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2013 (원제: MONA)>은 일자리라곤 도축장이 전부인 작은 시골 마을이 배경이었다. 나는 주인공 모나가 아니지만, 모나의 선택을 이해하지만, 나였으면 도시로 나와 일자리를 찾고 다른식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고 애를 썼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침체된 공간, 침체된 사람들이 그 작은 시골안에 있었다면 이 영화 <어느 멋진 순간 (원제: A Good Year)>에서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시골이 있다. 시골과 전원이란 단어가 주는 그 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이 영화에서 보여진다고 하면 될까. 모나에서는 도시로 나가는 게 답일 것 같은 반면, 이 영화에서는 전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궁극적 해답으로 보였다. 


주인공 '맥스'는 삼촌이 돌아가시고 나자 그 집을 처분하기 위해 런던에서의 바쁜 일정을 쪼개어 프로방스로 날아간다. 거기, 프로방스에는 아주아주 큰 집이 있고, 라벤더가 놓여진 베란다가 있고, 넓고도 넓은 포도밭이 있고,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있고, 와인이 가득 저장된 와인 창고가 있었다. 그뿐인가. 포도밭을 관리해주는 아저씨와 매 끼니를 사랑스럽게 챙겨주는 아주머니도 있다. 대체 이런 저택과 풍경을 마다할 이유가 무엇인가. 서재에서 글을 쓸 수도 있고 바깥 정원에 나가 일광욕을 할 수도 있다.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식사는 풍성하고도 풍성하며 집안 곳곳에는 와인들이 놓여져 있다. 게다가 차를 몰고 조금만 나가면 아름다운 여자가 일하고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도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풍경에 흠뻑 빠져 젠장, 삶은 결국은 프로방스에서 마무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영국에도 집이 있고 프로방스에도 집이 있는 사람의 에세이를 읽다가 빡친적이 있었는데, 빡은 빡이고 나 역시 프로방스에 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진짜 많이 생각했다. 지하실로 내려가 아무때고 원하는 와인을 꺼내올 수 있는 삶이라면,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이 마치 천국의 그것과 같다면, 식탁에는 언제나 맛깔스런 음식들이 풍부하게 차려진다면, 아 이 얼마나 완벽한 삶인가 말이다. 맥스가 이곳에서의 삶을 선택하고자 할 때, 그의 변호사는 그에게 충고한다. 그 삶이 결국은 지겨워질거라고, 후회하게 될거라고. 물론 그럴 것 같다. 어떤 정기적인 일을 하지 않는한 그저 놀고 먹고 풍경만 감상하는 삶이 그런대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쯤은 어떻게든 조율할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에 사흘만 일한다거나, 재택근무를 한다든가 하면서. 진짜 포도밭과 수영장과 테니스장과 와인창고와 엄청나게 큰 저택을 보면서, 프로방스의 저런 집을 가진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가 누구든간에 당장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내가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남자도 같이 마음을 먹어야....쿨럭.



굳이 다른 사람에 의존할 꿈을 꾼 까닭은 지금 내 형편으로는 프로방스에 집을 마련하는 게 말도 안되는 일이란 걸 내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듯 성실하게 꼬박꼬박 직장을 앞으로 십년간 더 다닌다고 한들, 다니면서 술도 끊고 책도 끊는다고 한들, 과연 프로방스에 저런 집을 살 돈이 모여질까? 개똥같은 소리겠지. 설사 로또라도 당첨이 된다면 가능하려나. 아니, 로또당첨으로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또 설사 어찌어찌 저런 어마어마한 저택을 내 소유로 했다한들, 관리비는 어쩔것이냐. 그 큰 집을 관리해줄 일꾼들이 필요한데 그 월급을 무슨 수로 충당해. 아아- 프로방스의 저택이란 실로 대한민국의 월급쟁이가 꿈 꿀 수 없는 아득히 멀고도 먼 곳에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영화로 봐야만 하는 곳이구나. 환상의 장소로구나.



한 달만이라도 살다 오는건 가능하려나. 로또 당첨되면 한 달만 머물다 와야겠다. 그러려면 오늘 퇴근길에 일단 로또를 사야겠구나. 아, 이 미친 로또. 괜히 있어가지고 사람을 이지경을 만들어놔. 왜 코털같은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하는거야. 쓰읍-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는 게 이 영화의 교훈이다. 어떤 놈은 도시에서 떼돈을 벌고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 직장을 때려치고 시골로 가도 거기에 어마어마한 포도밭과 으리으리한 저택이 있고 그 마을에서 누구나 뻑가게 아름다운 여자를 애인으로 사귀게도 된다. 인생은 애시당초 불공평한 것이고, 내 몫으로는 프로방스의 땅 한 뙈기도 배정되어 있질 않았다. 



싸구려 와인이나 사다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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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3-0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간 여행으로 묵을수 있다면 정말 부러운 곳이겠지만
글쎄요...삼겹살과 파절이 그리고 소주도 없이
다락방님이 어떻게 저기서 평생 살수 있겠어요? ^^:::



이래저래 답답하니 더욱더 여행 가고 싶은 날들입니다.

다락방 2014-03-04 11:15   좋아요 0 | URL
네, 여행으로 다녀오는 게 더 좋을것 같아요. 미국에 있는 부자친구가 프로방스에 집 하나 사두기로 했습니다.(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삼겹살과 파절이는 없겠지만 와인과 스테이크가 있을테니 괜찮을 것 같아요. 문제는 한국남자가 없다는건데....뭐, 외국남자가 있을테니 그것도 뭐 그런대로..

저도 엄청 바다 보러 가고 싶어요. 돌아버릴 지경이에요. 혼자 훌쩍 다녀올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날들입니다.

자작나무 2014-03-0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방스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할 일이라 위안해 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과장님에겐 좋은 가족들과 친구들, 착한 애인, 야한 동영상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가진 것은 공기와 같아서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없어질 때 비로소 인식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와인은 생리전증후군을 악화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락방 2014-03-04 11:22   좋아요 0 | URL
프로방스에서 태어났다면 자작나무님이 말씀하신대로 그곳이 바로 공기와 같은 일상을 주었을테니 감사한 줄 모르고 살았겠죠. 아마 거기에서 다른곳을 향한 꿈을 꿨을 듯요. 제게 좋은 가족들과 야한 동영상이 있는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있지 않은 다른 곳을 꿈꾸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전 착한 애인은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프로방스에 집있는 애인이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제주도라도...말타고 해변을 뛰어다니게.....하하하하하.

와인과 함께 갈거라면 생리전증후군도 계속 함께 가야겠네요. 어쩔수없이..

moonnight 2014-03-0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방스에 저런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사람은 (천만다행으로;) 제 주변엔 아무도 없군요. ㅎㅎ
프로방스에 대한 책과 영화들을 보다보면 햇빛과 친하지 않은 저도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

다락방 2014-03-04 16:59   좋아요 0 | URL
너무 아름다워서 저절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가서 '사느냐' 하는건 또 다른 문제겠지만 말예요. 전 며칠간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거리며 맛있는 것 먹고 와인 마시고 지내보고 싶어요. 흑흑

Mephistopheles 2014-03-0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프로방스에 있는 포도밭이 넓게 있고 지하실에 와인이 가득가득한 거대한 대저택의........

"포도 따는 아낙네 #1"도 괜찮치 않을까요...??

다락방 2014-03-04 16:58   좋아요 0 | URL
오! 완전 현실가능성 더 있는 훌륭한 제안이네요. 포도 따는 아낙네 1 이 되어서 대저택의 주인을 유혹하면 되는거잖아요!!!!!!!!!!!!!!!!!!!!!!!!!!!!!!!!!!!!!!!!!!!!!!!!!!!!!!!!!!!!!!!!!!!!!!!!!!!!!!!!!!!

Mephistopheles 2014-03-05 09:36   좋아요 0 | URL
모든 결론은 유혹과 에로스로 종결짓는 에로에로다락방님이시군요...ㅋㅋㅋ

다락방 2014-03-05 10:17   좋아요 0 | URL
결국은 그렇게 되어버리고 마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