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날
로랑 그라프 지음, 양영란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7월
품절


내가 이들에게서 좋아하는 점은 본질을 중요시하고 근본적으로 정직하다는 점이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로 하여금 거짓말할 필요도, 숨기고 꾸밀 필요도 없는 진실한 사람으로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73쪽

나는 늘 벤치를 좋아했다. 벤치는 은퇴의 상징이며, 세상과의 거리감, 평화스러운 가장자리의 상징이다. 벤치는 바깥세상을 관찰하는 특혜 받은 자리이며, 피난처이고, 멈춰 설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벤치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멋진 벤치도 있고 얄궂은 벤치도 있다. 벤치는 그 놓인 자리만으로도 많은 것을 상징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현실 세계에 속하지 않거나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 단순한 좌석 하나가 그에게 시인의 자격을 부여하기도 하고 시야를 넓혀주기도 한다. 폭풍우나 소요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벤치이다. -88-89쪽

오늘 나는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미레이유라는 여자를 통해, 하긴 그녀가 나한테 자기 곁에 있어도 좋다고 승낙을 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서서히 진행되어 마침내 그 궁극적인 종착역에 이르게 되는 죽음의 전 과정에 동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한 행동, 그 같은 선택을 결심하게 한 것은 공포나 불안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과 분노의 감정이었다. -93쪽

죽음이 임박해오면 그때까지 사용해오던 가면이 부서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는다. 백 퍼센트 솔직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체득한 온갖 계략과 거짓말로 무장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것이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인간은 점점 밝혀지는 진실에 대항해서 어리석기만 한 체면을 세우려고 전전긍긍할 것이다. 인간은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진실에 복종하기보다 그럴 듯한 외관을 유지한 채 죽는 편을 택하리라.-105-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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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9-0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엔 벤치에 앉아서 술마시거나 노는거 참 좋아했는데
요샌 웬만한 곳은 노숙자들 눕지 못하게 벤치 중간에 '턱'같은걸 만들어 놔서 영.......

다락방 2013-09-04 11:34   좋아요 0 | URL
벤치에 앉아서 캔맥주를 마시는 건 진짜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 같아요. 물론 캔맥주를 마시노라면 근처에 화장실은 필수겠지만. 킁킁.

Mephistopheles 2013-09-0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치는 딱딱해서 잘 배겨요...그래서 영...

아무개 2013-09-03 16:18   좋아요 0 | URL
메피님 우리는 이미 장착된 질 좋은 쿠션이 있잖아요 뭘~^^

Mephistopheles 2013-09-03 19:08   좋아요 0 | URL
제 나이 돼봐요...쿠션이 좋은 들 딱딱한데 앉으면 뼈가 저립니다.

다락방 2013-09-04 11:34   좋아요 0 | URL
배기기 전에는 일어나줘야죠.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3-09-0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도 벤치 좋아하세요?

근래에 사건사고가 너무 많아서 피난처같은 벤치에 앉아있고 싶은 심정이네요.
나에게도 벤치가 필요해요. 벤치가...

다락방 2013-09-04 11:35   좋아요 0 | URL
벤치는 이상하게 여유의 상징으로 느껴져요. 다 괜찮아지고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혼자 앉는 벤치도 둘이 앉는 벤치도 좋은것 같아요. 단발머리님도 벤치 좋아하시는군요.

제 경우엔 사건사고보다도 과중한 업무로 인해 여유가 없는지라 벤치에 앉을 여유가 필요하네요. ㅠㅠ

다락방 2013-09-0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2013-09-03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9-04 11:42   좋아요 0 | URL
우앙 고맙습니다~ 므흐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