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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머니와 사이가 안좋아졌다.
귀가 얇은 어머님이 “아들 장가보내려면 내쫓아야 한다”는 친구들의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 나한테 집을 구해 나가라고 했던 것.
술만 먹느라 모아놓은 돈도 없는 나로선 날벼락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뭐, 나가라면 나가면 된다.
컴퓨터와 인터넷선, 그리고 케이블 TV만 있다면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나 아닌가.
내가 화가 나는 건 엄마가 친구들의 말을 듣고 그러시는 거다.
결혼에 뜻이 없는 내가 집을 떠난다고 해서 결혼할 마음이 생길까.
어머니가 간병 때문에 집을 비운 기간 동안
이 집에서 난 혼자 살았었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고, 저녁 때 재료를 준비하러 장을 보러 다녔다.
가끔은 병맥주를 사서 김을 안주로 먹기도 하던 그 시절이
그리 힘든 건 아니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파출부 아주머니를 가끔씩 오게 했고,
난 다시금 손에 물 안묻히는 사람으로 돌아갔다.
좀 게을러지긴 했지만, 집을 나가면 다시 그렇게 살면 된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너 장가가는 걸 봐야 내가 편히 눈을 감지.”
정말일까. 내가 장가만 가면 어머니는 만사 행복해지실까.
결혼을 하자마자 어머니는 애를 낳으라며 며느리를 들볶으실 테고,
애가 생기는 건 모든 고민의 시작이다.
고민이란 가족 수의 세제곱에 비례해서 생기는 거니까.
드라마긴 하지만 <행복한 여자>에서
주인공은 강부자의 강권으로 낳은 애 때문에 수많은 고초를 겪여야 한다.
실제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누나가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의 소원은 누나가 시집가는 거였지만
누나가 결혼한뒤 엄마가 신경써야 할 일은 훨씬 커졌다.
돈이 없다고 징징거리는 누나를 위해 엄마는 돈을 보내야 했고
애들은 툭하면 아팠고
수시로 애를 봐줘야 했다.
결혼했다고 “그건 이제 네가 알아서 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엄마는 누나가 뭔가를 호소할 때마다 이리저리 뛰셨다.
남동생도, 여동생도 다르지 않았다.
여동생의 둘째가 경기를 했을 때,
엄마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내가 장가만 가면 엄마는 과연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내가 아내와 사이가 안좋아 맨날 다투거나
내가 외도를 해서 팔등신 미녀가 부른 배를 안고 우리집에서 행패를 부린다면
엄마 마음이 편하실까?
아무리 모범적으로 산다고 해도 고민이 없을 수는 없다.
내 애가 몸이라도 아프면-감기 정도가 아니라 좀 심하게-
그 애가 걱정되어 어떻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단 말인가.
난 다른 사람의 삶을-그게 설사 자식일지라도-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겐 내가 터득한 삶의 철학이 있고
엄마는 엄마 나름의 철학이 있을 것이다.
엄마의 철학을 내게 강요한다면, 사이만 나빠질 뿐이다.
엄마 시대에는 결혼해서 사는 게 ‘정상’이었지만
지금은 꼭 그런 것도 아니잖는가.
난 지금까지 내키지 않아도 엄마 뜻대로 해왔다.
이젠 그러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편히 눈을 감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편히 눈을 감는 거니까.
방은 뺀다.
하지만 그게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