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결국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간단해 보이지만, 보이는것만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내가 '내가'되는 일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인데, 영화속 캐롤은 그러나, 결국은, 내 예상을 깨고,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한다. 나는 캐롤이 울면서, '나는 나를 부정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할 때, 함께 울었다. 아, 그렇게 말하기까지, 그러니까, '내 자신을 부정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하기까지, 당신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녀에게 당신 자신이 되어도 된다고, 결국 그게 맞는 거라고, 일어나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해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라서.

 

내가 나 자신이 되기도 힘이 들고, 비슷한 크기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이 든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켜내는 것은 어떠한가. 그러나 캐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그것이 자신의 선택임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한다. '나와 함께 살지 않을래요?'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결국 이렇게 늙어가는가 보다. 이렇게 나이들어가는가 보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그들이 결국은 함께 살고 싶어한다는 걸 보면서, 아, 결국은 함께 살고 싶어하는거구나, 하는 걸 깨달으면서, 그렇게 깨달으면서 늙어가는구나. 나는 어쩐지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다.

 

'당신을 놓아줄게요' 라는 말에서는 엉엉 소리내서 울고 싶어졌다. 도저히 그 말을, 등장인물들만의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랑을 놓고야 마는, 아니 잃고야 마는 사람이 되어서, 나를 놓지 말아요, 라고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싶지도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놓아준다고 말할 때,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나를 놓지 말아요, 라고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어지는 것이다. 왜 놓는다는 거야, 왜. 놓는다고 말하지마.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친구랑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좋지, 참 좋지, 했다. 나는 나를 부정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친구 J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 친구라면 이 영화를 좋아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사는 이야기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아내와 오래 함께 살았던 것이라든가, 함께 살고 싶어서 결혼하기로 결심한 친구라든가, 그리고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남자가 나오는 수키 시리즈라든가.

 

 

 

 

우리는 함께 있으면 서로 즐거워해요. 나는 내 침대 안에서 당신을 보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너무 심해서 아플 지경이에요. 우리가 함께 더 지내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지금 당장 살 곳이 필요하잖아요. 내게는 슈리브포트에 아파트가 하나 있어요. 당신이 나와 함께 머무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214쪽

 

 

 

 

 

 

 

 

 

친구 한 명은 이 영화의 엔딩씬을 언급했는데, 나 역시 그렇다. 오래전에 '우마 써먼'이 나오는 영화 [프라임 러브]의 엔딩씬이 좋다고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맞먹는 엔딩씬이다. 엔딩씬이 너무 완벽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ㅜㅜ

아름다운 엔딩보다 더 아름다운 '나는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을 거에요' 때문에, 그 장면을 대체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해서, 나는 책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2016년에 책 한 권도 사지 않기, 같은 계획은 다 무의미해..

인생...

 

 

 

 

 

 

 

 

 

 

 

 

 

 

 

 

 

작년에 툭 튀어나와서 나를 놀래켰던 새치 하나가, 늘 그자리에서 나를 신경쓰이게 만들었다. 저걸 뽑아 말어, 하고 내내 고민하다가 뽑지 않고 여태 두었었는데, 볼 때마다 고민하는 나를 두고 여동생이 그냥 뽑아 버려, 하고는 툭, 뽑아주었다. 뭔가 앓던 이 빠지는 기분이라, 좋았어! 나는 이제 새치 없는 여자사람이야! 라고 꺅꺅 거렸는데, 오늘 보니 그 자리에 다시 새치가 있더라.... 이건....... 뭐야? 이렇게 늙어가는거야? 아, 벌써 2016년 2월이구나.

 

 

일요일엔 친구를 만나 영화 캐롤을 보고, 충무로에서 합정까지 세 시간을 걸었다. 합정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는 와인 두 병을 마시고 피자와 스파게티,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우리는 2016년에 우리의 계획들을 얘기했다. 이런 굵직한 계획들을 소화해내다 보면, 어느틈에 올해도 빨리 가게 될 것 같다고. 그 계획들 중에는 친구와 내가 함께 하는 것도 있었다. 3월달에 있을 결혼식엔 함께 참석할거라 2박3일로 강원도에 가기로 했고, 7월달엔 매튜본을 함께 보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의 굵직한 계획들을 얘기하다보니, 정말 빨리 가겠더라, 올해도. 그렇게 나이를 한 살 또 먹겠지. 나는 널 만나는 게 즐겁고 좋다, 라고 얘기하고 친구 역시 네가 즐거운만큼 나도 즐겁다, 라고 답했다. 다음날엔 다리통이 너무 아파서 미칠 것 같았지만, 우리가 걷는 내내 즐거웠으므로, 봄이 오면 또 여름이 오면 이 길을 이렇게 또 걷자, 라고 말했다. 여름엔 수건도 꼭 준비해서 수시로 땀 닦으면서 걷자고도 말했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소매 바깥으로 나의 겨털이 뭉쳐 있어도 놀라지 말아....-0-

 

 

 

설 당일에는 우리집에 왔던 여동생네 가족을 따라 남동생과 내가 여동생네 집엘 갔다. 가는 길에 내가 쟁여둔 와인을 한 병 가져갔다. 평소에 여동생과 조카들이 잠들고 제부와 남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술자리를 갖다가 파하곤 했는데, 그날은 어찌된 일인지 술 마시던 제부가 첫째 조카를 데리고 들어가 잠들었고 여동생이 둘째조카를 데리고 들어가 재우고서는 혼자 나왔다. 아주 오랜만에 삼남매가 모여앉아 술자리를 갖게 된 것.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여동생이지만, 그날은 잘도 마시더라. 내가 가져간 와인을 다 마시고 내가 지난번에 남겨둔 와인까지 꺼내와 다 마셨는데도 모자라, 제부가 우리엄마랑 마시려고 뒀던 와인까지 가져와 다 마셨다. 소주와 맥주는 냉장고에 있었지만, 1차로 소주를 마신 터라 계속 와인을 마시고 싶어, 이제는 없는 와인 대신 정종을 따서 마셨다. 우리는 작게 신해철의 음악을 틀어두었다. 여동생이 듣고 싶다던 신해철의 노래들을 듣다가, 에메랄드 캐슬의 노래를 듣다가,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들었다. 우리가 어릴적부터 함께 했었기에 같이 들었던 노래들이었고, 신해철에 대해서라면 우리 삼남매는 공통적 감정을 가진 터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조카들 이야기 그리고 직장 이야기, 우리 가족 이야기와 각자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사소하고도 사소한 이야기들을 자정이 넘어서까지 도란도란 나누다가, 각자 자러 들어갔는데, 여동생은 따라 들어와서는 내 다리며 어깨를 모두 안마해주었다. 덩치는 내 절반밖에 안되는데 손목 힘은 나의 두 배가 넘는 것 같다. 언니 그렇게 많이 걸어서 아픈 거 다 풀어야 해, 하면서는 아주 꾸욱꾸욱 주물러 줬다. 나는 괴성을 질렀다. 그 야밤에...

 

그 시간 내내,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아 이 시간이 정말 좋다, 오랜만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가보았다. 여동생은 다음날 우리가 돌아가고나서 단톡방에 메세지를 보냈다. 정말 좋더라, 라고.

 

 

 

아직 쟁여둔 와인이 세 병이나 남았고(후훗), 와인과 먹으려고 사둔 촉촉한 초코칩과 칙촉도 내 방 책장에 있다. 방금전에 남동생이 가지고 나가려는 걸 '그거 제자리에 둬' 라고 말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지켜냈다, 내 초코칩!!!!! 냉장고엔 체다치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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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0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너무 좋아요~전부 다~ 마지막으로 체다치즈까지!!!

다락방 2016-02-11 12:10   좋아요 0 | URL
책장에 초코칩 쿠키가 있고 냉장고에 체다치즈가 있고, 와인도 있는 제 방에, 제 집에 너무나 가고 싶습니다! 회사 싫어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외투 2016-02-10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

다락방 2016-02-11 12:10   좋아요 0 | URL
땡큐! ㅎㅎ

아무개 2016-02-1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엔딩장면에서 눈물콧물 찔찔ㅠㅠ

단발머리 2016-02-10 21:16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도 그 영화 보셨군요.@@

강동원 보러 가겠다, 설레이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두 분의 코멘트에 심히 고민되는 상황이네요. ㅎㅎㅎ

아무개 2016-02-11 08:47   좋아요 0 | URL
단발님 검사외전은 나중에 걍 티비에서 공짜로 보셔도 무방하실듯 합니다만 ^^:::


단발머리 2016-02-11 08:50   좋아요 0 | URL
텔레비전 집에 없잖아요~~~
아흐.... 아시면서 ㅋㅎㅎㅎㅎㅎㅎㅎ

아무개 2016-02-11 08:52   좋아요 0 | URL
아...맞다...
ㅡ..ㅡ:::::::::::::::::

다락방 2016-02-11 12:1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굳이 한 편의 영화라면, 저는 검사외전을 보진 않았지만, 캐롤을 추천드립니다. (단호!)

단발머리 2016-02-11 12:13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검사외전과 캐롤을 두 개 다 보는걸로 하죠~~~ ㅎㅎㅎ

단발머리 2016-02-1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좋아요
다락방님도 그런 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좋네요, 진짜... ㅎㅎㅎ

다락방 2016-02-11 12:11   좋아요 0 | URL
그치요? 우걀걀걀.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함께 먹고 마시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제일 좋아요, 최고 좋아요!! >.<

저도 단발머리님 좋아해요. 단발머리님은 어쩐지 그냥 좋아요. 아무것도 안해도 그냥 좋아요. 꺅 >.<

단발머리 2016-02-11 12:14   좋아요 0 | URL
앗싸라비요 콜롬비요 닭다리잡고 뜯어뜯어~~~!!!

나와같다면 2016-02-10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생에 단 한 번,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었어요..
오직 단 한번.. 축복같은 경험..

다락방 2016-02-11 12:12   좋아요 0 | URL
그런 경험을 해봤다면, 그건 정말 축복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와같다면 님.
:)

아무개 2016-02-11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다락님 캐롤 책은 번역이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다고.
캐롤을 남자 이성애자처럼 묘사해놓았다고 하더군요.
엄청 욕들어먹고 있다고 해요...

다락방 2016-02-11 12:13   좋아요 0 | URL
번역 얘기가 많은 것 같던데..그런가요 ㅠㅠ
그치만.. 읽어보고 싶은데 ㅠㅠ
제가 신뢰하는 리뷰어가 좋다고 해서 기대도 하고 있었는데 ㅠㅠㅠ
생각 좀 해볼게요. ㅜㅜㅜㅜ

2016-02-11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1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