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룸메이트 관계인 두 여자 '리아'와 '한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매춘을 한다. 매춘을 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으면서 그들은 기대로 부풀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훨씬 더 짧은 시간에 벌 수 있다며. 누군가의 집으로, 모텔로, 엘리베이터로, 차로 불려가면서 그들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신나게 먹고 마신다. 식당에서 쫓겨날 지경으로 신나게 깔깔대고 웃었던 그녀들이, 그러다가 돌연 울음을 터뜨린다. 돌연 울음을 터뜨리고, 이걸 관두자, 고 말한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할 수도 없는 이 일을, 관두자고.
성(sex)을 판다는 것은 내게 언제나 풀지 못할 숙제로 여겨졌다. 그것이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를 생각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그걸 내가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답이 돌아왔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팔고, 가진게 몸뿐인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 노동을 판다. 가진게 자신의 성 뿐이라 그걸 판다, 라고 했을 때, 그걸 과연 '그건 안돼!' 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여기서 나는 늘 대답을 못하겠는거다. 그건 좀 다르지, 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대체 뭐가 다른건데, 라고 다시 되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는거다. 아이디어를 파는 건 되고 성을 파는건 왜 안돼? 막연하게 '안되는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데, 거기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댈 수가 없는거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여자들이 웃다가 울어버리는 그때부터 성을 파는 일이 다른 일과 같지 않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밝힐 수 없는 일. 사회적 인식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이 당당하지 못해지는 그런 일. 그렇다면 그 일을 왜 하게 되는가. 돈 때문이었다. 돈이 필요해서 한 일이었다. 먹고 마시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돈. 그 돈을 위해 그녀들은 깔깔대고 웃었지만 종국엔 울게되고, 남자친구에게 정체가 탄로났을 때 절망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는데, 그 돈이 수중에 들어와도 기쁘지가 않다. 게다가 다른 일보다 더, 모멸감을 견뎌야 한다. 발가벗겨진채로 남자들 앞에 서야하고, 그들이 시키는대로 옷을 입고, 만져달라는 대로 만져주고. 그 돈이 기쁠 수 없는 이유였다. 그 돈은 성을 팔아 얻은 대가가 아니라, 모멸감을 견딘 대가였다. 모멸감과 수치심을 견딘 대가. 돈이 아니었다면 이 일을 했을 것인가? 라고 물었을 때 '아니'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나올 직업이라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다 돈 때문이었다. 돈이 가진 힘이 너무 세서, 우리는 그 돈에 휘둘려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웃다가 울다가 한다. 돈 따위,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었고, 돈이 가진 힘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힘을 갖고 싶은거였다. 돈 때문에 일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돈의 노예가 된다. 노예 따위,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서 삶이,
어렵다. 늘 당당하고 싶지만, 늘 당당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끔 그렇게 의도치않게 노예가 되어버려서. 노예가 되어 굴복할 수밖에 없어서. 무릎 꿇을 수밖에 없어서.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우리는 노예가 되곤 한다. 결국 성을 팔도록 하는 사회, 그런 환경이라면, 더이상 도망갈 데가 없었다는 건 아닐까. 저 모멸감과 수치심을 선택했다는 건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사람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아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막다른 골목에서도 도망칠 수 있도록, 벽에 최소한 구멍을 뚫어줘야 되는건 아닐까. 막다른 골목에서, 더이상 갈 데가 없어서 선택한 거라면, 그건 선택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은게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저 포스터의 '오늘밤은 누구랑 할까?' 라니...안습이다. 쩝.
(왼쪽은 양장, 오른쪽은 반양장)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을 버텨나간다. 그리고 저마다의 기준으로 책을, 음식을, 영화를, 음악을, 사랑을 선택한다. 사랑을 선택함에 있어서 누군가는 예쁘고 잘생기면 용서가 되기 때문에 상대의 단점을 눈감아주려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예쁘고 잘생긴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그의 성정을 봐야한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뜨겁고 열정적인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상대와 불같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몸소 뛰어드는 사람도 있고, 훗날에 다가올 고통이 두려워 이를 악물고 그 열정을 피해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나이 들면서 내 성향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오래전의 나와 또 달라서, 사랑을 선택할 때 많은 걸 고려하지도 않고 재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좋으면 사귀는거지, 라고 사귀다가 뭔가 불편한 게 생기면 헤어지는거지, 하고 헤어진다. 어차피 사랑이란 감정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보고, 내가 가장 편하기 위해서는 내가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무모하게 덤벼들기 보다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느라,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좋아했던 사람, 가장 열정적으로 다가왔던 사람을 놓치고 말았다. 그게 내내 아쉽고 후회가 되서, 그때 내가 왜그랬을까, 아직까지도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지지만, 한 편으로는 만약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해도, 지금에와서 거기에 따른 결과를 가지고 아쉬워할거란 생각이 든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때의 나같았다. 그녀는 클레브 공작과 결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남편인 클레브 공작은 부인이 자신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아내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반해있고, 아내인 동시에 애인처럼 사랑하는데, 아내는 그저 남편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그에 대한 하소연을 들을라치면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게 대체 무슨말이냐, 대꾸하곤 했지만, 느무르 공을 만난 뒤의 공작부인은 아, 이것이 남편이 말한 그것이었구나, 하는걸 깨닫는다. 그래, 클레브 공작부인의 열정적 사랑은 남편이 아닌 느무르 공을 만나서 침투하고, 폭발해버린 것이다. 아무리 그 열정을 잠재우려고 해도, 가라앉히려고 해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 그를 잊고 지우는 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이다.
그의 뒷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던 클레브 공작부인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불길이 다시 거세게 일어났다. 그녀는 하릴없이 느무르 공이 방금 누워 있다가 떠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무엇인가에 압도당한 채 그곳에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 이 남자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서 느무르 공은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그녀만을 성실히 사랑해온 남자,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고통마저 존중하여 그녀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그녀를 보러 오는 남자, 재미를 누리던 궁을 떠나 그녀를 가두고 있는 벽들을 바라보러 오는 남자. 그녀를 만나지도 못할 곳에 와서 홀로 몽상에 젖는 남자. 이런 애정만으로도 그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설령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도 이젠 그녀가 그를 사랑하겠다고 할 만큼.(pp.202-203)
당신은 당신을 보기 전에는 제가 알지 못했던 감정을 제게 불러일으켰어요. 저는 처음에는 놀랍고 그 후에는 동요와 흥분을 일으키는 그런 감정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덜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걸 고백할 수 있어요. (p.209)
연애에 도통했던 느무르 공은 자신의 그간 연애생활을 싹 정리할만큼 클레브 공작부인을 사랑했다. 한번이라도 더 그녀를 보기위해 갖은 애를 쓰고, 그녀의 모든 행동과 말에 신경을 쓴다. 혹여라도 자신의 어떤것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혹여라도 그녀의 어떤것이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을까 애를 태운다. 그러니 그의 사랑을 그녀가 알고, 또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걸 알게 된이상, 이 사랑이 불발로 끝날리는 없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된다. 불태울 수있을만큼 불태우겠지, 그게 느무르 공과 내가 했던 생각이다. 게다가 어느 순간, 느무르 공에겐 장애물이라 여겨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유부녀'란 신분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니 그들을 가로막는 건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들에겐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일 달콤한 순간들만이 기다릴거라고, 느무르 공과 내가 생각한다. 그러나,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겁을 먹었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아프고 싶지 않았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자신이 열정을 불태운 후에 기다리는 것이 고통일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그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궤뚫고 있던 셈이다. 지금의 나라면, 이여자야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할때까지 해보라고, 가보란 말야, 안하고 후회하느니 저질러보라고! 하겠지만, 언젠가의 나도 저질러버리지 못했던 사람인지라 섣불리 그녀에게 충고할 수 없다. 지금은 자신있게 안해보고 후회하느니 저질러보고 고통받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 고통을 차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저는 제 감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은 당신의 애정에 대한 너무 약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제 감정을 자유롭게 다 드러내는 것은 제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일 거예요. 당신의 사랑을 더는 받지 못하는 일은 제게도 참 끔찍한 불행이라고 저는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그 힘든 의무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런 불행에 저를 내맡기기로 결정했지만,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자유롭고 저 역시 자유로우니 우리가 함께해도 사람들은 당신을 비난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남자들이 영원한 약속 안에서 그 열정을 계속 간직할 수 있을까요? 그런 기적이 제게 일어날까요? 제 모든 행복이 될 그 열정이 결국에는 사그라지는걸 분명 지켜봐야 할 거예요. (중략) 저는 우리 사이의 장애물이 당신을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걸요. 그 장애물이 당신으로 하여금 승리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고, 의도적이지 않았던 제 행동으로 혹은 우연으로 당신이 알게 된 것들 때문에 물러서지 않을 희망이 생긴 거지요." (p.212)
느무르 공과 절대 결혼하지 않기로 한 이유들은 의무로 볼 때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지만, 마음의 평화로 볼 때는 매우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반드시 질투라는 고통이 올 것이고 느무르 공의 사랑도 반드시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빠질 불행의 심연이 어떨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 도덕도 예의도 어쩌지 못하는 불가능한 시도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녀는 오로지 떨어져 있으면서 시간이 지나는 것만이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뿐만 아니라, 느무르 공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떠나 철저히 은둔하며 살기 위해 아주 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pp.218-219)
그녀가 생각한 사랑의 본질은, 그래, 정확히 궤뚫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 가져오는 열정, 열정이 가져온 사랑은 일시적이고 유효하다. 그 열정 그대로 오랜 기간을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거라 생각한 열정뒤의 고통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지금의 나는 그녀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다 장담하지만, 막상 그 사랑 앞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나조차도 모르는 거다. 그렇지만, 그 유효한, 일시적인 사랑을 하는 상대에 따라 그 사랑은 다른 성격으로 변할 수 있다. 열정으로 시작된것이 안정적이고 탄탄한 관계를 만들 수 있고,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한 질투도, 어쩌면 겪지 않게 됐을런지도 모른다. 미리부터 겁을 먹고 그 안으로 기꺼이 뛰어들지 않았기에, 그녀는 질투도, 열정이 식는 고통도 겪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랬기에 그 열정이 주는 뜨거움과 짜릿함 그리고 그 뒤에 어떤식으로 이어질지 모를, 어쩌면 밝은 미래까지 포기한 셈이다. 또한 그 사랑에 뛰어들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먼훗날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다가와, 아플때 아프더라도 기꺼이 한 몸 불사를 걸 그랬다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게 될것이다. 또한, 그와 그 사랑을 하지 않고 마음에 품으며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남은 평생 다른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내안의 열정을 불사르고 그걸 해내고 고통스러워하고 잊어야, 또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건 자명한 사실이다. 누군가를 내내 가슴속에 품고 있다면, 다가올 다른 사랑도 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크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 사랑을 해내고, 앞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건 옆에서 지켜보는 나의 선택인 것이지, 그 사랑에 허우적대고 있는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불린다한들,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은 일단 거기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먼훗날을 생각하지 못하니까.
사랑의 노예,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한 선택이 열정으로 들어가는 것이든 빠져나오려는 것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는 지금 사랑이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랑의 노예라고. 우리는 가끔, 그렇게 사랑의 노예가 된다. 사랑이 시키는대로 하고, 사랑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하는, 노예.
지난 주말엔 여동생 집에 다녀왔다. 나는 그날밤을 조카와 둘이 잤는데, 여태 조카랑 둘이 자본적이 없던터라, 무척 좋았다. 새벽에 몇차례 조카가 깨길래 그 때마다 토닥토닥 이모 여기있어, 라고 해주고 다시 자는데, 새액새액- 잠든 조카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는게 그렇게나 좋더라. 집으로 돌아가기전, 조카에게 말했다. 이모는, 조카랑 잔게 가장 기억에 남아. 너무 좋아. 조카는 이모 와있어서 뭐가 제일 좋았어? 그러자 조카는 이렇게 말했다.
응. 이모랑 쉬한 거.
아니........왜 쉬한게 제일 좋아. ㅠㅠ
1박2일 있으면서 조카랑 놀았는데, 고작 그만큼을 있으면서 온 몸의 에너지가 다 소진되더라. 결국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떡실신했다. 고작 1박2일에 이지경이 되었는데,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대체 매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까. 게다가 돌봐야 할 어린 아이들이 둘씩 셋씩 된다면. 하아- 세상의 모든, 육아에 힘쓰고 있는 엄마와 아빠들에게 진심을 담아 격한 응원을 보낸다.
내 핸드폰의 비밀번호는 이 세상에 나 말고 단 한사람, 조카만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