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방콕 - 방콕은 또 한 번 이겼고, 우리는 방콕에 간다 아무튼 시리즈 11
김병운 지음 / 제철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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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애인에 대한 사랑 고백. 그게 전부.
이거 읽는다고 방콕 가고 싶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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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 걸 - 2016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비룡소 그래픽노블
빅토리아 제이미슨 지음,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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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t be what you can't see. -Marian Wright Edelman



다큐 <미스 리프리젠테이션>에서는 수많은 여자들의 인터뷰가 보여지는데, 그 중에 한 명이 그런 얘기를 한다. 어릴 때부터 남자정치인만 보고 자라면 자연스레 정치인은 남자가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그 인터뷰 전에 저런 문구가 화면에 보인다. 보지 않으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참이다. 영화 고스터 버스터즈의 주인공들이 다 여성이었을때, 작은 여자아이들이 자신도 유령잡는 사람이 되겠다고 답한것은 그래서 의미있다. 더 많은 여자들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 보여져야 한다. 정치인에도, 법조계에도, 언론인에도. 개그하는 데도 영화를 찰영하는데도 모두 마찬가지. 평범한 직장인들 에게라면 여자 상사가 보여지는 것도 분명 의미있다. 물론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고, 많은 여자들이 곳곳에 자리잡아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일들을 부조건 남자보다 다 잘한다고 확신할 순 없다. 어떤 일들에 있어서는 실수도 할 것이고, 잘못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잘못들과 실수들을 겪어가며 한단계 한단계 일을 진행해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된다. 감독을 보고 판사를 보고 대통령을 본다면, 나도 커서 판사가 되어야지, 감독이 되어야지, 대통령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아무래도 더 많이 하게 될테니까.



《롤러 걸》에서 주인공 '애스트리드'는 12살에 롤러 스테이크 타는 언니들을 보게 된다. 언니들은 팀을 이루어 롤러 스케이트 경주를 하면서 몸을 부딪혀 상대를 견제하고 또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언니들은, 세고, 강하고, 빠르고, 거칠었다! 그 뒤로 애스트리드는 자신 역시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되어 그렇게 세고 강하고 빠른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엄마를 졸라 캠프에 참여하고 매일매일 열심히 연습한다. 넘어지면서도 타고 또 타고, 처음에는 잘 안되는 것 같아 속이 상했지만, 자꾸 타고 타고 또 탄다.



애스트리드에게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애스트리드가 단짝 친구와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애스트리드에게는 당연했으나, 친구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친구는 롤러 스케이트보다 발레를 더 좋아했고 발레와 소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친구는 발레를 하는 다른 친구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고 애스트리드는 서운해하며 자연스레 친구와 멀어지는 듯 보인다. 그 과정에서 애스트리드는, 자신이 단짝이란 이름으로 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강요했음을, 친구가 자신과 똑같은 것만 선택하기를 강요 했었음을 알게 된다. 애스트리드는 이렇게 또 자란다. 단짝 친구와 멀어지고 화해하면서.



롤러 스케이트를 배울 때는 혼자였지만, 애스트리드는 그 곳에서 이제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둘은 같은 포지션을 원하기 때문에 결국 경쟁자가 되고 그렇게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친구를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연습해서 애스트리드는 팀의 일원으로 당당히 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우상이었던 선배에게 팬레터를 쓰고 자신이 아직 잘 타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고민들을 의논하는데, 와, 선배는 그런 후배 애스트리드에게 고마운 조언들을 해주면서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정신적 도움이 되어준다. 무사히 경기를 마치고 신이 잔뜩 난 애스트리드에게, 더 어린 소녀가 찾아들어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싶어'라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를 보고나서 그렇게 되고 싶어하기도 하고, 또 내가 보여짐으로써 누군가에게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발레를 하는 단짝 친구와 화해했지만, 경기를 마친 애스트리드는 자신이 지금 당장 있어야 할 곳은, 이 경기를 마친 팀원들이 있는 곳이라는 걸 생각한다. 그렇게 한 소속의 일원으로서 그 순간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애스트리드의 몫. 애스트리드는 처음 롤러 스케이트를 배우기 전보다, 아주 많이 자랐다. 스케이트의 실력만 는 게 아니라, 인생의 경험치도 그만큼 쌓였다. 훌쩍, 성장한 애스트리드를 마지막엔 볼 수 있다.



십대의 소녀들에게 찾아드는 욕망과 그 실현에 따른 의지, 친구와 다른 걸 깨닫고 늘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는 과정. 이 모두가 좋았지만, 무엇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짜릿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보아야 하고 보여져야 한다.



조카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더니, 어제 저녁에 전화가 왔다.


"이모 롤러걸 다 읽었어!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밌었어!"


라고 하더라. 응 이모도 너무 좋았어, 그래서 타미 읽으라고 준거야. 그리고 그런 책 또 있는지 찾아보고 또 사줄게! 조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게 너무 좋아서 신이 나 그렇게 답했는데, 조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응, 이모 이런 책 또 사줘. 이런 만화책!!"


아...만화...로 되어 있어서 좋아한거야?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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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애슐리 테이크아웃 1
정세랑 지음, 한예롤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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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여진 글을 읽는 것은 이상한 만족감을 준다. 읽으면서 내내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정세랑은 내가 최근에 읽는 국내작가들 중에서 점점 발전하는 작가로는 으뜸이 아닐까 싶다. 또, 지난 책보다 문장도 글도 좋다.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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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검시관의 하루 - 차가운 시신 따뜻한 시선
주디 멜리네크.T.J. 미첼 지음, 정윤희 옮김 / 골든타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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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멜리네크'는 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다 그만두고 법의병리학 을 새 직업으로 갖게 된다. 쉽게 풀이하면 부검의, 검시관이다. 시체를 보며 죽은 원인을 찾아내고 사망확인서를 발급해주는 일. 시체가 도착하면 일단 외부에 상처가 난 건 없는지를 살피고 그 후에는 몸을 갈라 그 안에 모든 장기와 뼈, 뇌까지 샅샅이 살펴본다. 몸에서 혹시 마약이나 약물이 나오진 않는지,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공들여 찾아내서는 그것이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혹은 살인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 게다가 유족들에게 슬픔을 전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숨을 멈추기 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유족에게는 '아니요 바로 사망해서 고통은 없었을 거예요'라고 거짓말해주는 일까지.



그녀는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있다. 자신이 그간 의대에서 또 외과 레지던트로 일한 경험으로 알게된 지식을 다 쏟아 붓는다. 물론 같이 일하는 동료와 선배로부터도 가르침과 도움을 받고, 그래서 거기에 또 지식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다. 똑똑한 여자가 자기의 지식을 바탕으로 일을 하는 것, 그 일에 애정을 갖는 것, 동료들과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을 보는 것은 몹시 흥분되는 일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게다가 그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진 게 보여서 즐거웠다. 매일 시체를 보고 시체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사람들에게 즐거웠다는 말을 하는 건 어쩌면 부적절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자신의 일을 즐기고 그 일을 일로써 잘해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실례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에이미 박사는 내 손에 들려 있던 두개골을 받아 자세히 살펴보더니 다시 돌려주었다. "뼈 하나하나마다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난 내 일을 정말 사랑해요." ( p.125)



그러나 역시 한 사람의 삶이 끝났다는 것을 보는 것, 아는 것, 전달하는 것은 즐거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사연을 접하노라면,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구나 싶고, 그만큼 다양한 죽음-내가 결코 알기를 원하지 않았던 종류의 것들까지-이 있구나 싶다. 사고사로 결론 날 수 있는 것인데 가족이 찾아와 그럴 리 없다고 사연을 들려준다거나, 자살한 아들을 인정하지 못해 계속해 사고사일거라고 평생을 주장하는 어머니라든가 하는 사연이, 과연 그냥 남의 일이기만 할까. 그녀의 상사는 그들이 해야할 일은 죽음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거다, 이것이 살인사건인지에 까지 관여하는 건 아니다, 라고 하지만, 그녀는 혹여라도 누군가 억울한 죽음에 이른 건 아닌지 돕고 싶어한다. 



그녀가 처음 검시관 일을 하면서부터 맡게 되는 혹은 알게 되는 수많은 사연들에 대해 읽어가다가, 맙소사, 마지막 10장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어야 했다. 10장의 제목은 <충격과 공포>인데, 2001년 9월 11일의 일을 다루고 있다. 



의대에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맨해튼 어퍼 사이드에 위치한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종양학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스를 보자마자 곧바로 아파트에서 제일 가까운 응급실로 달려갔다. 친구의 집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있었고, 응급실은 그로부터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병원에는 심장병 전문의, 피부과 전문의, 노인병 전문의까지 온갖 동료 전문의들이 접수처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서, 테러 현장에서 실려 올 환자들을 도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먼저 바퀴 달린 들것을 모아 두었고, 부상 정도에 따라 구역을 나눴으며, 부목과 붕대를 준비했다. (p.252)



큰 사고가 일어난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무엇이든 도와야 한다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사고 현장으로 바로 달려간 친구 얘기가 10장의 처음인데, 이 때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당연히 검시관인 주디도 그 때부터 속속 도착하는 시체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을 맡게 된다. 온전한 형태의 시신이 도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왼쪽 골반 하나만 도착하기도 하고 또 바스러진 뼈들이 도착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도대체 주디는 어떻게 이 일을 견디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해야할 일이니 그것을 업무적으로 잘 처리하던 주디도, 나중에 소방관 두명의 시신이 도착했을 때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9월 11일 이후 나는 최대한 감정의 문을 닫고 전문가답게 처신하려고 애를 썼지만 두 구의 소방관 시신을 보자 더는 참을 수가 업었다. 첫 번째 남성은 어깨 윗부분에 아기 천사 모양의 문신이 있었다. 한쪽에는 티파니, 다른 쪽에는 헨리 주니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1975년과 1978년이라는 출생연도가 적혀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는 소방서 이름이 적힌 서류가 있었다. 서류의 이름과 문신에 새긴 아이의 이름으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서류는 다름 아닌 퇴직 신청서였다. 헨리는 50대 중반으로 20년이 넘게 소방관으로 일했다. 신원을 확인했지만, 소방 장비에 적힌 이름과 서류에 적힌 이름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나중에 동료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쌍둥이 빌딩 테러가 발생할 당시, 헨리는 비번이었고 뉴스를 보자마자 가까운 소방서에 가서 다른 소방관의 장비를 급히 걸쳐 입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신은 왼손에 아일랜드의 전통 결혼반지 클라다 링(두 개의 손이 하트를 마주 잡고 있고 그 위에 왕관이 씌워진 반지)을 끼고 있었다. 내 남편도 똑같은 반지를 끼고 다녔다. 지갑 속에는 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소방관의 뒤틀린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잡는 순간, 그동안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졌다. 수술용 마스크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람에 어떻게든 현장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마스크와 장갑을 벗어 던지고 무작정 뛰어나갔다. 그리고 작업용 텐트 밖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구석으로 나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p.285-286)




주디를 비롯한 뉴욕 검시관 사람들이 모두 잠을 줄여가며 시신 신원파악에 나서고 경찰과 소방관들이 사건 현장에서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돕기 위해 스스로 오고, 구세군은 검시관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계속해서 시신을 다루어야 하는 검시관들을 위해 정신과 상담센터도 마련되어 있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것들이 감사하고 고마웠다. 어디에서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에서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구도 다치지 말라고, 다쳤다면 치료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구나 싶으니,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거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들을 파괴하려 했지만 또 누군가는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되살리고자 한다. 


사건 현장에 가서 부상을 입고 이마에 멍이 들었다가 그 멍이 점점 눈으로 내려온 주디의 동료가 있다.



신원 확인 작업을 하면서 에이미 젤슨 박사도 많이 치유된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부상이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마에 있던 시커먼 멍이 점차 눈 쪽으로 내려오면서 일명 너구리 눈이라고 불리는 양쪽안와주위혈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 줄게요." 어느 날 아침 작업을 위해 가운을 갈아입으면서 에이미가 말했다. "어제 한 경관이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갔더니 너구리처럼 시커멓게 변한 내 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신 눈을 이렇게 만든 놈이 누군지 이름만 얘기하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라고요. 그래서 깔깔 웃고 이렇게 대답했어요. '오사마 빈 라덴이에요. 잘 부탁해요.' 상대는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더라고요." (p.281)



나에게도 이건 별로 재미없는 농담이다. 그러나 나는 경관이 그녀의 상처에 관심을 갖고 혹시 모를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걱정해 그녀를 도우려 했다는 게 또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것은 응당 다른 사람들이 또 경관이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는 정말이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니까. 폭력을 당한 사람을 다시 폭력의 현장으로 돌려보내는 게 그동안 이 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여자의 상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조용히 말하는 경관이라니. 




많은 죽음 앞에서 부정적 감정을 가진 많은 사연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주디가 이 일을 해내는 동안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돕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의 남편은 전업주부로 그녀가 밖에서 일하는 동안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 게다가 그녀가 직장을 옮기면 그녀를 따라 옮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녀에게 다정하며 그녀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축복을 바라준다. 테러가 있고나서 사람들이 모두가 내가 도울일이 없는지 현장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10장을 읽는 내내 울어야 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다정하게 지내던 딸이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자살을 했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상처이다. 그런 그녀가 만나는 시신들 중에는 당연히 자살사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자살 때문에 가졌던 걱정과 상처들을 알고 있기에,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 지를 안다.



다음 날 피터 클라크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어제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13살밖에 안 된 딸이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는 거였다. 우연히 가게에 걸린 웨딩드레스를 보았는데 그제야 결혼식장에 자신의 손을 잡고 들어가 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 결혼식에도 아버지가 참석하시지 못했어요. 13살 때 아버지가 자살하셨거든요. 그쪽 따님이랑 똑같은 나이였어요." 나는 미망인에게 말했다. "따님에게 자살은 유전병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 주셔야 해요. 저 역시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충격이 조금 가셨을 때, 자실이 유전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제일 두려웠어요. 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운명이 아닌가 싶었죠. 정말로 그랬어요. 어머니께서 따님에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반드시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자살은 질병이 아니니까요. 똑같은 경험을 했던 의시가 하는 말이라고 전해주세요." 그 말을 끝나자마자 오랜 경력을 지닌 전문가로서의 자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나누었다. (p.211-212)



나는 그녀가 유족들에게 들려줬던 그녀의 모든 말들이, 그녀의 모든 생각들이 언제나 잘했던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도 했을 거고 때로는 어떤 식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것들일 것이다. 또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 더 성장하기도 할테고. 



그녀는 이 '죽은 사람'을 다루는 일을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시선이 나는 무척 좋았다. 



2년간 뉴욕 검시관 사무소에서 검시관으로 일하면서, 총 262구의 시신을 부검했고 그로부터 12년 후에는 총 2,000여구의 시신을 부검했다. 지금까지도 하루하루 인체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과학과 의학을 사랑한다. 그리고 내 직업의 비과학적인 부분, 유족과 상담을 하고 경찰과 협업하고, 때로는 증언대에 서야 하는 상황까지도 사랑한다. 부검을 담당하는 의사로서 가장 힘든 역할은 바로 세상을 떠난 사람을 대신하여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의사는 연민의 감정을 잊어서는 안 되고, 이를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매일 죽은 자들을 마주하고 시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p.320-321)




이 책의 책장을 덮고 나는 아, 정말 책은 좋구나, 하는 걸 또한번 느꼈다.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검시관이란 직업에 대해 한 순간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죽음의 모습에 대해서도 몰랐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돕기 위한 생각만으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것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자기 일을 사랑하는 똑똑한 여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어 기운이 났다. 책이야말로 세상에 다양한 사연과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 아닌가. 책 너무 좋아 ㅜㅜ







파티의 해피엔딩은 역시 결혼 발표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바로 연구실 동료였던 카렌 투리 박사의 결혼 소식이었다. 카렌 박사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참사 당시에 한 경사를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하고 고생했다. 인류학자 에이미 박사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로맨스는 주선자의 큰 도움 없이도 자연스럽게 불타올랐다. 우리는 모두 그런 끔찍한 경험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끈끈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카렌과 경사의 관계는 점점 사랑으로 발전했다. (p.320)

법의학 병리학자, 즉 부검의라는 나의 직업은 지난 10년 동안 TV 드라마에 단골손님을 등장했다. 내가 업으로 삼는 일이 가상의 드라마로 소개될 때마다 나 역시 덩달아 짜릿함을 느꼈다. 강렬한 눈빛의 여자 검시관이 높은 스틸레토힐을 신고 가슴골이 드러나 보이는 의상을 걸친 채로 흐릿한 조명 아래 피투성이가 된 사건 현장에 등장한다. 드라마 속의 부검의는 즉각적이고 완벽한 진단을 내리며, 여기서 나아가 성적인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가운데 동료와 위트 넘치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터질 때도 있다. 실제 부검의들은 4주간의 수습 기간 동안, 단 일주일만 뉴욕의 살인 현장에 나갈 수 있으며 그것도 경찰서의 사건 조사 전담반이 동행할 때만 가능하다. 또한, 주로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두툼한 바람막이를 걸치고 다닌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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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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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에 관계없이 세상에는 나와야 할 작품들이 있다. 나온 것으로 의미 있는 작품.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말하여질 필요가 있는 이야기를 했던것처럼, 이 책, '박민정'의 《미스 플라이트》도 내가 흥분하며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책은 나와야 했다. 작가는 이 말을 이 즈음에 해야했고 그건 충분히 의미 있었다.


항공사 승무원인 유나 의 자살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유나의 아버지는 권위주의적인 군인이었고, 유나는 그런 아버지를 미워했다. 유나에게는 10년간 연애한 남자친구가 있고, 또 그런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친구들도 여럿 있다. 어릴 적 자신을 태워다니던 운전병 아저씨 역시 이야기속 주인공인데, 권력과 방산비리와 승무원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이 이야기속에 들어 있고 그 과정에서 유나가 자살한 원인을 파고들면서 유나의 성장과정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어릴 적부터 철이 들어 자신의 아버지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고, 군대란 곳이 어떻게 잘못된 건지도 알았으며, 그래서 유나는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자기가 미안해하며 살고 있다. 여러 부분에서 코끝이 찡해지는데, 10년간 사귀어온 애인이 자살했다면, 남아있는 연인은 그 일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리고 결국 자신이 그 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동료는? 복잡하고도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다 여러가지 생각을 했는데, 그중 하나는 애인의 죽음이었다. 주한은 유나와 연인관계였고, 그러므로 유나의 죽음을 안다. 주한이 연인을 잃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도 안다. 그 큰 상실감을 앞으로 어떻게 견뎌내나, 싶은 마음과 함께, 그것을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는 나은 것일까, 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나라면, 지금은 옆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누구도, 그러니까 서로의 소식을 전해줄 누군가도 없어서, 그 사람의 신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알 수가 없어. 그 점이 너무 아프다. 내가 그나마 안다고 생각하는 건, 그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하는 것. 이건 안다는 것 보다는 짐작에 가깝다. 중요하고 굵직한 일들에 대해서만이라도 소식을 전해듣고 싶어, 신변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듣고 싶어, 아주 오랜 후에는 그의 빛이 사그라들었다는 소식을 내가 모르고 싶지 않아, 중요한 것들에 대한 것만이라도 내게 들려줘요, 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유나의 아버지와 유나의 관계 때문에, 나는 순전히, 개인적으로 이 책을 지금은 내 옆에 없는 사람에게 읽으라 권해주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같은 게 생겨버렸는데, 그러나 나는 그가 아니므로 이 생각이 틀린 생각일 수도 있다. 나는 방향을 잘못 잡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정확히 어느 부분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아니, 이거 별 감정 없는데'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조금쯤은 그에게 가 닿아 어떤 부분을 건드릴수도 있을 거라고, 그게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사두기로 했다. 당신이 살아있고 내가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만나게 될테고, 그 때 이 책을 주기 위해 준비해두고 싶다.




책 속의 애인도 그리고 철없는 남자사람 친구도, 제자리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내는 이야기이다. 해야 할 말을 하고 있으므로 의미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해야 할 말을 해내야한다.







혜진은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영훈은 혜진이 그르렁대며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만 안심하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수없는 밤을 맞았지만 단 한 번도 편히 잠든 적 없었다. 영훈에게 잠은 오직 혜진 곁에서, 혜진의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처음 자신의 곁에서 잠이 깬 스무 살의 혜진은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어떻게든 코골이를 고치겠다며 부끄러워했었다. 정작 영훈은 혜진의 코골이를 시끄럽다고 여겨 본 적이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P.60)

짝사랑하는 여자가 의식불명에 빠지자, 그녀를 직접 간병하려고 간호사로 취업한 남자. 하늘색 간호사복을 입은 남자는 매일같이 여자의 몸을 닦아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혜진은 영훈의 어깨에 기대 옥수수 알갱이를 집어 먹으며 에이, 저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연신 중얼거렸다. 저 여자 불쌍하다. 정말. 어느 날, 코마 상태의 여자는 돌연 임신을 한다. 그녀는 임신에 빠진다. 의식불명에 빠지듯. 남자가 병실에서 여자를 강간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기묘한 색채의 그래픽이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언뜻 암시할 뿐.
-그런데 여보. 그게 사랑일까.
혜진은 그날 밤 뒤척이며 말했다. 목소리에 졸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영훈은 그 말에 대답하기 위해 한참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한 후 곁에 누운 혜진을 돌아보자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영훈은 잠든 혜진에게 대답했다.
-그건 강간이지. 착란이거나. (P.59-60)

아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줄 수조차 없죠. (P.123)

주한은 유나가 골라 준 자신의 자취방, 유나가 골라 준 가구들, 유나가 골라 준 옷들을 둘러봤다. 주한을 둘러싼 것들 중에 유나 손을 타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으므로, 유나의 흔적에 새삼 슬퍼할 이유도 없었다. 전부 다 유나의 흔적이었다.
어쩐 일인지 하늘색 티셔츠는 뉴질랜드에 갈 때도 딸려 갔었고, 돌아와서 한동안 유나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를 만날 때도 없어지지 않았다. 대학에 복학한 1년 동안 주한은 유나가 아닌 신입생 후배와 연애를 했다. 그녀는 주한에게서 보이는 유나의 흔적에 히스테릭하게 반응했다. 주한의 존재 자체가 곧 유나의 흔적이었다. 주한의 옷이며 신발이며 가방이며 시게며 전부 유나가 골라 주고 간섭한 물건들이었다. 후배가 요구하는 대로 미니홈피에 남아 있던 유나의 사진과 글을 전부 지웠지만 유나의 흔적은 잊을 만하면 튀어나왔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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