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Paris)의 모든 여자들이 그와 연애해본 적이 있다는 말이 돌만큼 남자는 바람둥이로 소문이 나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러지 않는게 좋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와 연인이 되어서 달콤한 시간들을 보내고, 그 시간들을 다른 연인들처럼 웃고 울고 하며 채워가다가 이별을 겪게되고 그렇게 여자는 다른 남자와 연인이 된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흘러 뉴욕에서 파리로 돌아가는 비행기안에서 그들은-전 여친과 남친이었던- 재회하게 된다.


남자는 가만있어도 여자들이 달려들만큼 매력이 넘쳤고(물론 영화상에서) 여자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는데도 불안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불안했다. 상대로부터 확신을 얻지 못하는 그 관계는 결국 집착을 부를 수밖에 없다. 집착과 사랑은 한끗차이라고 해도, 만약 나의 애정이나 사랑을, 관심과 존중을,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 더 쏟았다면 집착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집착에 대해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한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잘 알고 있는 터라, 나는 내 모든 사랑을 상대에게 쏟는것만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속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페이스북을 탈퇴하라고 종용하고 핸드폰 상의 여자들 번호를 죄다 지우라고 말한다. 물론 그녀를 이해한다. 이해한다고 해서 그녀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도 아니며 용서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혹여라도 내 연인이 내게 그런식의 구속을 해온다면, 거침없이 그를 버릴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이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데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작게든 크게든 영향을 미치고 있고, 나라는 인간이 지금의 나로서 완성되기 위해서는 아주 다양한 관계가 여러갈래로 뻗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그 사랑이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건 사실이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페이스북을 탈퇴하고 이성의 전화번호를 다 삭제하길 요구하는 연인이라면, 그건, 그 순간부터 사랑이 아니다. 설사 상대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천번쯤 외치며 주장한다고 해도, 나는 그런 사랑이라면 거부한다. 집착은 결국 파멸을 부른다.



자, 연인이 그런 구속을 해온다고 하면, 나는 이제 사회적으로 다른 이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이 자유스럽지 않게 되고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데 '연인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당연히.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어떻게든 이성을 만나고 연락하는 것은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런 사실을 알고나면 연인과 싸울게 두려워 하나씩 둘씩, 말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날 것이다. 내가 떳떳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무리 떳떳하다한들 이미 온 신경을 내가 만나는 다른 이성에 두고 있는 연인과는 애시당초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심의 눈초리와 경계속에서 그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말하느니,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나중에라도 내가 다른 이성을 만난 일이 연인의 귀에 들어가게되면, 너 왜 말하지 않았어, 무슨 관계야, 라는 윽박지름이 올것이고, 일적으로 만났어, 라는 대꾸는 씨도 먹히지 않을 것이며,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솔직하게 말을 했어야지, 라는 대응은 당연히 나올것이고, 니가 이럴까봐 말하기 싫었어, 가 될 것이다. 





'윤경'의 로맨스 소설인 『아다다의 사랑』에서는 집착이 강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여자를 옭아매고, 그녀가 '자신만의' 사람이기를 원한다. 결국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임을 나중에 깨달은 그는 결국 '세상과 그녀를 나누는 방법'을 배워가며 소설을 끝맺는다.









《러브 인 비지니스클래스》는 어쨌든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왔다. 사랑은 제자리를 찾았고, 사랑이 아닌 것 역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여자는 예쁘고 남자는 뭔가 질퍽거리게 생겼고, 도대체 이 남자가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비지니스 클래스를 타고, 이래저래 그다지 재미있거나 좋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결국 '더 안좋은' 결말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집착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집착과 구속은 결국 그래, 말하지 않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이게 하고 거짓말을 자꾸 더 크게 만든다. 우리는 '나의 연인'인 '그(그녀)'를 세상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그나저나 첫장면, 여자가 잠들어있다 깨는 장면에서, 잠들어 있는 여자가 얼마나 예쁘던지, 젠장, 예쁜 여자들은 잠자고 있을 때도 예쁘구나, 했다. 예쁜 여자들은 잘 때도 예쁜 옷을 입고 자네. 쩝..





《조 블랙의 사랑》은 남자와 여자 둘이 처음 만나 호감을 갖게 되고, 그래서 자꾸만 뒤를 돌아 상대의 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장면 때문에 다시 볼 생각을 하고 다시 보게 되었다. 십대에 이 영화를 보고 졸았던 게 생각났는데, 이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왜 졸았었나 싶다. 그런데 시간을 돌려 그 때 다시 보면 또 졸게 될지도 .. 여튼, 이 영화를 보고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빌(안소니 홉킨스)은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온 저승자사 '조(브래드 피트)'와 며칠간 자신의 일상을 함께 하기로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이 아내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아내가 떠난 후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조에게 얘기하게 되는데, 그 장면에서 갑자기 '혼자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내가 사실은 잘 모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고, 언젠가는 내가 혼자 살고 혼자 늙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막연함은 구체적인 모습이 되어 눈앞에 잘 그려지진 않는다. 그런데 어제 빌이 얘기를 하는순간, 빌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자신의 가정을 이루었고, 그 사람과 한동안 일상을 공유했는데, 그런 사람을 '먼저' 보내고나서 혼자 남게된 그 기분은 대체 어떤것일까, 그것은 '처음부터 혼자 살아온' 사람의 '혼자살기'와는 좀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거다.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선택한 사람, 그 사람과 함께 했지만 그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은 삶. 그건 대체 어떤 모습이고 어떤 기분인걸까. 바깥 날씨는 봄이라고 말하고, 나 역시 그 봄을 만끽하고 들어와서는 살랑살랑 봄바람이 내게도 불어온다고 생각하던 터였는데,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빌의 이야기가 아직 봄을 만끽하긴 이르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상실감에 고독함을 더해 쓸쓸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게 될까. 


영화속에서 빌은 자신에게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에 매일 저녁 식구들에게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고 청한다. 식구들은 그렇게 하자며 매일 아버지의 집에 모여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되는데, 내 삶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짧은 시간만이 허락된다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걸 택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지난 금요일의 만남이 떠올랐다. 물론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그 만남 자체가 즐거워서 하게 되는 것일텐데, 금요일엔 특히 더 즐거웠다. 이야기하며 내내 웃고 '아 좋다'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거다. 그 시간과 그 사람들이 그 순간 너무너무 좋아서, '아,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군가와 둘이 남은 생을 함께 하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지 않아도, 이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을 가끔 만나고 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만남 중에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여운이 가시질 않아 토요일에 엄마랑 대화를 하다가 '아 어제 만남이 너무 좋았어. 행복했어' 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거기엔 니 애인도 없는데 뭐가 그리 행복하냐' 고 되물으셨다. 우리 엄마는 내 책을 두 번이나 읽었는데, 헛읽은 것 같다. -_-


금요일에 그랬던것처럼, 성별이 다르고 나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늙어갈 수 있을까? 어느정도까지 그게 가능할까? 내 나이가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 날 만난 사람들을 계속 만나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조 블랙의 사랑》에서 빌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신의 둘째딸 '수잔'에게, 열정과 흥분을 가져다 줄 사람과 사랑에 기꺼이 빠져보라고 말한다. 번개치듯이 찾아올 그런 사랑을 위해 항상 마음을 열어두라고. 그리고 수잔은 그런 남자를 만났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라고 물었을 때 '차차 알게되겠죠'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언젠가 연인에게 '시간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 놓겠지' 라고 내가 말했던 것도 떠올랐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어떻게 하고자 마음먹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닐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어딘가로 가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 놓을지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우리가 각자 자신만의 '번개치듯 찾아오게 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열정과 흥분, 그 모두를 가져올 사람. 그 사람과 내가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게 될 것인지, 매일의 기대를 품고 살아간다면, 그 역시 늙어가는 데 흥미로움을 더할 것이다. 













일요일 낮에 산에 올랐다. 아, 나는 이렇게, 또 한 번의 봄을 맞이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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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5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dreamout 2014-03-24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그, 트위터 하게 되면서.. 생각해 보니 꽃사진을 보는 일이 많아졌어요. 한창 사진에 빠졌을 때 조차 꽃을 주요 테마로 찍어 본적 없는 저로서는.. SNS 덕분에 꽃도 보며 살고 있구나... 싶어요. 봄이예요. 곧 반팔 반바지 입는 계절도 따라 오겠네요. ㅋ

다락방 2014-03-25 09:07   좋아요 0 | URL
드림아웃님 트위터 하세요? 전 드림아웃님이 트위터 하시는 줄은 몰랐네요. 하핫.
반팔 반바지 입는 계절을 즐겁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헬쓰장에 등록을 해야겠구나, 지금부터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아- 너무 늦었는지도... Orz

무스탕 2014-03-24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읽었는데 전혀 생각 안남...ㅠ_ㅠ
근데 벌써 저렇게 꽃이 폈어요? 왜 제 근처엔 활찍 핀 꽃이 없을까요?
오늘 점심먹고 산책하는데 민들레 세 송이 핀건 봤네요.

다락방 2014-03-25 09:08   좋아요 0 | URL
여자는 영화배우이고 남자는 재벌이라는 뻔한 배경인데요, 집착이 심한 남주가 끝에 여주랑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해요. 세상과 그녀를 나누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요. 오픈엔딩이라 해야할까요.

일자산 정상에만 저렇게 피었어요. 낮은 곳은 안피었고, 저기도 그나마 활짝 핀 꽃은 거의 없고 꽃봉오리만 있어요. 좋아요. 저것들이 다 필 생각을 하면. 헤헷

자작나무 2014-03-2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어디서 들었지만...

일자산은 역시 좋네요.

다락방 2014-03-25 09:09   좋아요 0 | URL
누군가 내 옆에 있다가 없어서 혼자인 것과
원래부터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인 것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혼자인 게 편한것과는 별도로 말이지요.

꽃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어디로 놀러갈까, 놀러가고 싶다, 생각했는데 그냥 매주 일자산을 갈까봐요. ㅎㅎㅎㅎㅎ

버벌 2014-03-26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지금 알았는데. 조 블랙의 사랑을 안 봤네요... 나 안 본게 많구나....

다락방 2014-03-26 08:19   좋아요 0 | URL
ㅎㅎ 어릴때보다는 지금 보는게 더 나을겁니다. 최소한 저한테는 그랬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