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레벨의 쓰기,읽기 선생님은 Rina 였다. 말하기,듣기 선생님은 따로 있었고, 4레벨에서는 선생님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태 총 네 명의 선생님을 만난건데, 그 중에 누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고민없이 나는 Rina 를 말할거다.

Rina는 우리가 모를 것 같다고 생각되는 단어에 대해 설명할 때, 그러니까 어떤 단어에 대해 설명할때 막연하거나 추상적으로 대충 어떤 단어랑 비슷하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그것은 무엇이다, 라고 설명해줬는데, 그 때 그 설명은 마치 내가 사전을 펼쳐 읽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Rina 가 단어에 대한 설명을 할 때면 그게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영어 단어에 대한 설명을 영어로 듣노라면, 그 단어가 더 명확하게 이해되고 더 잘 기억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설명해준 단어중에 처음 배워서 기억하게 된 단어가 commute 였다. 나는 그 당시 처음 보는 단어였다. 그리고 이 단어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 아, 통학하거나 출퇴근 하는 걸 의미하는구나, 라는걸 깨달았다. 잠시, 여기서 영영한사전에는 뭐라고 나와있는지 들춰보겠다.


commute: to travel regularly in order to get to work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이동하다


그리고 그렇게 이동하는 사람을 commuter 라고 한다. 통근자. 



너무 잘 이해되고 기억되어서 바로 외운 단어가 되었는데, 첫번째 test 에서 이 단어가 답인 문제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정답을 맞혔다.


나는 Rina 가 단어에 대해 설명해주는게 너무나 좋았다. 그녀는 마치 사전 같아, 라고 생각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단어에 대해 저렇게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Rina 를 제외한 다른 어떤 선생님들도 Rina 같지 않았다. 사전같지 않았다. 사실 단어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라면, 다른 선생님들이 말해줄 때 다소 불만일 때가 많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그전에, 가장 처음으로 Rina 의 설명을 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 왜 Rina  처럼 설명해주지 못하는거야? 내심 속으로 불만을 가졌더랬다.


그러던 어느날 복도에서  Rina 를 마주쳤다. 나는 반가워서 네가 그립다고 말하며 그녀에게도 내 생각을 말했다.


"너가 너무 그리워. 특히 너가 단어에 대해 설명할 때면 너는 사전 같았어. 너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Rina 는 너무 고맙다고 활짝 웃었다. 나는 정말로 Rina 가 그리웠다. 단어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 특히 그리웠다. 그래서 영엉사전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영사전 이라면 이미 가진게 있었다. 한국 집에. 내가 대학 들어가고나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첫 월급으로 나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영영사전을 샀더랬다. 사놓고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들춰보기도 했다. 영영사전은 나의 보물이었다. 사실 한동안 보고 그 뒤로는 보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영영사전이 집에 있는데 여기서 또 사는건 낭비겠지, 그런데 한국에 있지 여기엔 없잖아, 나는 당장 보고 싶다고,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걸 여기로 보내달라고 하면, 그 돈으로 사전을 사겠지... 고민하다가, 문득, 오래전에 내가 영한사전을 사고 싶다는 페이퍼를 썼고 거기에 라파엘 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던게 생각났다. 다시 그 페이퍼를 찾았다. 라파엘 님은 영영한 사전을 사라고 조언해주셨다. 아, 맞다, 그랬었지!


마침 한국에서 나를 보려고 싱가폴 오겠다는 친구가 있으니, 나는 그 사전을 사서 그 친구 집으로 보냈다. 친구야 올 때 가져다주렴. 그렇게 영영한사전이 내게로 왔다.

















그리고 이 사전을 받아들고 단어를 찾아보는데 너무 좋다! 아, Rina 가 단어 설명해주던 그걸 이제 수시로 느낄 수 있어. 만세! 너무 좋다. 진짜 좋다. 이 영영한사전은, 영영한사전 자체로 재미있다. 그리고 자꾸 반복해 찾다보면, 어쩐지 영어도 잘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단어 뜻 읽으면서 수시로 문장을 만나게 되잖아. 게다가 그 문장은 우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결코 어렵지가 않다. 사전을 반복해 보다보면 영어도 더 잘하게 되지 않을까? 후훗.


독서괭 님의 요청을 받아 사진도 좀 추가해본다.







이거 사진 찍다가, 아, 나는 유튭 계정 있는 사람이지! 유튭으로도 짧게 리뷰해보았다. 이게 다 독서괭 님 때문이다.


(목소리가 너무 작게 나오니 알아서 조절해서 들으세요. 편집 기술 없습니다..)






방금 빨래 널고 있으면서 텔레비젼 틀어두었는데, 싱가폴 뉴스에서도 한국 계엄 얘기 나온다..




그럼 여러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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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12-0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덕분에 choice의 뜻을 새로 알았네요. 저는 지금까지 choosing (선택하는 행위)와 choice (선택할 권리, 선택할 기회)를 별 구분 없이 쓰고 있었어요.
종이사전 오랜만에 보니 그것도 좋구요. ‘사전적 정의‘ 라고들 하잖아요. 어떤 말의 의미를 넓혀가며 쓰는 것이 필요할때도 있지만 ‘사전적 정의‘를 알고 있을 때 더 정확한 말과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chocolate을 찾아보신 다락방님 ^^ youtube에 올라와있는 것외에 또 뭘 찾아보셨을까요?)

다락방 2025-12-04 15:48   좋아요 0 | URL
지금 나인 님의 댓글을 읽고 제가 무슨 단어를 찾았나 사전을 들춰보았는데요, occasional 을 찾았네요. 아마도 교과서나 책이나 어딘가에서 보고 아, 이게 내가 아는 뜻이 맞나, 하고 찾아본 단어 같아요.

occasional : happening sometimes but not often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일어나는. 가끔의. 이따금의.

라고 되어있습니다.

독서괭 2025-12-04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다락방님 감사합니다! 사전 유용할 것 같아요. 애들 영어공부 할 때도.. 사놔야겠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단어 설명을 잘해주시면 참 좋겠어요. 집중 잘 될 듯. 또 안 잊고 리나에게 칭찬 아낌없이 해주는 다락방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니깐..

다락방 2025-12-04 15:49   좋아요 1 | URL
네, 정말 단어 설명해줄 때 어찌나 좋던지요. 좋은 경험이었고 그래서 이렇게 사전 구입으로 이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장점이 있다면 그리고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면, 하여간 긍정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건 꼭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나를 좋게 생각한다는 거 아는 거, 정말 좋잖아요!! >.<

책읽는나무 2025-12-04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특히 리나 선생님 이야기.
복도에서 가르쳤던 학생이 진심을 담아 건넨 그 말 한마디를 들었을 리나 선생님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더 다정하고 더 자세히 수업에 임하실 것 같아요.
영영한 사전 정말 유용할 것 같습니다.
종이 사전 정말 얼마만에 보는 건지 모르겠어요. 얇은 종이가 차라락 넘어가던 질감과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그리고 저렇게 곳곳에 형광펜이나 볼펜으로 그어가던 시간들. 또 좋네요.ㅋㅋㅋ

다락방 2025-12-04 15:50   좋아요 1 | URL
저는 워낙 사전을 좋아하긴 햇었어요. 사전을 막 자주 찾아보는 사람은 아니었어도 그냥 사전이라는 물건을, 아이템을 좋아했어요. 사전은 그냥 무조건 집에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ㅎㅎㅎㅎㅎ 영영한사전은 특히 만족도가 큽니다. 책나무 님도 이 참에 한 권 들이시죠. 훗.
단어 찾아보고 이렇게 밑줄 긋고나면 그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와 확 박혔으면 좋겠어요. 찾은 단어 다시 찾아볼 때의 나에 대한 실망감이란... 흑 ㅠㅠ

망고 2025-12-04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사전 언제 들춰 봤더라 추억이 새록새록ㅋㅋㅋ학교 다닐때 책상에서 사전 베고 귀에 이어폰 꽂고 엎드려 꿀잠자던 기억이 떠올라요😆
그후 저는 지금까지도 전자사전을 씁니다 폰으로 찾는것 보다 인터넷 안되니까 집중 잘 되고 키패드 누르는 감각도 좋고해서요 저는 이 오래된 전자사전 고장날까봐 지금 하나 더 살까 고민중입니다ㅋㅋㅋㅋ
근데 다락방님 페이퍼보니 종이 사전에 밑줄 긋던 느낌도 다시 느껴보고 싶어지네요😄

다락방 2025-12-04 15:51   좋아요 0 | URL
저 중학생 때였나, 영어 시간에 사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사전 찾기 연습도 하고 그랫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일이 없겠죠. 네이버 영한사전으로 찾으면 발음까지 바로 다 들어볼 수 있잖아요. 망고 님은 전자사전 쓰시는군요. 한때 티비 광고로도 전자사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아련...
종이사전 너무 좋아요!! 찾는데 시간 걸리지만, 그래도 참 좋아요!!

jeje 2025-12-0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하하 저 이순간부터 영영한사전 사고싶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ㅋㅋㅋ
다락방님 라파엘님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5-12-04 15:51   좋아요 0 | URL
제제 님, 사전은 사치품이 아닙니다, 필수품 입니다. 이참에 한 권 들이시지요. 훗.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12-0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사전 종류대로 출판사대로 여러가지 가지고 있는데, 롱맹 영영한 사전을 사야지만 오늘 밤에 잠이 올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아, 이를 어쩐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2-04 20:24   좋아요 1 | URL
하하하하 저는 이 사전이 아주, 아주 마음에 듭니다. 꺅 >.<
 
롱맨 영영한사전 - 개정2판
금성출판사 편집부 엮음 / 금성교과서(금성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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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좋아 너무 좋아. 사람들이 다 이거 사서 단어 찾았으면 좋겠다.
이 영영한사전을 추천해주신 라파엘 님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영영사전도 있고 영한사전도 있지만, 영영한사전이 있다는 건 라파엘 님덕에 처음 알았어요. 이래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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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12-03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영영한 사전이요? 저도 몰랐어요!

다락방 2025-12-03 15:27   좋아요 1 | URL
여기에서 필요해서 샀는데 진짜 너무 좋아요. 독서괭 님, 추천합니다! >.<
제가 단어 몇 개 찾아서 페이퍼 써보도록 할게요!!

독서괭 2025-12-03 16:52   좋아요 0 | URL
네 궁금해요. 사진도 부탁드립니다! ㅋㅋ

다락방 2025-12-03 23:58   좋아요 1 | URL
페이퍼 쓰고 사진도 올렸고 영상도 올렸습니다!!

건수하 2025-12-0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죠 ^^ 전에 샀었던 거 같은데... 어디로 갔는가... =ㅁ=

근데 요즘 라파엘님 못 뵌지 한참인것 같아요.

다락방 2025-12-03 15: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라파엘 님 못 뵌지 한참됐네요.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전 이 롱맨 영영한사전에 완전 만족합니다! >.<

단발머리 2025-12-0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어 공부의 시작과 끝은 사전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전의 최고봉은 영영사전 아니고 영영한 사전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좋은 거 가르쳐주신 라파엘님 어디 계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2-03 23:59   좋아요 0 | URL
영영한사전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 님. 저의 애정템입니다. 비록 찾아본 단어는 몇 개 안되지만 말이지요. 하핫.
 
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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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일들은 늘 웨인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났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날 오후가 그 모든 순간을 통틀어 최고였다. 우리에겐 돈이 있었다. 우리는 꾀죄죄하고 피곤했다. 평소 우리는 뭔가가 잘못되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 채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오늘은 일한 자들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일>, p.90


나는 사소한 질문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 답을 얻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조금 더 생각해볼 예정인데, 그렇다해도 그 답을 얻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인간은, 이쪽이 더 좋고, 옳고, 낫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저쪽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을 계속 생각하고 있는 까닭은 이 책, 데니스 존슨의 [예수의 아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단편집이 실린 단편들 중 하나의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가져오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에 <예수의 아들>이란 제목을 가진 단편은 없다. '루 리드' 의 <헤로인> 이라는 노래 가사 중에 '그 황홀한 기운이 밀려들면 내가 예수의 아들이 된 기분이야' 라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책의 앞장에 가사가 실려있다.


내가 피하는 이야기가 있다. 알고서는 선택하지 않는 이야기. 약물중독과 알콜중독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읽으면 너무 괴로워지고 끝까지 읽어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다 라는걸 알면 선택하지 않는 편이다. 이 책은 제일 처음 제목만 보고 오오, 예수의 아들이라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다, 라고 생각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었는데, 백자평에서 약물 중독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보았고, 그래서 망설였다. 하.. 싫은데 읽을까 말까 읽을까 말까. 그래도 예수의 아들이라는 제목에 혹해 읽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그만 읽자 싶었다. 그리고, 위의 인용한 부분의 <일> 을 읽게 되었고, 그 때부터 자꾸만 질문이 따라왔다. 왜, 이쪽이 더 좋은걸 알면서, 이쪽을 경험해봤으면서, 그런데 굳이 저쪽으로 가는가, 하는 질문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약물중독자들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자기 육체와 정신에 약을 넣어준다. 그러니 평범한 생활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이들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니, 당연하게도 약물중독자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약에 취한 채로 히치하이킹을 하고, 사고난 차량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리고 나오고, 다른 사람의 집에 침입하고, 병원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 매순간 내게는 긴장이다. 저래가지고 운전자에게 해가 되진 않으려나, 저 아이는 데리고 나가서 어쩌겠다는건가, 저런 사람을 병원에서 일하게 해도 되나. 나는 자꾸만 걱정이 되고 두려워진다. 약 좀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래서 약물중독자가 나오는 책을 읽기가 싫다. 내가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도 두 장인가 읽다가 읽기를 포기했단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을 나는 처음부터 읽지 않았어야 했지만, 아아, 그런데 이게 뭘까. 이건 뭔가. 이게 문학이란 말이다. 너무나 문학, 그 자체인 것이다. 


다시 <일>로 돌아가서, 약물중독자인 인물들이 '노동'을 하고 땀을 흠뻑 흘린다. 폐가의 고물들을 다 수거해서 내다 파는일. 그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둘 다 땀을 흘렸고 땀구멍에서 술기운이 빠져나오면서 오래된 귤껍질 같은 냄새를 풍겼다'(p.83) 그래서 '"이렇게 일하니까 약 기운이 다 깨잖아요. 좀 더 쉽게 돈 버는 법은 없어요?"'('p.83) 라고도 말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하고, 그 날 약간의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술집에 가면서 그 순간을 좋은 순간으로 기억한다. 정말 좋은 일은 웨인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난다고 생각했고, '평소 우리는 뭔가가 잘못되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 채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지만'(p.90), 그렇지만 일을 하고 땀흘리고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좋아하는 술집으로 와서 좋아하는 바텐더에게 술을 주문하고서는 '오늘은 일한 자들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p.90) 라고 하는거다. 그러니까,


그는 알고 있다. 

일한 자의 기분이 어떤건지 알고 있다. 

약기운이 빠져나갔을 때의 기분을 알고 있다. 그 감정을 알고, 그것을 '좋다'고 분명히 느끼는 사람이다. 일을 해서 땀을 내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좋아하는 술을 사 마시러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약을 한다. 그 좋았던 순간을 알면서도, 경험했으면서도 다시 약을 한다. 계속 약을 한다. 잘나가는 미식 축구선수를 결국 해파리처럼 흐느적 거리게 만드는 그 약을, 그래서 다시는 미식축구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약을 한다. 미식 축구선수는, 자신의 잘나가는 시절을 기억하겠지. 약을 끊으면, 다시 그 전과 꼭같아지지는 않더라도, 다시 인생에 다른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약에 취하지 않은 순간에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다짐할 것이다. '다시는 이 약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그런데 어김없이 약을 하고 또다시 흐느적거리면서, 이제는 아무 쓸모없어진 '전에는 잘나가는 미식축구 선수'가 된다. 이게 '중독'의, '약중독'의 무서운 점일 것이다. 알면서도,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손을 대게 만들어서, 저기, 저 너머에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경험한 좋은 순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선택하게 만드는. 아마 그것-약-은 무척 힘이 센가보다. 내가 계속해서 던진 질문은, '이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걸 알면서 왜 저쪽을 선택할까' 였다. 약의 중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알잖아요, 얼마나 좋앗는지 알잖아요, 그런데 왜, 라고 자꾸 물어보게 되는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답할 수 없는 어떤 깊은 독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약 중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질문을 반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꼭 약중독이 아니어도, 우리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이건 잘못된거야'를 알면서도 굳이 선택하는 그런  때 말이다. '이건 옳지 않아', '이걸 하면 후회할거야' 라면서도 굳이 그 나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때가 있지 않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연인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는 연인에게로 가는 경우들도 있지 않나. 이 관계는 나를 파괴한다, 는걸 알면서 굳이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걸 안하는게 좋아' 라는걸 알면서도 선택하는 지점들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지 않나. 그 질문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된거다. 


왜? 이게 더 낫다는 걸 알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선택하는거야?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거기엔 자신만의 고유한, 타인은 모르는 어떤 은밀한 부분이 포함된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에 문학의 의의가 있다. 사소한 질문을 던지는 일,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을 질문하는 일. 이게 문학이 하는 일이다. 이 사소한 질문을, 그러나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이 책이 던졌고, 나는 그 답을 찾으려고 내내 생각했지만,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초반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글을 이렇게 잘 쓰는데 왜 약물중독자 이야기를 한걸까' 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얼마나 오만한가. 책을 다 읽고나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약물중독자에 대해 얘기하면 왜 안된단 말인가'로 바뀌었다. 약에 중독된 사람의 뇌가 일정부분 망가진 것이라는 걸, 데니스 존슨은 '어떤 중요한 연결이 타 버려서 그런 거'(p.74)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건 그 사람이 특별하게 못나서가 아니다. 곧이어 '만약 내가 당신의 머리를 열고 뜨겁게 달군 쇠로 뇌를 헤집는다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지 모른다'(p.74) 고 경고하니까. 



인생의 좋았던 순간을 알고 또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것도 데니스 존슨은 알고 있다. 좋았던 순간이 짧다는 것도 알고, 그리고 사랑은 금세 가버리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게 사소한 질문을 던지고, 오래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리 극적이고 끔찍한 말을 생각해 내도 그녀는 기분이 누그러지거나, 맨 처음 나를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더렵혀진 결혼>, p.120


좋았다.

그의 가슴에도 선량함이 있었다고 하면 당신은 믿겠는가? 그의 왼손은 그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몰랐다. 그건 그냥 어떤 중요한 연결이 타 버려서 그런 거였다. 만약 내가 당신의 머리를 열고 뜨겁게 달군 쇠로 뇌를 헤집는다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지 모른다. -<던던> - P74

"밖으로 나와." 웨인이 말했다.
그러자 사내가 대꾸했다. "여긴 학교가 아닌데."
"병신 같은 새끼, 웃기고 있네. 그게 대체 무슨 소린데?" 웨인이 말했다.
"밖으로 나가는 건 학교에서나 하던 짓이지. 여기서 붙자고."
"여기선 안 돼. 여자하고 애하고 개하고 장애인들이 있는 곳에선 싸울 수가 없어." 웨인이 말했다.
"씨발, 이 새끼 취했네." 사내가 말했다. -<일> - P88

정말 좋은 일들은 늘 웨인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났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날 오후가 그 모든 순간을 통틀어 최고였다. 우리에겐 돈이 있었다. 우리는 꾀죄죄하고 피곤했다. 평소 우리는 뭔가가 잘못되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 채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오늘은 일한 자들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일> - P90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리 극적이고 끔찍한 말을 생각해 내도 그녀는 기분이 누그러지거나, 맨 처음 나를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더렵혀진 결혼> - P120

우리는 대체로 정해진 일정을 따랐다.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텔레비전에서는 늘 똑같은 프로그램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 가짜 세계에서 나오는 ㄴ대화와 웃음이 없이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게 두려웠다. 그녀를 너무 많이 알고 싶지 않았고, 서로의 시선으로 정적을 메우고 싶지도 않았다. -<베벌리 요양 병원>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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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0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줄 알면서도 계속하는 건 중독입니다~!!

다락방 님과 저도 계속 술 마시는 그거...중독입니다~!!
저 얼마전에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갔는데... 거기 점원분이 제가 자주 맥주 사는 거 알고 말 자주 걸거든요? 그날은 제가 늘 사던 기린 맥주 4캔을 안 사고 산토리 4캔을 샀더니 그분이 “와 드디어 바뀌었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 행사가 끝나서요.”(그때까지 기린 맥주 4캔 11,000원 행사). 그랬더니 “그럼 이거 맛있어요?” 그래서 “네 산토리가 일본 맥주 중엔 제일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행사 안 할 땐 그냥 이거 마셔요.” 그랬더니 이분이 뭐랬는 줄 아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문가가 맛있다면 맛있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진짜 빵 터졌는데 알코올중독자라고 안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분 눈엔 전 이미 알코올중독자일걸요. ㅋㅋㅋㅋㅋ 그전엔 집사2랑 번갈아가면서 술 사오곤 했는데 집사2가 다친 후로는 매일 제가 가서 술사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 전문가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아무튼 나쁜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건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파괴하는 관계라는 거 뻔히 알면서도 거기에 기어코 들어가는 것도 결국엔 그 대상이 그만큼 좋아서겠지요.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이거 다락방님이 잘 하는 거면서 왜 모르는 척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데니스 존스도 그렇고요. 사랑도 그렇고 그 좋았던 순간도 다 지나간다.......

다락방 2025-12-02 12:49   좋아요 1 | URL
도대체, 왜, 잠자냥 님은 마실 때마다 번번이 맥주를 사러 가는거죠? 걍 잔뜩 쟁여두면 되잖아요? 귀찮지 않습니까? 저는 한국에 있을 때도 쟁였지만 싱가폴 와서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30개 박스를 사서 쟁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잠자냥 님이 그렇게 번번이 가신 덕분에, 잠자냥 님이 잘 안하시는 ‘직원과 대화하기‘를.. 하게 되셨네요? 껄껄.

맞습니다. 나쁜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 중독이죠. 나쁜거 아는데, 저기 좋은게 있는데, 그런데 굳이 이 나쁜걸 택하는 그런 마음에는 분명, 이 나쁜 것 안에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 매력을, 그러니까 저버릴 수 없는가.. 라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상식적으로라면, 나쁜건 안하는게 맞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한단 말이죠.

하여간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특히 제가 본문에도 인용한, ‘맨 처음 나를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 문장 너무 주옥같지 않습니까? 맨 처음 나를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ㅋ ㅑ ~ 진짜 소주 땡기네요. 와인도 땡기고. 친구가 발베니 위스키도 주고 갔는데... (먼 산 보기)

잠자냥 2025-12-02 13:09   좋아요 1 | URL
그건 말이죠.. 집에 술을 사 두면 진짜 홀라당 며칠만에 다 먹어버려서... ㅠㅠ ㅋㅋㅋㅋ
맥주 박스째 사놨더니 이삼일만에 다 먹어버려서 이거 큰일이구나... 그랬습죠.
직원과의 대화는......... 제가 먼저 시도하진 않습니다만 먼저 말 거는 직원한테는 최소한 대답은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가게나 택시(?) 이런 데서 일하시는 분들이 먼저 저한테 말 잘 거는 편이에요. 지나가는 꼬마들도 말 잘 걸고 뭔가 대꾸해주게 생겼나 봅니다......... -_-

다락방 2025-12-02 13: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가만있고 싶지만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12-03 16:50   좋아요 0 | URL
치명적인 매력 어쩔거야.. 인티제인데 너무 치명적이야..

잠자냥 2025-12-03 17:00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건 아니고…. 어린이랑 동물한테 어필하는 스타일입니다. 지나가던 개도 나 보면 멈춰 서서 쳐다 봄. 왜일까요? 내가 개처럼 생겼나? ㅋㅋㅋㅋㅋㅋ 먹을 거 주게 생겼나?! 🤣

독서괭 2025-12-03 17:25   좋아요 1 | URL
아니자나 모임 가서도 사람들이 자꾸 말 간다며요! 개가 쳐다보는 건.. 고양이인 줄 알고 쳐다보는 거 아닐까요? 개들에겐 육고.. 아니 7고의 냄새가 느껴질 듯 ㅋ

독서괭 2025-12-0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약물중독자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좋다고 하시다니! 정말 좋은 소설인가 봅니다.
우리 다 밀가루 끊고 간식 줄이면 건강 좋아지고 살도 빠지는 거 알잖아요.. 하지만 안 되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걸까요…

다락방 2025-12-04 00:00   좋아요 1 | URL
네, 독서괭 님. 읽기 전에는 고민했는데 읽고나니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책이었어요. 좋은 책이란 독자로 하여금 질문하게 하는 책이 아니던가요. 문장은 아름답고 어쩐지 다 읽고나면 이상하게 가슴이 계속 아픈, 그런 책입니다. 좋은 책이에요.
독서괭 님 댓글 읽고나니 정말 그러네요. 그러면 안되는줄 알면서 저도 자꾸 많이 먹죠... 그러면 돼지가 되는데 자꾸만 많이, 많이...

단발머리 2025-12-0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제가 꼭 읽어야할 것 같은 강한 압박감이 듭니다. 제목이 예수의 아들이라서요^^
약물 중독자에 대한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무거울 것 같은데,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아주 대단하더라구요. 다락방님도 좋았다고 하셔서 기대가 되는데...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우울감 플러스 열패감의 향연일 거 같아요. 중독이란 무엇인가...

다락방 2025-12-04 00:03   좋아요 0 | URL
저도 약물중독에 대한 얘기라서 우울감과 열패감 때문에 읽고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그것과는 좀 달라요. 물론 당연히 밝고 긍정적인 느낌의 책은 아니지만, 뭐랄까요, 우울하고 열패감을 느끼고.. 와는 약간 다른 성질의 슬픔이 있어요.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이 문학이 해야 할 역할을 잘 해냈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아름답고 이상하게 슬픈 잔상이 남는 책이에요. 저도 제목의 예수의 아들 이라서 선택한건데, 읽기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아름답게 글을 쓰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어서, 우리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이상하게 계속 아련한 슬픔 같은게 남는 그런 책이에요.

중독이란 무엇인가..

책읽는나무 2025-12-04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물중독이란 말을 들으니 얼마 전에 읽었던 코펜하겐 3부작 자전소설이었던 토베 작가가 생각이 나네요. 그 작가도 훗날 약물중독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고 결국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군요.
읽고 나서 한동안 좀 우울했었어요. 왜 그토록 삶을 약물에 의존해 지탱해 갔었는지…
시대적 상황의 영향이 무척 컸겠지만 내내 안타까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도 이런 종류의 글들은 너무 어둡고 슬퍼 읽어나가기가 참 힘들단 걸 이제 깨달았어요.
그런데 다락방 님이 이 책 좋다고 하시니 좀 땡깁니다. 또 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책이로군요.^^

다락방 2025-12-04 20:47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약물중독 이야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알콜중독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문학을 통해 접하지 않는다면 또 전혀 모르고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이런 이야기를 쓰면 왜 안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여간 아름다운, 좋은 책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슬픈 책이었어요.
 

















이거 무슨 이렇게 버전이 많아. 책은 한 권 짜리인데 왼쪽부터 페이퍼백, 하드커버, 라지페이퍼백, 다른 표지 이렇게 된다.  엄청 인기가 많은 책이었는가보다. 이렇게나 뭔가 버전이 많은 걸 보면... 하긴 페이퍼백과 하드커버는 원래 모든 책이 다 나오고 그랬나? 어쨌든.


12월~1월 두달간 영어원서 같이 읽기 책은, 미셸 자우너의 [Crying in H Mart] 입니다. 국내 번역번도 나와있지요. 저는 번역본을 좋게 읽었습니다. 어제 두달간 힘들게 읽은 잭 리처 원서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 거기에서 댓글로 독서괭 님과 다음 책은 어떤책으로 할지 잠깐 얘기해보다가 이 책으로 골랐습니다. 아무래도 한국계 작가가 쓴 책이다보니 영어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 느낌... 이번에 잭 리처가 너무 힘들었으므로(육군에 해군까지..) 다음 책은 쉬웠으면 좋겠다는 모두의 바람을 담아 고르긴 했는데, 걱정이네요, 이 책은 과연 어떨지. 제가 궁금해할 여러분을 위해 친절하게 첫문장 가져와보겠습니다.



Ever since my mom died, I cry in H Mart.


오오, 여러분 읽어볼만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 문장이면 괜찮을 것 같네요. 그 다음 문장도 가져와볼까요?


H Mart is a supermarket chain that specializes in Asian food. 


오오, 여기까지도 할만하지 않습니까? 우리 어디 한 번 해봅시다. 두달이라는 시간 동안 천천히 읽어봅시다. 그간 영어 원서 나도 읽어보고 싶다, 라고 생각만 하셨던 분들도 이번 기회에 한 번 참여해보세요. 같이 읽기를 하면  아무래도 혼자 읽는 것보다 페이지 넘기기가 낫고, 그리고 저는 번역본이 있는 걸 고르기 때문에, 이게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혹은 이게 어떤 뜻인지 궁금하다 싶으면 언제든 번역본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영어 원서를 처음 읽을 때는 번역본과 함께 읽는 것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출처는 어디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들은건 확실합니다. 혹시나 영어 실력이 부족해 오독할까 걱정되시는 분들이라면, 다락방과 독서괭이 함께하는 영어 원서읽기에 참여하세요. 번역본 있는 것만 고릅니다. 여러분의 오독, 내버려두지 않아요! 번역본과 언제든 교차 확인 가능!! 고객 맞춤형 서비스!! ㅋㅋㅋㅋㅋ


번역본은 종이책도 있고 전자책도 있으니 이번에 영어 원서 처음이다 하시는 분들은 둘중 하나 번역본도 함께 구입해서 천천히 읽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에는 원서 한문장 번역서 한문장, 이렇게 비교하는 것 보다는, 


1. 번역서를 한 챕터 읽고 그 다음 원서 한 챕터를 읽는다

2. 원서를 읽어가다가 이해 안되고 어려운 부분에서 번역서를 찾아본다


정도를 추천합니다. 저는 사실 1번이 제일 나은 것 같긴 합니다만, 두가지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번역본을 읽어두면 원서 내용 파악하기가 좀 더 쉬워지고, 그렇다고 사람이 한 번 읽은거 다 기억하는건 아니기 땜시롱 읽다가 앗, 뭔말이여 싶으면, 다시 또 번역본 보면 됩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나아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있을 것입니다. 만세!!


자, 12월 1월 두 달동안, 우리 미셸 자우너의 이야기를 읽어봅시다.
















아 쓰다가 갑자기 광고식으로 된게 요즘 이 광고에 중독되어버렸기 때문... 텔레비젼 틀어도 유튭을 봐도 똠얌버거 자꾸 광고 나와서...(한국엔 없죠?) 노래 따라부르는 나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똠얌 버거~~  골든 프론 패티~~ 사바이사바이~ 하.. 돌아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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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5-11-3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 표지는 영국판이라네요~ 빨간 표지가 저렴하고
페이지 수가 적어요^^
번역서 사기에 부담돼서 이참에 생성형AI 시작했다는^^;;;

다락방 2025-11-30 21:16   좋아요 0 | URL
아, 노란 표지는 영국판이군요. 저도 빨간 표지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원서도 같이 한 번 열심히 읽어봅시다, 로제트50 님!

단발머리 2025-12-01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어딘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제가 아는 어딘가를 여기에 놓고 갑니다ㅋㅋㅋㅋㅋㅋ

우선 처음에는 번역서에 선을 그어가며 빈틈없이 읽습니다. 두 번째는 선을 그은 부분을 원문과 하나하나 대조하며 읽어갑니다. 그리고 세 번재로, 그게 정말 좋은 책이고 한 달 정도 공을 들여 읽을 짬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원서로 읽어봅니다. 그것이 재독의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저희 같은 외국어 비전문가들은 말이죠, 전문가가 번역한 책을 옆에 두고 읽으려는 원서도 함께 둡니다. 그리고 사전을 앞에 둡니다. 이런 식으로 원서를 읽는 것이 좋아요. 번역본을 참고하면 원서를 읽는 속도가 훨씬 빨라집니다.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41쪽)


저도 같이 읽어요. 오늘부터 12월이네요. 이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2-01 10:18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이 해주신 말씀인건 알겠는데 누구의 것을 인용한 것인지는 기억이 안나더라고요. 누군가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이렇게 똭- 댓글로 알려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게 오에 겐자부로 라니 ㅋㅋ 좋네요. 뭐랄까, 신뢰할만하달까... 제가 이 책 번역본을 한국으로 보내버렸는데... 일단 원서 읽다가 전자책으로 번역본 사던가 해야겠어요. 이해 안되는 그 순간 바로, 즉시, 전자책 사버리기. 그래서 제발 이 책이 쉽기를 바랄 뿐입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단발머리 님!!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사실 기분상으로는 잭 리처를 읽고 싶긴 합니다만, 실력 상으로 그게 안되네요. 아하하핫)

독서괭 2025-12-0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앞에 것이 가장 싸네요!
원서읽는 법들을 보니 저는 영 글렀습니다.. 그냥 막 이해가 되든 안되든 읽는 편.. ㅋㅋ ㅠㅠ 하지만 정석대로 읽으면 너무 오래 걸리는걸요 ㅠㅠ
다락방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도 같이 재밌게 읽어보아요!!

단발머리 2025-12-01 10:05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읽습니다. 단어 안 찾고 그냥 쭉쭉이요~ 근데 이번에 리처 읽을 때는 도저히 안 되서 중간에 몇 챕터는 한글책 읽고 왔어요 컥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2-01 10:14   좋아요 2 | URL
저도 단어 안찾고 읽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데 저는 쭉쭉 읽을 수가 없어요.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서요. 최소한 분위기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번역본을 먼저 읽습니다. 그래야 단어 몰라도 좀 읽어갈 수가 있더라고요. 독서괭 님과 단발머리 님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읽기가 좀 되시는게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번역본 안 보면 아예 진도가 안나가요. 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5-12-01 10:19   좋아요 1 | URL
그냥 눈으로만 읽고 모르겠으면 휙휙 넘어가서 그런지 저는 (한글책도 그렇지만) 읽고 나면 기억이 잘 안 나서요ㅋㅋㅋㅋㅋ 너무 설렁설렁한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공부에 방점을 찍으려면 조금 더 꼼꼼히 읽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흠... 🤔

독서괭 2025-12-01 10:22   좋아요 1 | URL
저도요.. 그래서 제가 원서 리뷰를 잘 못 쓰는 거 아닌지.. 내용에 자신이 없음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12-01 10:24   좋아요 1 | URL
자신 없음, 여기 하나 추가요! 🤪

다락방 2025-12-01 11:07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두 분 책에 대해 말씀하실 때 내용 파악 정확하셨는걸요!!

독서괭 2025-12-01 11:16   좋아요 2 | URL
여섯번 했다.. 그런건 정확히 읽었습니다 흠흠

다락방 2025-12-01 11:17   좋아요 1 | URL
중요합니다. 잭 리처 시리즈 통틀어서 여섯번이나 한 건 데버로가 처음이에요. 흠흠.

단발머리 2025-12-01 11:21   좋아요 1 | URL
아니 이 분들 ㅋㅋㅋㅋ 이렇게나 디테일에 강하시네요. 더 노력해야겠어요, 저는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5-12-01 12:32   좋아요 1 | URL
리처가 굳이 .. 횟수를 말하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licia 2025-12-0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독서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네요. 감탄과 즐거움을 느끼며 댓글 남겨 봅니다. ^^

다락방 2025-12-01 22:55   좋아요 0 | URL
무궁무진하다뇨, 오해십니다. 그저 읽기를 멈추지 않으려할 뿐입니다. 하핫.

거리의화가 2025-12-03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궁금했던 책이었어요. 먼저 읽고 계시면 따라가겠습니다^^

다락방 2025-12-03 15:27   좋아요 0 | URL
네네, 저도 아직 시작 전입니다. 거리의화가 님, 곧 만나요!!
 
The Affair : (Jack Reacher 16) (Paperback)
Child, Lee / Bantam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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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서를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거슬러 올라가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때문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원서로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번역가가 옮긴이의 말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바꿨다고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 읽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렇게 읽어왔으므로 그 잘못된 이름으로 번역했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아주 기분이 나빴다. 만약 번역가가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일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원서와 주인공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테니까. 이건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고, 일어를 모르는 독자로서 좀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읽은 수많은 책에서 번역가들이 몰라서든, 혹은 알고 부러 그런것이든, 원서와 다른 오류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것. 억울하지 않으려면 내 스스로 원서를 읽을 수 있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원서를 읽는 일이 바로 될 리도 없었고 실행에 옮겨질 리도 없었다. 그건 상당한 공부가 필요한 일이고, 그래서 언제나 뒤로 미뤄졌다.


그 후에는 영어 원서 읽기를 몇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포기했다. 시간이 너무 걸리는 일이었고, 원서 한 권 읽는 동안 번역서 열 권 읽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어 원서 읽기는 계속 마음에 남아, 몇해전에 친구들과 같이 읽기를 시도하면서, 비로소  몇 권의 원서를 완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영어 원서 읽기를 시도했는데, 원서를 읽는 일은 뜻밖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외국어로 써진 책을 읽었다는 데에서 오는 기쁨이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번역서와 주는 감동이 달랐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다시, 올리브] 원서를 읽다가 눈물이 고였던 일을. 분명 번역서로 먼저 읽었고, 내가 울지 않았던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로맨스 소설을 읽다가도 그랬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에서, 분명 번역서를 읽어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원서를 읽으면서는 감정이 격해졌다. 원서로 읽을 때는 번역서로 읽을 때랑 받게 되는 느낌이 달랐다. 샐리 루니의 소설 [노멀 피플]의 경우에는, 번역서로 읽을 때는 '좋지 않다' 고 생각했다가, 영어 원서로 읽으면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 되었다. 원서와 번역서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나의 말에 한 친구는 그게 이해가 안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같은 내용인데 그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냐고 했는데, 그런데 정말 그렇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가능하다면, 나는 세상의 모든 책은 원래 쓰여진 그 글자대로 읽어야 가장 좋을 것 같다. 물론, 이건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서 원서를 읽는 일은 계속 시도하게 되고 즐겁지만,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이번에 리 차일드의 [ The Affair] 을 읽으면서는 특히 그랬는데, 잭 리처가 군인 출신이고 펜타곤 얘기나 군대 얘기, 이번에는 여자 등장인물이 해군 출신이어서 해군 얘기까지 나오는 통에 모르는 단어가 정말이지 수두룩하게 나왔다. 이미 번역본을 읽었기 때문에 굳이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읽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특히 자주 나오는 단어들은 찾아서 책에 뜻을 적어두었다. 덕분에 외운 단어가 있다.


presumably 아마, 짐작건대 


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이 단어 정말 자주 나온다. 원서를 읽다 보면 작가가 정말 자주 쓰는 단어 한 두개쯤은 만나게 되는데,  리 차일드의 경우엔 presumably 가 그렇다. 브리저튼 시리즈 읽을 때는 그런 단어가 'grin' 이었다. 미소짓다, 라는 뜻. 브리저튼 시리즈는 로맨스 소설이라 주인공들이 자주 미소지었고, 잭 리처는 수사를 하고 응징을 하는 사람이라 추리를 하느라 짐작을 많이 했다. 짐작건대, 짐작건대. 



본격적인 책 얘기로 넘어가서,

잭 리처는 상사로부터 미시시피 주로 넘어가라는 지시를 받는다. 거기에 군부대가 있는데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그것이 군부대 소속한 자의 범죄인지 민간인의 범죄인지 밝혀내라는 것. 그렇게 잭 리처가 미시시피로 갔는데, 거기엔 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마을 보안관 '데버로'가 있고, 그녀는 해군 출신이라 금세 잭 리처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들은 함께 수사해가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살인사건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살인사건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지금 사건이 드러난 이유는 살해당한 여성이 백인이라서였다는 것도 짐작해낸다. 잭 리처는 군인 출신으로 이에 저에 떠딜 닙다니.. 나보다 더 대단한 역마살을 끌어안고 살고 있는데, 이번 책 [더 어페어] 에서 어떻게 군대에서 나오게 되었는지가 밝혀진다. 


잭 리처는 누누이 얘기하지만, 정의로운 주인공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않긔! 어떻게든 응징해버린다. 굳이 특별한 웨이트를 하지 않아도 근육질이며, 어마어마한 훈련이 누적되어 머릿속으로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사람인 잭 리처는, 특히나 여성과 약자를 보호하는데 더듬이가 발달되어 있다. 물론 육체적 능력도 발달되어 있다. 게다가 유머 감각도 있다. 나는 잭 리처의 그런 지점이 너무나 좋다. 제발 치약을 써가며 양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언제나 생각하지만, 치약 없이 양치한 후에 껌 씹는거... 그거 하지 말고, 치약 쓰라고. 그러나 가방 없이 떠도는 남자가 치약까지 가지고 다니기는 번거로울 것이다. 나름..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모텔은 어메니티를 안주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잭 리처는 잘 먹고 잘 마신다! 그는 식당에 가면 엄청난 양의 식사를 주문하고 또 커피도 엄청 마신다. 게다가 디저트도 잘 먹는다. 이번 책에서는 그 레스토랑의 맛있는 복숭아파이를 매일 먹었다. 나는 사람들이,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먹는 걸 보는게 그렇게나 좋더라. 잭 리처는 잘 먹는 사람이다. 지금 쓰다가 생각난건데, 그러고보니 잭 리처는 술을 안마시네? 오 신기하다... 노알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 to the 신!

그리고 잭 리처 이야기 속에서 당연히 잭 리처가 주인공이지만, 언제나 잭 리처에 버금가는 여성 인물이 나온다. 가끔 조연으로 등장하는 잭 리처의 옛 동료 '니글리'도 엄청나게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이고, 이번 편에서 데버로가 그랬으며, 다른 책에서도 FBI 나, 동료, 군인으로 능력 쩌는 여성들이 등장해 잭 리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수사를 하고 악을 응징한다. 리 차일드의 인터뷰를 보니 자기가 백인이고 남자로 태어난 것이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잇었는데, 사람은, 자기가 가진 생각이 은연중에 어떻게든 작품 속에 드러나는 법인것 같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재미와 상관없이, 그 안의 작가가 보여서 재수없어지기도 하는 것 같고. 리 차일드의 경우에는 하여간 아직까지는 참 마음에 든다.


이번 책에서도 악은 응징되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잘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죄를 지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처벌할 수 없지!라는 오만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번 책에서도 악은 오만했다. 악은 오만하고 겸손을 모른다. 결국 악이 응징되는 것도 그것이 오만해서이다. 그 오만함은 결국 자기에게 벌로 돌아온다. 죄지은 자여, 순서를 기다려라. 네 응징의 차례가 곧 돌아올 것이니.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잭 리처를 영어로 읽는 기쁨은 매우 컸다. 심지어 책이 두껍기도 해서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덧붙이자면, 간혹 찾아본 단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도 나와서 더 짜릿했다. 어떻게든 원서를 계속 읽고, 매번은 아니더라도 자주 나오는 단어 한두개쯤은 원서 한 권 읽기를 마칠 때쯤 기억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좋지 않은가. 공부하려고 읽는건 아니지만, 읽다 보면 공부가 되니 좋잖아? 그리고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원서를 읽는 즐거움은 번역서가 주는 즐거움과는 또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시도하게 될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원서를 번역서 읽듯 좀 빨리 읽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원서 한 권 읽는데 두 달이 꼬박 걸려.. 에휴..


아무튼 즐거운 읽기였다. 리 차일드도 좋고 잭 리처도 좋고 원서 읽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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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5-11-29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박! 벌써 다 읽으셨군요! 영어 공부와 함께 영어책 읽기라니. 너무 좋은 조합! 저도 12월까지 부지런히 읽어볼게요. 이거 읽고 다시 자주 성취감을 주는 얇은 책으로 읽어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25-11-29 10:24   좋아요 1 | URL
네, 다음 책은 좀 가벼운 걸로 골라야겠어요. 너무 두껍고 모르는 단어도 많이 나와서 제 생각보다 더 힘든 책읽기 이긴 했습니다. 햇살과함께 님, 힘내세요. 뽜이팅!!

독서괭 2025-11-29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텔은 어메니티를 안 주나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정말 리처는 술을 안 마시는군요! 아예 안 마시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거의 마시는 장면 못 본 것 같네요 (오호)
에쿠니 가오리 번역가 말은 좀 황당하네요. 아니 주인공 이름을 왜 바꿔..??

저도 얼마전 다 읽었는데요, 다음 책은 뭘로 할까요! ㅎㅎㅎ

다락방 2025-11-29 10:27   좋아요 3 | URL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일단 먼저 읽었는데 자기가 글자를 잘못 읽었단 사실을 소설의 끝에 가서야 알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자기에겐 그 이름이 각인되어 있어서 그 이름으로 쓰는게 낫겠다고 하더라고요.(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 그래서 그 당시 좀 이슈가 됐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 와 그건 좀 아니다, 하고 말이지요. 전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외국 영화 봐도 주인공들이 모텔 가면.. 어메니티 없었던 것 같지요? 미국 모텔 후진듯... 한국 모텔은 콘돔도 줄텐데요. 흥이다.

다음 책은 뭘로 할지 제가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여차하면 서점이라도 나갔다올 생각입니다. 머릿속에 한 두권 떠오르긴 하는데 좀 더 살펴볼게요. 늦어도 내일까지는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충! 성!

햇살과함께 2025-11-29 10:35   좋아요 2 | URL
괭님도 벌써 다 읽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요

독서괭 2025-11-29 11:15   좋아요 2 | URL
제가 하자 그래놓고 책 선정은 다락방님께 맡기고 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ㅎㅎ 뭐든 좋지만 이번엔 좀 쉬운 걸로..?(찡긋)
햇살님 감사합니다!!(헷)

다락방 2025-11-29 13:02   좋아요 2 | URL
독서괭 님, 제가 두 권을 골랐는데요, 이중에서 독서괭 님이 마음에 드는걸 픽해주시면, 제가 공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미셸 자우너, [Crying in H Mart]

2. Emily Henry, [People we meet on vacation]

1번은 너무나 유명한 [H 마트에서 울다] 원작이고요, 영어가 다소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한국계 작가니까 더 쉽지 않을까요..
2번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입니다. 저도 아직 한 번도 안 읽어본 작가입니다. 우리가 이쯤해서 로맨스 소설 한 번 읽어봐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 골랐습니다. 인용문 살짝 보니 대화체가 많은 것 같아 역시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두 권다 국내 번역본 있습니다. 두 권다 살펴보시고, 골라주시면, 제가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서괭 2025-11-29 13:58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찾아보니 로맨스소설 책은 넘나 두껍네요..? 우리 이번엔 조금 얇은 걸로 해요 ㅋㅋ 그리고 소설 연달아 읽었으니 이번엔 비문학으로..! H마트 궁금했던 책입니다. 콜~!!

다락방 2025-11-29 14:29   좋아요 3 | URL
좋았습니다, 내일 까지 공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꺄울 >.<

단발머리 2025-11-29 15:07   좋아요 2 | URL
이 결정 찬성일세!
만세만세 만만세!! 😘

다락방 2025-11-29 15:08   좋아요 2 | URL
오오, 단발머리 님도 찬성이시라니 너무나 다행이군요! 만세!!

햇살과함께 2025-11-29 16:42   좋아요 1 | URL
오 저도 번역본 읽은 H 마트에 한표!
잭 리처 빨리 읽어야겠군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5-11-2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연말까지 읽어야 겨우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아요ㅠㅠ 이제 26장까지 읽었네요ㅎㅎ 학업 와중에도 원서 완독을 하시다니 두배로 축하드립니다!

햇살과함께 2025-11-29 11:21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전 이제 39장 ㅎㅎ

다락방 2025-11-29 13:02   좋아요 1 | URL
12월부터 새로운 책 들어갈테니 다들 부지런히 따라오세요. 고고씽!! 12월엔 좀 쉬운 책으로 골라보도록 하겠습니다. 빠샤!!

단발머리 2025-11-29 15:08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힘내세요~~!! 👏👏
햇살과함께님 마지막 스퍼트!! 🏃‍♀️🏃‍♀️

햇살과함께 2025-11-29 16:40   좋아요 1 | URL
마지막 스퍼트라기엔 아직 절반도 ㅠㅠ 힘내겠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5-11-2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영어의 그 문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 있잖아요. 분위기도 다르게 느껴지구요. 전 세계 초초초베셀 <트와일라잇>이 사실 미국 여고생의 감각적 문체인데 우리나라 번역에서는 참 점잖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샐리 루니는 반대죠. 전, 확실히 샐리 루니는 영어로 읽을 때 좋았어요. 고백하자면, 리처는 그 맛을 느끼기엔 좀 어렵고 길고....게다가 헤매고 그랬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읽어보고는 싶구요.

다락방님 리처 페이퍼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는데, 리처 읽기 마치셔서 제가 많이 아쉽다고 합니다. 수고많으셨어요!!

다락방 2025-11-29 22:55   좋아요 0 | URL
트와일라잇도 저 젊었을 적에 원서로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원서를 사뒀던 책입니다. 그런데 안읽고 팔아버렸지요. 나는 원서를 읽을 수 없는 사람.. 이라고 생각해서요. 하하하하하. 그러고보니 트와일라잇 한 번 읽어볼까 싶기도 한데, 흠, 그렇지만 뱀파이어, 늑대인간.. 나오니까 어렵지 않을까 싶고.. 하하하하하.
저도 잭 리처 원서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끝까지 책장을 넘기기는 했지만 과연 제가 ‘읽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미리 번역서를 읽지 않았다면 저는 내용파악이 불가했을 것 같아요. 어휴.. 영어의 길은 정말 멀어요.

리처 읽는 시간은 즐거웠어요. 워낙에 리처가 잘 먹고 유머감각도 있는 성인 남자라서 말이지요. 하고싶은 말이 많아지는 캐릭터이고 이야기였습니다. 후훗.

책읽는나무 2025-11-2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업과 병행하며 원서 읽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학업도중 단어를 만나는 짜릿함!
놀랍네요.
번역서와 원서의 다른 분위기와 다른 감동이라니…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로서ㅋㅋㅋ
내년에는 영어 공부 좀 많이 해놓고 원서 읽기 도전해봐야겠어요.
아. 영어는 참 어려워요. 그래서 척척 읽으시는 여러분들이 참 부럽습니다.^^

다락방 2025-11-29 23:03   좋아요 1 | URL
읽었다고 말하기엔 아주 무리가 있습니다. 책장을 끝까지 넘기기는 했습니다만, 그 안에 쓰여진 영어로 내용파악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래 이 쯤에 그런 이야기였지, 하고는 이미 읽었던 번역본을 떠올렸거든요. 다음에 잭 리처를 원서로 읽을 때 쯤이면 그냥 영어를 술술 읽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영어 공부 4개월 해보니까 말이죠, 영어공부는 4년을 해도 마스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책나무 님, 공부해서 읽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읽으면서 공부한다고 생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함께 읽으면서 공부하시죠!! 같이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다음 책은 [H마트에서 울다] 입니다. 번역본도 준비 되어 있으시잖아요? 번역본 옆에 놓고 읽으면 됩니다!!

척척 읽지 못합니다, 책나무 님. 이번 잭 리처는 특히 더 엉망진창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