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은 날이었고, 엄마는 나랑 상관없이 집에 아주 많은 시래기를 먹기 위해 감자탕을 끓이셨고, 그렇게 세상의 우연은 나를 소주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감자탕과 소주를 놓고 추운 겨울 밤에 엄마랑 여행 프로그램보며 노닥노닥 했는데, 요즘에 나의 최애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계속 결방인지라, 다른 거 뭐 볼까 하다가, EBS 에서 하는 것도 많이 봤어서, 다른 거 뭐있나 검색하고 어제는 《원나잇 푸드트립》을 다시보기했다. 자, 어디어디를 볼까, 하다가 '이특'이 스위스에 갔다고 해서 그걸 재생시켰다. 이게 경쟁을 하는 거였는데 이특은 스위스, '장도연'은 홍콩, '정준하'는 나고야에 간 거였다. 그래서 엄마랑 '야 저거 저사람들 진짜 앉은자리에서 다 먹는걸까?' 이런 얘기하면서 보는데, 장도연이 홍콩에서 탄탄면을 먹더라. 거기가 로컬푸드 맛집이라는데, 탄탄면이 사천식이라 아주 맵다는 거다. 그리고 칠리 새우도 시켰는데 엄청 맵고. 탄탄면과 칠리 새우 너무 맛있어 보여서, '홍콩 갈까?' 이랬더니 엄마가 '그래, 가자' 이랬는데 ㅋㅋ 우리가 항상 뭐든 볼 때마다 이래가지고 어제 '스위스 가자' 이것도 했다. 어쨌든 '저기 가면 저거 맛있겠네' 이러다가, 일전에 나의 사랑스런 조카 타미가 '이모랑 둘이 홍콩 가고 싶어' 했던 게 생각나서, '아 근데 타미랑 가면 엄마, 저거 매워서 못먹겠다, 걔가 나랑 홍콩 가고 싶대' 라고 했다. 그리고 스위스 편을 보는데, 이특이 디저트로 초코머핀을 먹었다. 근데 그 초코 머핀 속에는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초콜렜이 들어있는 거다! 그걸 보니까 또 나는 나도 모르게, 으앗, 저거 맛있겠다. 저거 먹으면 우리 타미 눈 감고 음미하면서 황홀해 하겠네... 했더니, 엄마가 옆에서 그러셨다. '너는 머릿속에 타미 생각 뿐이냐?'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나도 모르게 그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했다. 이런 게 사랑이야. 이거 예전에.. 공지영이었나 신경숙이었나, 둘 중의 누군가에 소설에 이런 구절 있었다. 내가 지금 인용해놓은 게 없어서 정확한 문장을 가져올 순 없지만, 뭐 좋은 거 보거나 먹거나 할 때 누군가 생각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그 사람이 이걸 못먹어서 못 봐서 그사람에게 부족해서 생각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해서 좋은 거 볼 때 생각나는 거라고. 그거 보고 아 정말 그렇다! 했는데, 그러고보면 나는 뭐 맛있게 먹고 좋은 거 보고 그럴 때마다 분명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거였다. 아, 정미경은 그렇게 말했었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생각나면 사랑이라고!
"보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알 수 있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막 뜨기 전, 맨 처음 떠오르는 얼굴이라면 그를 사랑하는 거란다. 사랑이 내 전부를 가득 채워버린 거지." -정미경, 아프리카의 별, p.201
그건그거고,
오늘 아침 책을 읽는데, 나는 '훼예포폄'이란 단어를 따악- 맞닥뜨리게 됐다. 어? 다시 읽었다. 훼예포폄... 본문들 사이에서 생김새도 좀 겉돌게 생겼고, 나는 이것은 무슨 괴랄한 오타인가...손가락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여 일으킨 오타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오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서는, 사전에 넣고 검색해 보았다. 앗. 오타가 아니다, 있는 단어였어!! 괴랄한 단어가 아니였어. 괴랄한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거였어!!
아아...세상엔 내가 모르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거죠? 난 이것말고 또 뭘 모르고 있는거죠? 아아...너무 심한 충격이었다....
훼예포폄.. 알아요?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아무튼 이런 생전 처음 보는, 오타스런 단어가 나오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이다.
아아, 이 책 참 좋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 보통의 사람이라 말하고, 그래서 꾸준히 글을 쓰는 게 자신에게 필요하다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는 일에는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하루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그래서 하루키는 꾸준히 달리기를 한다. 매일 달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그렇게 오래 달려왔고,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잘 맞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이런 평범한 얘기, 스스로의 룰을 정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대로의 기쁨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매일매일 달리느냐, 의지가 참 강하다, 라고 감탄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내가 보기에는 날마다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퇴근하는 일반 샐러리맨이 체력적으로는 훨씬 대단합니다. 러시아워에 지하철을 한 시간씩 타는 것에 비하면 나 좋을 때 한 시간 남짓 달리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특별히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닙니다. 달리기를 좋아해서 그냥 내 성격에 맞는 일을 습관적으로 계속하는 것뿐입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삼십 년씩이나 계속하지는 못하겠지요. (p.184-185)
그래 맞아, 의지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다. 정말 그렇다. 보통 끈기가 있다고 말을 하려면, 그 일과 내가 어느 정도 맞아야 가능한거다. 친구들은 내가 꾸준히 글을 쓰는 걸 보고 끈기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친구중에 누군가는 아주 오래 수영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아주 오래 책을 읽고 있다. 반면 나는 운동에 있어서는 끈기를 발휘하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사람을 끈기가 있다 없다 혹은 의지력이 있다 없다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한 가지를 꾸준히 해낸다는 건, 그만큼 그것과 내가 어느정도의 합이 맞다는 게 아닐까.
써놓고나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착하고 성격 좋은 사람이라도, 자기가 피곤하면 안만나게 되지 않을까. 최종적으로 나랑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은, 나랑 어느 정도는 통하고 잘 맞는 상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위의 인용한 문장이 좋았던 건, 나에 대해 잊지 않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루키가 말하는 '러시아워에 지하철을 한 시간씩 타는 샐러리맨' 이 나다....
나야..
나라니까..
나라구...
내 체력이 좋다는 것에 대해 친구들이 얘기하다가, 그런 얘기를 한거다. 다락방은 체력이 왜 좋은가? 이렇게 사람 많은 서울에서 지하철타고 출퇴근을 그리 오래했으니 당연히 체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라고. 아아 어쩐지 일리있는 말이다 싶었는데, 하루키도 말했어. 러시아워에 한시간씩 대중교통타고 출퇴근 하는 샐러리맨인 나에 대해서.....
이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는데 참 좋다. 그리고 어쩐지 힘이 된다. 나란 인간은 새삼, 규칙적으로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는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달리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본인은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게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렇게 규칙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게 너무 좋은 거다. 그러고보면 나는 늘 그런 사람에게 끌렸던 것 같다. 자기 할 일을 충실하게 잘 해내고, 자신의 몸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고, 나에게 무엇이 좋은가를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에게 늘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은 지겨울 수 있지만,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은 단단하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힘들 때 무너질 수 있는 게 이 일상이란 거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은 무너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일거다. 그렇게 나는 정신적으로도 또 육체적으로도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너무 좋다. 내가 하루키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이유가 그런 것이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단순히 그의 소설도 에세이도 재미있어서 하루키를 좋아했던 건데, 그런데 오늘 에세이를 가만 읽노라니, 나는 그의 이런 점도 참 좋아했던 게 아닌가 싶다.
좋아합니다.
좋아해요.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니, 나도 꾸준히 하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아이디어를 꾹꾹 눌러담아 머리에 저장하고 끈기있게 써내려가다보면, 나도 소설 한 편은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를 생각하다보니, 아아, 글을 써서, 소설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은 너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날이 올까, 그러면 소설을 근사하게 쓰면 되지, 그러다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쳐서 삶이 피곤해질텐데, 적당히만 알려지고 적당히, 근근이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만 돈을 벌려면, 너무 잘 써서는 안되고 적당히만 잘쓸까... .같은 망상에 휩싸이고 말았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우리의 하루키는 넘나 쿨하셔서, 하하하하, 책읽는 사람이 조금만 있다고 해도 자기는 괜찮다고 말한다. 멋지심!
책을 읽는 습관이 일단 몸에 배면-그런 습관은 많은 경우 젊은 시절에 몸에 배는 것인데-그리 쉽사리 독서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가까이에 유튜브가 있건 3D 비디오게임이 있건, 틈만 나면(혹은 틈이 나지 않더라도) 자진해서 책을 손에 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스무 명에 한 명이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책이나 소설의 미래에 대해 내가 심각하게 염려할 일은 없습니다. 전자책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얘기도 현재로서는 굳이 염려하지 않습니다. 종이가 됐든 화면이 됐든(혹은 『화씨 451』적인 구두 전승이 됐든), 매체나 형식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p.76-77)
꾸준히 읽고 써야겠다. 꾸준히 읽고 쓰다보면 언젠가 근사한 소설도 한 편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다니엘 글라타우어나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처럼 쓰고 싶다. 헤헷.
(인용문이 많은데 그건 다 읽고 차차 이 페이퍼에 추가하는 걸로...)
아, 어제 엄마한테 보약 얘기했더니 엄마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보름치에 30만원 정도 된다고 하시는데 별로 효과 없다고. 나는, 그냥 먹으면 효과 있을 것 같긴한데, 30만원이라니... 흐음..... 그건 ........ 좀 곤란하네? 넘나 ... 비싸네? 흐음... 내가 나에게 30만원을 투자할 것인가, 말것인가. 아아, 마셔서 다 없어져 버리는 거라니 아깝지만, 그러나 먹고 나서 내가 깨발랄해진다면.... 흐음. 지금도 충분히 발랄한가? 이정도로만 발랄할까?
위에 얘기한 프로그램에서 정준하는 나고야에 가서 돈까스도 먹고 덮밥도 먹고 그랬는데, 와 엄청 맛있어 보이더라. 엄마, 나고야 갈까? 했더니 엄마는 그래, 저기가 먹을 게 많겠다, 하셨다. 스위스는 세상 풍경 예쁜데 이특이 자꾸 치즈치즈 먹어서, 엄마가 '나는 저기는 싫다' 이러시는 거다. 풍경은 예쁘잖아? 했더니, 응 너무 예쁘네.. 하셨지만, 야, 저기 음식은 다 저러냐? 하고 싫어하심. 내가 보기에도 너무 치즈치즈 먹어서, 이특 괜찮으려나, 아무리 치즈를 좋아해도 저렇게는 힘들것 같은데 .. 생각했더니, 아니나다를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컵라면 두 개 클리어 하며 기뻐하심 ㅋㅋㅋㅋㅋㅋ감동의 눈물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그 마음 잘 이해합니다. 어쨌든 락방아, 천만원씩만 있으면 스위스 갔다올 수 있냐? 하셔서 응, 모아봐! 했더니. 그래 이천만원 모아볼 테니까 스위스 가자, 이러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이런 식으로 너무 여러 나라를 가기로 했는데, 그래도 나고야 정도면 좀 현실로 옮길 수 있지 않나 싶고... 우하하하. 그래서 자기 전에 나고야랑 홍콩이랑 비행기표 괜히 검색도 해보고 그랬다. 나고야.... 돈까스가 진짜 튀김옷이 얇고 고기가 두꺼웠어.... 그리고 우롱하이...
우롱하이... 내가 몇 번 언급했던 y 씨가 울회사 해외영업부 일본 파트였다. 이 친구랑 둘이 술을 마시러 갔을 때 이자까야 갔었나, 암튼 거기서 우롱하이를 시켜줬더랬다. 이게 뭐시여... 했더니 우롱차에 소주 섞은 거라고. 그래서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정준하가 우롱하이를 완전 계속 흡입흡입 들이켜더라.. 오호라... 나도 가서 우롱하이에 돈까스...... 아무래도 비수기에 엄마랑 나고야를?
그런데 나는 괜찮지만 엄마는 관광을 해야할텐데... 흐음.... 제일 먹고 싶은 건 홍콩에서 장도연이 먹었던 사천탄탄면이다... 궁금해... 홍콩에도 좀 다녀와야겠다. 으하하하. 나 홍콩 갔을 때 탄탄면 먹었는데 하나도 안매웠어.. 그때는 나의 여행 스타일이 딱 잡히지 않았을 때라서 많이 후회가 남는 여행이다. 이제 다시 가면 뭔가 좀 달라져있지 않을까. 매운 탄탄면도 먹고... 뭐 그렇다.
우롱하이..
매운 탄탄면....
홍콩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