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노래를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고, 텔레비젼에서는 한 팝페라 남자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내용은 대략 '그대가 떠난다면 내가 슬플(아플)것이다', '그대가 떠난다면 내 마음도 가져가라', '그대가 떠난다면 고이 보내드리겠다' 인것 같았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꿈속에서 나는 아이폰을 찾아 시리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시리야, 저 노래 뭐야? 라고. 그러나 노래에 대해 묻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아직 머릿속에 노래를 기억하고 있던 나는 일어나자마자 폭풍 검색을 했다. 그대가 떠나신다면, 그대가 떠난다면 등등의 검색어를 네이버와 구글에 넣어봤지만, 이남이의 노래와 오래된 가곡만 나오더라. 아아, 팝페라 가수가 부른 거였어, 되게 좋은 노래였어. 이런 노래들이 아니었어... 그렇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답답했다. 가수 이름도 노래 제목도 또 정확한 노래 가사도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나는 그 노래를 찾지 못했다. 슬픔...
이 노래 없는 노랜가? 꿈에서만 들은 노랜가? 꿈에서 어떻게 들었겠어? 아는 노래니까 나오지 않았겠어?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슬픔.....
어제는 대단한 딥빡침이 찾아왔다. 경비로 일하시는 아버지가 매주 한 번씩 인터넷 강의를 들으셔야 한단다. 나의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도 모르시는데...아니, 나이 많은 어르신들한테 이걸 필수적으로 들으라 하니 너무한게 아닌가 싶었다. 스맛폰 사용 방법도 익히셨으니 뭐 컴퓨터 켜고 끄는 거야 가르쳐 드린다면 시간이 걸려도 익힐 수 있긴 하겠지만, 그건 우리 아버지의 경우고, 자식들과 함께 살지 않는 노인들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런 경비 아저씨들이 수두룩하다던데...
여튼, 그렇게 아버지 교육 1주차를 처음 듣게 해드리는데, 듣기 전과 듣고 나서 질문이 나온다. 답을 해서 인증을 하는건데, 강의를 듣기 전과 듣고나서 테스트를 하는 거다. 강의는 대략 20분 못되어 끝나고 나는 강의 동안에만 자리를 비우고 아버지께 들으시라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 문제들이... 하아- 딥빡침을 몰고 온거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범죄 전문 용어에, 심지어 그 용어에 이름을 붙인 사람의 이름은 영어로만 표기했더라. 내가 두 번 읽어도 이해 안되는 어려운 문장을 어떻게 아버지가 이해한단 말인가. 질문이 이해가 안되는데 답을 어떻게 해. 내가 하도 빡이쳐서 그때 캡쳐 한다는 걸 까먹었다.. 그 문장들을 여기에도 올려야 하는데..여튼, 문제를 아버지랑 두 번 읽어보다가 소리내서 크게도 읽어봤는데도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아버지 이 말이 이해가 돼? 했더니 아버지가 욕을 하시며 하나도 모르겠다시더라. 하아- 나도 모르겠는데 씨발.. 이걸 무슨 교육이라고 아놔...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는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 하는 게 아닌가. 범죄 예방 교육 이런거 하는 거던데, 취지가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지 않나. 그거 멀뚱멀뚱 앉아가지고 듣기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거기에 들었음 인증한다고 해서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고뭔 말인지도 모르는데..아 이사람들 진짜 .. 이거 누가 만든건지... 경비아저씨들의 나이와 근무시간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걸 1도 이해하지 못한 행위가 아닌가. 배려도 없고 상식도 없고 .. 그래놓고 우리는 교육을 시켰고 그들은 교육을 받았다..같은 소리들을 지껄여대겠지.. 아 딥빡침이 몰려온다.. 혼이 비정상이 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그리 순간순간 행복을 잘 느끼는지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고 또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행복한 순간이 잘 찾아오는 거다. 사람들은 도처에 많으니.
최신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행복으 쉽게 설명한 전문가의 책이 있다. 서은국 교수의『행복의 기원』이다. 그는 미국에서 오래 연구한 심리학자로, 인간이 느끼는 행복에 관하여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서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돈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에게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핵심 과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활동, 즉 동료 및 이성과 어울리는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어 이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p.51)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이런 모든 것들이 내 행복에 닿는 길이어서 그런 것이다. 서은국 교수의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나는 불행하고 짜증난 것에 대해 얘기하는 데 더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좋은 일은 없나? 순간 순간 좋은일이 많이 있을텐데? 라고 의문을 갖곤 했었는데, 그건 내가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그랬는가 보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찾기 때문에 더 자주, 더 빈번하게 행복을 느꼈었는가 보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수시로 느끼지만, 그러므로 나는 인간으로부터 서운함과 속상함도 느낀다. 어쩔 수 없다. (잠시 절망중)
이 책의 저자 문유석은 현직 판사이다. 신해철보다 나이는 한 살 적단다. 아마 어딘가에 칼럼을 기고하는 모양인데, 책을 읽다보면 그가 독서도 굉장히 많이 하고 영화도 열심히 보는 사람임을 알겠더라. 그래서 그로부터 많은 사색을 하고 또한 약자의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어느 정도 명예나 힘을 지닌 사람이 하는 짓이라는 건 갑질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그런 사람이 주변에도 있다), 이렇게 회식도 싫어하고 술도 잘 못마시고 동굴에 숨고 싶어하면서도 소소하게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하는 것이 내 주변인물 같다 느껴져서 좋다. 게다가 대체적으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과 의견을 말해준다. 영화 [위플래시]에 대해서도 그랬다.
'이런 교수법이 허용가능한 것인가? 학생의 재능을 끝까지 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럴 필요도 있는 것인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으로 곧장 연결시키면 곤란하다고 본다. 당연히 허용 안 되지!
그렇게 몰아붙인다고 다 경지에 오르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아도 경지에 오르는 이도 많다. 천재, 광기, 극한의 노력, 악마와의 거래 등은 매력적인 서사의 소재일 뿐이다. 악마와의 거래를 언급하고 보니 이 영화에서 광기 어린 연기를 보여주는 교수 역의 J.K. 시먼스가 선량하고 내성적이던 주인공을 음악적 성공에 미쳐 모든 걸 내던지도록 몰아붙이는 과정은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의 거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성취,성공에의 열망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나는 저만큼 충분히 노력하고있는 걸까?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는데……'라는 식의 자기계발 강박증으로 소비하는 것은 위험하고 유해한 감상법이라고 본다. (p.44-45)
아직 다 읽진 못했고 몇몇 부분들엔 고개 끄덕이며 동의하고 공감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는 경향은 심지어 과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신념의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선천적인 양성 간의 차이 일체에 관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성차별이라며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러니까 당연한 거다'가 아니라, '그러니까 더더욱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우선 정확히 우리 존재와 그 작동 원리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성의 성욕이 본능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성범죄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러니까 더더욱 그로 인한 위험성을 통제하기 위한 정교하고 강력한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p.199)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알겠지만, '남성의 성욕이 본능이다'라는 전제가 틀렸다. 남성의 성욕이 본능이듯이 여성의 성욕도 본능이다. 나는 남자와 여자의 성별에 신체적 차이가 없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평균적으로 키가 크다는 것, 힘이 더 세다는 것등은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다'는 그것과 다르다. 여성의 성욕도 본능이다. 남자가 여자랑 자고 싶은 것처럼 여자도 남자랑 자고 싶다. 다만 어릴때부터 여자들에겐 그걸 감추도록 하는 교육이 더 많이 실행되어져 왔다. 어릴때부터도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란 말을 듣고 자라고, 여자들은 그래선 안되는 것 같은, 그러면 음탕한 여자가 되는 것 같은 환경이다보니 자신의 성욕을 드러내는 여자들의 수가 현저히 적을 뿐이다. 어쩌다 여성도 성욕이 있다, 강하다는 식의 발언을 할라치면, 그걸 잽싸게 잡아서는 성희롱으로 연결 시키려고나 하고. 그러므로 남성의 성욕이 본능이다 라는 것은 그렇게 교육받고 자라왔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성욕으로 말하자면, 결코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길 자신 있다구!!
맥클린톡은 수컷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넓을 경우, 암컷들은 수컷이 삽입한 뒤 펌핑을 하는 중간에도 밀착되었던 몸을 빈번하게 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교미가 너무 빨리 끝나지 않도록 조정한다는 의미였다. 원숭이나 쥐를 비롯한 동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수컷이 사정할 때까지 밀착과 교미 그리고 분리와 재밀착을 여러 번 반복한다. 따라서 실험이 보여준 것처럼, 교미 과정을 길게 연장하고 싶은 암컷은 다른 방법으로는 수컷의 교미 시간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교미를 중단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모든 행동들, 수컷을 유인하고 교미 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행동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의미한다. 바로 암컷의 의지와 성욕이다. - 대니얼 버그너, [욕망하는 여자] 83쪽
미나는 무대에서 또 다른 불균형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시버스가 피험자들에게 발기하지 않은 나체의 미소년이 해변에서 돌을 던지는 장면을 보여준 뒤, 혈류측정기를 통해 발견한 것과 일치하는 점을 명료하게 짚어냈다. "여성의 몸은 흥분했을 때나 아닐 때나 똑같이 보이죠. 반면에 발기되지 않은 남근은 곧 성욕이 일지 않았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몸은 언제나 가능성, 즉 섹스에 대한 의사를 품고 있어요." 그리고 여성이 품고 있는 그 의사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대니얼 버그너, [욕망하는 여자] 108쪽
초반에 신해철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신해철을 좋아하는 판사라니, 어쩐지 좀 좋다. 신해철을 좋아한다면 어쩐지 세상을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거라는...그런 선입견이 내게는 있다. ㅎㅎ 신해철을 좋아하는 판사라니, 좋은데? 하면서 읽고 있다. 수시로 책을 읽는 판사인 것도 좋다. 무엇보다 사소한 것을 고민하려고 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말'에 대해서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 역시 계속 생각했다.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p.136)
돌이켜보니 나는 세 문을 거치지 않은 채로 말한 적이 아주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저 세 문을 거치지 않고 내게 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리고 그럴 때 나는 바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혔으며 상대 역시 내게 상처를 줬던 것 같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기 전에 그것이 참말인지, 필요한 말인지, 친절한 말인지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 겠다. 일상적인 대화 자체를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타인에게 혹여라도 타인이 부탁하지 않았던 말을 하게 될 때 그래야겠다. 물어볼 때 대답하는 건 조언이지만 묻지도 않았는데 얘기하는 건 잔소리라고 하던데, 대체적으로 타인에게 향한 말들중 대부분이 조언이란 껍데기를 둘러 쓴 잔소리가 아닐까. 사실 저 '세 문'에 대한 예시로 뚱뚱한 사람에게 충고하는 말을 예시로 들었던데, '진심으로 친구의 비만을 걱정해 충고하고 싶다면 말을 잘 골라서 친절하게 해야 한다' (p.136) 는 것도 나는 좀... 뭐, 그렇다. 친구의 비만에 내가 친절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점은 대부분 당사자가 가장 잘 인식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할까 묻지 않는 이상 비만에 대해서도 내가 먼저 나서서 어째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친구의 비만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안들에 대해 진심으로 상대를 걱정해서 말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게 옳고 바르다는 데서 오는 강압이 아닐까 싶은 거다.
토요일에는 여러명의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대낮부터 마셔대가지고 주말 내내 온 몸에 술이 돌아다니는 것 같더라. 몸을 짜면 술이 나올 것 같아. 술을 많이 마시면 몸 안의 알콜 기운을 뽑아내기 위해 땀을 흠뻑 내고 싶어지는데, 주말에 비가 와서 산에도 못갔고, 조카들이 와서 사우나도 못갔고, 귀찮아서 운동도 안했더니....아직도 몸 안에 알콜이 싹 빠진 것 같지가 않아. 덕분에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사흘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있다. 아마 오늘도 계획대로라면 안마실 것이다. 내일은...초큼 마시게 되겠고, 모레는 퍼마시게 되겠지만... -0-
글이란 게 생각나면 그때그때 바로 써야지, 나중에 쓰겠다고 생각하다보면 다 까먹게 된다... 쩝....
길 건너 통인시장이 보였다. 집에 있는 애들 생각이 나서 복잡한 시장통을 걸어 명물 기름떡볶이를 한 움큼 샀다. 그런데 등뒤로 한 여자분이 뛰어가며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윤아, 윤아." 그러다 어느 신사분과 부딪혔나보다. "죄송합니다, 아이를 잃어버려서요. 죄송합니다." 그러곤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나는 내 새끼 줄 떡볶이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떠올렸다. 이 범상한 무심함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것들을 말이다.
뒤늦게 나는 시장통을 뛰어 쫓아갔다. 아이가 멀리 가지 않았기를 속으로 빌고 빌었다.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는 떡볶이집들을 지나고, 도시락을 든 채 반찬을 골라 담는 사람들을 지나, 시장통이 끝나는 곳에 그 여자분이 인형같이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꼭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애를 찾으셨네요. 다행이에요." 여자분은 환하게 웃었다. "네, 고맙습니다."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278-279)
송교수는 사실 이공계에 가는 것이 맞지 않았나 할 정도로 수학, 과학을 좋아하고 잘했다. 나같이 썰, 구라, 뻥, 요령아 강한 전형적인 문과생과는 다른데 왜 법대에 갔는지…… 그는 법대 1학년 때 물리학과에 가서 양자역학 수업을 듣고, 경제학과에 가서 미시경제학 수업을 듣는 등 희한한 행동으로 화제가 되곤 했다. 설마하니 정말로 공부가 재미있었나보다. (p.78)
발전기의 특징은 균등 분배를 지향하는 토지개혁, 귀족의 세부담 증가, 국가 직영 최고교육기관 확대 및 공정한 과거제도를 통한 신진 엘리트의 등용에 있다. 패망기의 특징은 소수 귀족의 토지 사유화 증가로 인한 대농장화, 백성의 각종 세 부담 증가, 귀족 자제 중심의 사학 증가, 고위 관리 자제를 특채하는 문음, 음서제도 확대를 통한 지배계급의 세습 구조 공고화, 과거제의 붕괴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병리 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민란이 일어난다. (p.81)
인간의 마음은 아직도 수십만 년 전 원시시대의 자연선택 과정에서 형성된 뇌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 시차는 그리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끌린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동료 인간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라는 점은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기계가 발전해도 인간은 대체불가능한 자원일 수 있다. (p.192)
문제의 다층적인 구조를 직시하자고 하면 대뜸 비겁한 양비론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양비론 아니라 삼비론 사비론이더라도 맞는 건 맞는 거고 아닌건 아닌 거다. 재판도 양비론이다. 손해배상 책임을 정할 때 피해자측의 과실도 참작한다. 책임의 비율을 달리할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어느 한쪽마닝 전적으로 옳고 전적으로 틀린 경우는 없다. (p.203)
팔짱 낀 채 `한계` `본질` `구조적인 문제` 운운 거창한 얘기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어떤 통속적인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아래 대사를 듣고 그 통찰력의 깊이에 놀란 일이 있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Dare to be an optimist.(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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