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첫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어학연수 오기 전에는 나름 '루틴을 만들 수 있겠지' 생각했고, 시간표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였다. 그러니까 나의 혼자 생각이 그랬다는거다. 그런데 웬걸, 첫수업인 오늘부터 하루종일 수업이 있었다. 아침 08::30에 시작해서 저녁 17:30에 끝나는거다. 오전 오후 네 시간씩 풀로 수업하고 사이에 잠깐 브레이크 타임을 준다.
하 수업 시작 전부터 두려웠다. 나는 과연 하루종일 수업을 들을 수 있을것인가.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학교를 가는데 집에서 일곱시 반 되기 전에 나왔고, 와, 오랜만에 모두가 등교하거나 출근하는 시간에 나도 함께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싱가폴의 대부분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 혹은 등교하는 시간에 나도 하고 있었다. 그 기분은 참 새로웠다. 뭔가 본격적으로 섞여드는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살짝 신이 나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 해...
그렇게 학교에 일찍 도착해서 교실에 들어갔는데, 하아, 아무리 둘러봐도 내 나이또래는 보이지 않는다. 어학연수.. 어른들도 좀 오고 그러는거 아니에요? 내가 학교를 잘못 선택한걸까. 어째서, 왜때문에 나밖에 없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휴.. 게다가 한국인도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 수업은 읽기와 쓰기 수업이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수업 내용을 따라잡을 수는 있었다.
문제는, 내가 좀.. 안전빵으로 낮은 클래스부터 시작했더니.. 다른 학생들이... 영어가.... 대화가..... 흠흠.
말하기 듣기 시간에는 앞에 앉은 아이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아이와 함께 수다를 떨어야 했는데 총 네명이었고 나를 제외한 세 명이 모두 중국인 젊은 남자들이었다. 남자라긴 뭐하고 소년은 아니고 청년.. 이라고 해야하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에 영어를 배우러 온 것 같았다. 이들도 여기와서 지금 수업 시간에 처음 알게된 아이들인데, 아니 영어를... 잘 못하더라고요. 다들 문제는 곧잘 풀어서 답은 잘 맞히는데 말하기도 듣기도 안되어가지고 뭘 물어보면 번역기 돌리고 있고 그나마 알아들은 학생이 다른 학생한테 중국어로 설명하고... 셋이 중국어로 얘기하면 나는 멀뚱멀뚱해져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
I can not speak chinese.
라고 했더니, 그중에 영어 제일 잘하는 애가 다른 남자애들한테 'Don't speak chinese' 라고 해줬다. (자상해..고마워....이 학생하고는 두번째 쉬는 시간에 드라마 도깨비 김고은 얘기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안봤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국 학생이 진짜 제일 많아가지고, 대부분이 중국 학생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자기들끼리 수업시간에도 자꾸 중국말을 해가지고, 선생님이 '이제 중국말 하면 10달러씩 벌금이다' 라고 했다. 그래도 다들 중국어를 해. 그런데 왜 중국어를 했냐면, 영어로는 잘 모르겠기 때문이었던거야. 니네, 오기전에 테스트 보지 않았니? 테스트 보고 레벨 택한거 아니야? 니네도 한단계씩 낮춰서 가지 그랬어 ㅠㅠ
내가 온 학교는 레벨 1에서 시작해 5에서 끝난다. 레벨 5까지 듣고나면 대학 강의를 영어로 들을 수준이 되는 거라고 했다. 각 레벨이 2개월씩 진행되는거고, 그래서 유학원에서 오기 전에 레벨테스트를 보고 그 레벨에 수업을 들어가는 거다.
내 경우에 테스트는 4레벨이 나왔다. 그런데 나는 유학원 과장님께, 4레벨 나왔지만 3레벨부터 듣겠습니다, 라고 했다. 유학원에서는 가능하다고 했다. 학생이 이걸 원한다라고 얘기하면 된다는거다. 그래서 나는 레벨 4가 나왔는데 레벨 3부터 들었던거고, 어쨌든 매 과정 패쓰한다면 레벨5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예정이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이 레벨테스트로 레벨 3이 나온채 왔던건가보다. 특히 내 옆에 앉은 남학생은 너무 힘들어보였다. 이 학생은 스스로 얼마나 답답할까... 뭔가 짠한 마음이 되어가지고 어렵지? 물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길래 번역기 돌려서 중국어로 '이 수업 어렵지?' 물었다. 그랬더니 번역기를 통해 한국어로 내게 보여줬다.
너무 어려워요. 영어 어려워요.
하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힘내, 잭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 앞에 낮은 남자애는 phone 도 모르던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는 지금 이 수업이 얼마나 힘드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늘 집에 가서 뻗어버릴 것 같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중국인 남학생 세 명이 가장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말한건 나에게 '지하철'을 중국어로 알려줄 때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띠티에 라면서 ㅋㅋㅋㅋㅋ내가 옳게 발음할 때까지 알려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나 중국어로 지하철 말할 줄 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런데 선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물론 내가 나이가 많긴 하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굳이 나 부를 때만 이유경 씨, 유경씨.. 할 일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선생님이 한국 드라마 봐서 한국어로 문장은 잘 만들지 못하지만 단어들은 잘 안다고 했다. 출석 부를 때 다 그냥 부르는데 나만 이유경씨 이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학생들한테 '너네는 girl 이고 boy 잖아. 나랑 유경 씨는 woman 이야' 이러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저기요 선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굳이 나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선생님만 woman 하면 되잖아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싱가폴에서 영어 공부하는 대하민국의 woman 이 여기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실, 선생님 두분 다 나보다 어려보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은 간단하게 누룽지를 먹었는데, 점심이 어떻게 되는건지 몰라서 일단 어제 산 샌드위치를 들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열시경, 선생님이 쉬는 시간이라고 하는거다. 첫날이니 쉬는 시간을 30분 주겠다, 다들 먹고 싶은거 잇으면 먹고 와라, 했다. 누룽지 따위 먹었더니 배가 고팠던 나는 '점심은 점심에 맡기고 일단 가져온 샌드위치를 먹자' 하고는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먹어치워버렸는데,
그랬더니 점심 시간에 배가 고파가지고. 아니 그런데 내가 치약칫솔셋트를 집에 두고 안가져온게 아니겠습니까. 간식 먹고 양치를 못해서 너무 찝찝해서 일단 점심 시간에는 '편의점에 가 치약칫솔 셋트를 산 후에 점심을 먹고 양치하고 오후 수업에 들어가자'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이 되어 편의점 찾아가다보니 저기 맥도날드가 있네? 잠깐 들러서 저기서 먹어? 하다가 아니야, 일단 치약칫솔 사, 해가지고 편의점을 구글맵보고 찾아가는데 못찾겠는거에요. 그래서 어느 빌딩 앞에 앉아계신 분께 길을 물어서 드디어 찾아가지고 치약칫솔셋트를 샀는데, 흐음, 이제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하네? 만약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면 허겁지걱 후다다닥 먹어야겟는데? 그냥 굶어? 배고픈데 어떡하지... 하고 나가려다가,
앗 여기는 편의점이잖아?
하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고 냉장고를 보니 삼각김밥이 있어서 '바로 이거야!' 하고 샀다.

그리고 양치하고 오후 수업을 들었다.
머릿속에는 '집에 가서 제육볶음 해먹을거야'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서 '좋았어, 고춧가루 고추장 굴소스 다 사버렷, 플렉스!!' 하고 마트에 들렀는데, 아니 세상에 이런게 있는겁니다.

이걸로 제육볶음 해도 되지 않을까? 이걸로 된다면 굳이 고추장, 고춧가루, 굴소스..같은거 안사도 되잖아? 하고 채경이한테 물어봤더니, 채경이가 이렇게 답해주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장바구니에 넣었던 굴소스랑 고추장을 다 빼놓고 이것만 샀다. 그리고 포크밸리로 고기를 사가지고 집에 와서 제육볶음을 만들었다. 야채도 좀 있어야겠는데 딱히 상추가 보이지 않고, 상추가 보인다면 쌈장..을 사고 싶을 것 같아서, 그래 다른 야채 먹자, 하고 알배추 사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나의 오늘 저녁 밥상. 짜잔-


그릇에 예쁘게 담는건 못하지만, 겁나 맛있어보이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파 넣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가난한 유학생이니 대파 패쓰. 소주컵 사는데 쓸 돈은 없어서 머그컵에 소주 따라 마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여간 존맛탱이었다. 이거 자주 해먹어야겠어. 알배추 위에 제육볶음 하나 올려가지고 먹으니 오늘에 대한 보상 크-
사실 이건 제육볶음이라기 보다는 고추장볶음 쪽이 더 맞는 이름 같지만.
제육볶음 먹고 싶다고 제육볶음 해먹는 나를 보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진짜 잘먹고 잘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결국 이렇게 잘 해먹으려고 여기 온걸까? 이런 내가 세상에, 계란프라이도 안되는 집에서 살았다고 생각해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왔을거다. 큰 창으로 도시의 불빛 속에 잠드는 것도 진짜 개꿀이다. 너무 좋아.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여섯시경이다 보니 지하철이 만원이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도 만원 지하철 탔는데 싱가폴 와서 공부를 해도 만원지하철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팔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내일은 수업 없지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금 생필품 몇 개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어제는 아마존 싱가폴로 샐리 루니 책도 주문했다.
오늘 수업 하루종일 하느라 진짜 너무 피곤했네. 이제 자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