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즈 더 맨>은 축구를 하고 싶은 여학생이 남자로 변장해 꿈을 이룬다는, 분류하자면 명랑영화 장르에 속하는 영화다. 세익스피어의 <십이야>가 원작이라는데, 내용이 말이 되냐 안되냐에 상관없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만다 바인즈의 연기가 워낙 훌륭해 그녀만 보고 있어도 본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모델 중에는 그래도 연기가 되는” 채닝 테이텀이 나와 여성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며, 그가 갑자기 양복을 입고 나타난 마지막 장면에선 여성 관객들이 “꺄아~!” 하고 한숨 섞인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 친구가 바로 아만다...


 

아만다는 조각처럼 생긴 채닝 테이텀에게 한눈에 반하는데, 채닝은 학교 최고의 킹카인 여학생에게 빠져 있다. 하지만 그 킹카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남장을 한 아만다. 이유가 뭘까?

“넌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안하는 첫 번째 남자야.”

남장을 했지만 여자이니 아무리 킹카가 곁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터, 그러니까 육체적 욕망을 없애고 여자를 만난다면 그녀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다. 언젠가 이 얘기를 ‘달그림자 이론’으로 정리해 학생들한테 강의도 한 적이 있는데, 내 주변에 미녀들이 많은 것도 따지고보면 다 그 이론에 충실해서다.


하지만 대부분 남성들은 그럴 정도로 수양을 쌓지 못하며, 여자를 만날 때 욕망으로 점철된 눈을 번들거리며 타이밍을 노린다. 어제 술자리에 있던 남자 역시 다를 바가 없었는데, 과거에 부하직원이던, 지금은 다른 직장으로 옮긴 여자분을 어떻게 하면 잡아먹을까 그 생각 뿐이었다. 평소에도 남자들의 행태를 부정적으로 보지만, 욕망에 사로잡혀 작업에 여념이 없는 남자의 모습을 보는 건 무척이나 역겨웠다. 그가 <쉬즈 더 맨>을 봤다면 좀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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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7-05-0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달그림자 이론? ^^
음....책을 한 권 써보심이 어떨지.

무스탕 2007-05-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영화 개봉했어요? (긁적..) 보고싶은 영화구만요..
울 동네는 요즘 돈벌기에 급급해서 비주류는 다루질 않으니 정말이지 몬살겠슈~
어제 같이 술 드신분에게 사람을 잡아먹으면 위법행위라고 알려주세요 :)

심술 2007-05-08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분석 감사합니다. 제가 여자들한테 인기 없는 까닭을 예리하게 지적하셨군요.
근데 학교 최고의 미녀는 흔히 퀸카라고 부르지 않나요?

부리 2007-05-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술님/음, 퀸카를 일반적으로 더 많이 쓰지요. 근데 저는 여자도 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킹카라고 씁니다. 제가 맞다는 건 아니구요, 그냥 그렇다구요. 그나저나 심술님,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맞나요? 글구...사심이 많으신가봐요^^
무스탕님/원래 좋은 영화는 발품을 팔아서 보셔야 합니다 글구 위법행위 얘기, 재밌어요!
진우맘님/책을 쓰자면 제 비리를 너무 많이 밝혀야 할 것 같아서...호홋.

심술 2007-05-1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은 아닌데 제가 한동안 알라딘에 뜸했고 본격적으로 서재활동하기 시작한 게 한 달 쯤밖에 안 돼서요. 지난해 야구월드컵 얘기할 때 한 번 뵈었고요 길고 흰 구름의 나라가 뉴질랜드란 거 님의 惡한 분신 마태님께 알려드린 것도 저였는데요. 사심과 흑심 아주 많습니다!^^

부리 2007-05-16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술님/호호 사심이 많으시다면 수양을 하셔야겠군요^^ 아, 뉴질랜드 가르쳐준 분이 님이시군요! 머리가 깜빡깜빡.... 야구월드컵이라면 벌써 일년 전이군요. 흐음.... 앞으로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본 슈프리머시>라는 영화가 있다. 제이슨 본 역으로 맷 데이먼이 나온 영화인데, CIA는 일급 요원으로 길러진 맷 데이먼을 이용만 해먹고 제거하려 한다. 맷 데이먼은 당연히 이에 반발하고, 혼자서 그 거대한 조직과 싸워가며 진실을 밝힌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영화가 다 그렇듯이 본은 무죄고, 음모를 꾸민 나쁜 놈은 응징된다. 문제는 왜 CIA가 그렇게 무한한 능력을 기른 요원을 왜 적으로 돌렸는지다. 자기 조직을 거의 궤멸시키고 자기도 위험해질 게 뻔한데 말이다. 나처럼 띨빵한 사람을 이용했다면 무슨 걱정이 있었겠는가.

 


 

<더블 타겟> 역시 자주 변주되는 익숙한 스토리를 그려낸다. 특수부대에서 최고의 명사수 로 군림했던 스웨거(마크 월버그)는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한 뒤 은둔생활을 하던 중 정부로부터 뜻밖의 일을 제의받는다. 그 대가로 돌아온 건 또 다른 배신, 당연한 일이지만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 스웨거가 가만있을 리 없다. 이런 뻔한 스토리임에도 영화의 별점이 높은 건, 그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마지막 결말이 조금 이상하단 사람도 있지만, 어차피 치밀한 구성이 주가 아니라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앞으로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며 살아야겠단 깜찍한 생각을 하게 되는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거. 스웨거는 은둔 생활을 할 때 큰 개 한 마리를 키운다. 그 개는 언제나 스웨거 옆을 지키는데, 복수를 위해 개를 다른 이에게 맡기면서 스웨거는 이렇게 말한다. “날 보고 싶어하거든 내 총을 보여줘.”

십년쯤 후 개 다섯 마리와 더불어 살 생각인데,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괜히 행복해진다. 개 두 마리랑 산책을 나갈 때면 나머지 세 마리가 자기는 왜 안데리고 가냐고 난리를 치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뒹굴고, 목욕시킬 땐 서로 안하겠다고 도망다니고. 그러자면 마당 있는 집을 사야 하는데, 그 전까지 로또가 되었으면 좋겠다. 십년 남았다고 마음 놓아선 안된다. 세월 겁나게 빠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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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05-0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어요. 전 SF가 가미안된 그저 순수액션이 좋아요..
글고 마태님 10년후에 마당있는 집 사실때 왠만하면 저희 동네로 오세요.
제가 키울 형편은 못될거 같고 가까이 계시면 종종 찾아가서 대리만족을 느껴보게요 ^^;

Joule 2007-05-0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복수를 하러 어딘가로 떠나실 때에는 그 개들을 저에게 맡겨 주세요. 우린 친하니까 일당 2만원만 받을게요.

부리 2007-05-1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아니 2만원 가지고 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제가 전화 꼭 하고야 말겁니다!! 캬오..
무스탕님/아 그럴까요? 혹시 님이 사시는 동네가..? 서울이면 저도 마당있는 집 사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영어를 잘하는 주위 미녀는 내가 ‘what'을 ’홧‘으로 발음한다고 비웃는다. ’홧‘이 아니라 ’왓‘이라나.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내가 곧죽어도 ’홧‘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쳐 준 선생님은 중년의 풍채좋은 여자 선생님이셨다.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할 때였지만 그 선생님에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그 선생님은 “what"을 ‘왓’ ‘홧’ 둘 중 어느 것도 무방하지만 자신은 ‘왓’을 선호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에 대한 반감으로 ‘왓’ 대신 ‘홧’을 택했던 내게 쐐기를 박는 사건은 중2 때 일어났다. 지금도 이름을 까먹을 수 없는 이영심 선생님이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된 것. 당시 영심선생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녀 선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이 그렇게 뛰어난 미인인지 회의가 들지만, 정윤희가 최고의 미녀이던, 그러니까 사회 전반적인 미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던 시대에 준수한 미모에 날씬한 몸매를 가졌고, 무엇보다 당시로선 드물게 세련미를 갖춘 이영심 선생이 인기가 많은 건 당연했다. 그에 필적할만한 미녀 선생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선생님은 인기 면에서 거의 독주를 했는데, 나 역시 이영심 선생님만 지나가면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딱 한번 수업시간에 이영심 선생을 웃긴 적이 있었는데, 그날 하루종일 행복했었다. 이영심 선생은 학생과 선생 모두에서 마음속의 연인이었고, 언젠가 소풍을 갔을 때, 내 눈을 잡아 찢는 게 취미였던 음악 선생이 망원경으로 이영심 선생을 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그 이영심 선생이 ‘what'을 ’홧‘으로 읽으셨다. 그래서 나도 ’what'을 ‘홧’으로 읽는다. 그때 생긴 버릇은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다. “what is this?" "홧 이즈 디스?” “This is boori's seojae." "이곳은 부리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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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0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가 아는 분 중에 이영심 국어샘이 있어요. 그분도 아마 홧으로 읽으실 듯..
중학교 때 영어샘 지금 생각해보니 발음들이 좀 그랬다는(ㅠㅠ) 기억이 나네요.
참, 부리님, 제가 독서문답 바통 받을 주자로 찍었는데요~~

세실 2007-05-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부리님. 전 왓이 더 있어 보여 '왓'으로 씁니다~~~ 와 리스 디스~~

Mephistopheles 2007-05-0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의 제목만 보고 이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입니다.^^


부리 2007-05-09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앗 이 사진과 왓, 홧이 어떤관계죠??? 알콜이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이 남자...
세실님/아앗 그렇다면 저도 이제 왓으로 써볼까요?^^
배혜경님/뒤늦게 했답니다 감사^^ 글구 옛날 영어선생님들 발음, 그저 그랬어요 맞아요.

Mephistopheles 2007-05-0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WE 레슬러입니다..지금은 현역 은퇴상태지만 여전히 인기가 대단합니다.^^
워낙 말빨이 대단해 관중들이 그가 한마디 한마디 할떄마다 What~! 하면서 화답을 한다죠..^^ 아...알콜은...경기 후 승리 세리모니가 링 위에서 캔맥주 4~5개를 까먹는 쇼를 한다죠..^^

부리 2007-05-1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아아 님의 지식은 정말 대단하옵니다 ..... 절로 존경의 마음이... 그나저나 캔맥주 4-5개라면 그리 대단한 건 아니군요 흥.
 

 

 

 

 

 

 

 

의사들 중 글쓰는 사람들의 모임은 여러개가 있다. 이전에 모 산부인과 의사가 주축이 된 모임에 참가했었다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기에, 그리고 지금까지 만든 조직을 관리하는 것만해도 여력이 없기에 앞으로 그런 모임에 끼어들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박달회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에서 연락을 해왔을 때 단호하게 거절했던 건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나보다 14년 위 써클 선배가 재차 전화를 건 것마저 거절할 배포는 되지 못했고, 난 할 수 없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 첫 번째 모임이 어제였다. 모임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마흔줄을 넘긴 날 보고 다들 “젊은 피가 들어왔다”고 환호할 정도. 70을 넘긴 분도 셋이나 되고, 55세인 써클선배가 영계로 느껴졌으니 말 다했다. 이야기에 낄 처지가 아닌지라 조용히 그분들의 말을 경청하노라니 귀에 익은 이름이 들린다. 난 옆자리 여자분한테 물었다.

“혹시...선생님이 박xx 선생님이세요?”

그분은 그렇다고 답했다.

“저...장관도 하신 바로 그...?”


김영삼 정권 때, 처음으로 시작된 공직자 재산공개 때문에 초창기에 옷을 벗은 사람이 꽤 됐다. 토사구팽 어쩌고 하면서 국회의장을 물러난 박준규가 대표적이지만, 거의 일주일만에 장관직을 그만둔 박xx 선생도 그 중 하나였다. 엄청난 재산가이자 산부인과 개업의인 박선생은 놀랍게도 소득을 월 80만원으로 신고하며 탈세를 해왔었다. 그 기사를 보고 “나보다 적게 버네?”라며 비웃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사자가 내 옆에 앉아 있는 거였다. 내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난 그런 유명한 분과 앉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고, 그 90%는 진심이었다. 전직 장관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어디 흔한 경험인가! 가끔씩 정치권에 대해 날이 선 글을 쓰긴 하지만, 나 역시 이렇게 한 자리 차지한 사람에 대해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는거다.


장관 같은 직책은 참 특이해서, 단 하루를 장관직에 머문 사람도 남은 생애 동안 ‘장관님’으로 불린다. 기껏해야 일주일쯤 장관을 해봤을 박xx 선생 역시 어제 술자리 내내 “박장관”이란 호칭으로 통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 앞으로 두달에 한번씩 그 원로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것, 문집을 내기 위해 글을 세편쯤 쓰는 것, 그리고 연회비로 책정된 60만원을 납부하는 것, 지금은 이런 일들을 걱정해야 한다. 박달회라,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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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7-05-08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호호 반갑습니다.

다락방 2007-05-0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리님 더 바빠지셨네요. 강의도 벅차서 요즘 알라딘에 글도 많이 안써주시는데 박달회 문집에 낼 글은 언제 또 다 쓰실까요. 게다가 연회비. 제가 다 걱정이 되네요. 기운 잃지 마세요, 엉덩이 흔드는 부리님.

부리 2007-05-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음....바쁜 것도 그렇지만 집 컴퓨터가 아직도 고장난 상태라서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자주 뵜음 좋겠어요...

무스탕 2007-05-0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양이 주무대이실까요.. 문득 안양의 박달동이 생각나서리.. 아니면 천둥산 박달재에서 따왔을까요?
하여간 부리님 몸 부서지겠습니다.. 알라딘에도 자주 못 오심시롱 고렇게 바쁘심 으짜요..
더워지니까 입맛이 실실 떨어질때가 다가오고 있어요. 건강 조심하며 지내시와요~

전호인 2007-05-0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사지낼 때 쓰는 지방에도 "현고 **부장관 부군신위"라고 씌워지겠군요.
40대가 영계시라면 재롱 많이 부리셔얄 듯..........
하기야 대문에서도 지금 정신없이 재롱부리시고 계시니 문제될 것은 없겠네요. ㅎㅎ

꼬마요정 2007-05-0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여기저기서 부리님 좋다고 찾으니 말이에요~~^^ 그나저나 건강은 챙기셔야지요.. 건강이 최고랍니다^*^

레와 2007-05-0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모쪼록 건강관리 잘하셔야해요..!!

아.. 하고 싶은거, 보고싶은 사람만 만나고 살수는 없는 걸까요??
 

 

 

 

 

 

한일시: 4월 23일(월)

마신 양: 맥주 3천 + 알파

 

한동안 미자 얘기를 하지 않은 건 일이 내 생각대로 잘 풀려서는 아니었다. 거듭 말하지만 미자는 강적이었고, 난 너무도 무력했다.


지난주 화요일은 미자가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그 전날, 미자가 공부하기 싫다면서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이 책만 읽고 공부하겠다.”는 말을 해도 난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시험과 올림픽은 분명 다르지만, 난 미자가 시험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화요일 오후 미자가 “저 시험 안봤어요”라는 문자를 날렸을 때, 얼마나 힘이 빠졌는지 모른다. 미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심한 소리를 했다. “평생 그렇게 방구석에 쳐박혀 살거냐?”고. 네 주위에는 아무도 없게 될 거라고. 난 그때 반쯤 미자를 포기했었다. 그래도 내 넋두리가 통했는지 미자는 목요일과 금요일 시험에 들어갔지만, 전날 별로 공부를 안해서 시험을 잘본 건 아닌 듯했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 지난 주말에 서울에 올라간 미자가 여전히 집구석에 있으며, 예의 그 방콕 모드를 취하고 있다는 걸 알자 화가 울컥 났다.

“오늘 오후 8시까지 내려와요. 마음 단단히 먹고.”

미자는 내 요구에 따라 주었다. 난 미자를 데리고 백석대 근처 ‘각오 단단히 해’인가, 하여간 그날 술자리의 취지에 맞는 이름을 가진 술집에 들어갔다.

“오늘 우리 술 마시다 죽읍시다.”

미자에게 말했다.

“전 원래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한텐 절대로 강요하지 않죠. 하지만 오늘은 한번 붙어 봅시다.”

미자는, 자신이 술이 센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난 컨디션이 안좋지만-저녁 먹을 때 소주를 다섯잔 쯤 마셨고, 아직 기력이 회복되지 않았다-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저를 술로 이긴다면 내일 학교를 그만두던 공부를 때려치던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저한테 진다면 내일부터 공부하세요.”


2천cc씩 세 번을 시켰다. 미자는 차츰 힘들어하는 기색이었다. 나라고 힘이 안든 건 아니었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이 빠진 느낌이었는데, 맥주라니! 네 번째 2천을 시켰다. 반쯤 마셨을 때 미자가 말했다.

“제가 졌어요. 저 정말 공부할께요.”

난 쓰러지기 전까지 믿을 수 없다면서 계속 술을 권했다. 미자는 정말로 졌다면서 한번만 봐달라고 했다. 난 미자를 데려다주고 연구실에 왔고, 일요일날 못본 <행복한 여자>의 다시보기를 틀었다.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 걸로 보아 2분도 채 못보고 잠이 들었나보다. 새벽 4시 반, 잠에서 깼을 때 난 연구실 소파에 기댄 채였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라꾸라꾸 침대를 폈고, 두시간을 더 잤다. 사우나를 다녀왔지만 오전 내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역시 맥주는 뒤끝이 안좋다. 소주가 최고다.


* 아침에 미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교수님마저 절 포기하시면 안되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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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4-2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알라디너 특공대를 파견하여
릴레이로 술을 먹여버립시다.!!

레와 2007-04-24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번쩍!!
저도 릴레이 주자로 나서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7-04-2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핫- 재밌다 :)

부리님, 저하고도 술내기 한 번 하시죠.
저도 한 술 하는데 내기해서 이긴 사람 부탁 한 가지 들어주기,
어때요?(도전장 ^^)

마노아 2007-04-2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틱해요. 부리님 화이팅입니다! 멋진 스승이셔요^^

세실 2007-04-24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교수님~ 울 교수님은 그저 '이번에 대학원생이 스커트 선물했어요. 꽤 비싼 건데....여러분 아시죠? 나래** 꺼' 늘 이런 이야기만 하셨어요. 선물을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무스탕 2007-04-2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먹는내기... 그 중에 술 먹기... -_-
미자양 문자 절대 지우지 마시고 꼭꼭 보관해 두셨다 수시로 상기시켜주세요.
[여아일언중천금] 이라고요!!

물만두 2007-04-24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술로써 제자를 바른길로... 잘하셨다고 해야겠죠^^

클리오 2007-04-2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많은 방법 중 술로 이끄시다니.. 그리구요, 지난번부터 말씀드릴까말까 했는데.. 그 학생은 이제 성인이구, 의대다니는 것보다 어쩌면 더 좋은 인생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힘들게 정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실 수 있나요. 중고등학교 교사들도 힘든 문제인 것 같은데 대학에서... 아이 참 어려운 문제군요...

해적오리 2007-04-2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이 미자 인생의 최대 강적(?)인 것 같은데요...

다락방 2007-04-2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리님은 정말 너무 열심히 살고 계시는군요. 어느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시네요. 그렇게 살다가 지치시면 어쩌시려구요.

기운내세요..

부리 2007-05-0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흑
해적님/네 맞습니다 정말 강적입디다
클리오님/글쎄요 의대 다니는 것보다 쉬운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못하면 남은 인생은 정말 힘들게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세상 사는 게 만만치 않잖아요.....
물만두님/그때까진 좋았는데...자신 있었는데..
무스탕님/그, 그게요.......흑
세실님/후훗 사람은 여러 종류가 있지요^^ 님같은 미녀도 있고 저같은 추남도...
고양이님/몸 만들어야겠군요
레와님/흠,님은 먼저 저를 이기셔야...^^
메피님/님의 실력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요 먼저 고양이님 이기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