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빴던 날들이 있었다.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비관적인 생각들만이 가득했던 그런 날들.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지금와서는  아 그 때 그랬었지, 하는 기억들이 난다. 그 날들을 내가 견뎌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어느틈에 다시 삶이 '견딜만한 것'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갑작스레 괜찮아진 건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회복되었으리라.

 

 

사람들과 말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 지냈다. 삶이 하나의 점으로 졸아든 채로. 그러면서 날마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회복되어갔다. (p.9)

 

 

 

 

 

 

 

 

 

 

 

 

 

 

 

 

물론, 어떤 상처들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반드시 회복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어떤 것들은 그저 묻어두는 것일게다. 그러나 남편이 죽고, 그 상실감에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는 그녀의 상태를 읽으며, 나 역시 그녀를 따라 회복되어 가는 것 같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아픈 마음을 모두에게 드러내고 살 수는 없다. 친근한 몇명에게만 드러내면서 혹은 그저 혼자 묵묵히 견뎌내면서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는채로 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내게 예상외의 상처를 또 던지게 될 지도 모른다. 내 상황에 대해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상대가 모르는 채로 내 상처를 쑤신다해도 내가 어떻게 '알지도 못하면서!' 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속으로 야속할 수는 있을거다. 내가 이렇다는 걸 너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지마, 라고. 니가 나를 다 알아?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심각할 거 없어요."

'내 속이 어떤지 알기나 해요.' 그녀는 닭의 옆구리에서 한 조각을 집어 들어 맛보았다. (p.125)

 

 

 

몇 년전의 일이었다. 나는 힘들고 지쳐있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는데, 친구가 소포를 보내왔다. 안을 열어보니 호두파이와 치즈파이가 절반씩 들어 있었다. 집에 늦게 들어와 샤워를 하기 전, 일단 한 번 맛이나 보고 샤워할까 싶어 치즈 파이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 입을 깨물었는데 아- 너무 맛있는거다. 그러자 왈칵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었다. 그 치즈 파이가 내 마음을 살포시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내가 힘든걸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은 위로였다.

 

 

 

그녀는 또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촉촉하고 부드롭고 완벽한 맛이었다. 안온함이 밀려왔다. 마치 머리 위에 지붕이 생겨나고 따뜻함이 그녀를 감싸는 것만 같았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고통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나마 견딜 만한 무엇이 되었다. 그녀는 아늑한 기분에 눈을 감았다. (p.125)

 

 

 

 

그런 일도 있었다. 그와 나란히 앉은 일.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더 정확히는 그의 팔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우리는 이야기하던 중이었고, 그 이야기는 그렇게 심각한 얘기는 아니었다. 나란히 앉았다가 고개를 돌리고 한 쪽 손을 들어 그의 팔로 가져가려다가 다시 얌전히 내려놓았다. 만약, 만약 내가 여기서 그의 팔을 어루만진다면, 내가 하고싶은대로 쓰다듬는다면, 나는 지금처럼 나란히 그와 앉는 일을, 아마도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게 이 시간은 소중했고 아름다웠으며 완벽했다. 이런 시간이 앞으로의 내 삶에 가끔씩 찾아든다면 이대로의 내 삶이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그의 팔을 어루만지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이 우리 관계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이엔 선이 있고, 나는 그 선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중요한 밤이군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의 앞치마는 이미 얼룩이 지고, 그 밑의 티셔츠는 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격려의 뜻으로 잠깐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냥 눈빛으로만 그런 마음을 나타냈다. 그에게 팔을 두르는 것은 어쩐지 경계선을 넘는 일만 같았다. 어떤 일도 오늘 밤 그의 마음을 흩뜨려서는 안 된다. (p.339)

 

 

여자는 그를 생각했다. 그를 배려했다. 그에게 중요한 밤이고, 그의 마음을 흩뜨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포옹 앞에서 망설이던 여자의 마음을, 남자는 짐작조차 못하겠지. 내가 손을 내려뜨렸던 마음도, 그 역시 알지 못하겠지. 우리가 만약 아주 좋은 관계를 누군가와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어느 한 쪽의 배려 때문일 확률이 크다. 어느 한 쪽이 더 많이 좋아하고 더 많이 배려하기 때문에. 관계는 그렇게 유지된다. 앞으로도 이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나는 계속해서 배려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이 좋아서 친구에게 기프티북으로 선물했는데, 며칠이 지나서야 이메일이 도착했다. 이 책이 절판이라고. 그래서 예치금으로 환급해주겠다고. 내 페이퍼를 읽고 이 책을 주문한 친구도 내게 말했다. 주문했고 배송을 기다렸는데, 절판됐다며 연락이 왔다고. 아니 왜 갑자기..절판이 되는걸까. 분명 주문할 때는 정상적으로 됐는데. 절판이란 건 이렇게 급작스러운걸까. 많이 아쉽다. 친구가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주문했다 취소됐던 친구는 중고샵에서 검색해 이 책을 결국은 구입했다. 여하튼 이 책이 절판이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개정판이 나올일은..없는걸까? 이 책을 검색해보니 이 책을 읽고 리뷰나 페이퍼를 쓴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어쩐지 개정판이 나오진 않을것 같아..Orz

 

 

 

 

 

지난주 목요일이었나. 친구를 만나 족발을 먹고 알라딘 중고샵 강남점엘 갔다. 가지 말걸, 괜히 가가지고 또 책 몇 권을 사버리고 말았다. 계산을 하려는데 카운터에서 내게 알라딘 회원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전화번호를 말해달란다. 전화번호를 불러줬더니 아이디를 확인하며 내 번호로 나오는 아이디가 엄청 많다는 거다. 보통 한 두개정도는 나올 수 있는데 나는 엄청 많이 나온다고, 이런 경우는 자기도 본 적이 없다며 직원은 고객센터에 문의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런 말을 여기서만 들은게 아니라 신촌점에서도, 종로점에서도 들었던 바, 그래 확인 좀 해달라고 했다. 이 번호는 십년도 훨씬 전부터 내가 썼던건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리고나서 다음날, 생각난 김에 내가 고객센터에 문의했다. 나는 이 번호를 십년도 전부터 쓰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이 번호로 가입했다면 그건 이상한거다. 그러니 확인해서 그들의 데이터를 지우던가 해달라고. 그러자 고객센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말 내 전화번호로 아주 많은 아이디가 검색되는데, 그건 내가 가입한 것만 뜨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책을 보내면서 이름과 전화번호와 주소를 넣었던 것도 검색된다는 거다. 그런데 불쾌하시다면 이들에게 연락해서 확인한 뒤 그 기록을 다 삭제해주겠다는 것. 그래서 나는 잠시만요, 라고 한 뒤에,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내가 가입한 것 말고 누군가 내게 선물을 보냈을 때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는 거냐, 라고 물었고 직원은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내 친구들일 가능성이 많고 이상한 루트로 내 전화번호가 도용된 것이 아니니 그들에게 전화해서 내 기록을 삭제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그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게끔 그 리스트에 있는 이름들 중 몇 개만 내게 불러줄 수 있느냐, 다른 기록은 신상정보일테니 불러줄 필요가 없고 내 친구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내가 알 터, 이름들 몇 개만 불러 달라고 했다. 고객센터 직원은 알겠다며 차례대로 이름 세 개를 불러줬고, 오호라, 그들은 모두 내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됐다, 그들에게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확인했으니 됐다고 했다. 알라딘에 하도 오래 있으니 사람들로부터 책을 받았던 적이 많았는데 그것들이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앗. 그나저나 벌써 열한시 반이다. 하아- 내일하고 모레는 또 빡시게 일해야 할텐데, 추석 연휴가 다가오는데도 내일하고 모레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제발 무사히, 별 탈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아. 내일하고 모레, 이틀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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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9-1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과 편지군요. 아. 그냥 이 평범한 두 보통명사를 타이핑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

느긋느긋 2013-09-16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팅 할 때마다 책을 사게 만드시는 무서운 다락방님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3-09-1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러개 아이디가 검색된다는게 그래서였군요.
귀찮으면 카드를 만들어준다던데요?

저도 요즘 저점을 힘겹게 통과중이예요.
그냥 흘러가는대로 감정을 내버려둘지 끌어올리려고 노력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평소 즐기지 않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이를테면 힙합듣기? ㅎㅎㅎ

그렇게혜윰 2013-09-1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카드 갖고 다녀요. 그치만 사랑스런 친구들을 떠올리셨을 그 순간은 부럽네요.^^

2013-09-17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