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중 글쓰는 사람들의 모임은 여러개가 있다. 이전에 모 산부인과 의사가 주축이 된 모임에 참가했었다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기에, 그리고 지금까지 만든 조직을 관리하는 것만해도 여력이 없기에 앞으로 그런 모임에 끼어들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박달회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에서 연락을 해왔을 때 단호하게 거절했던 건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나보다 14년 위 써클 선배가 재차 전화를 건 것마저 거절할 배포는 되지 못했고, 난 할 수 없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 첫 번째 모임이 어제였다. 모임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마흔줄을 넘긴 날 보고 다들 “젊은 피가 들어왔다”고 환호할 정도. 70을 넘긴 분도 셋이나 되고, 55세인 써클선배가 영계로 느껴졌으니 말 다했다. 이야기에 낄 처지가 아닌지라 조용히 그분들의 말을 경청하노라니 귀에 익은 이름이 들린다. 난 옆자리 여자분한테 물었다.
“혹시...선생님이 박xx 선생님이세요?”
그분은 그렇다고 답했다.
“저...장관도 하신 바로 그...?”
김영삼 정권 때, 처음으로 시작된 공직자 재산공개 때문에 초창기에 옷을 벗은 사람이 꽤 됐다. 토사구팽 어쩌고 하면서 국회의장을 물러난 박준규가 대표적이지만, 거의 일주일만에 장관직을 그만둔 박xx 선생도 그 중 하나였다. 엄청난 재산가이자 산부인과 개업의인 박선생은 놀랍게도 소득을 월 80만원으로 신고하며 탈세를 해왔었다. 그 기사를 보고 “나보다 적게 버네?”라며 비웃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사자가 내 옆에 앉아 있는 거였다. 내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난 그런 유명한 분과 앉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고, 그 90%는 진심이었다. 전직 장관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어디 흔한 경험인가! 가끔씩 정치권에 대해 날이 선 글을 쓰긴 하지만, 나 역시 이렇게 한 자리 차지한 사람에 대해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는거다.
장관 같은 직책은 참 특이해서, 단 하루를 장관직에 머문 사람도 남은 생애 동안 ‘장관님’으로 불린다. 기껏해야 일주일쯤 장관을 해봤을 박xx 선생 역시 어제 술자리 내내 “박장관”이란 호칭으로 통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 앞으로 두달에 한번씩 그 원로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것, 문집을 내기 위해 글을 세편쯤 쓰는 것, 그리고 연회비로 책정된 60만원을 납부하는 것, 지금은 이런 일들을 걱정해야 한다. 박달회라,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