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들에게서 좋아하는 점은 본질을 중요시하고 근본적으로 정직하다는 점이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로 하여금 거짓말할 필요도, 숨기고 꾸밀 필요도 없는 진실한 사람으로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73쪽
나는 늘 벤치를 좋아했다. 벤치는 은퇴의 상징이며, 세상과의 거리감, 평화스러운 가장자리의 상징이다. 벤치는 바깥세상을 관찰하는 특혜 받은 자리이며, 피난처이고, 멈춰 설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벤치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멋진 벤치도 있고 얄궂은 벤치도 있다. 벤치는 그 놓인 자리만으로도 많은 것을 상징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현실 세계에 속하지 않거나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 단순한 좌석 하나가 그에게 시인의 자격을 부여하기도 하고 시야를 넓혀주기도 한다. 폭풍우나 소요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벤치이다. -88-89쪽
오늘 나는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미레이유라는 여자를 통해, 하긴 그녀가 나한테 자기 곁에 있어도 좋다고 승낙을 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서서히 진행되어 마침내 그 궁극적인 종착역에 이르게 되는 죽음의 전 과정에 동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한 행동, 그 같은 선택을 결심하게 한 것은 공포나 불안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과 분노의 감정이었다. -93쪽
죽음이 임박해오면 그때까지 사용해오던 가면이 부서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는다. 백 퍼센트 솔직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체득한 온갖 계략과 거짓말로 무장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것이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인간은 점점 밝혀지는 진실에 대항해서 어리석기만 한 체면을 세우려고 전전긍긍할 것이다. 인간은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진실에 복종하기보다 그럴 듯한 외관을 유지한 채 죽는 편을 택하리라.-105-10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