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만남은 주로 술을 통해 이루어졌다. 술을 마시기 위한 만남이기도 했고 만나면 술 말고는 다른 걸 생각해볼 수도 없게 됐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멘붕이 찾아왔다. '음, 그럼 만나서 뭐하지?' 하고. 그렇다보니 친구도 연인도 술을 마셔야만, 술 마시는 걸 즐겨야만 만남이 즐거워졌다. 부담이 없어졌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나도 즐겁고 너도 즐거운 거, 그걸 함께 하자, 할 수 있으니. 간혹 술을 안마시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래도 그 앞에서 나는 술을 마셨다. 단순히 직장 동료와 퇴근길 저녁을 함께 먹는 간단한 만남 조차도 술이 있었다. 밥 먹으면서 술 한 잔. 뭐, 이런걸로.
좀전에, 월요일 아침은 커피의 힘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는 친구의 메신저를 보고, 훗 커피도 안마시던 사람이 직딩이 되니 별 수 없게 됐군, 하고 웃었는데, 그러다 불현듯 '커피를 마시는' 친구를 이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보고니 나는 약속을 잡을 때 '우리 언제 술이나 한 잔 하자' 라든가 '소주나 일 병 하자'라고 했었는데, '커피나 한 잔 할래?' 가 되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싶은거다. 이것도 나름 낭만적인데? 뭐해요? 차나 한 잔 할래요? 하고는 자몽에이드를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싶은거다. 물론 그 전에 밥은 꼭! 먹어야겠지만. 배고프면 난..힘드니까.......
앗. 이런 글을 쓰고 있었는데 마침 친구로부터 '아이스 까페라테' 기프티콘이 도착했다. 아니 뭐 이런 축복받은 우연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차 한 잔에 대한 얘기를 하는줄을 어떻게 알고! >.<
이제부터는 이 책의 스포일러가 팡팡 쏟아질 것이다.
루이자는 거의 모르는 사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이작 삭스의 죽음에 상실감과 고통을 느꼈다.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으나, 일에 집중함으로써 평소처럼 버텼다. (2권,p.272)
루이자는 거대 회사의 음모를 파헤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아이작 삭스를 만나게 된다. 아이작 삭스와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고 호감을 갖게 된다. 그가 '나의 편'인지 '적'인지 처음엔 알지 못하는 채로 경계하며 대화를 나눴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쯤엔 상대의 호감도 느낄 수 있었고 루이자 본인도 호감을 갖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런 아이작 삭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모르는 사람의 사망 소식에도 가슴이 아픈건 당연한데, 한 번 보고 호감을 가졌던 사람의 죽음은 더한 고통을 주겠지. 게다가 그가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 상실감은 더했을 것이다. 호감을 가진 상대를 상실한 그 기분, 그녀는 그야말로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죽기전의 상태, 죽기전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자인 나는 그의 마음을 알지만 루이자는 알 수 없는 이 상황. 죽기 바로 직전, 아이작 삭스는 노트북에 이런 문장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진술: 나는 루이자 레이에게 반했다. (p.252)
아! 나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아이작 삭스에게 죽음이 닥쳐올 줄은 몰랐다. 사실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아이작 삭스의 죽음으로 루이자가 상실감과 고통을 느끼는 바로 그 때,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루이자,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는 당신에게 반했었다고요.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 사실을 내가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상대가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누가 나를 미워하고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야 서로 몰라도 상관없지만, 그런건 알지 못해도 좋지만, 좋아하는 마음, 호감을 가지는 마음, 그리고 반했다는 것등은 반드시 아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좋아하고 호감을 가지고 반했다고 해서 반드시 사귀거나 섹스를 하거나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런 관계로 더 나아가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 지구상에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아름다운 사실만큼은 알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작 삭스는 죽었고, 아이작 삭스가 루이자에게 반했다는 사실은 아이작 삭스 본인의 노트북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루이자는, 아이작 삭스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이작 삭스는 본인이 루이자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전하지 못한채로 죽었고, 루이자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감과 고통을 느꼈지만 '이 지구상에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하나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순 없다. 지금 현재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점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 그래서 사랑은 고백해야 한다. 널 사랑해, 라고 고백해야 한다. 늦지 않게.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말해야 한다. 좋아하니까 사귀자, 라는게 아니어도 좋아하니까 같이 자자, 라는게 아니어도,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 쯤은, 내가 당신에게 반했다는 사실쯤은 상대에게 기억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 또한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채로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것은 더한 슬픔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운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운 좋게도' 내가 어려울 때마다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생긴다면 일이 잘 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운'이 과연 운이기만 할까. 몇해전 회사 동료중에 한 명이 서고에서 자료를 찾으려고 할 때 대부분의 직원들이 일어나서 무얼 찾냐, 도와주겠다, 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동료는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힘들다고 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 서고에서 자료를 찾는 일이 쉬워보이질 않아 동료들이 도와주려고 한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같은 상황에 놓인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일이 벌어질까?
루이자에게는 번번이 살해의 위협이 다가오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그녀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곁에 나타난다. 위기의 순간에 극적으로 그녀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운이 좋았던 때문이지만, 그 운이 좋은건 결국 그녀 자신 때문이었다. 그녀가 많은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거짓을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게 옳고 바르게 가려고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쁘게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 운은 내가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이 책 속의 루이자 뿐만 아니라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인물 '애덤 어윙'에게도 마찬가지. 그녀의 돈을 노리고 누군가는 그를 죽일 계획을 세우지만, 그를 필사적으로 구하려는 사람도 등장한다. 어윙은 일전에 두려운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도와줬고, 그 일이 본인에게 돌아온 것이다. 만약 그 때 그가 누군가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매순간, 우리는 옳은 방향쪽을 향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되, 옆의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 함께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것. 결국 그것이 내 '운'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너에게 착한일 했으니 너도 나에게 착한일을 해' 라는 식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다. 나는 너에게 선의를 베풀고 너는 그 기분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선의가 하나씩 늘어난다면, 그 중 어떤 것들은 내게 향하여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어윙의 입을 통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한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다들 잊고 사는 사실을.
무엇이 결과를 가져오는가? 악한 행동과 선한 행동이다.
무엇이 행동을 가져오는가? 믿음이다.
믿음은 정신과 정신의 거울이라 할 세계 안의 상(償)이자 전쟁터이다. 인류가 종족들로 이루어진 사다리이고, 대결이 벌어지는 콜로세움이고, 착취이자 짐승 같은 욕망이라고 믿는다면, 이러한 인류가 정말로 출현하고, 역사에 호록스, 보어하브, 구스 같은 인간들이 득세하게 된다. 행운이 계속 우리 편에 있느느 한, 돈과 특권을 지니고 행운을 누리는 당신과 나는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양심이 좀 찔린들 그게 뭐 대수인가? 우리 종족, 우리 무기, 우리 전통과 유산의 지배를 왜 약화시킨단 말인가? 왜 '자연의'(아, 얼마나 교활한 단어인지!) 질서에 맞선단 말인가?
왜냐고? 그 이유는 바로 이렇다. 사정이 좋을 때는 순전히 약육강식이 판치는 세계라도 지탱해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뒤에 처진 자부터 잡아먹히다보면, 결국에는 제일 선두에 선 자가 맨 꼴찌가 되는 날이 온다. 한 개인의 경우를 보자면 이기심은 영혼을 추하게 만든다. 인류 전체로 보자면 이기심은 멸종을 가져온다.
우리 본성 안에 이러한 무질서와 혼돈이 새겨져 있는가?
인류가 약육강식의 세계를 넘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고아들이 쿠쿠이나무를 함께 타고 놀듯 다양한 종족과 신념이 평화롭게 이 세상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지도자들이 정의로워야 하고 폭력을 막아야 하고 권력은 책임을 져야 하고 땅과 바다의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러한 세계가 출현할 것이다. 나는 헛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세계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기는 하다. 여러 세대에 걸쳐 먼 길을 에둘러 이루어낸 진보가 근시안적인 대통령의 펜이나 자만심에 부품 장군이 휘두른 검 하나에 다 날아갈 수도 있다.
잭슨이 물려받을까 두려운 세계가 아니라, 잭슨에게 물려주고픈 세계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다는 것, 이야말로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면 노예폐지운동의 대의에 몸을 바칠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의 몸이 된 노예에게 내 생명을 빚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디서부터든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인어른께서 뭐라 하실지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오호, 좋아, 민권주의적인 감상이군, 애덤. 하지만 내 앞에서 정의가 어쩌고 하는 소리는 말게! 당나귀를 타고 테네시 주로 가서 남부인들에게 당신들은 흰색으로 칠한 흑인이고 흑인은 검은 칠을 한 백인일 뿐이라고 설득해보게나! 유럽으로 배를 타고 가서 황제의 노예들의 권리도 벨기에 여왕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해보게! 아, 목은 쉬고, 빈털터리가 되고, 얼굴은 핼쑥해질걸세! 모두 자네에게 침을 뱉고, 총을 겨누고, 린치를 가하고, 훈장으로 입막음을 하려 하고, 꽉 막힌 정치인들의 손을 빌어 자네를 내쫓을 걸세! 십자가에 매달리게 될걸! 자네는 순진하게도 꿈을 꾸고 있어. 수많은 머리가 달린 히드라와 같은 인간 본성과 싸우려는 자는 말 못할 고통을 대가로 치러야 하네. 그뿐 아니라 가족까지도 함께 대가를 치러야 하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삶이 끝없는 바다에서 한 방울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걸세!"
하지만 바다 또한 무수히 많은 물방울이 모인 것이 아닌가? (p.434-436)
악은 힘이 세다. 악은 기술의 개발을 가져왔지만 인류의 멸망을 가져왔다. 세상은 암흑으로 변했지만, 그속에서도 탈출하고자 하고 분명 옳은것이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윙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보다는 어윙에게 저런 충고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노예제는 폐지되어도 노예처럼 누군가를 부리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속에서 세상은 끝까지 갔다왔다. 끝까지. 귓가에 악이 늘 속삭이고 있음도 보여준다. 악은 힘이 세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선은,
끈질기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끝까지 그것이 아니라고 속삭이고 외치고 행동할 것이다. 끝까지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건, 결국 그 선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내 곁에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내가 좋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작은 일들에 감사할 수 있는 것, 내가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것, 가끔은 감동까지 받는 그 모든 것들은, 다 내가 만들어낸 일이다. 삶이 소중하고 좋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는 내가 하는 일. 내가 이렇게 만든거다.
문명인과 야만인, 두 개의 단어 뒤에 숨은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야만인은 법이 없지만, 문명인한테는 법이 있다고 대답했지.
그보다 더 깊은 의미예요. 야만인은 당장 자기 욕망을 채워요. 배가 고프면 먹어요. 화가 나면 싸우죠. 여자가 필요하면 덮쳐요. 욕망이 그의 주인이에요. 욕망이 죽이라고 명령하면 죽여요. 육식동물처럼 말이예요.
맞아, 코나 족이 바로 그렇지.
문명인한테도 똑같은 욕망이 있지만, 그들은 더 멀리 내다볼 줄 알아요. 먹을 것이 있으면 반만 먹고 반은 씨를 뿌릴 거예요. 그러면 다음에도 굶주리지 않겠지요. 화가 나면 멈춰서 왜 화가 나는지 생각해볼 거요. 그러면 다음에는 화를 낼 일이 없어지겠지요. 존경받아야 할 누이와 딸이 주변에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 형제들의 누이와 딸을 존중할 거예요. 그는 자기 욕망의 주인이에요. 의지가 "하지 마!" 라고 명령하면 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어. 문명을 갖는 것이 야만인이 되는 것보다 나을까?
잘 들어요, 야만인과 문명인은 부족이나 믿음이나 산의 경계에 따라 나눠지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인간이 문명과 야만, 두 가지를 동시에 다 갖고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신의 지혜를 갖고 있었지만 재칼 같은 야만성도 동시에 갖고 있었고, 바로 그 야만성이 대멸망을 불러온 거예요. 내가 만나본 야만인 중에는 가슴속에 아름다운 문명인의 마음이 고동치는 이도 있었어요. 어쩌면 코나 족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몰라요. 자기네 부족 전체를 좌우할 만큼 많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언젠가는 말이에요.
'언젠가'라는 말이 우리에게 유일한 한 가닥 희망이었어.
메로님의 말을 기억해. 그래요, 하지만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버릴 수도 없지요. (p.113-114 볼드체는 책의 것을 그대로 따름)
이 좋은 문장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건, 내가 문명인보다 야만인에 더 가깝다는 거다. 나는 과연 반만 먹고 반은 씨를 뿌리는...그런 사람일까? 일단 눈 앞에 있는 걸 죄다 먹어치우는 그런 사람인 것 같은데...아, 나는 정녕 야만인인가. 나는 내 욕망의 주인인가 아니면 나의 욕망이 나의 주인인가....나는 욕망에 굴복하고 끌려가는 사람이 아닌가...아, 나는 야만인 ㅠㅠ
'헤르쯔 아날로그'가 새앨범을 발표했다. 사실 나는 그간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트윗에서 신보 소식을 접하고 검색해봤는데, 하하하하하, 앨범의 목차를 보고 오옷 이게 뭐냐 했다. 내 주제 음반이라고 해도 좋겠잖아!!
- 1-1. 어서오세요 다락방 (근데 지금 앨범 목차에 '여름밤'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수정해주십시오!!)
- 1-2. 애정결핍
- 1-3. 상관없었을거야
- 1-4. 연애상담인듯
- 1-5. 바다
- 1-6. 위로마이셀프
- 1-7. 밤골목탐험
- 1-8. 지구를 떠나겠어
- 1-9. 여름밤
- 1-10. 애정결핍 Vocal by 성준(Demo ver.) (Bonus Track (Album Only))
어서오세요 다락방 이란다 ㅎㅎㅎㅎㅎ 그래서 어제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을 들어봤고,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다락방에 놀러오는 사람과는 역시 술이나 한 잔 하는게 제격이다. 커피는 다음으로 미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