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시선 125
나희덕 지음 / 창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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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그런 저녁이 있다}를 읽었다. 그 블로그는 지금은 없다. 언제부턴가 없었다.


나희덕은 '그런 저녁이 있다'를 결구로 사용했지만, 동시에 이 문장은 제목이고 따라서 판면 최상단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우리는 이 큼지막하면서도 쉽게 읽힐밖에 없는 평문 제목을 마음속으로 읽고, 그다음에 '저물 무렵'으로 시작하는 시 본문을 보게 된다. 다른 제목이었다면, 가령 '테레민을 위한 하나의 시놉시스(실체와 속성의 관점으로)' 같은 제목이었다면, 속으로 굳이 끝까지 읽지 않을 공산이 클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저녁이 있다'에 이어 도치된 네 문단이자 네 문장을 읽고 마지막에 다시 '그런 저녁이 있다'와 마주친다. 아, 그래, 맞아. 그런, 네 문장에 걸친 그런 저녁, 나아가 순간이 있지. 있고말고.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그런 순간을 네 문장에 이르는 음절로 디지타이징한 결과물은, 더없이 아름답다.


내게 '그런 저녁이 있다'는 항상 앞에 있는 말이다. 이 문장 뒤에는 어떤 말이든 올 수 있다. 나희덕이 고른 문장이 아니라도 어느 것이든 올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음절을 항으로 본다면 무한수열이다). '그런 저녁이 있다'는 그 뒤에 읽는 이의 정서나 생각이 담긴 어느 문장이 와도 자연스럽다. 어제/오늘/내일의 나는 '그런 저녁이 있다' 뒤에 어제/오늘/내일의 각기 다른 상념 또는 잡념을 붙여보고는, 그것이 내 것인 것마냥 만족했/한/할 것이다.


'그런 저녁이 있다'는 압도적인 문장이다. 나는 이 늦된 깨달음에 경도해 오늘의 내 '그런 저녁'이 어떤 음절들이었는지에 대해선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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