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래식 음악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취미도 없다. 지금이야 비탈리의 샤콘느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다. 아직도 내게 클래식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사람들의 취향일 뿐이다. 일전에 <무릎팍 도사>에서 '장한나' 였던가, 나와서 그런 얘기를 했다. 다들 클래식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귀에 익숙한 곡들은 대부분 다 클래식이라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클래식은 내게 멀다. 아주 가끔, 클래식과 친해지기 위해서 어떤 앨범들을 들어보지만, 그렇다해도 친해지게 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클래식에게 마음을 아주 닫아버리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 속의 여자주인공 루이자 역시 클래식에 마음을 닫아놓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디 클래식 뿐이랴, 그녀는 사방팔방 이것저것에 마음을 닫아놓고 살고 있었는 걸.
지휘자가 앞으로 나와 단상을 두 번 톡톡 두드리자 거대한 침묵이 내리깔렸다. 그 정적이 느껴졌다. 한껏 기대에 차 있는 객석이 느껴졌다. 그때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리자 갑자기 만물이 순전한 소리가 되었다. 음악이 실체가 있는 사물처럼 느껴졌다. 음악은 내 귀에만 머물지 않았고, 온몸을 타고 나를 에워싸고 흐르며 온 감각이 공명하게 했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리고 음악으로 인해 내 상상력이 뜻밖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앉아 있자니 몇 년 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해묵은 감정들이 나를 덮쳤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상이 내 몸에서 술술 뽑아져 나왔다. 마치 나의 지각 능력 자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쭉쭉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멈추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 영원히 앉아 있고 싶었다. (p.233-234)
우리는 객석이 텅 빌 때까지 기다렸고, 그 다음에 내가 휠체어를 밀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무탈하게 윌을 차에 태웠다. 별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아직도 음악의 여운이 남아 있었는데, 그게 희미해질까 아쉬웠다. 계속 음악을 돌이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온전히 연주에 몰입하던 윌의 친구처럼. 음악이 마음속에 꼭꼭 잠겨 있던 감정들을 풀어내고 작곡가조차 예상치 못한 곳으로 떠나게 할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어디를 가나 잔향을 끌고 다니는 것처럼 음악은 주변 공기에 깊은 상을 새겼다. 객석에 앉아 한참 동안 곁에 윌이 앉아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었다. (p.235)
그녀는 클래식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지만, 그녀의 고용인인 '윌'이 그녀에게 꼭 한번 클래식을 들어보기를 권했고, 루이자는 윌에게 '당신이 같이 가준다면' 연주회에 가겠노라 했다. 그리고 가서는, 옆에 앉은 윌을 잊을만큼 클래식에 흠뻑 빠진다.
클래식이란 말이 나와서 클래식을 감상하게 되는 루이자가 인상 깊어 이 부분을 인용했지만, 사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고.
소설로 치자면 '코맥 매카시'가 정통 클래식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이 말은 즉, 소설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이 읽기에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는거다. 반면에 소설(혹은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사람들이 접하기 쉬운 '팝송'같은 소설들이 존재한다. 빠르게 책장이 넘어가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몰입도 되는. 소설을 잘 읽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처음 소설을 추천할 때는 당연히 팝송 같은 소설을 추천하게 되는데, 이 책, 《미 비포 유》는 '엄청나게 힛트칠만한' 팝송 같은 책이다. 재미도 있고 눈물도 흘리고 잠시도 손에서 놓고 싶지가 않아진다. 물론 이 말은, '소설로서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 책이 완벽하지 않다'와는 다르다. 내가 완벽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뿐, 이 책은 이 책의 북트레일러에서 나온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대단하며', '인생을 바꿀만한' 책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팝송을 부르는 가수의 모습을 보고 금세 사랑에 빠져 인기스타가 만들어지듯이, 이 소설속의 주인공 역시 흠뻑 빠지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때까지, 윌을 사랑했다.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단언했다. 흥분해서 읽다가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이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우선 이 책이 '지나치게 소설적인' 면들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적인 면들이라고 해서 현실하고 완전히 동떨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사지가 마비된 환자들 중에는 그들을 아낌없이 간호할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경제적 여유를 가진 자들이 존재할테니까. 게다가 주인공 '윌'은 사지가 마비되기 전까지 엄청나게 천재적인 경영인이었고, 그래서 (원래 집도 부자인데) 돈도 많이 벌었고, 온 세계 방방곡곡 여행을 했으며, 몸을 움직이는 거친 액션들도 즐겼다. 잡지에서 바로 걸어나온 것 같은 초절정 미녀들과 섹스를 즐긴 것은 두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까지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몇 프로나 될까? 게다가 이제는 그 모든걸 할 수 없는 남자를 간호하기 위해 들어온 여자주인공 '루이자'는 거의 한 집안의 가장이며 집 근처 8km 이내로는 떠나본 적도 없는 여자이다. 이런 스토리는 사실 지나치게 통속적이지고 '극의 재미'를 더한듯 느껴져 썩 흡족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책의 뒷표지에는 이 책에 대한 극찬으로 가득하지만, 나는 어딘가에서 본 '안락사'라는 단어가 잊혀지질 않아, 이 이야기가 비극이 될거라고 짐작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주인공 루이자와 윌이 사랑에 빠지는 동안, 그 사랑이 내것이 되어 이 이야기가 비극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미 '안락사'란 단어를 본 이상 결말은 불보듯 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나는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거다. 루이자가 윌에게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었던 것처럼.
자신의 몸을 이용해 세상 모든걸 누리고 경험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의 몸으로 이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게 어떤 걸지, 내가 아무리 이해하고 상상하려고 해도, 그 절망감은 내 상상 이상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이만 끝내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안 이상, 그에게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의 삶을 사는 것은 그이지, 내가 아니니까. 내가 아닌데, 내가 그 고통을 겪는 게 아닌데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일이 몹시 힘들거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를 설득해보고자 하지만 결국 그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일, 그의 마지막에 옆에서 그런 그를 보아주는 일. 그것은 독자인 나를 눈물나게 하는 것보다, 어마어마한 크기로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윌을 보면 생각만 해도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벅찬 사랑으로 내 품에 안았던 아기가 보였다. 내가 또 하나의 인간을 창조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처음 만난. 내 손을 잡으려 팔을 뻗던 갓난아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던 꼬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분노로 눈물범벅이 되어 흐느끼던 소년이 보였다. 그 여리던 모습, 사랑,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런데 윌이 나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 건 바로 그것들이었다. 다 큰 남자만이 아닌 그 어렸던 소년, 그 모든 사랑, 그 모든 지난 일들까지. (p.156)
입에 음식을 넣는 것초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는 그가 퉁명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가 루이자를 만난다. 루이자는 그의 눈치를 보며 잘해주고자 하지만 그렇게 몇날 며칠을 퉁명스러운 데야 참을 수가 없다.
"개망나니처럼 행동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말들이 고요한 허공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휠체어가 정지했다.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그가 천천히 돌아서서 나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그의 손은 작은 조이스틱을 잡고 있었다.
"뭐라고 했죠?" (p.82)
아. 으르렁 거리는 루이자, 이렇게 사랑은 시작되는구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된이상 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까 재벌의 뺨을 때리는 뉘앙스랄까. 나한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루이자 클라크'는 자신이 고용된 6개월이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그에게 살아갈 의지를 불러일으키고자 최선을 다한다. 어떤 일들은 좌절을 주지만 어떤 일들은 기쁨을 준다. 그 과정에서 윌과 루이자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야기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루이자는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를 사랑하니, 어쩌면 많은 것들을 극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다.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그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으니, 그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그 결심을 어쩌면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의 고백은 진실했고, 그녀의 사랑 역시 진실했다. 그러나 루이자는 그로부터 '당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된다.
"미안해요. 내겐 충분하지 않아."
나는 그의 손을 내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말하기 전에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는 꼭 정확한 단어들을 골라야만 하겠다는 듯이.
"난 그걸로 안 돼요. 이, 내 세상은, 아무리 당신이 있더라도 모자라. 진심으로 말하지만, 클라크, 당신이 오고 나서 내 삶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어요. 그렇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물러설 차례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괜찮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이 곁에 있다면, 어쩌면 썩 괜찮은 삶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내'인생이 아니에요. 당신이 얘기를 나누었던 그 사람들과 나는 달라요. 그건 내가 원하는 삶과 전혀 다르단 말이니다. 비슷한 구석도 없다고요." (p.471-472)
"하지만 이 휠체어는 내 존재를 규정해요, 클라크. 당신은 나를 몰라요. 진짜 내 모습을. 이 물건이 있기 전에 날 본 적이 없잖아요. 난 내 삶을 사랑했어요, 클라크. 진심으로 사랑했단 말입니다. 내 일과 여행과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모든 걸 사랑했어요. 육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가 좋았어요. 바이크를 타고 높은 건물에서 몸을 던지는 걸 좋아했어요. 사업 거래에서 무자비하게 승리하는 게 좋았어요. 섹스도 좋아했죠. 숱한 섹스들을. 크나큰 삶을 누렸단 말입니다."
이제 그의 언성이 한층 높아져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이 물건에 갇혀서 살 수 있게 생겨 먹질 못했어요. 그런데 의도와 목적에 모두 반해 나를 규정하는 게 이젠 이 물건이 됐단 말입니다. 나를 규정하는 유일한 물건이 됐어요." (p.472-473)
누군가에게 사랑은 필요한 충분 조건, 혹은 단 하나의 유일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고백 앞에,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 두고 살아갈 의지를 다질 수 있다. 이 사람이면 돼, 나는 이 사람이면 살 수 있어, 하고.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사랑만으로 충분하지가 않다. 그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사랑은 있으면 물론 좋지만, 그거 하나만이 나를, 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 아닌 사람. 나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에게 삶은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삶은,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에게 삶은, 모자라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른 게 다 없고 사랑하는 여자만 있는 삶, 그것은 그에게 모자라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그가 그렇게 느끼는 것을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만, 나 역시 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는 '충분하지 않은', '모자란'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 그것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여기서 이제 그만 끝내게 결심하게 하는 그 마음을, 나는 감히 짐작해볼 수는 있지만, 그리고 그 삶이 그의 것이니 결정 역시 그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라면, 나라면, 어떻게든 삶의 끈을 놓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 어쩌면 내가 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내가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되면, 어쩌면 나 역시 절망감에 윌과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으리라.
윌은 끝까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결정 내리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한다. 그래서 루이자에게도 본인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더 많은 것을 배우라고, 더 많은 것을 해보라고 얘기한다. 자신의 동네에서만 안주하는 루이자에게 그는 더 다양한 삶, 더 풍부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사실 나는 그가 이렇게 그녀에게 강하가 권할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말이 그녀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만약 내가 루이자였다면 내 삶에 대해 니가 이러쿵저러쿵 하진 말라고 화를 냈을 것이다. 결국 그의 말을 듣고, 어쩌면 그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가 자꾸 내 삶이 부족하다고 하면 내가 그 말을 듣고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러나,
윌은 루이자가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식구들에게 혹은 윌에게 얽매인 삶이 아니라 루이자 자신만을 위한 삶. 그가 그것을 진심으로 원했기에 루이자도 달라질 수 있었다. 루이자는 그를 만나기 전과 후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고 윌 역시 그녀를 만나고 난 후에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 누군가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어쩌면 미리 다 예정되어져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그것이 더 나은 쪽으로 바뀌는 거라면, 그 순간에는 신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도. 남자를 만나 정착하게 되도 자신을 위해 비상금을 숨겨 두라고 말하는 윌이 무척이나 좋았다. 내 인생을 바꿔놓고, 행운이라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 어떻게든 나 자신을 위해 살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끝내려 한다는 결정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 대체 이것을 어떻게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그를 붙잡고 매달리고 말리고 싶다. 그러나 '나를 위해' 네 삶을 연장하라는 말 역시, 그를 위해서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르겠다.
몇번이나 눈알이 빨개졌다. 지하철 안에서도 핑- 눈물이 고여 힘들었다. 책의 처음부터 그가 자신의 죽음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사랑스러울 때마다 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에게 삶의 의지를 불태워주려는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까 겁이 났다. 루이자가 해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끝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꼭 그만큼 끝을 알고 싶었다.
업무가 시작되기 바로 전까지 이 책을 읽었다. 상사가 출근하기 바로 직전까지. 그래서 나는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달래며 고개를 쳐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의 결정을 존중해야하는것과 그의 결정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하는 것. 그 둘 중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야한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그래도 되는걸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드니까.
"혹시 이런 거 알아요?"
밤새도록 그렇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특유의 눈가에 잔주름이 지는 웃음. 목이 어깨로 이어지는 그 지점.
"뭔데요?"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오로지 당신밖에 없다는 거." (p.388)
아...제기랄. 눈치 보면서 페이퍼 썼더니 힘이 쭉 빠지네.
가끔은, 내가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도 못해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저 388페이지를 읽을 때 그랬다. '밤새도록 그렇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던 적이 없었던것 같다. 일단 밤새도록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싶을 정도로 깨어있기를 원한 적이 없었다. 나는 밤에는 자고 싶어지니까. 상대의 자는 모습 같은거 밤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졸리니까 자자, 가 먼저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니까. 그러고보면 잠든 모습을 마냥 바라봐도 좋기만한건 내 조카를 볼 때 뿐이었던 것 같다. 아..조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