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남동생과 함께 치킨을 먹었다. 돈 내는 사람이 먹고 싶은 치킨 고르기로 하자고 해서 내가 굽네치킨 내가 살게, 라고 하자 남동생이 나 굽네 싫어 페리카나 먹자 내가 살게, 하길래 그래 그럼, 했다. 사실 나는 페리카나는 너무 기름기름해서 별로지만..얻어먹는 것이니 그러는 걸로...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을 홀짝이다가 남동생은 통화를 한다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나는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는데, [나는 자연인이다]가 나오고 있더라.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아서 그래 이거나 혼자 보면서 술마시자, 하고는 냉장고에서 깍두기를 꺼내가지고 와서 안주 삼아 먹으며 와인을 마셨다.
어제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은 꽤 인상깊었다. 그동안 이 프로에서 자연에 들어가 혼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사에 지치고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이었다. 너무 아파서 자신의 몸을 회복시키고자 산에 들어와 좋은 공기, 좋은 약초들로 자신의 몸을 돌봐 주었던 것. 그러나 어제 나온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가족 때문에 들어왔다. 동생을 백혈병으로 잃고나서 그 상실감에 크게 방황하던 삼십대 초반 무조건 산에 들어와 숨어 살다가 다시 도시로 나갔는데 자신의 몸이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더라는 것. 그래서 다시 산으로 들어갔는데,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건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가족의 건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책임지자, 했던 것. 그렇게 16년간 산에서 혼자 집을 짓고 살면서 약초를 공부하고 눈을 뜨면 약초 찾고 손질하는 일에 열심이다. 산에 올라 이 약초 저 약초 다 구해 가방에 넣으면서, 이건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계신 아버지 드릴 것, 이건 관절이 안좋은 누나에게 줄 것, 이건 곧 결혼을 앞둔 딸에게 보낼 것... 하면서 챙기는 거다. 그리고는 챙겨둔 약초를 집에 와서 다 손질한다. 깨끗하게 물로 씻고 정성스레 덖는다. 약초의 기운이 빠져나갈까 주걱이나 젓가락을 쓰지 않고 손에 장갑을 끼고 손으로 직접 덖는다. 그렇게 손질한 약초를 가족들에게 보냈을 때 가족들이 아 맛있다 향이 좋다 는 등의 반응을 보이면, 그 재미에 자기가 계속 할 수 있다는 거다.
그에게 동생을 잃은 상실감은 아직까지 가슴 깊이 묻혀져있는 아픔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죽은 동생 얘기를 하는 것은 목소리를 떨리게 하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니 남은 가족들의 건강을 반드시 챙기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 식구들도 저 사람은 산에 살 사람, 하고 다들 인정하고 있다는데, 가족들이 바란 건 '더 깊은 산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것' 이라고 했다. 가끔이라도 자기들이 찾아와 만날 수 있도록.
산에서 살면서 몸에 좋은 약초를 챙겨 가족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산 사나이도, 그리고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다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약간 아쉽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서 나랑 함께 밥을 먹고 웃고 이야기하고 잠드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게 못내 아쉽긴 했지만, 세상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 사랑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의 아쉬움이 그들에게는 아쉬움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멀리 떨어진 채로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가끔 들여다보는 게 더 잘 맞는,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반드시 찰떡처럼 붙어있어야만 사랑인 건 아니니까. 어떤 사랑은 그 먼 곳에 당신이 있다는 존재의 확인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오늘 아침까지도 자꾸 생각났다. 혼자 산 속에 살면서 가족들에게 보낼 약초를 챙기는 산(山)사람이.
아침에 우연히 EBS 교재..어쩌고 하는 워딩을 보게 됐다. 나도 고등학생 시절 EBS 교재를 샀던 기억이 났다. 텔레비젼으로 몇차례 교육방송을 보던 것도. 그러자 생각이 갑자기 엄마에게 이르더라. 그 교재, 엄마가 사준건데. 문제집 참고서 다 엄마가 사줬는데. 내가 입을 옷도 그리고 학교 등록금 까지도. 그렇게 삼남매 대학 졸업까지 시키는 동안, 그 돈을 다 벌어대느라 엄마가 얼마나 허리가 휘었을까. 아빠의 경우엔 딸들은 대학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내가 수능을 망쳤다고 울었을 때, 아빠는 대학에 안가도 된다, 돈 벌자, 라며 나를 설득하셨더랬다. 당시 아빠가 부러워했던 사람은, 딸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부모님께 드리는 집의 '아버지' 였던 거다. 엄마가 계속해서 강하게 대학에 보내야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면, 그저 아빠의 말에 알겠다고 답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지금의 내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졌을 수도 있고 더 나빠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미안하다.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게 없어서. 대학에서 배운 게 없고 고등학교때 공부도 못했고, 문제집은 사달라고만 했지 죄다 안 풀고 밀리기만 해서, 뭔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시킨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어차피 풀지도 않을 문제집이었는데, 공부 잘하는 동생들이나 사주게 할걸... 나는 문제집 사줬다고 공부를 더 잘하지도 않았는데... 그러면서 왜이렇게 사달라고는 징징거렸을까. 이 문제집 사줘, 저 학습지 구독해줘... 돈도 없는데 자식이 공부하겠다고 하니 그걸 사주긴 사줘야겠고, 그런데 돈은 없고, 그런데 사줘야 되고, 그러니까 쉴 새 없이 돈을 벌어야 하고...
오늘 아침엔 갑자기 이런 게 너무 고마워지면서 이걸 꼭 엄마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나중에 말해야지' 했다가 말하지 않는다면 엄마는 내가 고마워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막 문자를 보냈다. 학창시절에 우리 삼남매 문제집이며 참고서 사주느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대학까지 다 졸업시키느라 진짜 고생이 많으셨어요, 감사드려요, 라고 문자메세지 넣었다. 한참 손주들 유치원이며 어린이집 보낼 준비하시느라 바쁘실 우리 엄마, 아직 메세지 확인은 안하고 계신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사랑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게 찾아오고 또 어떤 관계냐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는 것 같다. 이모네집에 간다면 좋아서 미리부터 가방싸고 준비했던 어린 조카는, 이제 일곱살이 된 후에는 이모집보다 제 집을 더 좋아한다. 내 책상, 내 친구들, 내 방이 그립다고 울기도 하더라. 그 어린 아이에게 '나의 것'이 생기는 순간이 확 큰 순간이 아닌가 싶다. 그 아이에게 자신만의 생활이 생겼고, 그래서 이제 그걸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이모와 삼촌을 보고 함께 노는 건 좋지만 몇 밤을 자면서 있기는 싫은,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봐야만 했던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각자의 생활이란 게 생기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다음에 보는 걸 기약하는 시간이 멀어진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생이 되고 또 고등학생이 되면,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 이모를 만나는 시간은 아마 연중행사가 되지 않을까. 차츰차츰 빈도가 줄어들다가 희미해지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해 따로 살지만 나는 아직도 부모님과 함께 산다. 그러나 어느틈에 우리는 한 집에 살지만 각자 생활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다. 주말에 만나기는 하지만 주중 내내 엄마와 떨어져있고 격일로 아빠랑 떨어져있고 퇴근후 회식이다 야근이다 하는 이유로 남동생과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것도 드물게 되어버렸다. 누구나 각자의 생활이 생기는 순간 함께 오래 붙어 있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좋은 걸 수도 있고.
인간은 결국 사랑하면서 사는 고독한 동물인 것 같다. 음...
저 수많은 인간의 정의 중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나는 `호모 에로티쿠스`를 택하련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미소짓게 만들지 않는가. 어떤 존재든 일단 사랑하기만 하면 간도 쓸개도 내줄 줄 아는 아름다운 광기가 있어,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아직 지구에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 사랑의 그 끔찍한 계산 불가능성이야말로 결코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소중한 공통분모가 아닐까. (정여울, 마음의 서재, p.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