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정도 만났다. 나는 딸을 임신중이었고, 11월에 분만 예정이었다. 우리는 잡담을 나눠보려 했다. 매번 수업이 끝날 때마다 이탈리아어 선생님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게 부족했던 단어들을 죽 나열해서 건넸다. 나는 부지런히 목록을 복습했다. (p.32)

 

 

 

 

 

 

 

 

 

 

 

 

 

 

임신했을 때 태교로 클래식을 듣는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것에 대한 얘기는 익히 들어왔다. 뱃속에 있는 아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만한 무엇을 한다는 것은 결국은 자신에게도 좋은 것을 의미할 터. 나는 줌파 라히리의 신간인 산문집을 읽으면서, 아, 외국어 공부도 한 방법이겠구나, 했나.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를 배우는데, 일주일에 한 번 개인레슨을 받는다. 임신중인 상태에서 이탈리아어 공부를 했다는 저 구절을 읽는 순간 뭔가 되게 짜릿한거다. 이보다 더 근사한 태교가 어디있을까 싶은 거다.

 

나는 지금의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공을 대학시절 공부했다. 아니, 졸업했다. 공부는 무슨... 그때 당시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외국어를 전공했다면 정말 좋았을 거다. 외국어로 취업을 하는 게 아니어도, 내가 공부한 외국어는 내 것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까. 최소한 외국어로 쓰여진 책을 읽는 행위 같은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외국어 공부가 가장 남는 공부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 대학시절 전공이 후회스러웠던 거다. 한편으로는 대체 왜 외국어 공부가 정말 좋을거란 생각을 이렇게나 늦게 하게 된걸까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고등학생때 그런 생각을 했다면 나는 다른 전공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거고, 그렇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을지도 모르는데... 뭐,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전공으로 하지 않았지만 취미로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되겠으나, 뭐, 취미로도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 나를 보노라면, 역시 나는 그냥 외국어 잘할 사람은 아닌걸로... 어쨌든,

 

그런 외국어를 태교로 하다니, 너무 근사한거다. 아, 물론 줌파 라히리는 태교로 외국어를 공부한 게 아니다. 자신이 너무나 이탈리아어 배우기를 원했고, 열심히 하고자 했으며, 그때 임신중이었던 거다. 이건 정말 완벽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임신중이라니..

 

 

딸아이가 태어나고 그렇게 4년이 흘렀다. 나는 또 다른 책을 끝냈다. 2008년에 책을 발간하고 나자 책 홍보차 이탈리아에 와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다시 준비를 위해 선생님을 찾았다. (p.33)

 

 

아, 또 다른 책을 끝낸것도 근사한데, 책을 발간하고나서 책 홍보차 외국에서 와달라고 하다니...너무 멋지다. 저런 삶은 어떤 삶일까? 감히 나에게는 오지 못할, 그런 삶이 아닌가. 책을 발간했는데 외국에서 와달라고 하다니... 외국에서 와달라고 했다면 내가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는채로 가도 됐을 것이다. 내가 가겠다, 라고 한게 아니라 상대쪽에서 와달라고 한것이니. 그러나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를 다시 공부한다. 어쨌든 줌파 라히리는 결국은 이탈리아어로 인터뷰를 하게 되고, 연설문을 쓰게 되고, 단편을 쓰게 된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였다. 종국에는 이탈리아로 온가족이 이사를 가서 더 자연스런 이탈리아어를 습득하게 되고 일기조차 이탈리아어로 쓰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뭐랄까, 다른 세계의 삶으로만 느껴졌다. 나 혼자라면 그렇게 부담스런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배우고자 하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이사가는 것이. 그러나 나에게 가족이 있다면 그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닐텐데. 남편과 아이들의 환경도 변화하는 걸 의미하는데, 가족들은 줌파 라히리와 함께 이탈리아로 이사온다. 양재동에서 천호동으로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이사하다니...이건 대체 어떤 삶인걸까?

 

소설이 아닌 산문에서 만나는 줌파 라히리는 굉장히 예민하고 까다롭다. 그러나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싫은 게 아니라, 그래서 좋다.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할 줄 아는 언어들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그래서 그녀가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짧은 산문안에 그녀의 예민함과 까다로움이 고스란히 담겨있지만, 또한 그녀만의 성찰과 고민도 담겨있지만, 나는 줌파 라히리를 소설에서 만나는 편이 훨씬 좋다. '그녀만의' 고민 보다는 다른 인물들과 얽힌 사람들, 그 관계속에서 발생되는 감정들을 읽는 편이 훨씬 더 근사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작가이기 때문인지 혹은 그 전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 작가가 경제적으로 여유롭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진 않는데 산문을 읽노라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서, 그게 조금 별로였다. 내게는 이런 쪽으로 열등감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인물들을 마주하는 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서도 어떠한 열등감도 혹은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게 하는 인물은, 여태 내가 살면서 본 인물들중, 배트맨 밖에 없었다. 배트맨 포에버!

 

 

이 산문집에는 그녀가 이탈리아어로 쓴 두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 중에 한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처음 쓴 책의 초고초럼 자신의 인생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언어의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식으로, 자신도 다른 형태로 만들어내고 싶었다. 아름다운 드레스 자락 솔기에서 풀려나온 실오라기를 가위로 싹둑 잘라내듯, 때때로 이 땅에서 자신의 존재를 없애고픈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자살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세상과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으므로. 오후 늦게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주변 광경을 관찰하길 좋아했다. 초록빛 바다, 노을, 해변에 널려 있는 조약돌을 좋아했다. 가을에 나오는 빨간 배의 단맛, 겨울밤 구름 사이에서 빛나는 둥근 보름달을 좋아했다. 침대의 포근함, 한번 잡으면 멈출 수 없이 읽게 되는 훌륭한 책을 좋아했다. 이런 것을 즐기기 위해서 영원히 살고 싶었다. (p.61)

 

 

이런 것을 즐기기 위해서 영원히 살고 싶었다, 라는 구절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나는 사람들이 늘상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 속에서 기쁨을 찾고, 그 기쁨으로 인해서 삶은 한 번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진짜 너무 좋다. 누군가가 그런 사소한 기쁨들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는 게 좋고, 또 누군가가 내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또한 작은 기쁨이 되는 삶을 살고싶다.

 

 

토요일에 친구 두 명과 함께 [타버나 드 포르투갈]을 다녀왔다. 와인을 한 병 시키니 사장님께서 '올리브 좀 드릴까요?' 물으시더니 네, 라는 대답에 올리브를 조금 내주셨다. 여기 올리브는 진짜 맛있다! 같이 간 일행중  친구2는 자기가 여태 먹어본 올리브중 최고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했다. 우리 셋은 포르투갈을 함께 다녀왔었는데 모두 다함께 입을 모아 올리브도 포르투갈보다 여기가 더 맛있고 프란세진야도 포르투갈보다 여기가 더 맛있다고 했다. ㅋㅋㅋㅋㅋ 올리브는 메뉴에 있는 곁들이라 친구들과 왔을 때 주문해 먹은 적이 있었는데, 지난번 칠봉이랑 갔을 때도 와인을 한 병 주문했기 때문인지 올리브를 그냥 내주셨더랬다. 그때도 진짜 짱좋았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음식을 다 먹고 계산하면서 프란세진야 포르투갈보다 여기가 더 맛있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내 방 침대에 누웠다. 전날엔 내 방이 아닌 곳에서 또 침대가 아닌 곳에서 잤고 게다가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에 침대에 눕는 게 아주 오랜만이었는데, 와- 신음소리가 날만큼 좋더라. 흑. 내 방 침대에 눕는 게 이렇게나 좋구나! 얼마나 좋았냐면, 남동생이 맥주나 한 잔 하자, 라고 했는데도 싫어 나 잘래, 라고 하고 거절할만큼 좋았던거다. 크- 그 기분이 잊혀지질 않아 오늘도 또 달콤하게 눕고 싶어, 일요일이지만 이제 바로 침대에 가 누워야겠다. 일단 배트맨컵에 따라둔 기네스는 다 마시고나서...

 

 

그런데, 역시 복숭아는 황도보다 백도가 더 맛있는 듯. 오랜만에 황도를 사와서 먹었는데, 달긴 했지만, 역시 복숭아는 백도! 다음부턴 백도를 사야겠다. 백도에게로 돌아가겠어!

 

 

어제는 친구들을 만나서 충동적으로 셋 모두 책장 정리하고 중고 팔고 .. 하는 등의 얘기를 했는데 얘기 도중에 나는 당장이라도 집에 가서 책장 정리를 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오자마자 샤워한 후에 하루키 책장에서 구판인 책들을 모두 꺼내어 중고샵에 등록했다. 한 이십권정도는 등록이 됐는데 나머지는 안되더라. 그것들은 방출했다. 그래서 책장 한 칸을 비워냈고, 하루키 책장은 두 칸에서 한 칸이 되었다. 나는 이걸 중고로 팔아 들어온 돈으로 개정판을 사서 꽂아두고 싶었는데, 중고에 등록한 게 무슨 3만원정도 밖에 안돼..이거 가지고 개정판은 두 권.. 살 수 있으려나... 사십권 내보내고 두 권...들어오나.... 그래서 여튼 그 돈으로는 개정판 안사기로 했다. 하루키 개정판은 그러니까 나중에, 돈이 너무 많아서, 아 이 돈 다 어떻게 쓰지? 할 때쯤에 사서 꽂아두어야겠다.

 

과연... -_-

 

 

혹여라도 내가 아이를 갖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나도 외국어 공부를 해야지.

 

 

과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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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9-2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 라히리는 사놓기만 하고 아직은 모르는 작가예요^^;;; 요전에 다락방님 페이퍼에서 이탈리아체류? 에세이 나왔다는 걸 알았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감탄@_@; 하루키책 감사해요.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는데 구판은 살 수 없어서 신판 사놓고 왠지;; 섭섭해하고 있었거든요.^^

다락방 2015-09-21 09:5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짧아서 금방 읽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소설과는 달리 문장이 짧달까요. 아마도 외국어로 써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길지도 않은 문장으로, 모국어도 아닌 글로 본인의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을 다 드러낼 수 있더라고요. 아니, 사람의 성향이란 본디 어떤 글로도 다 잘 드러나는 것일까요?
줌파 라히리는 저의 패이버릿 입니다, 문나잇님. 흣 :)

단발머리 2015-09-2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아침에 다 읽었는데 금방 술술 읽히더라구요. 작가 본인의 마음이나 생각이 더 직접적으로 전해져 전, 웬지 줌파 라히리와 더 친해진 느낌이예요. 나만...?!? ㅋㅎ

다락방 2015-09-22 09:04   좋아요 0 | URL
저는 줌파 라히리가 꽤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까다롭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싫다`가 아니라 뭔가 그런 점 때문에 그런 소설들을 쓸 수 있었겠구나 싶어서 좋았어요. 흣.

감은빛 2015-09-2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미로 독일어를 배우려고 했다가 포기.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열심히 했다가 포기.
그래서 일본어는 배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즐기듯이 듣고 있어요.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가인데,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읽어야 할 책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기만 하네요 ㅠㅠ)

다락방 2015-09-22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취미로 독일어 배우려고 시도 했다가 ㅋㅋㅋㅋㅋㅋ 그냥 하루 강의 듣고 포기 ㅋㅋㅋㅋㅋㅋ 외국어는 진짜 끈기가 있어야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요.

음, 그런데 줌파 라히리를 감은빛님이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어요. 좋아하실까? 갸웃, 하게 되네요.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늘어나는 건 좋은건가요 나쁜건가요 ㅠㅠㅠㅠㅠ

hellas 2015-09-22 0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어 취미로 배우기는 정말 좋은 계획입니다. 매번 혼자 슬그머니 시작했다 슬그머니 게을러지고 슬그머니 잊혀지다 화들짝 다시 시작하는 맛이랄까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5-09-22 09:06   좋아요 0 | URL
좋은 계획이지만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는 계획이죠 ㅋㅋㅋ 제 경우엔 의지박약이라 ㅋㅋㅋㅋㅋ 그래서 아직도 할 줄 아는 외국어가 하나도 없는가 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아, 뭔가 다른 거 좀 다시 해볼까...라고 늘 생각만 해요, 생각만. ( ˝)

Forgettable. 2015-09-23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진다면 좋겠네요. 어찌나 아름다운 언어인지! ㅋㅋㅋㅋㅋㅋ (뻥) ㅠㅠ

다락방 2015-09-23 09:33   좋아요 0 | URL
스페인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질어질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페인어라.......만약 제가 외국어를 공부하게 된다면 아마도 독일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냥 그렇다는거지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