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소화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다자이 오삼의 <만년>을 읽었다. 일본 문학 특유의 몽환적이고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이었지만,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 책은 여러 편의 단편이 묶인 소설집이다. 그런데 난 네 번째 단편을 읽을 때야 비로소 이 책이 단편집이라는 걸 알았다. 첫 단편 <잎>의 ‘나’와 다음 작품인 <추억>의 ‘나’가 동일인인 걸로 착각한 탓인데, 그러고 나니까 전혀 다른 배경이 나와도 “주인공이 상상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 일단 쑥스럽고, 내 이해력이 민망하다. <미션 임파서블 1>을 이해하지 못한 이해력이니,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해 본다.


-작가 중에는 자신의 죽음을 소설 속에 암시하는, 아니 자기가 소설에 쓴대로 죽는 작가가 있다. 갑자기 생각하려니 떠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레이몬드 카바는 <숏컷>에서 권총자살을 하는 사람을 등장시킨 뒤 자신도 총으로 죽었고, 이 책의 저자도 동반자살을 기도하나 여자만 죽는 소설을 쓴 뒤 정말로 동반자살했다. 어느 게 먼저일까. 자신이 느끼는 충동을 소설로 쓰는 것일까, 아니면 소설에 쓰인대로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걸까.


-표제작인 <만년>은 샐린저가 쓴 <호밀밭의 파수꾼>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 책이 훨씬 먼저 나왔으니 샐린저에게 ‘표절’의 의심을 품어야겠지만, 표절 시비가 붙는 건 언제나 무명 작가다. <낭만파 남편의 편지>를 쓴 안정효가 조금만 늦게 그 소설을 썼다면 영락없이 쿤데라를 표절했다고 오해될 뻔한 것처럼.


-전에 이 책의 번역이 엉망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그와 관계없이 이해 안가는 구절을 하나만 열거한다.

[이때의 웃음소리는 그들조차 미처 생각지 못할 정도의 대사건을 낳았다]

병원 입원실에서 사람들이 떠들고 웃고 그런 것이 어떤 사건을 낳았을까?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글쎄...담당 간호사가 간호부장에게 끌려가서 혼나고, “뭐 그런 거 가지고 야단을 치냐”고 환자와 보호자들이 불평한 게 전부다. 대사건이라면 적어도 격분한 환자가 불도저로 병원을 밀어버린다던지 그런 거여야지 않을까? 아니면 오사무가 활동하던 30년대는 간호부장에게 혼난 게 ‘대사건’이었을까.


첫 만남은 참으로 중요한 법이다. 오사무는 이 작품 말고도 몇 개를 더 남겼지만, 별로 읽고픈 생각은 안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5-06-0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큰일났습니다. 부리가 드디어 일을 내려나 봅니다. 글쎄 주간 서재순위 21위까지 치고 올라왔습니다. 리뷰까지 쓰는 걸로 보아 확연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리뷰에 절대 추천해 주지 맙시다!

비로그인 2005-06-0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태님보다는 부리님이 좋아요. 그렇지만 추천 절대로 안했음!

sweetmagic 2005-06-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이 다 하실 거면서 ~

stella.K 2005-06-0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은 순위에 들지 못하게 하랬더니...할 수 없군요. 이벤트 하시는 수 밖에. 마태님이 부리님 좀 잘 설득하세요.^^

줄리 2005-06-0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좀 치사한거 같다. 그래서 추천해야지~

날개 2005-06-0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추천을 유도하는군요..흐흐~ 난 너무 잘 넘어가는것 같애...

부리 2005-06-0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날개님/오늘이 금요일이거든요. 대세가 결정되는 날인데 추천 하심 안되는데....
줄리님/아참 나 부리지! 맞아요 마태는 정말 치사해요. 왜 자기만 맨날 30위 안에 들어야 하고 전 안되나요? 자기가 빠지면 안되나? 피.
스텔라님/흑흑 님의 댓글을 보니 제가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못했어요 흑. 이벤트라...
매직님/아닙니다. 마태는 제 글 잘 추천 안해줍니다!! 매직님이 추천했죠 사실은? 다 아라요
별사탕님/제 편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알라딘의 쿠테타!! 그날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인터라겐 2005-06-0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무조건 추천을 눌러야 하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있다구요..,..지금~~
 
너, 싸이코지?
싸이코 짱가 지음 / 자유로운상상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갔다. 책 한권을 읽은 뿌듯함을 만끽하기 위해. 역시나, 책을 안읽은 사람들의 어깨는 처져 있었고, 얼굴에는 생기라곤 없었다. 나는 평소 안피우던 담배를 꺼내물었다. 달았다.


‘팝콘심리학’(이하 팝콘)>에 엄청난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보다 두달 전에 나온 장근영의 첫 번째 책, <너, 싸이코지?>를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책은 두 번째 책보다 못했다. 두 번째 책이 워낙 뛰어난 탓도 있지만, 테마 자체가 인간 심리에 국한된, 약간은 더 학술적인 책인지라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놔도 지루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뭐, 내가 정신과에서 어느 정도 이 책에 나오는 장애들을 배웠던 탓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팝콘에서 읽었던 내용이 나오기도 하는데, 특히 44쪽의 easy child 얘기는 팝콘에도 나왔을 뿐 아니라 불과 열페이지 뒤에 다시금 상세히 설명을 해놨다. 사람들은 중복에 민감해 아무리 재미있는 거라도 두 번째 읽으면 식상하기 마련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책을 쓸 때 한번에 왕창 써내려가기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쓴 걸 모아서 책을 냈기 때문이다. 편집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대목. 그렇기는 해도 저자의 뛰어난 글솜씨는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며, 저자가 그린 멋진 카툰들이 도처에 산재해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든다.


팝콘이 어디 가서 유식을 자랑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면, 이 책은 실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다음 대목, “...갈등을 빚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야 하는 경우... 그런 서먹한 상황에서 상대방과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안그래도 한바탕 한 친구를 오늘 만나는데, 이 방법을 써봐야겠다. 그런데, 뭘 도와달라고 하지? 등을 긁어 달라고 할까?

“어떤 사람이 당신과의 만남에 자꾸 늦는다거나 빠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만나고 있는 상황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진우맘님이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을 안비치는 건, 우리가 싫어졌기 때문일까.


저자는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라면서, 감옥과 회사의 비유를 든다. 몇 개만 옮긴다.

-감옥에서는 4평짜리 방에서 지내고,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한평짜리 책상에서 지낸다.

-감옥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면회올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전화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감옥에는 가끔 변태적인(가학성이 있는) 교도관들이 있다. 회사에서 우리는 그들을 ‘상사’라고 부른다.


마지막 ‘상사’ 얘기에서 소리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 중에는 글을 잘쓰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이제 겨우 두권의 책을 냈지만, 장차 그가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스타 심리학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깍두기 2005-03-1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트까지 써 먹으시네요. 강의를 몸소 실천 중? 흐흐

로드무비 2005-03-1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 푸세요? 뻔뻔한 로드무비.^^
(지송해서 추천 누르고 가유.)

클리오 2005-03-16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강의를 몸소 실천하시는 노력을 보니, 눈물겹습니다.. ㅎㅎ

부리 2005-03-1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부끄럽습니다^^
쥴님/어맛, 들켰다! 리뷰를 읽고나니 괜히 저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로드무비님/죄송합니다. 풀어야 하는데 요즘 제가 어려워져서요...
깍두기님/제가 아니면 누가 실천하겠습니까. 솔선수범해야죠

하루(春) 2005-03-2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와서 흔적 남겨요.

플레져 2005-03-2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트에 가다... ㅎㅎㅎ 이제서야 보았네요.
책 읽고 나서 갈 만한 다른 장소를 물색중입니다, 요새.

진/우맘 2005-05-2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이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을 안비치는 건, 우리가 싫어졌기 때문일까.

설마!!!!! ^^

인터라겐 2005-06-0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팝콘...그책 재밌었지요...전 그책을 읽음으로서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꼈잖아요..
쓸데없는데 신경안쓰고 사는게 얼마나 큰 행복일런지...ㅎㅎ 그런의미에서 추천한방
 
살로메 유모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 <냉정과 열정사이>를 비롯한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 그리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 이것들의 공통점은 저자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 책이 얇디얇고 크기가 작으면서도 양장본이라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아침>은 208쪽에 1만원, 바나나와 연을 끊게 된 <하치의 마지막 연인>은 146쪽에 7천원이다. 쉽게 읽히며 그저 쿨하기만 한 일본책들에 난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쓴 <살로메 유모 이야기>도 일본책의 요즘 경향을 그대로 따라간다. 223쪽에 달하지만 글씨도 크고 띄어쓰기도 많이 해 두세시간 만에 읽었는데, 책 가격은 무려 12,000원이다. 속에 컬러사진이 잔뜩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싼 걸까?


비싼 가격을 뒤로하고 책에 관해 소개를 하자면, 이 책은 역사에서 조명받는 사람들을 나나미가 변명해주는 내용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 그는 일년 안에 돌아온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려 10년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는 자신이 신의 노여움을 사서 그랬다고 변명을 한다. 그에 대한 아내의 항변, “오디세우스가 표류했다는 곳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이 관능적인 지중해, 그 중에서도 특히 풍광이 뛰어나며...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뿐일 수 있겠습니까. 만일...사막이였다면 저 역시 신들의 노여움 때문이었다고 믿었겠지요(22쪽)”


저자는 이런 식으로 폭군 네로와 악녀로 알려진 살로메, 시이저를 죽인 브루투스 등을 변명하며, 베아트리체에게 넋을 잃은 단테에게 아내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부부가 되어 살다보면 제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도 그 매력의 태반을 잃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베아트리체 역시 단테의 아내가 되었더라면 영원한 여성, 고귀한 행위와 예술적 영감의 근원으로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48쪽)”

그녀의 상상력은 책 전반에 걸쳐 발휘되는데, 발랄한 상상력이 잘 드러난 대목은 마지막 단편인 ‘지옥의 향연’이다. 여기에서는 클레오파트라, 트로이 전쟁의 이유가 되었던 헬렌, 루이 16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나오는데, 그들의 얘기도 재밌지만 지옥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공감이 갔다. 천국은 하는 따분한 사람들이 가는 곳, 지옥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지옥 생활의 즐거움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까닭은 속세의 선남선녀가 일탈행동을 일삼을까봐 그런 거란다.


내가 아는 이 중에서도 기도만 하고 행실은 그다지 바르지 않은 이가 있었다. 기도할 때는 눈물까지 흘리지만 매우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그는 자신이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천국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기도만 하겠구나 싶었고, 내가 갈 곳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가서 그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운명이 아니겠는가 하는 깜찍한 생각도 했었는데,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까, 그것도 유명한 사람이 그러니까 반가웠다. 이 책을 내게 선물해주신 조선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7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인 2005-01-2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무슨 증정문구 같아요. 기분 좋은데요?

부리 2005-01-2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조선인님! 기분 좋다니 저도 좋습니다. 토요일날 뵈요!

노부후사 2005-01-2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부리님. 서평을 상당히 부지런히 쓰시네요. 이러다 마태님을 추월하겠습니다.

부리 2005-01-2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님/설마요^^ 전 겨우 다섯편인데요

숨은아이 2005-01-26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읽고 싶어졌다!
 
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강준만.김환표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강준만의 <희생양과 죄의식>은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고초를 겪은 사람들의 얘기다. 기가 막힌 사연들이 쭉 나열되어 있지만, 저자의 다른 저작들을 통해 다 한번씩 들은 얘기라 강준만의 팬인 나로서는 좀 지루했다. 이 책은 연대별로 대표적인 간첩조작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는데, 시대에 관계없이 빨갱이를 만들어내고 고초를 가하는 방식은 비슷한 것 같다. 고문-->빨갱이 시인--> 사형 혹은 투옥--> 남은 가족들 풍비박산.


다른 사연도 다 억장이 무너지지만, 최근에 밝혀진 수지김 사건만 예로 들어보자. 수지김 사건은 사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살인사건에 불과했지만, 남편은 그걸 간첩이 자신을 납치하려 했다고 구라를 쳤고, 사건에 목말라있던 안기부는 그걸 간첩 사건으로 대서특필한 것. 이유는? 수지김이 왠지 스파이스러운 이름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사건의 결과 그 가족들은 다음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가족들이 안기부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게 된 이후의 일이다.

-어머니: 실어증을 얻었고, 10년 뒤 사망.

-큰언니: 전매청에서 해고당함--> 정신이상까지 생겨 그해 겨울 사망.

-큰언니의 남편: 술로 세월을 보내다 이듬해 교통사고로 뇌수술--> 폐인생활

-오빠: 술에 의지해 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

-여동생: 이발소 문 닫음, 남편에게 이혼당함--> 울화병과 노이로제에 시달림

-다른 여동생: 수지김의 동생이란 게 알려져 남편에게서 쫓겨남.

-또 다른 여동생: 동생임이 탄로나 남편에게 상습적 폭행--> 산으로 들어감

-조카들: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자퇴, 취업도 못함. ‘간첩의 씨앗’이라며 버려진 아이도..


이 사건은 나중에 조작이었음이 드러났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가족이 잃어버린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억울한 간첩을 만드는 국보법은 없어져야 하고, 있더라도 적용만큼은 신중해야 하지만, 이놈의 나라가 어디 그런가. 술먹고 농담 한번 했다가 몇 년간 징역을 살아야 하는 나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그런 나라가 우리가 살았던 나라다.  책에 나온대로 “한국 국민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심은 반민주적인 정권의 정치적 자산이었으며, 그 공포심은 수구기득권 세력에겐 요술방망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요술방망이의 위력이 많이 퇴색된 지금도 그 방망이에 기대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것은 어인 일일까? 이 책은 나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읽어야 효과가 있을 듯 싶다. 거기에 더해 민주화를 외친 학생들이 주사파라고 했던 박홍, 아버님은 언제나 잘했다고 지금도 주장하는 박근혜, 친북좌익이 400만이 된다고 말하는 조갑제, “국가보안법이 남용된 사례가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국보법 폐지를 적극 반대하는 모 의원, 그리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젊은 극우들도 이 책을 읽는다면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린사회의적 2005-01-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이라는 이름만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데, 더구나 반공법이라니... 난 수지김 사건을 님의 리뷰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설령 내가 신문을 보고 나서 조작된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피해까지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힘의 폭력과 무지의 폭력,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지금부터 바꾸어가야겠죠. 반공법은 분면 페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특권적 권한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가진 자를 위한 보신이 아닌,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한 보살핌이어야 할 것입니다. 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숨은아이 2005-01-2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안법도 보안법이지만, 언니가 누구냐는 것 땜에 아내와 자식을 버리는 남편들은 또 뭐래요.

부리 2005-01-26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저도 좀 웃기는 사람들이다 싶었지만, 시대가 시대니만큼 자기가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 거겠지요, 라고 이해했습니다...우리가 참읍시다^^
열린사회의 적님/안녕하세요? 강준만의 팬이신 듯하니 저와는 코드가 맞군요. 수지김 사건을 제 리뷰 때문에 아셨고, 그로 인해 반공법-보안법이겠지요? 반공법은 81년에 폐지되었어요-폐지를 더 생각하게 되셨다면 제가 리뷰 쓴 보람이 있는 거네요. 보람을 느끼게 해주셔서 제가 감사^^

하얀마녀 2005-01-26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들이 읽는다고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게 더 속상해요.

부리 2005-01-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그래요, 그들은 일단 부인하고 보겠지요.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요.

하루(春) 2005-01-2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읽어보고 싶은 맘이 굴뚝 같네요. 큰일입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요.
 
세상 종말 전쟁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미 작가들은 왠지 찬란한 아우라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보르헤스도 그렇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있다. 그런 사람의 작품만 소개된 탓인지 모르지만, 남미 작가들의 글들은 난해하고, 쉽게 읽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세상종말전쟁> 역시 그랬다. 1천페이지를 넘는 분량이긴 해도, 다 읽는데 열흘 정도나 걸린 건 좀 길다. 그러고보니 책을 처음 샀을 때도 이 책이 내뿜는 기운에 압도되어 나중으로 미뤘고, 막상 손에 쥐기까지는 7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문장도 어렵지 않고 내용도 선지자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을 토벌하려는 군대와 한판승부를 벌이는 게 다인데, 왜 그렇게 읽기가 버겁고 진도가 안나갔을까?


저자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1) 선지자: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선지자는 말고 행동으로 사람들을 감복시킨다. 먹는 것도 남보다 덜먹고, 자는 것도 덜 잤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를 숭배했고,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사람을 통해 저자는 타락한 종교에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공금횡령을 하고, 인도네시아 지진을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했던 목사가 우리나라 대형교회를 이끌고 있지 않는가. 책에서 가톨릭은 선지자를 이단으로 규정하지만, 사실 이단이 뭔지도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하느님을 믿는데 꼭 한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잖는가? 왜 우리나라 교회는 공금횡령에 성폭력에 탈세에 세습을 한 목사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일까? 장정일은 이렇게 말했다. “나 그거 믿는다!”고 떠드는 것보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알고보니 무슨 종교를 믿더라, 이랬을 때 훨씬 더 그 종교에 대한 끌림을 느낀다고.


2) 기자: 책에 나오는 기자는 정치꾼과 협잡하여 거짓 기사를 쓰고, 자기 한목숨을 살리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나중에는 자신이 기사로 매도했던 남작에게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 파렴치함을 보인다. 이걸로 보아 저자는 기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것 역시 남의 일만은 아니다. 온갖 음모론을 유포하고, 왜곡된 기사를 쓰고, 권력과 유착해 일신상의 영달을 꾀하는 기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종교나 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이 잘 나오지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3) 사소한 딴지: 785쪽에 ‘땅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라는 대목이 있다. 아니 어떻게 배를 깔고 눕는가? 이거 말고도 오자가 여러개 보여 눈에 거슬렸다.


막판에 갑자기 포르노 수준의 묘사가 있어 적잖이 당황했고, 읽는 것이 어려웠던만큼 다 읽고 난 후의 기쁨은 매우 크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1-2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미 작가는 무조건 어렵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어요. 다른 정서때문인데, 그래도 제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겠죠? 삼십대 후반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panda78 2005-01-2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안으로 바르가스 요사의 책이 몇 권 더 나온다고 합니다. ^^
(근데 배깔고 눕는다고 안 그러나요? ^^;;;; )

마냐 2005-01-2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엣...1권 중간 읽다 그만둔 책이군요. 순전히 이리저리 치여서 말임다....첨에 넘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가...한참 흥미진진해지는데, 못 다 읽어서 아쉬웠는디..흠흠. 덕분에 다시 시작해보렴다..언젠가..말임다. ^^;; 그나저나, 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이 없던가요? 흠흠...도전의식이 쬐금 생김다. ^^;;

부리 2005-01-2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탈세 사건 때 그만둔 중앙일보 기자분-오동명 씨죠 아마-이 쓴 다큐 말고는... 마냐님 화이팅
판다님/배깔고 눕는다가 좀 쓰이는 말인가요? 음, 전 너무 과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나봐요
여우님/앗 님에게도 남미작가가 어렵습니까? 여우님도 남미 출신이신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