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 8월 25일 PM02:00

하지만 당신과 미아의 차이가 무엇인지 금세 파악 되더군요. 당신은 감히 자기 피아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묘사하지 않아요. 피아노가 내 세계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미아는 저랑 50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작은 탁자 위로 몸을 숙이고 숟가락에 스파게티를 돌돌 말고 있어요. 미아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면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지죠. 저는 미아를 보고, 듣고, 만지고, 그녀의 체취를 맡는 것,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미아는 실체예요. 에미는 환상이고요. (PP.218-219)


















어제 영화 《그녀(her)》를 봤는데, 보는 내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바로 저 위의 인용문, '스파게티를 돌돌 말고 있'는, '공기의 움직임', '실체' 부분에 대해서. 모니터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의 교류를 전하는 에미에게 '미아는 실체예요' 라는 레오의 말은 얼마나 잔인하게 느껴졌을까. 영화 《그녀》에서도 남자 '테오도르'가 여자의 목소리를 가진 운영체제 '사만다'에게 '너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없지 않냐' 라고 말했을 때, 사만다가 상처받는다. 아마 이것이, 실체라고 레오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에미의 감정과 비슷한 서운함이 아닐까.





남자 테오도르는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그것이 그다지 놀림감이 된다거나 하진 않는다. 테오도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누구나 운영체제 친구가 있고 연인이 있으니까. 모두들 혼자 걷고 있지만 누군가와 얘기하고 웃고 화내고 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눈치채고, 섹스를 하고, 음악을 작곡하고, 친구의 커플과 더블데이트를 하지만, 이런 사만다에겐 레오가 미아에게 느꼈던 '실체'가 없다. 테오도르의 부름에 응답하고, 신음 소리를 내고, 웃고, 서운해하고, 테오도르를 부르는 것 모두, 이 작은 기계가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기계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를 실체가 아니라고 거부할 수가 없다. 점점 더 진화해가는 이 목소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빠른 속도로 보고 배우고 느끼며 점점 테오도르에게 가까워진다. 그의 이메일을 체크하고 스케쥴과 연락처를 체크하는 등의 일을 넘어서서 그가 써낸 편지들을 추려 출판사에 보내보는 것조차 사만다의 몫이다. 



그가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졌다고 그를 손가락질할 수가 없다. 레오와 에미가 이메일을 통해 사랑에 빠진 것과 그것이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에미와 레오가 끝끝내 만나지 않고 이메일 교류만 했다면,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메일을 통해 에미와 레오는 서운함과 사랑과 그리움과 에로틱함을 토로했고,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이어폰과 카메라를 통해 목소리로 그렇게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서로의 표정으로 감정을 읽게된다. 오래 만나고 친한 사이라면 그것은 좀 더 쉬워진다. 감추고자 하는 감정까지도 표정에서 읽어낼 수가 있으니. 그런데 참 신기하지.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통해서, 문장을 통해서도 그 안에 든 감정을 눈치챌 수있다. 레오와 에미가 그랬듯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만다와 테오도르 역시, 목소리로 서로의 감정을 캐치한다. 당신과 내가 서로의 감정을 캐치하고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반드시 실체여야 할까? 실체이며 옆에 있으되, 내 앞에서 공기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되, 우울한 감정만 전해준다면, 그렇다면 그 실체보다 중요한 건 감정의 교류를 할 수 있는 대화나 시간은 아닐까? 



만약 감정이 더 깊어지지 않았다면, 이토록 깊은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면, 실체이든, 실체없이 감정의 교류만이든, 둘 중 하나만 있었어도 부족하다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면 할수록 상대에 대한 욕심이 점점 자라나는 것을 느낀다. 처음엔 그 사람이 나에게 한 번 더 눈길을 주길 바라고, 한 번 더 말을 걸어주길 바란다. 그러나 눈길을 받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 이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어진다. 그것은 단순히 상대를 원할때 뿐만 아니라 상대를 위로해주고 싶을때도 그러하다. 테오도르도 '네가 내 옆에 누웠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고 사만다도 그와 자신이 섹스하는 게 '진짜'이길 바라기 때문에 테오도르에게 대역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옆에 누울 수가 없고, 대역은 대역일 뿐 사만다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제 어떡해야할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즐겁거나 서운하거나 행복하거나 웃는데, 이 사랑은 어떻게 되는걸까. 실체가 없는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 실체가 있는 사랑 역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한데, 실체가 없다면 더 빨리 끝나게 되는게 아닐까. 아니면 실체가 없으므로 좀 더 길게 갈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내 에미를, 미아를, 레오를 생각했다.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도 생각났다. 술을 한 잔 마시지 않고도, 손을 잡지 않고도 상대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마고가. 

또한, 사랑하다가 이별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실체가 없는 사랑이란 것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실체가 없는 사랑이라는 것도,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나을 수 있겠지만, 실체가 없다면 ... 아,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내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으로 인한 공기의 움직임을 느끼고 싶다. 같이 스파게티를 돌돌말고, 삼겹살을 굽고, 소주잔을 부딪치고 싶다.



영화속 테오도르의 집이 무척 좋아보였다. 내가 원하는 그런 집. 통유리 창에 전망은 고층빌딩들!! 나도 이런 데서 살고싶다!!!!!!!!!!!!!!!!!!!!!!!!!!!!!!!!!!







다음주나 다다음주엔 필립 클로델 감독의 영화 《차가운 장미》를 보러가야겠다. 그건그렇고,



얼마전에 미국에 다녀온 지인이 키헬의 립밤 두 개와 클리니크의 립밤 한 개를 선물로 주었는데, 키헬은 엄마와 여동생에게 하나씩 주고 클리니크는 누굴 줄까 하다가 내가 쓰기로 했다. 립밤이나 립글로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있어도 안쓸텐데, 싶어 그런것들은 생기는대로 주변에 족족 나눠주곤 했는데, 이건 한 번 써볼까, 하고 사용했다가, 어머나 깜짝이야, 너무 좋아서 완전 신났다. 번들거리지 않고 색깔도 나고 바르기도 편하다!! 좋았어!! 이거 다 쓰면 내가 사서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페이퍼 제목이 좀 오글거리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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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5-2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보고나서 리뷰 읽는걸로. ㅎㅎㅎㅎ

지금 립밤 폭풍 검색중>>>>>>>>>>>>>>>>>>>>>>>>>>>>>>>

다락방 2014-05-29 13:39   좋아요 0 | URL
나중에 나 만나면 저거 한번 발라봐요. 내가 빌려줄게. 우리 어차피 거기에서 만날거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와 2014-05-29 15:09   좋아요 0 | URL
그때까지 못 기달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화점가서 테스트 해볼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4-05-29 15:34   좋아요 1 | URL
ㅇㅇ 테스트 해봐요~ 난 아주 쏙 마음에 든당께롱 ㅋㅋㅋㅋㅋ

2014-05-29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9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30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02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dreamout 2014-05-30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포스터. 글자와 바로 위 남자 이미지가, 더블 클릭해야할 아이콘처럼 보이네요. 붉은 상의가 강렬한게 원클릭되어 선택된 듯.. 생기있고. 포스터 맘에 들어요. ㅋ

다락방 2014-06-02 15:24   좋아요 1 | URL
국내에 포스터는 저 남자 상반신 클로즈업된 포스터인데 저 포스터가 더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저걸로 가져왔어요. 이 영화 보셨어요, 드림아웃님? 이 영화 드림아웃님이 참 좋아하실 것 같은데 말이지요. 후훗

2014-06-04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05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