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은 이상한 날이었다. 눈물나는 날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오후에 심규선의 콘서트에 가기로 했었고 그래서 오전에는 여동생과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 여동생이 사고 싶다는 가방 매장에 가서 가방을 구경하고, 내가 화장품을 사려고 했던 매장에 가서 화장품을 샀다. 그전에 함께 밥을 먹다가 나는 내가 지쳤음을 얘기했다. 심각하게 얘기한 건 아니고 그저 지쳤어, 직장다니는 거 지쳤어, 이 사람 밑에서 일하는 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거, 모두 다, 라고 얘기했다. 여동생도 많이 진지하진 않은 표정과 말투로 내게 얘기했다. 혹여라도 도피성으로 결혼을 선택하진 말라면서, 언니 지쳤지 왜 안지쳤겠냐,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오래 일해왔는데, 수고 했지, 언니 지쳤으면 그만 둬, 언니 지금 그만둬도 아무도 뭐라 안해. 언니만 생각하고 지쳤으면 빠져나와, 그래서 여행을 가든 뭘 하든 해, 라는 거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을 묻는 내게 여동생은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해, 뭐 돈 못벌겠냐, 편의점 알바해봤으니 그거 해도 되고' 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만둔다고 생각을 할라치면 '뭐 어디가서 알바라도 하면 되니까 굶어죽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던 바, 여동생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만 말해. 울 것 같아.
라고 여동생에게 말하자 여동생이 '왜 울면 안되는데? 울어버려' 라고 하더라. 그러게..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콘서트를 갔다.
초반에는 예전에 갔던 콘서트들에 비해 별로라고 느껴졌다. 음, 감흥이 덜하네, 라고. 당분간 오지말아야 할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그동안 잘 듣지 않던 곡인 <이제 슬픔은 우리를 어쩌지 못하리> 를 들을 때부터 확- 좋아지더니, <너의 존재 위에>를 부를 때는 훅- 좋아졌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라이브로 듣는 너의 존재 위에는 가사 한 줄 한 줄이 콕콕 가슴에 와 박힌 탓이다. 아 왜 눈무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떤 슬픈 밤 숨을 곳 없는 나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지만
이상하게도
부끄럽거나 두렵지도 않아
맹세컨대 난 그게
뭔지조차도 몰랐으니까
잠들기 전 늘 소용없는 기도
신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까 봐
두려웠어 늘 원하시는 대로
맹세컨대 난 그게
옳은 일이라고 믿었으니까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두지마
어떤 내일도 오늘을 대신할 순 없어
그보다 더 소중한 너의 존재 위에
난 참 바보처럼 쫓았지
보이지 않는 허상을
잡히지 않는 안개를
두 손에 쥐려고 애를 썼네
불행함의 이유를
이 괴로움의 시간을
다 견뎌내려 하지마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두지마
꿈도 명예도 어제와 불확실한
내일 그보다 더 소중한
닥친 내일이 어깨를 짓눌러
멍든 어제가 발목을 잡아도
모든 이유를 이해할 때까지
너의 존재 위에
너의 현재 위에 무언가 무언가를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두지마
어떤 약속도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무엇보다 더 소중한
너의 존재 위 너의 존재 위
너의 존재 위에
이 노래에서만 내가 눈물을 흘렸던 건 아니다. 일전에 들어보고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곡인 <Be Mine>을 들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핑-
아니 왜 눈무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노래를 들을 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떠오르면서 아, 내가 정말 잘해야지, 최선을 다할거야, 라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내 삶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눈무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가끔 화내고 싸워도
진심이 아니란 건 아니까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우린
어느새 또 서로를 용서하니까
사랑한다고 그대에게
내가 미안한 게 너무 많다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늘 거기 있는 줄 알았지
그대가 떠나기 전엔
Be mine again, again
그대에게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너무나 많아
아직 아직은 아니야
함께 있어야 해 보내줄 수 없어
말로 다하지 않아도
무슨 말 하려는지 아니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린
이렇게 또 서로를 닮아가니까
사랑한다고 그대에게
내가 미안한 게 너무 많다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다 알고 있는 줄 알았지
그대가 떠나기 전엔
Be mine again, again
그대에게 아직 들려주지 못한
노래가 너무나 많아
아직 아직은 아니야
함께 있어야 해 헤어질 수 없어
아직 혼자 남아있어
이렇게 보낼 순 없어
쉽게 단념할 수 없어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가고 있어
이렇게 끝낼 순 없어
되돌릴 수 없는 실수로 널
기억하도록 남겨두지 마
Please be mine again, again
그대에게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너무나 많아 아직
아직은 아니야 함께 있어야 해
보내줄 수 없어
Again, again
Be mine again, again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심규선은 가사에서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너무나 많아, 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잘해내는 모습을 건강하게 보여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이 노래에 크게 공감이 됐고, 그러다보니 눈무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다가 누군가 진심으로 만든 노래에 또 내 진심을 다해 공감하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무척이나 자랑스러워졌다. 아, 나는 예술을 그 자체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야, 멋져, 잘났어, 근사해....라는 자기자랑으로 마무리. -0-
그러면서 영화 [타인의 삶]에서 '비즐러'가 타인의 삶을 도청하다가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 소리에 눈물을 흘리던 장면도 생각났다. 아, 나여....위대한 나여....
콘서트가 끝나고난 후, 같이 관람했던 친구와 술집엘 갔다. 와인을 팔길래 와인을 한 잔씩 시켜두고는 오늘 콘서트 어땠냐고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초반에 몰입이 힘들었다고 했는데, 중간부터 되게 좋았다고 했다. 아, 사람들 느끼는 거 다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는 <담담하게>를 듣는 게 너무 좋았다며, 어쩌면 이렇게 시디 틀어둔 것처럼 노래를 잘하는지 모르겠다고 정말 좋았다고 했다. 막차를 놓칠까봐 초조하게 각자의 지하철을 타고서는 또 문자메세지로 얘기했다. 친구는 좋은 공연이었다고 여운을 느끼더라. 심규선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지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터라, 친구가 콘서트를 보고 좋다고 생각하는 게 나로서도 무척 좋았다. 콘서트 이후부터 지금까지 <너의 존재 위에>를 여러번 들었다. 심규선 역시 자기가 좋아서 자기 감정을 담아, 자기 생각을 담아 노래를 만드는 거겠지만, 내가 그 음악을 듣고 좋아한다. 그 음악을 듣고 공감하고 가끔은 눈물이 핑돈다. 아, 예술이여...
어쨌든 여러차례 눈물이 핑- 돌던 날이었다.
새삼 여동생의 공감능력이 무척이나 고마웠던 날.
나는 늘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 죄책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인간이 다른 인간과 어울려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수단은 공감능력인 것 같단 생각을 한다. 결국 문제는 공감능력이다.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 관심있게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을 대화상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월요일은 다른 날보다 유독 피곤해서 커피 한 잔을 사가지고 회사에 도착했다. 신간이 뭐 나왔나 둘러보다가 아아, 지난주에 책을 지르지 않기를 잘했구나 생각했다. 뭐 이렇게 궁금한 책이 많아. 역시 책과 내가 만나는 것도 타이밍, 운명 같은 것인가. 장바구니에 들어간 책들중 몇 권을 빼고 다시 몇 권을 새로 넣어야겠구먼..
남편의 아름다움... 궁금하다. 남편은 아름답습니까?
- 페이퍼 제목은 심규선의 노래 <너의 존재 위에> 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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