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을 마신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평소보다 더 싫었다. 눈은 한참 전에 뜨고서도 꼼지락꼼지락. 아, 출근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평소보다 늦게 침대에서 빠져나와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 엄마는 김칫국을 끓여주셨는데, 며칠전부터 '김치죽을 만들어 먹어볼까' 생각하던 참이라 반가웠다. 김칫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고는 양치를 하고 나와 버스를 탔다.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추운 거야 괜찮은데, 추위를 잘 버티기도 하고, 그런데 출근시간에 나오면 깜깜한 게 너무 싫다. 거리가 적막한 것도 싫고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편이라 아직 깜깜한 거리를 걷고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싫다. 오늘도 사무실까지 걸으면서 빨리 따뜻해지기를 바랐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그러면 곧 따뜻해지겠지. 벌써 낮이 길어진 것 같긴 해, 그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사무실로 걸어왔다.
출근하면 사무실의 커다란 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겨울이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내가 출근한 시간쯤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데, 동틀 무렵, 바로 그 풍경이다. 예전에도 사진 찍어 올린 적이 있는데,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붉은 빛으로 물든 시간. 그걸 바라보면 또 그렇게나 좋은 거다. 매일 일찍 일어나는 거 매일 싫고, 이제 그만하고 싶고, 그런데도 벌써 16년을 해왔네,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그러다가 이런 풍경을 맞닥뜨리면, 아, 좋아, 일찍 오니까 이런 걸 봐... 하고 또 스스로 위로하게 되는 거다.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신입도 불러서, 저길 봐, 하고는 가리켰다. 직원 역시 감탄했다. 아, 예뻐요! 하고.
나는 매일 아침 위와 같은 풍경을 맞닥뜨린다. 날이 좀 따뜻해지면 이제 볼 수 없겠지. 출근 시간도 빠른데 난 또 거기서도 더 일찍 오는 편이라, 잠깐동안 서서 저 풍경을 물끄러미 보고는 한다. 좋네, 좋아, 좋으네.
어김없이 칠봉이 생각을 한다.
출근길에 통화하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저런 풍경을 눈앞에 두고 계속 조잘조잘 이야기하던 기억이 나서, 저 풍경을 보면 칠봉이가 자동연상된다. 날이 좀 따듯해져셔 저 풍경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그러면 칠봉이 생각도 같이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하다가, 아아, 겨울은 그러나 또 오지.....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친다. 우리가 만난 게 여름이라 여름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데, 이렇게 겨울까지 생각나면 어쩌란걸까.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아기 엄마가 되었.............지는 않겠구나.
일단, 이 856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을 출퇴근길에 가지고 다니며 완독한 나를 칭찬한다. 고생 많았다...두껍고 무거웠어. -0-
책을 읽으면서는 당황했다. 책에 대해서라면 그 평가를 내 개인적으로 믿을만한 분들이 이 책을 좋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하나도 안좋은거다. 내용은 뻔하고 등장인물은 호감 캐릭터가 하나도 없고... 그래서 '아 이게 어디가 좋다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읽어나갔다. 그래도 끝까지 읽자, 하고는.
책 속 세상에서는 나라가 1지구부터 9지구까지 나뉘어있다. 1지구에는 명문 학교가 있고 사법행정기관이 모여있고 신분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들만 있는 곳, 그래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아름다운 곳이다. 3-4지구를 중위지구라 하고, 그 밑을 하위지구라 하는데, 모든 범죄는 9지구 사람들로부터 일어난다. 그들은 몇 해전에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불균형과 불평등에 반대하며. 그러나 어김없이 9지구는 더 낙후하고야 만다. 거기 사람들은 이제 범죄를 저지를 의지 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대중교통도 제대로 다니지 않는 곳, 살아갈 의지가 없는데 범죄 의지는 어떻게 생기겠나, 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다윈 영'은 1지구에서도 명문중의 명문인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착하고 성실하게 공부한다. 아버지 역시 교육부 차관이라 이상적인 가정에서 이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학교에서는 9지구가 범죄가 일어나는 곳, 범죄자가 나타나는 곳이라고 가르치지만, 다윈은 학교의 반항아 '레오', 삼촌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쳐나가고 싶은 '루미' 덕에, 어쩌면 이건 아니지 않을까, 우리가 제대로 모르는 건 아닐까, 라는 의심을 조금씩 갖게 된다. 물론 이런 의문은, 1지구 어른들에겐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고.
이 과정에서 루미는 그간 자신의 삼촌을 죽인 게 9지구 사람이라고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1지구 사람이며 고위급 간부일 확률이 높다'는 데까지 추측해나간다. 다윈은 루미의 개인적 수사를 돕는데, 나는 다윈의 캐릭터도 루미의 캐릭터도 영 마음에 들질 않아 이 책이 별로 재미있게 느껴지질 않는 거다.
그러나 1지구의 사람, 9지구의 사람들의 각자의 사정과 입장은 물론이고, 실제 일어난 일을 자기 입장에서만 해석하는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인간들에 대한 내면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이게 이 책의 장점이구나 싶었다. 쉽게 말해, 정의로워 보일 수 있는 9지구 사람들의 폭동도, 그 폭동 안으로 들어가보면 또 다른 사정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왜 안그렇겠는가. 그래서 이것이 장점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지, 다 자기 중심적이야,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맞다고만 여기지, 라는 걸 계속 일깨워주는 거다. 이를테면 다윈이 다윈의 사정이 있어 루미랑 연락하지 않게 되면, 루미는 '그때 내가 약속에 못나갔다고 꽁해있네'로 생각하고, 손자가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할아버지 집에 못간다고 하면 할아버지는 아들놈이 자기를 싫어해서 손자를 못가게 했다고 생각하는 식인거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이런 오해들을 쌓고 또 쌓고 있을까.
나는 얼마나 오해를 하고 살고 있을까.
그 과정에서 나는 얼마나 많이 내가 맞다고 확신하고 있을까.
그래서 600쪽을 넘어가도록, 이것이 이 책의 미덕이구나, 하고 말았는데, 아이구야, 아니었다. 이 책은 굉장히 똑똑한 책이었다. 바로 이거였구나, 싶을만한 게 결말에서 다 드러나는 거다. 이토록 길게 다윈에 대해서, 다윈의 아버지에 대해서, 1지구와 9지구에 대해서, 루미의 추적에 대해서 설명한 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구나!!! 하게 되면서, 아, 정말 똑똑한 소설이구나, 하게 된 거다. 그럼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다고 한 이유가 있었어!
영화로 만들어져 모두가 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책을 많이들 읽으면 좋겠지만, 두꺼워서 안읽을 것 같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도 책은 술술술 넘어갑니다. 책장은 팔랑팔랑 잘도 넘어간다. 얼쑤~
아침에 출근해서 저렇게 아름다운 바깥을 보고 감상하는 건 잠시, 업무가 시작되면 또 여기가 지옥이여...하아-
집에 가서 김칫국에 밥이나 말아 먹고 싶다.
친구가 김칫국에는 라면 사리를 넣어도 맛있다 그랬는데, 나 고등학교 다닐 때 매점에서 파는 라면이 김칫국에 말아주는 라면이었어. 세상 맛있었는데....... 현실은 사무실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떤 꿈을 반복적으로 꾸는 경우가 있는데, 내 경우엔 학교에 다니는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그런데 학교 다니는 걸 다니면서도 힘들어하고, '이걸 언제 어떻게 졸업하나' 늘 고민이 많은 상황인 거다. 실제로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 4학년때도 1,2학년 과목 다 재수강 해야 했어서, 졸업할 때 친구들이 '니가 어떻게 졸업할 수 있냐!' 라면서 신기해 했었는데, 꿈속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기도 하지만 대학에 가서 졸업할라고 막 애를 써... 너무 싫어..... 그래서 깨고나면, '아 그 시기가 지났다' 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거다. 흙흙 나 졸업했어 ㅠㅠ 나 이제 사회인이야 ㅠㅠ 학교 다시 안다녀도 돼 ㅠㅠ 수업 안들어도 돼 ㅠㅠ 논문 안써도 돼 ㅠㅠ 이러면서 안도안도 하는데, 그렇게 안도하다가, '지나도 너무 지났지....졸업한 지 넘나 오만년 됐어....'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꿈은 대체 왜꾸는건지. 오늘 꾼 건 아니고, 뭐 그렇다는 거다.
아무튼 점심 생각이나 해야겠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4지구 출신 여자와 결혼해 고작 법원 말단 공무원이 된다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이는 하급 공직 사회의 조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가 좋았고 일생을 그 속에서 보내고 싶었다. 부모님은 결코 한 번도 주지 못한 것이었다. (p.312-313)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무지가 너무 커서인지, 다윈은 반감보다는 오히려 동정심이 들었다. 폭동을 전쟁으로 잘못 인지한 채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하는 반성 대신 "그 전쟁에서만 이겼으면" 하고 한탄하는 한, 그들의 삶은 잘못 든 길을 잘못 든 줄도 모른 채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하는 비극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다윈은 60년이 지나도록 노인들이 진실을 깨달을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안타까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이제 와 그들의 믿음을 바꾸려 했다가는 괜한 혼란만 키울 것 같아 망설임 끝에 입을 다물었다. 폐허가 된 고아원에서 볕을 쬐며 여생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혼란보다는 평안일 것이다. (p.159)
성탄절 바로 다음 날 저녁부터 다윈은 다시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외국어 문법책이었다. 학년말 고사 때 외국어, 특히 동사 변화를 외우는 데 애를 먹은 게 여전히 큰 부족함으로 남아 있었다. 시험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최고랄 수는 없었다. 전 과목에서 수석을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건 아니었다. 다만 최고가 아니란 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고,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다음번에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라는, 자기 안의 목소리가 스스로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전 해의 부족함을 그대로 둔 채 새해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불확실하게 알고 있거나 혼동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바로잡고 싶었다. 안에서 이는 그 갈증이 너무 커 때로는 낮잠을 자는 것보다 문법 책을 들여다보는 것이 진정한 휴식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 기간의 공부에는 친구들에게 뒤처질지 모른다는 상대적 불안감이나 압박감은 조금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 (p.808-809)
몇 시간씩 사전을 뒤적여 가며 단어의 어원을 추리하고 있다 보면 한순간 자신이 프라임스쿨의 유일한 학생으로 여겨져 고독해지기까지 했다. 자기가 아니면 이 작업에 책임감을 갖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교수님조차 지금은 쉬고 있을 것 같았다. 자기 삶에서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것을 찾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고독감을 즐기며 다윈은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알기 위하여‘ 단어의 성질과 문장의 구조를 파헤치는 데 몰두했다. 구토나 두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빈 자리에 새로운 진리들을 완벽하게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돋아났다. (p.809)
"하지만 사실은 나도 그 돌덩이들 중 하나야. 안 그런 척하면서 사실은 이 시계를 꽤 자랑스럽게 여길 때가 있거든. 여기에 있는 게 참을 수 없다며 후드를 입고 학교를 빠져나간 밤에도 이 시계는 벗지 않았지. 내가 왜 위선자인지 알겠지?" 다윈은 웃으며 역시 똑같은 손목시계를 들어 보였다. 프라임스쿨 입학식 때 신입생들에게 나눠 주는 시계로 측면에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레오 네가 애교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난 오히려 더 좋은데. 다른 사람들도 네 진면목을 알게 되면 오해를 풀고 네 이야기를 들을 거야." 레오는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됐어. 친구는 한 명이 모두인 거니까." (p.1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