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몇 장 읽지도 않고 '아 책 읽는 건 정말 얼마나 좋은가!' 생각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많이 공부하려고 하고 행동하려고 하고 생각하려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게 너무 좋아서. 내가 해보지 못했던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되게 신나는거다. 내 생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책으로 보게 되니 너무나 좋다! 소설은 소설대로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을 생각해보게 돼서 좋은데, 인문학 책들은 또 그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알게 해준다. 책을 읽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수정은 딱히 내가 좋아하는 저자는 아니지만, 이 책속에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생각을 엿보는 건 짜릿하고 흥분됐다.
어제였나.
과거에 내가 써둔 어떤 글을 읽고 막 갑자기 행복해졌었다.
아, 글쓰기를 잘했구나,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읽고 행복해질 수 있다니. 그래,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고 이렇게 느꼈었지, 하면서 너무나 만족스러운거다. 지금의 내게는 행복한 일이 별로 없는데, 과거의 행복을 보니 그 때의 행복감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던 것.
글쓰기와 책읽기는 진짜 좋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계속 지금처럼 읽고 쓰고 해야겠다.
바바야가의 집은 여자 노인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다. 공간을 대표하는 디렉터나 운영과 행정을 맡아보는 인력이 따로 없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멤버들이 스스로 운영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자치', '생태주의', '시민 참여', '연대'가 이 공간을 받드는 네 개의 정신적 기둥이다. 21명의 여자 노인과 네 명의 젊은이가 한 건물 안에 있는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한다. 각자가 차지하는 공간의 규모에 따라 월세 시세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400유로(약24만~48만 원)의 월세를 내며-거의 모든 프랑스 노인은 국민연금을 수혜하므로 이 정도의 집세는 큰 부담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대부분의 노인 요양원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낮은 가격이다:저자 주- 모든 거주자가 일주일에 5~10시간씩 공동체의 운영을 위한 노동시간을 제공한다. 각자의 공간에는 부엌과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세탁실만 공동으로 쓴다. 텃밭에서 공동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건물 1층에는 모두가 매일 만나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며 서로가 살아오면서 축적한 지식과 지혜, 경험들을 나눌 수 있는 민중 대학이 마련되어 있다. 이 민중 대학에는 이 공간의 입주자들뿐만 아니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테레즈 클레르, p.17)
와- 이 부분 읽는데 진짜 너무 좋은거다. 한 건물에 여자 노인들만 모여 산다니. 너무나 이상적이잖아! 게다가 이곳을 운영하는 것 역시 그들의 일이다. 조금씩 각자의 시간을 투자해서 이 공동체를 운영하고 그러나 각자의 생활공간은 따로 있다니. 너무 멋진 거다! 아,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나중에 노인이 되었을 때, 이렇게 다른 여자노인들과 연대해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져...
테레즈 클레르는 어떻게 이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라고 궁금해했는데, 곧이어 이런 글을 읽게 됐다.
바바야가의 집은 1995년 테레즈 클레르의 머릿속에서 처음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85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까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평화롭게 누리게 하기 위해 딸인 그녀는 상당한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희생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순간 그녀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바로 그때, 결코 내 자식들에게 같은 경험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자연스럽게 솟구쳤다. 그러나 어떻게! 현존하는 양로원은 아직 살아 있지만 처치 곤란한 노인들을 무덤으로 보내기 전까지 집단 수용하는 공간이다. 거기에 궁색하지 않은 생존이 있을지언정 살아 있는 자의 존엄과 자유가 지켜지거나 죽는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삶을 보장받는 것은 감히 바라기 어렵다. 그곳의 노인들은 잠재적인 환자, 자립성이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세대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늙은 부모를 돌보는 데 삶을 바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절실한 필요는 기적적인 상상력을 분출시킨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터져 나온 안도의 한숨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어느 날 집에 앉아 흰 종이를 꺼낸 다음 바바야가의 집에 대한 프로젝트를 신들린듯 써나갔다. (테레즈 클레르, p.18)
자신이 좌파라고 대답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그게 너무나 인상깊다.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보다 더 인상깊다고 해야할 좌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갖기'가 아닌가 싶다. 나 하나 잘 살자고 이들이 시위를 한다거나 집회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고스란히 짐처럼 싸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더 공부하고 더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즐겁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읽다보니 나도 계속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 대한 의욕이 막 불타오른달까.
너무나 좋다. 내가 책을 읽다가 자극을 받는 사람이란 사실이.
책을 읽다가 자극을 받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글로 남기는 사람이란 사실이 진짜 자지러지게 좋다.
나는 내가 너무나 좋은 것이다!!
다섯 작가를 가리긴 했지만 이것은 내가 탐색해낸 인류의 보석일 뿐이다. 인간의 정신은 이 세계에서 전무후무하게 가장 큰 보석을 파낼 수 있는 광맥이다. 내가 모르는 광맥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각자 자신의 광맥을 찾아야 한다. 자기만의 책을 찾아서 캐내야 한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다. 사기를 치기 위해서였건 음란 소설을 썼건, 생각을 글자로 옮겨 적는다는 것은 굉장히 경건한 일이다. 어떤 글에든 삶의 지혜가 될 문장이 반드시 들어 있게 마련이다. 농사를 짓기 어려운 황무지에서 땅을 잘 골라 농작물을 키워내는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좋은 글과 만날 수 있다. (심영길, p.278)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든 이에게 건배!
에릭은 그곳에서 발레리를 만났다. 열일곱 살에 만난 두 사람은 지금까지 약 30년간 인생을 함께하고 있다. 에릭고 ㅏ발레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서로 지지해주기`로 약속했고 그 약속은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약 30년 동안 둘을 지탱해주고 있다. (에릭 브로시에, p.34)
일부러 인터넷을 검색해 한국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다. 《르피가로 Le Figaro》지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박근혜란 사람의 세계 인시은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느꼈다. 프랑스와 한국 간의 우호관계를 말하면서 60여 년 전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의 참전을 언급한다는 것은 프랑스인의 시각으로 볼 때 어이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자크 제르베르, p.65-66)
내가 지금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어머니는 수학교사로 사셨고 별다른 일탈을 시도하지 않으셨지만 두 분 모두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능하셨고, 그 무엇도 낭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대장간을 꾸리고 내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살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숲에서 사는 법`, `내 집 만들기` 같은 제목의 책들을 건네주셨고 아버지는 온갖 나사와 공구들이 들어 있는 상자를 선물로 주셨다. (카헬 자닉, p.98)
살아야 하니까 인류에 대한 믿음을 택한 것이다.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내 부모를 데려가고, 고아에게서 집을 빼앗아간 것은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날 돌봐주고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 내 후견인이 되어주고, 또 내가 집을 되찾을 수 있게 재판을 함께 준비해준 것도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우린 계속 배신 당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인류에 대한 믿음을 선택한 것이다. 안 그러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사라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충만한 사랑을 누린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 사랑이 나를 이렇게 살게 해주었지." 그녀가 말하는 그 사랑은 바로 조셉과 나눈 절박하고 열렬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셉은 사라가 서른아홉 살이던 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쉰넷이었다. 그와 함께한 20여 년의 세월이 그가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녀로 하여금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해준 것이다. (사라 달루아, p.165-166)
그녀가 현재 가입해 활동하는 유일한 단체는 콜리브리Colibris다. 콜리브리는 우리말로 벌새라는 뜻으로 콜리브리가 등장하는 전설에서 단체의 이름이 유래했다. 옛날 어느 숲에 큰 불이 났다. 동불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지둥 달아나고 멀리서 망연자실하게 불이 숲 전체를 삼키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작은 벌새 한 마리가 나뭇잎에 물을 떠다가 숲에 난 불을 끄려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이걸 보고 있던 신이 작은 새의 수선스러움을 보고 "너,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거 알아?"하고 소리쳤다. 벌새는 대답했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비로소 바뀔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콜리브리의 철학이다. (루이즈 포르, p.203)
이렌의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환한다. 재미없는 파티에 억지로 몸을 들이미는 대신 쥘과 세상에 대해 토론하는 일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좌우 양극단에서 온 듯한 두 청년은 세상사, 인생사를 두 개의 시선으로 해부하면서 날마다 진검승부를 펼쳤다. 무려 3년 동안. 그리고 마침내 이렌은 완패를 선언했다. 자본주의가 세상에 모순을 축적해왔으며, 자기모순으로 결국 해체되리라는 것, 그러나 더 많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삶을 유린하기 전에, 다시 전쟁이나 인종 학살 같은 참혹한 재해로 인류가 너덜너덜 찢겨나가기 전에 저항하고 저항하여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쥘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반자본주의신당의 당원이 되었다. (이렌 장, p.232)
아직 많은 프랑스의 좌파들이 페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페멘에 대한 의견을 선뜻 말하기보다는 "페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1년 반 전에 답하지 못했던 페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젠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시스템에 무력하게 투항하는 대신 사자처럼 당당하게 포효하는 이 여자들은 옳다. 페멘은 여자의 적이 남자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남자와 여자 모두의 적이란 사실, 자본주의와 독재와 종교는 바로 그 가부장제가 작동시키고 있는 구체적인 극복의 대상이란 사실을 지목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적할 무기는 폭력 혁명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철저히 굴복시킨 세상의 절반, 그 속에 감춰진 여성성이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그 파격적 당당함이 우리 속에 숨죽이고 있던 여신을 되살려낸다. 이 아름다운 마녀들을 지지한다. (폴린 일리에,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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