대의 모험으로 기록될 사건에 맞닥뜨리게 된다. 와플 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의 호들갑에 넘어가버리고 만 것이다.

 

이 곳 와플 하우스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났어. 지금 내 눈으로 치어리더들을 똑똑히 보고 있다고. 가게 안이 어찌나 후끈하게 달아올랐는지 펑펑 내리는 눈도 녹일 수 있을 정도야. 이 정도 열기면 와플도 너끈히 굽겠어.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모른 채 지금껏 살아온 내 차가운 심장이 뜨거워질 정도야.-124

 

부모님의 차를 몰고 토빈 일행은 와플 하우스로 향하는데, 눈 때문에 차는 박살났는데도 치어리더들을 향한 경쟁 때문에 와플 하우스에 빨리 터치다운하기 위해 이 열정적인 청춘들은 있는 힘을 짜낸다.

그 와중에 토빈은 자신의 곁에 항상 있어준 친구 듀크에게서 우정 이상의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지막 <돼지들의 수호신>은

앞에서 나온 작은 단서들이 총망라되면서 젭과 애디의 어긋난 사랑 싸움을 집중조명한다.

십대들의 사랑이라고 작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들도 상대의 배신에 아파하고 소중한 금발을 확 자르고 핑크빛으로 물들일 만큼 상처입을 줄도 안다.

어느덧 부모의 입장에서 십대의 사랑에 코웃음 칠 나이가 되었지만 진지하게 읽으면 나름 심각하게 그들의 사랑에도 깊이가 있음을 헤아리게 된다.

 

크리스마스에 영화를 보면 으레 '사랑'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치기 마련이다.

[러브 액츄얼리] 처럼 세대를 아우르고 어디에나 있는 사랑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유쾌하면서도 찡한 청소년들의 사랑이 달달하게 펼쳐진다.

크리스마스 눈보라 속 좌충우돌 로맨스.

최악의 환경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란...젊기에 더욱 빛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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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과 내시 - 조선조 정치적 복종의 두 가지 형식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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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정치적 복종의 두 가지 형식 [아전과 내시]

 

머리털이 숭숭 빠지고 등은 굽은 채 헐벗은 모습의 '골룸'은 한때 희화화 되어 표현되었다.

 "마이 프레셔스"를 외치며 기이한 늙은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뭔가에 매료되어 묘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판타지 소설 혹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는 모든 종족이 이른바 '절대반지' 하나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배신을 일삼는다.

'절대반지'의 속성이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권력'과 많이 닮아 있단 생각이 든다.

그것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고 남의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 속 욕망을 그렇게 자극하는 것일까.

 

예전 봉건사회 혹은 중세에는 '왕'이 있어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네 고려, 조선을 보면 알 일이다.

왕세자 책봉 이후 쭈욱 일생동안 한 나라를 책임지는 왕의 자리란 위엄 있고도 고독한 것이어서

주위에 살뜰히 보필하는 신하가 있는가 하면, 전복을 꾀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배반의 세력이 득시글거리기도 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남발하는 신하들이 왕과 뜻을 같이하면 좋겠지만 그들은 언제고 왕의 대척점에 서서 한사코 반대의견을 내며 왕을 견제해 왔다.

아~ 피곤한 왕의 일생이여.

그리하여 왕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가까이 있는 종복, 내시를 '편애'하기 시작한다.

왕과 신하, 내시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가 부득불 생기게 된다.

 

[아전과 내시]에서는 조선조 정치적 복종의 두 가지 형식으로 "아전"과 "내시"에 주목한다.

유교국가 조선.

전대미문의 세월이 흐르도록 단일 성씨를 중심으로 세습군주체제를 이어간 조선의 정치적 에너지를 탐구대상으로 삼은 저자는 조선의 정치체제와 왕조사회의 내재적 틀을 지탱한 힘의 정체에 골몰한다.

왕조는 변화의 수단보다 보존의 방법을 강구하는 데 치열하게 집착하여 '보존'과 '유지'을 이루어냈다.

27명의 왕이 지배하던 조선조를 훑어보고 저자는 "강자의 강함이란 본디 그들의 노력이나 자질 때문이라기보다 약자의 의도적 굽힘과 자발적 복종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조선에서 독특한 복종을 통해 자신의 힘의 기반과 저력을 이어간 제도 직종인 '아전'과 '내시'의 정치적 존재양식에 주목하는 것은 지금껏 쉬이 접하지 못했던 방식이다.

권력을 부리는 주체인 '강자'에 집중해서 권력의 특성과 전개양상을 살피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하지만 약하나 강하고 잠재적으로 튼실하였으나 현실에서는 취약한 신분정치거점을 잃지 않을 애쓴 권력주변부의 중요 자원에 눈을 돌리니 '권력'의 실제 모습이 달리 보인다.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고 하여 '없다'고 인식하는 잘못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 현재를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역사공부의 진의일 터.

이제까지의 정치연구가 주로 제도 권력의 중심과 교체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저자는 '높은 곳', '밝고 환한 곳'에서 벗어나 정치적 그림자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권력과 위세에 눌려 없는 듯 존재했고 여간해선 드러나지 않는 '아전'과 '내시'를 끌어내자 권력의 속성이 ,어두운 골목을 또다른 방향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추자 가리워진 구석에 숨어있던 그림자를 드러내듯,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굳이 천직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굽힘의 자세는 그들에게 굴욕도 수모도 아닌 일상의 생활이자 체화한 삶, 바로 그 자체였다. 가없는 존경과 한없는 우러름에서 솟구치는 아연한 굽힘보다 위장된 복종이나 고의적 굴종이 한층 정치적인 이유다.

-174

 

환관의 정치개입은 당연히 억제되어야 하지만 그 업무의 특성상 왕의 가장 측근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정치적 사건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장희홍, 182

 

지금은 현대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데, 어째서 몇 백년 전의 행태가 그대로 지속되고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데자뷰라 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겹침이 아닌가.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이 드러나고 대통령은 여러가지 이유로  '탄핵'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예전에는 '환관'혹은 '내시'란 직책이라도 맡은 자가 왕의 옆에서 권력의 상관관계에 힘입어 굴종의 대가로 단맛을 보았다면, 지금의 국정농단은 정치와 관련 없는 일반인의 손에 의해 행해진 바, 더욱 공분을 사고 있음이다.

참담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이 대목에서 '권력'의 속성이 다시 한 번 예전의 법칙과 그대로 맞아떨어짐을 확인하고 보니 아연할 따름이다.

 

아전과 내시의 자원은 의외의 '굴신성'이었다.

자존과 긍지만으로는 권력의 정치적 거점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도 추천도 꿈도 꾸지 못할 정치적 호사였던 세상에서 기왕의 좁디좁은 신분상승통로를 단숨에 헤집을 역량이란 좀체 우러나기 힘든 '굽힘'과 '꺾음' 이었다. -261

 

아전과 내시는 오늘도 얼마든지 부활한다는 저자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요 몇 달간의 국정은 혼란 사태를 빚고 있다.

 

몸 생김새로 확인 가능한 기인이나 악마가 아니라 누구라도 천연스레 변모할 일상 속에서 제 모습을 갖추니까. 스스로 변하여 그처럼 바뀌는 존재일 뿐, 누가 시키거나 만들어 생겨나는 타율의 창조물은 더더욱 아니니까. -265

 

기이하게 모습을 바꾸어 현실에 나타나고야 만 '아전'과 '내시'는 최소한 '복종'의 메커니즘 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변형에 변형을 거듭한 끝에 백신조차 만들 수 없는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들의 힘이 너무도 강력해서 '슈퍼'라 이름붙기 전에 현명한 눈으로 이들을 꿰뚫어 볼 지혜로운 지도자의 손에 나라를 맡겼으면 한다.

현대판 아전과 내시의 이름은 또다시 역사의 한페이지에 뚜렷하게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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