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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강준만.김환표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강준만의 <희생양과 죄의식>은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고초를 겪은 사람들의 얘기다. 기가 막힌 사연들이 쭉 나열되어 있지만, 저자의 다른 저작들을 통해 다 한번씩 들은 얘기라 강준만의 팬인 나로서는 좀 지루했다. 이 책은 연대별로 대표적인 간첩조작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는데, 시대에 관계없이 빨갱이를 만들어내고 고초를 가하는 방식은 비슷한 것 같다. 고문-->빨갱이 시인--> 사형 혹은 투옥--> 남은 가족들 풍비박산.
다른 사연도 다 억장이 무너지지만, 최근에 밝혀진 수지김 사건만 예로 들어보자. 수지김 사건은 사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살인사건에 불과했지만, 남편은 그걸 간첩이 자신을 납치하려 했다고 구라를 쳤고, 사건에 목말라있던 안기부는 그걸 간첩 사건으로 대서특필한 것. 이유는? 수지김이 왠지 스파이스러운 이름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사건의 결과 그 가족들은 다음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가족들이 안기부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게 된 이후의 일이다.
-어머니: 실어증을 얻었고, 10년 뒤 사망.
-큰언니: 전매청에서 해고당함--> 정신이상까지 생겨 그해 겨울 사망.
-큰언니의 남편: 술로 세월을 보내다 이듬해 교통사고로 뇌수술--> 폐인생활
-오빠: 술에 의지해 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
-여동생: 이발소 문 닫음, 남편에게 이혼당함--> 울화병과 노이로제에 시달림
-다른 여동생: 수지김의 동생이란 게 알려져 남편에게서 쫓겨남.
-또 다른 여동생: 동생임이 탄로나 남편에게 상습적 폭행--> 산으로 들어감
-조카들: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자퇴, 취업도 못함. ‘간첩의 씨앗’이라며 버려진 아이도..
이 사건은 나중에 조작이었음이 드러났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가족이 잃어버린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억울한 간첩을 만드는 국보법은 없어져야 하고, 있더라도 적용만큼은 신중해야 하지만, 이놈의 나라가 어디 그런가. 술먹고 농담 한번 했다가 몇 년간 징역을 살아야 하는 나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그런 나라가 우리가 살았던 나라다. 책에 나온대로 “한국 국민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심은 반민주적인 정권의 정치적 자산이었으며, 그 공포심은 수구기득권 세력에겐 요술방망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요술방망이의 위력이 많이 퇴색된 지금도 그 방망이에 기대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것은 어인 일일까? 이 책은 나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읽어야 효과가 있을 듯 싶다. 거기에 더해 민주화를 외친 학생들이 주사파라고 했던 박홍, 아버님은 언제나 잘했다고 지금도 주장하는 박근혜, 친북좌익이 400만이 된다고 말하는 조갑제, “국가보안법이 남용된 사례가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국보법 폐지를 적극 반대하는 모 의원, 그리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젊은 극우들도 이 책을 읽는다면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