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종말 전쟁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미 작가들은 왠지 찬란한 아우라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보르헤스도 그렇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있다. 그런 사람의 작품만 소개된 탓인지 모르지만, 남미 작가들의 글들은 난해하고, 쉽게 읽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세상종말전쟁> 역시 그랬다. 1천페이지를 넘는 분량이긴 해도, 다 읽는데 열흘 정도나 걸린 건 좀 길다. 그러고보니 책을 처음 샀을 때도 이 책이 내뿜는 기운에 압도되어 나중으로 미뤘고, 막상 손에 쥐기까지는 7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문장도 어렵지 않고 내용도 선지자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을 토벌하려는 군대와 한판승부를 벌이는 게 다인데, 왜 그렇게 읽기가 버겁고 진도가 안나갔을까?


저자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1) 선지자: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선지자는 말고 행동으로 사람들을 감복시킨다. 먹는 것도 남보다 덜먹고, 자는 것도 덜 잤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를 숭배했고,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사람을 통해 저자는 타락한 종교에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공금횡령을 하고, 인도네시아 지진을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했던 목사가 우리나라 대형교회를 이끌고 있지 않는가. 책에서 가톨릭은 선지자를 이단으로 규정하지만, 사실 이단이 뭔지도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하느님을 믿는데 꼭 한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잖는가? 왜 우리나라 교회는 공금횡령에 성폭력에 탈세에 세습을 한 목사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일까? 장정일은 이렇게 말했다. “나 그거 믿는다!”고 떠드는 것보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알고보니 무슨 종교를 믿더라, 이랬을 때 훨씬 더 그 종교에 대한 끌림을 느낀다고.


2) 기자: 책에 나오는 기자는 정치꾼과 협잡하여 거짓 기사를 쓰고, 자기 한목숨을 살리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나중에는 자신이 기사로 매도했던 남작에게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 파렴치함을 보인다. 이걸로 보아 저자는 기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것 역시 남의 일만은 아니다. 온갖 음모론을 유포하고, 왜곡된 기사를 쓰고, 권력과 유착해 일신상의 영달을 꾀하는 기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종교나 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이 잘 나오지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3) 사소한 딴지: 785쪽에 ‘땅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라는 대목이 있다. 아니 어떻게 배를 깔고 눕는가? 이거 말고도 오자가 여러개 보여 눈에 거슬렸다.


막판에 갑자기 포르노 수준의 묘사가 있어 적잖이 당황했고, 읽는 것이 어려웠던만큼 다 읽고 난 후의 기쁨은 매우 크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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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1-2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미 작가는 무조건 어렵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어요. 다른 정서때문인데, 그래도 제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겠죠? 삼십대 후반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panda78 2005-01-2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안으로 바르가스 요사의 책이 몇 권 더 나온다고 합니다. ^^
(근데 배깔고 눕는다고 안 그러나요? ^^;;;; )

마냐 2005-01-2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엣...1권 중간 읽다 그만둔 책이군요. 순전히 이리저리 치여서 말임다....첨에 넘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가...한참 흥미진진해지는데, 못 다 읽어서 아쉬웠는디..흠흠. 덕분에 다시 시작해보렴다..언젠가..말임다. ^^;; 그나저나, 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이 없던가요? 흠흠...도전의식이 쬐금 생김다. ^^;;

부리 2005-01-2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탈세 사건 때 그만둔 중앙일보 기자분-오동명 씨죠 아마-이 쓴 다큐 말고는... 마냐님 화이팅
판다님/배깔고 눕는다가 좀 쓰이는 말인가요? 음, 전 너무 과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나봐요
여우님/앗 님에게도 남미작가가 어렵습니까? 여우님도 남미 출신이신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