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좁더라도 자기 방을 가져라. 자기 방에서 쉬지 않으면 쉰 것 같지도 않다."
300년 전 버지니어 울프 여사의 말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자극해 이른 나이에 독립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요즘 들어 울프 여사의 경구가 자꾸 떠오르는 까닭은, 방을 빼라는 엄마의 말 때문만은 아니다.
난데없이 찾아온 우울증으로 삶의 회의를 느끼고 있는 나, 혹시나 싶어 엄마에게 물었다.
"오늘 혹시 남동생이 온다던가 그런 일 없죠? 어제 세시 넘어 집에 와서 피곤하거든요."
"없다. 푹 자라."
말이 씨된다고, 그로부터 20분도 채 못되어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리야, 남동생 온단다."
어제 못본 <행복한 여자> 재방송 시간인 오후 3시까지 푹 잘 생각이었던 난 갑작스럽게 가방을 챙겨서 마포 도서관에 왔다. 몸도 마음도 피곤한 오늘, 조카와 놀고픈 생각은 별로 없었으니까. 그럴 바엔 물 좋은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도서관에 간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회원등록을 하고 좌석 신청을 하니까 대기인수가 560명이라는 자막이 뜬다. 아니 그걸 어떻게 기다린담? 할 수 없이 다른 사람들처럼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때 생각했다. 버지니아 울프 여사의 경구를. 내 방이 있었다면 누가 온다고 잽싸게 도망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한 40분 가량 책을 읽었나보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오늘 약속이 생겨 나가봐야 하거든. 그래서 남동생 못오게 했으니까 집에 와서 푹 자라."
해서 난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나왔다. 560명이 남은 번호표는 과감하게 버리고. 지금은 피씨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곧 집에 가서 누울 생각을 하니 피로가 싹 가신다.
그나저나 방을 빼는 문제는 난항에 부딪혔다. 어머니가 반경 1킬로 이내에 집을 얻지 않으면 못나간다고 고집을 피우시기 때문. 아니 집을 얻으려면 출퇴근이 편하게 천안으로 갈 일이지, 이 근처에 얻을 거라면 뭐하러 집을 나간담? 어머니는 "니가 가까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데, 그 논리를 난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뿌리치고 확 나가버리자니 어머니가 안되어 보이고, 그렇자고 있자니 시시때때로 오늘같은 일이 생길테고. 울프 여사여,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