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p.102)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아버지는 사실 살짝, 아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자신은 우수한 두뇌, 우수한 외모를 가진채 이 사회에서 성공해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데 자신의 아들은 너무 내성적이고 욕심도 없어서. 그게 못내 아쉽다. 자신의 방침대로 그에게 여러가지를 교육시키지만,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상황앞에서 그는 '역시 그랬군' 이라는 대응을 하고야 만다.
아이가 어릴적에 바뀌었단다, 병원에서.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 앞에 양쪽 아버지는 만날 수밖에 없고 서로에 대해 이해 안되는 부분과 짜증나는 부분들을 보아야만 했다. 낳은정이냐 기른정이냐 도 중요했지만, 그것이 어떻든 그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국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 역시 '성장' 하게 되고, 그렇게 성장해서 좋은 아버지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여러명의 아버지가 있는 것이 좋을거라고. 여러명의 어머니도 물론. 그들 모두 자신의 역할이 처음일테니 함께 모여 아이들을 키운다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렇게 된다면 다양한 교육방법들 속에서 최선을 찾을 수있을테고, 다양한 사랑이 아이들에게 쏟아져 더 나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잔잔하게 그리고 묘하게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영화이고, 영화에 삽입된 피아노 곡들은 오!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들이다. 들어서 안 건 아니고 자막을 보고 알았다. 킁.
<글로리아>의 배경은 칠레다. 글로리아는 50대의 여인이고, 일이 끝나면 그녀는 춤을 출 수있는 장소로 가 술을 마시며 춤을 춘다. 그러다 남자를 만나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며,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기도 했다. 그 장소를 뭐라 불러야할지 모르겠는데, 캬바레 라고 해야하나 락까페 라고 해야하나. 나이트클럽과도 또 다른 장소인듯 한데, 우리나라에도 저런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했다. 어른들이 찾아가 자유롭게 술 마시고 춤을 추며 교제할 수 있는 그런 장소. 불량스럽게 보여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워하는 장소가 아니라 '나 어제 거기 갔다왔거든' 이라고 말해도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 그런 장소.
이 영화의 미덕은, 나이든 남자와 여자의 자연스런 육체라고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들의 축 쳐진 살과 둥그렇게 나온 배는(그렇다고 해도 나보다는 덜나왔더라), 그들의 나이와 살아온 세월, 그 시간동안 그들은 그저 시간의 흐름에 그들을 맡겼음을 드러낸다. 영화를 보고나서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했다. 이 영화를 우리나라에서 찍었다면, 글로리아 역을 맡은 배우는 당장 몸을 만들었을 거라고.
크- 생뚱맞은 이유로 이 영화는 내게 힘들었는데, 그건, 하앍- 이 영화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식사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그냥 혼자서도 집 안 곳곳에 와인 병과 잔이 놓여있다. 어휴. 어찌나 와인을 마시고 싶어지던지. 영화가 끝나고 친구들과 소주에 삼겹살과 갈비를 먹고, 맥주에 치킨을 먹었으면서도, 결국엔 참지 못하고 피자에 와인을 마시는 3차까지 가기에 이르른 것이다. 아- 나는 영화의 지배를 너무 잘 받아!
이 영화는 이렇듯 화려하고 예쁜 색채와는 어울리지 않게 참으로 슬프다. 너무너무 슬프다.
오스트리아의 50대여성이 휴가차 케냐로 간다. 이 늙고 살찐여성은 케냐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서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바로 그곳에서 사랑을 찾고자 한다. 이미 다른 관광객으로부터 이곳의 남자들의 살냄새를 한 번 맡으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던터다. 해변엔 자신이 만든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과 몸을 팔려는 남자들이 가득하다. 그곳에서 호객행위를 하지 않으며 어느정도 거리를 둔 남자가 그녀를 지켜보고, 그녀는 그에게 '이정도로 거리를 지켜준 사람은 네가 처음' 이라며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남들은 내가 너한테 돈 받는 줄 알겠지만 나는 너를 좋아해서 이러는거야' 라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모텔을 함께 간다. 여자는 그에게 '너는 아름답지만 나는 이렇게 늙고 가슴도 쳐졌어' 라며 자신의 육체를 조금 부끄러워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예쁘다고 한다. 예쁘다고, 아름답다고. 그녀는 행복해졌다. 사랑하는 남자, 자신을 예쁘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남자.
그런 그가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조카가 아파서 입원했다며 지갑에 있는 돈 모두를 원하고, 자신의 삼촌에게 데려가더니 삼촌에게도 돈을 주라고 한다. 그녀가 환전해둔 돈이 모두 떨어지고, 돈이 떨어지고 나자 그도 행방을 감췄다. 그녀는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이용했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사랑이 나타난다.
그 역시 그녀와 섹스를 하고 그녀의 미소가 예쁘다고, 그녀가 입은 옷이 예쁘다고 말한다. 그 다정한 속삭임들에 그녀는 활짝 웃는다. 이건 사랑이겠지, 이제야 진짜 사랑인거야. 그러나 그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표정은 변한다. 또,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녀의 돈만 보고 접근한 남자들이라 슬프냐고? 맞다. 그게 슬프다. 그런데 더 슬픈건, 돈 때문에 몸을 파는 아프리카의 남자들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여자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그들. 사랑인 척 다가갈 수밖에 없는 그들. 유럽관광객인 여자 네 명은 돈을 주고 남자를 한 명 산다. 그들중 한 명의 생일이라며 파티를 해야한다고, 그에게 스트립쇼를 시킨다. 남자는 옷을 벗고 시키는대로 춤을 춘다. 나는 그 장면이 몹시도 슬펐다.
사랑을 찾지 못한 여자와, 돈을 받고 옷을 벗어야 하는 남자 때문에 슬픈 영화다. 파라다이스는 무슨 개뿔, 파라다이스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거냐.
(비밀댓글님의 조언에 따라 중요부위 하트가리기 수정보완 하였습니다. 전 안가려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하하하하.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빵빵 터졌는데, 김상중이 특유의 억양으로 정유미와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웃었다. 게다가 이민우의 장난에도 웃었고. 하하하하.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에서 '선희'의 성격에 대해 얘기한대로, 자신 역시 내숭없이 솔직한 성격인듯하다. 이 영화에서도 꾸미거나 감추지를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찌질함이 다 드러난다고 할까.
'진짜', '정말로', '너무' 같은 부사를 남발함으로써 외려 더 찌질해져버리고 마는 남자 주인공들 때문에 웃을 수있다. 이선균이 정유미와 술을 마시면서 '넌 내 인생의 화두야' 라고 말하고 연이어 '내가 만든 영화는 다 너 때문이야' 라고 할 때도, 그가 술에 잔뜩 취했기 때문인지 어떤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뭐랄까, 술 먹고 꼬장부리는 것 같달까. 확실히 소주 마시는 장면을 가장 맛깔스럽게 찍는 감독은 전 세계에서 홍상수가 유일하며 최고인 듯. 그리고 이 영화속에서 술 마시고 취한 연기는 정재영이 탑이었다. 하하하하. 이십대 중반시절, 늙은 애인을 두고 연애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속의 술취한 정재영을 보노라니 그 십수년전의 늙은 애인이 떠오르는거다. 정재영도 술에 잔뜩 취해 선희의 손을 꼭 잡고 선희 니가 제일 예쁘다, 라고 혀꼬인 소리로 주정을 하는데, 내 늙은 애인이 내 손을 붙잡고 주정하던 장면들이 스르르륵- 스쳐 지나가...
그러다가 갑자기 <응답하라1994>의 칠봉이 생각이 났다. 꼬박 챙겨보는 건 아니고 어쩌다 보게 되는데 그래도 대략적인 스토리는 알고있다. 거기에서 엄청 잘나가는 야구선수 칠봉이는, 크-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가장 뜨겁게 좋아했던 남자를 닮아있었다. 그 큰 키...때문인가.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헤어지고 싶었던 남자였는데, 내가 본 부분에서는 칠봉이가 잠깐 한국에 들르러 오고, 그렇게 잠깐 나정이를 만나는거다. 그 때의 설레임이 갑자기 내 것이 되었어. 아- 칠봉아. 니가 그렇게 돌아오면 나는 어쩌란 말이니!!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