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하는 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그동안의 나는 '프로이트'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는데, 그가 얼마나 페미니스트들에게 까이고 있었는지를 그 때 처음 알았다. 아, 이 놀라운 페미니즘의 세계여! 그 강의 때 프로이트가 남성을 페니스를 가진 존재로 보고 여성은 '페니스가 없는 존재'로 봤다는 얘길 들었다. 보지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지가 없는 존재. 애초에 여성의 존재 자체를 '결핍'으로 본거다. '페니스가 결핍'된 존재. 자, 결핍되면 어떻게 된다? 열등감에 쌓이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하게 된다. 아, 프로이트...


그 후에도 계속해서 프로이트가 툭툭,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데 튀어나온다. 한 알라디너가 프로이트 서적을 읽다가 화가 나 쓴 글을 봤는데, 위의 강의에서 들은 내용과 마찬가지로 비난을 하더라. 아아, 프로이트여... 당신은 페미니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군요. 그리고 지금. 나는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으며 또 툭, 프로이트를 만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소년과 소녀 사이의 매우 중요한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가령 소년은 어느 시기에도 아버지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는 경우는 없지만, 소녀는 우선 어머니에게 달라붙는다. 어머니에게 집착하는 것은 구순기에서 내려오는 습관이다. 그때에 소녀는 아버지와 동화되려고 한다. 그러나 다섯 살 무렵부터 소녀는 해부학상 성기의 차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페니스가 없는 데 대하여 일종의 거세 콤플렉스 반응을 보인다. 소녀는 페니스가 잘려 나갔다고 상상하고 그 때문에 고민한다. 이제 소녀는 남자가 된다는 바람을 단념하고, 어머니와 동화되어 아버지를 유혹하려고 한다. 거세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서로 도와 강해진다. 소녀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와 닮고 싶어 할수록 실망은 그만큼 더 치열해진다. 거꾸로 이 낙담은 소녀의 애정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소녀가 자기의 열등감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에 대하여 품는 애정에 의해서이다. 소녀는 어머니에게는 적대감을 느낀다. 이윽고 소녀 속에서도 초자아가 형성되고, 근친상간적 경향이 억압된다. 그러나 그 초자아는 남자보다 더 연약하다. 최초의 애착대상이 어머니였다는 사실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보다 선명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자신이 비난하는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금지명령은 경쟁자인 아들의 경우만큼 강하지 않다. 성기의 발달처럼, 소녀에게 펼쳐지는 성의 드라마 전체는 그 남자형제들보다 한층 복잡하다. 때때로 소녀는 거세 콤플렉스에 대한 반동으로 여자이기를 거부하고 집요하게 페니스를 탐내면서 아버지와 동화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태도 때문에 그 소녀는 언제까지나 음핵 단계에 머무르게 되어, 불감증이나 동성애로 향하게 된다.

이런 프로이트의 견해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비판은 두가지인데, 어느 쪽이든 그 근거는 프로이트가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여자가 자신을 페니스가 잘린 남자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단된다는 관념은 어떤 것과의 비교 및 가치판단을 의미한다.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오늘날 소녀들이 페니스가 없는 것을 애석해 하지만, 그것이 잘려 나갔다고는 생각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애석함도 그다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그 감정은 단순한 해부학적 대조만으로 생겨날 수 없다. 많은 소녀들은 훨씬 뒤에야 남자의 신체구조가 자기와 다름을 알게 된다. 또 알게 된다고 해도 단지 시각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사내아이는 자랑할 만한 생생한 체험을 자기의 페니스에서 갖는다. 그러나 이런 자랑도 자기 자매들의 굴욕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왜냐하면 자매들은 남성의 성기를 그 외면으로밖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곁가지, 다시 말해 툭 부러질 것만 같은 살 막대에 대해 그녀들은 무관심하거나 혐오감밖에 느끼지 않는다. 소녀의 선망은 남자의 가치에 대한 에비지식의 결과이다. 프로이트는 이 선망에 대하여 마땅히 설명했어야 함에도 그것을 마땅한 귀결처럼 넘겨버렸다. (p.70-71)




인간이 다른 인간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 어떤 증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왜그런것일까를 깊게 고민하고 원인을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분명 가치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원인을 알게 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있게 될테니까. 그러나 자신이 되어본 적 없는 존재에 대해서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얼마만큼 유용하며 유효할까? 


어느 하나를 '정상'이라고 규정해버리면, 그것과 다른 무엇은 '비정상'으로 규정되어 버리고 만다. 정상이란 말을 조심해 써야 하는 이유다. 남성과 여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한 존재를 기본이 되는 존재로 규정지어 버리면, 그렇지 않은 존재는 기본이 못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다. 애초에 이 존재는 이런 면이 있고, 저 존재는 저런 면이 있다로 인정했다면, 그러면 우리는 뭔가 결핍된 존재로 명명되기 전에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완성된 존재이지 않았을까. 물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신체적인 차이로 인해 결핍을 논하는 건 잘못이지 않은가. 남자에게 자지가 있다면 여자에게 보지가 있다. 남자에게 자지가 있는데 여자에겐 자지가 없는 게 아니라. 



자지는......대체 뭐지? 그게 뭐길래 하나의 존재를 완벽하게 구성하고 다른 한 존재를 결핍된 존재로 만들어 버리지?


자지 뭐지?



그 자지를 보부아르는 '툭 부러질 것만 같은 살 막대' 라고 불렀어... 아, 보부아르여.......



게다가 동성애에 대한 것도 그렇다. 거세 콤플렉스로 오는 거라니... 동성애를 컴플렉스에서 오는 걸로 본다면, 역시 병으로 보는 게 아닌가. 저런 식으로 보면 동성애가 '잘못된 것'이 되어버리는 거잖아?



이 방대한 책을 읽다보면-아직 100페이지도 못읽었지만- 보부아르의 어마어마한 지식에 놀라게된다. 아, 이 사람 뭐 이리 똑똑해... 대단하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이런 책을 쓰기까지 하다니 뭔가 감탄하게 되고. 아직 100페이지도 안읽었는데 머릿속에 꽉꽉 눌러담게 되고,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양은 내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아.. 올해 안에 이 책을 다 읽기로 한 나의 목표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고보니 며칠전 회식 생각이 난다. 직원들에게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되어서 그 목표에 백프로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되지는 못하더라도 근접한 삶을 살게 된다고 얘기했었는데.... 




아무튼지간에 100쪽도 안읽은 이 책에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었고 밑줄도 박박 그었다. 밑줄 그을 부분이 너무 많으면 그냥 연필로 괄호를 쳐버렸어. 슈웅- 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은 뭐랄까, 다른 책을 읽는 것들과는 다르게 양미간에 힘 똭주고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똑바로 집중해서 읽어야짓!! 하고 마음을 다잡게 된달까. 집에서 주말에 조금 읽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들고 읽기도 좀 거시기하고 그렇다고 테이블에 두고 읽으니 모가지가 아파... 마침 알라딘 굿즈로 받았던 독서대 생각나서 가져와 꽂아 두고 읽었더니 높이도 맞고 고개도 안숙여도 되고 세상 편해. 알라딘 굿즈로 독서대 주는 거 좀 더 하면 안될까요? 굿즈로 독서대 줘라!!!!!





언제나 그렇듯이 완전히 다른 얘긴데,

지지난주에 여동생네에 갔었다. 다섯살 조카 생일파티겸 해서 간거였는데, 추석 때도 나를 보지 못했던 조카들은 완전 내 껌딱지가 되어서, 마트에 가는데 양쪽에서 내 손을 하나씩 잡고 걸어가는 거다. 아... 세상 예쁜 것들 ㅠㅠ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니 이녀석들이, 이제 샤워하자~ 라고 제엄마가 말했더니 '이모랑 할래!' 하는 게 아닌가.



네?


뭐라고요?



나는 멘붕이 오기 시작해서, 아니야 얘들아 그냥 엄마랑 해.... 라고 말해보았지만, 다섯살 조카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덩달아 여덟살 조카도 마찬가지. 여동생은 씐난다며 나를 다섯살 조카와 함께 욕실로 들이밀었어... 하아- 나는 그렇지만 아이의 샤워를 해준 적이 없고... 작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그냥 아이가 시키는대로 하기로 한다. 여동생에게 물었더니 '걔가 다 알려줄 수 있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일단 욕조 물을 만져보고서는, 이모는 괜찮은데 조카는 어때? 온도 괜찮아? 했더니 자기가 발을 담가보고는 응 괜찮아 하고는 욕조 안에 주저앉는다. 



니 머리 어떻게 감겨?



나는 멘붕와서 물었더니, 녀석이 뭔가 머리에 뒤집어 쓰는 걸 가져와서는 이걸 이렇게 씌우면 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잘못 씌웠더니 다시 벗어서는 '그러면 안되고 여기까지 이렇게 해야 되는거야' 하면서 다시 뒤집어 쓴다. 그래서 샴푸질을 하고 나중에 씻겨주고 ... 아무튼 조카가 시키는대로 다 했어. 그랬더니 이제 여덟살 조카가 들어왔어.... 아아...



여덟살 조카는 사용하는 샴푸가 다르다며 자기가 컨디셔너까지 다 가져와서는 이모 이게 샴푸고, 이게 린스야, 하면서 꺼내다준다. 그리고 욕조에 거품 풀어야지, 하면서 이걸로 풀어, 한다. 나는 시키는대로 풀고 아이에게 온도 괜찮냐 묻고, 머리 감겨주면서는 '눈 꼭 감고 있어, 뜨지마!' 했다. 조카는 너무나 고맙게도 '응' 하면서 말을 잘 들어주었어.



아아, 나는 두 녀석의 샤워를 도와주고 떡실신할 뻔 했지...




그리고 다같이 케익을 불고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거실에 앉아 티븨를 보고 어른들은 식탁에서 술을 마시는데, 좀 이따가 녀석들이 삼촌을 불러가더니 자기들 앉아있는 사이, 가운데에 앉으라고 하고서는 각자 끌어안는다. 이내 삼촌을 보내고는 이모 오라고 와서 잠깐 앉아있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들 사이로 가 앉았더니 ㅠㅠㅠㅠㅠㅠㅠㅠ 양쪽에서 녀석들이 내 품에 쏙 안겨들어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힝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행복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러면서 여덟살 조카가 말했다.



이모는 이렇게 10분 있다가 가.



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애들이 완전 날 사랑해줬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 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집으로 돌아오고나서 며칠간 이 시간이 계속 생각났다. 이때의 마음 상태라든가 감정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나는 조카들을 사랑하고,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족되었다고 늘 생각해왔다. 내 사랑을 잔뜩 주기 위해 녀석들을 만나는 거라 해도 틀리지 않을만큼, 나는 내가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이미 내 인생은 아주 크게 완성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내가 주기만 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을 받는다는 걸 몸소 느끼고나자, 내 안의 충족감, 행복감, 충만감은 극도로 커지는 거다. 내가 꽉 채워지는 것 같은 이 마음이 너무 좋아서, 이 안정감이 진짜 너무 좋아서, 아이들을 보고 온 며칠 뒤에도 계속 생각나는 게 아닌가. 아아, 사랑이 이렇게나 좋구나. 사랑이 이렇게 좋은 거였어. 이렇게 한 사람을 온전히 채워줄 수 있는 게 바로 사랑이란 거구나 싶었다. 나는 사랑을 주는 걸 즐기는 거라 생각했는데, 엄청 받고 있었어! 아 이 녀석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모가 열심히 공부할게. 열심히 생각하고 좋은 어른이 될게. 좋은 어른이 되어서 좀 더 너희들이 살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도록 해볼게. 이모가 노력할게.




어제는 치킨을 앞에 두고 남동생과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희들 밥은 먹었냐, 라고 해서 '응 엄마가 끓여놓은 북엇국 먹고 있어' 라고 했더니 이내 아빠가 '맥주 한 잔씩들 하고 있겠구만' 하시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신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내가 그건 묻지 말라고 했다 ㅋㅋㅋㅋ 그러자 아빠는 그래 안물을게 이러면서 껄껄 웃으셨는데, 나는 그런 아빠에게 이렇게 답했다.



이게 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빠는 넌 이미 어른이고 늙었다고 하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끊어 아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주말동안 제2의 성 <제2편 역사>까지 읽기로 했다. 으악. 다 읽을 수 있을까? 포스트잇 플래그 옆에 두고, 형광펜 하나 들고, 정신 집중 뽝- 해서 읽어야겠다. 화이팅!!






사실 실재하는 모든 인간은 언제나 유일하고 독자적인 개체이다. 영원한 여성이나 흑인의 영혼이나 유대적 성격 같은 개념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오늘날 유대인이나 흑인이나 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p.16)

여성의 기능으로써 여자를 정의하는 것이 불충분하고 우리가 ‘영원한 여성‘으로 여자를 설명하려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러나 한편 잠정적으로 지상에 여자들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여자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문제제기 자체가 우리에게 일차적인 해답을 암시한다. 그런 문제를 물어본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들이 인류에서 차지하고 있는 특이한 상황에 대하여 책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규정하려면, 우선 ‘나는
여자다‘ 라고 선언해야 한다. 앞으로의 모든 논의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남자는 결코 어떤 성(性)에 속하는 개인으로서 자신을 규정하며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가 남자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남성‘·‘여성‘이라는 용어는
법률서에서나 형식상 대칭적으로 쓰일 뿐이다. 실제로 두 성의 관계는 전기의
양극 및 음극의 관계와 똑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프랑스러오 ‘남자(homme)‘라는
단어가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남자가
양성(陽性)과 중성(中性)을 대표하기 때문이다.(p.17)

라틴어의 ‘남자(vir)‘란 단어가 지닌 개별적인 의미가 ‘인간(homo)‘의 전체적인 의미에 동화해 버린 것이다. 반면에 여자란 오로지 음(陰)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온갖 규제가 주어진다. 가끔 추상적인 토론을 하다보면, 남자가 ‘당신은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는 말이 귀에 거슬리기도 한다. 이때는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는 대답이, 내 주장이 주관적이지 않음을 나타내는 유일한 항변이다. (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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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26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조카들을 어떡하나 ㅠㅠㅜㅠㅠㅜ

다락방 2017-10-26 16:17   좋아요 1 | URL
너무 예쁘죠!!!


저 제2의성 밑줄긋기 다 올릴랬더니 넘나 힘들어서 일단 저만큼만 올렸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