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야가의 집은 여자 노인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다. 공간을 대표하는 디렉터나 운영과 행정을 맡아보는 인력이 따로 없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멤버들이 스스로 운영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자치', '생태주의', '시민 참여', '연대'가 이 공간을 받드는 네 개의 정신적 기둥이다. 21명의 여자 노인과 네 명의 젊은이가 한 건물 안에 있는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한다. 각자가 차지하는 공간의 규모에 따라 월세 시세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400유로(약24만~48만 원)의 월세를 내며-거의 모든 프랑스 노인은 국민연금을 수혜하므로 이 정도의 집세는 큰 부담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대부분의 노인 요양원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낮은 가격이다:저자 주- 모든 거주자가 일주일에 5~10시간씩 공동체의 운영을 위한 노동시간을 제공한다. 각자의 공간에는 부엌과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세탁실만 공동으로 쓴다. 텃밭에서 공동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건물 1층에는 모두가 매일 만나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며 서로가 살아오면서 축적한 지식과 지혜, 경험들을 나눌 수 있는 민중 대학이 마련되어 있다. 이 민중 대학에는 이 공간의 입주자들뿐만 아니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테레즈 클레르, p.17)
일요일에는 나를 포함한 여자 다섯 명이 만났다. 와인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애슐리에 가서 실컷 먹고 실컷 마셨는데, 덕분에 월요일인 어제 기운을 못차리고 철푸덕 뻗어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생일에 친구가 선물로 준 모닝케어 생각이 나, 부랴부랴 옷을 입고 편의점에 가 바꿔서 마셨다. 그리고 다시 집에 와 철푸덕...
우리는 네시반경 모여서-네시였는데 내가 애슐리를 못찾아서 종로를 빙빙 돌았고, 그러다 결국 집에갈거야! 이러고 눈물까지 찔끔...- 언제 헤어졌지?, 실컷 수다를 떨었는데, 그렇게 미친듯이 수다를 떨 수 있는 건 우리가 지금 처한 환경이 비슷하고 또 바라보는 바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여행가자, 같은 얘기들도 하다가 공동체 얘기도 나왔다. 공동체는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바였다. 어쩌면 그 공동체에 대해 꿈꾸는 모습이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싱글인 여자들이 함께 모여서 함께사는 걸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큰 빌라나 작은 빌딩을 공동체 구성원이 공동으로 소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구성원 모두 각자의 공간이 있고, 그러나 1층의 부엌은 함께 쓰는 그런 삶. 그래서 내키면 식사는 같이 하되, 원한다면 언제든 자기 방으로 숨어들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비혼의 삶을 앞으로도 유지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이 들면 실버타운에 가야지, 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다 '목수정'의 [파리의 생활 좌파들]을 읽으면서, 아, 실버타운 보다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렇게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
그런데 일요일에 만난 친구들도, 또 다른 친구들도, 진작부터 공동체 생활을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됐다. 금요일에 만난 친구에게도 얘기하니 자기도 그런 공동체를 희망한다는 게 아닌가. 일단 내 주변에 이렇게 여러명이라면, 이들만으로도 이미 공동체를 만들 인원은 충분할 터. 게다가 내가 계속 만남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니, 싫지 않은 멤버가 아닌가. 나와 그간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이라면, 나는 살갑게 계속 치고 들어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 터. 그렇다면 우리는 적당한 거리와 공간을 사이에 두고 공동체 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이거, 한 번 해볼만하지 않을까?
[디어 마이 프렌즈]의 이 오랜 친구들도 그랬다. 사별을 하거나 별거를 하거나 아예 연애를 해본 경험이 없거나 한 이 오랜 친구들은 '같이 살기를' 꿈꾼다. 그래서 하룻밤은 다같이 모여 하루 자 보기도 한다. '언젠가는' 그렇게 함께 살자고 약속을 했지만, 어느 한 명은 치매에 걸렸고 어느 한 명은 암에 걸렸다. 치매에 걸린 친구는 요양원에 가길 원했고 암에 걸린 친구는 3기라 많이 위험하다 했는데, 이에 이들 중 한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우리 같이 사는 거, 그거 못하겠네.
우리가 '언젠가는' 공동체 생활을 하자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바라왔다고 하더라도, 너무 늦어지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면서 들었다. 너무 늦어지면, 그러니까 일흔이 넘어가고 여든이 넘어가면, 그때 돼서 '이제 같이 살자'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늦어지면 곤란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에 친구들과 공동체 얘기를 하면서도 그랬다. 디어 마이 프렌즈 얘기를 꺼내면서, 너무 늦어지면 그건 뜻대로 안될 수도 있어, 라고.
우리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앞으로 많은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공동체를 꿈꿨던 내 주변의 친구들은 애인의 유무와 상관없이 혼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결혼을 자기 인생에 두지 않은 친구들이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 우리중 누군가는 빠른 시일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공동체와는 멀어질 수도 있다. 단란한 가족을 꾸리고 거기에 충실하느라 자연스럽게 우리와 멀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렇게 공동체를 꿈꾸어온 내가 그럴 수도 있다. 이런 글을 써놓고서는 당장 몇 달 뒤에 '남자랑 동거하기로 했다' 같은 글을 쓸지 누가 알겠는가. 알 수 없지. 그래도,
지금은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한다. 머릿속에 그려본다.
1층의 커다란 식탁에서 부러 그러는 게 아니어도 가끔은 다같이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을,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 다같이 집에 있다면, 와인이며 샐러드 치즈 같은 거 차려두고, 스테이크도 구워 두고, 그렇게 건배하는 삶을. 냉장고에는 컨디션이나 여명 같은 숙취해소 음료도 좀 쌓아두고 살고 싶다. 나는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 공동체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함께할 수도 있다. 개가 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나와 내 친구들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 많을 터, 아이가 자란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환경일 수 있을 거다. 어디를 열어도 책이 보일 거고, 게다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는 어른들이 모두 페미니스트야!!!!!!!!!!!!!!!! 졸 멋져!!!!!!!!!!!!!!!!!!!!!!!!!!!!!!!
이런 멋진 생각을 뒤로 하고,
자, 주어진 일들을 하자.
선물받은 초콜렛을 먹자.
점심엔 갈비를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