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종옥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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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밸런타인 데이에는 회사 동료직원들에게 시집을 한 권씩 선물했었다. 올해도 시집을 할까, 하다가 늘어난 직원들 탓에 시집 한 권의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퍼뜩,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게 떠올라 검색했고, 역시나 이 책은 한 권당 4,950원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오, 놀라운 가격이다. 이 책은 밸런타인 데이 선물로 초콜렛 대신 주기에 손색이 없는 그야말로 맞춤한 책이 아닌가! 그래도 직원 수대로 사기는 당연히 부담스러웠던 터에, 마침 해외며 국내 다른 공장으로 출장간 직원들은 빼버리기로 하니 열다섯 권만 구입하면 되었다. 그래, 눈 딱 감고 열다섯권 주문하자. 자꾸만 내 돈, 하고 돈 생각을 안할수가 없었지만 다른 직원들로부터 초콜렛을 받아 먹고 가만 있기도 거시기하고, 그렇다고 나 역시 초콜렛을 줘 의미없게 몇 분간의 달콤함을 선물하긴 싫고, 애초에 이 책의 낮은 가격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자' 낮은 가격으로 책정됐던만큼, 그래, 나도 거기에 한 몫을 하자,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며 아울러 책을 읽지 않았던 동료 직원들에게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읽도록 하자, 하고 선택했다.


이 책을 선물하며 작은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일 년에 한두권도 채 읽지 않는 직원들이 선물받은 이 책을 읽고 내게 말하는거다. 읽어보니 황정은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읽어보니 정용준의 작품이 좋았어요, 라고 말하게 되는.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주말에 이 책을 읽고 온 직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러나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 이 책이 그다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은의 작품 <上行>을 제일 먼저 읽었는데, 물론 좋았다. 그리고 제목에 이끌려 읽은 박솔뫼의 작품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난해했다. 나는 상징과 은유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 사람이고, 박솔뫼의 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 힘이 딸렸다. 그 상징과 은유들이 벅차 아, 이것은 마술적 리얼리즘인거냐, 하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게다가 대상을 수상한 <거리의 마술사> 역시 이해될 듯 하면서도 내 손에 잡히기엔 좀 먼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좀 더 단순하게 현실을 말해주면 좋을텐데, 무엇이 사실인지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정용준의 단편, <당신의 피>는 읽으면서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을 생각나게 했다. 경계를 갔다온 느낌, 그 느낌을 정용준 단편의 주인공이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정용준의 다른 책들을 한 번 읽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어딘가에서 읽은 작품인데 그게 어디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작품은 읽고나서 크게 기억에 남는다던가 하는 단편이 아니었던지라 제목 조차 까먹고 있었는데 첫 줄을 읽자 바로 떠오르면서, 이 작품에서 아마도 라식 수술하고 비행기 타면 안구가 터진다고, 그래서 파일럿이 되기를 포기했다고 하지 않았나, 하고 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읽었는데, 오, 역시나 맞았다. 지난 주말 만난 친구는 수영으로 몸매를 끝내주게 만들었는데, 그 친구가 『안나 까레니나』에서 등장인물이 피로를 풀기 위해 잠깐 수영하는 장면이 나오는 걸 기억하냐며, 그 말이 자기에게도 들어맞는다고 했더랬다. 나는 그 장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아 역시 사람은 자신이 관심있는 걸 기억하게 되는구나 싶었는데, 이장욱의 단편에서 안구가 터지는 건, 나 역시 라식수술을 했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같이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김미월'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과, '손보미'의 <과학자의 사랑>은 괜찮았다. 다만,


이 책이 '밸런타인 데이 선물' 이라는, 다시 말해,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읽으며 다른 작가에 대해 호감을 표하고 혹은 한 작품에 대해 푹 빠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젊은 작가들을 지원해주고 싶은 내 의욕이 앞서, 책을 잘 안읽는 사람들에게 좀 부담이 되는 책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박솔뫼의 글과 김종옥의 글을 읽으며 동료 직원들은 뭐지 뭐지 갸웃하게 될 것 같았다. 그들을 책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책과 좀 더 친근하게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선물했는데, 적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 좀 더 쉬운, 좀 더 '재미있는' 책을 선택해야 했었는데... 그러나 이 모두는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니 실제 그들이 읽으며 어떤 느낌을 받게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가장 높은 확률은 그들이 올해가 가기전에 이 책을 읽지 않는다......에 걸어야 하겠지만. (내년엔 읽게될까? 단편이니 읽기에 괜찮을텐데..)





시골에서 살면 좀 나을까 싶어서 알아보러 내려온 거거든. 나, 도시에서 사는 건 이제 싫다. 육 개월 단위로 계약서 써가며 일해봤냐. 사람을 말린다. 옴짝달짝 못하겠어. 마땅하지 않은 일이 생겨도 직장에서 한마디할 수 있기를 하나. 눈치만 보게 되고 보람도 없다. 계약서 갱신할 날이 다가오면 가슴만 이렇게 뛴다. 다 때려치우고 이런 곳에서 한적하게 살아볼까 싶었는데 만만치 않네. 시골에서도 뭐가 있어야 산다잖냐. 내가 참, 뭐가 없는 놈이구나, 이런 생각만 들고, 괜히 왔다. (황정은, <上行>, p.152)




남자는 여전히 자고 있고 자고 있는 몸은 작아서 내가 잘못 뒤척이면 내 몸에 깔려버릴지도 몰랐다. 내가 너를 깔아뭉개면 안 되는데 너는 살아 있고 사람이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작아진 네가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너를 깔아뭉개는 것은 잘못이다. 웃다가 갑자기 몸이 작아진 네가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고 동물도 아니고 아주 이상한 것이라고 해도 너를 깔아뭉개는 것은 잘못이다. (박솔뫼, <우리는 매일 오후에>,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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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2-1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가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 ")
내년 발렌타인데이엔 이 책을 선물해봐요!!!

다락방 2014-02-17 11:46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아무래도 선물을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로 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물씬 들더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

moonnight 2014-02-17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정말 친한 사람 아니면 제가 선택해서 책 선물은 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선택해서 주는 책이 좋았던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ㅠ_ㅠ 저는 명절 때 직원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해서 사 주는데요. 가끔 너무 비싼 책을 고르는 직원들이 있다는 슬픈 현실이. -_-;;;;;;;;;;;;;;;;;

다락방 2014-02-18 14:39   좋아요 0 | URL
아니 그 직원들은 왜 비싼 책을 고르는거죠? -0-
명절에 책을 주는 직장 상사라니..멋지네요 ㅠㅠ 문나잇님은 멋진 분이십니다!!

저는 책 선물을 잘 하는 편인데요, 특히나 직장 동료들은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꼭 책을 사서 주고 싶어집니다. 뭐, 사준다고 다 읽는건 아니지만요 Orz

꿈꾸는섬 2014-02-1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렌타인데인 초콜릿대신 책선물은 좋은 생각인것 같아요. 초콜릿처럼 달달한 책 찾아서 저도 내년엔 책으로 할까봐요.ㅎㅎ

다락방 2014-02-18 14:40   좋아요 0 | URL
초콜렛보다 책이 더 낫다고 저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초콜렛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요. 인원이 많을 경우에 말이지요. 내년부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엉엉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