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출근길에 들고 왔던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조금 남아서, 점심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집에 가는 퇴근길 지하철안에서 읽을 책이 없다!! 책이 있어도 안 읽는거랑 없어서 못 읽는 건 다르다. 회사에도 늘 책 몇 권이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게 하나도 없담. 할 수 없다. 시간을 보니 열두시 조금 전. 나는 당일배송을 시키기로 한다. 그래, 평소 읽고 싶었던 책으로 당일배송을 시키자. 오면 그 책을 퇴근길에 읽으면 되고 안오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둘러봤다. 사고싶은 책이 많았지만 내게는 알사탕도 없고 적립금도 없다. 광고비로 고작 3천원이 들어온 게 전부. 그래, 책 안 질러. 딱 한 권만 사자, 했다가 읽고 싶었던 『여우의 전화 박스』를 중고로 사고, 이건 그림책이라 휘리릭 넘어가니, 소설책을 한 권 샀다. 세 시가 좀 넘은시간, 경비실에 내려가봤다. 혹시 택배 온 거 있나요? 라고. 경비아저씨는 있다며 박스를 내미셨다. 꺅. 왔다, 당일 배송이 왔어! 내가 알라딘 박스에서 꺼낸 소설책은 이것이었다.
두근두근. 줄거리가 흥미진진해, 지하철안에서 읽는데 꺅, 너무 재미있는거다!!!!!!
덕 시티에서는 1인분 도넛양이 스무개다. 오래전에는 한 개 혹은 두 개였지만 이 도넛공장 사장이 그 후에 열 개로 만들어 버렸고, 지금은 스무 개로 만들어버렸다. 도시 전체가 뚱뚱한 사람들 투성이다. 그냥 뚱뚱한 게 아니라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당뇨를 앓고 있고, 공장에서 일하며 돈 대신 인슐린을 받을 정도이다. 포르노 클럽에서는 벌거벗은 거대한 여자들이 관객들 앞에서 생크림 케익을 퍼먹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은 역겨우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도넛 공장의 사장은 도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먹을수록 배가 고파지는 밀가루를 만들었다. 도넛공장을 포함한 그의 기업은 도시 전체를 장악한다.
정부에서는 국민의 비만을 관리하기로 한다. 뚱뚱한 사람을 태우는 택시는 딱지를 떼게 되고, 매일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집을 노크해 허리 치수를 재고 체지방을 측정한다. 줄지 않을 경우 수용소로 보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후원하는 것도 도넛 공장 사장이다. 살 빼라고 종용하는 정부와, 먹을수록 배가 고파지는 밀가루를 만드는 재벌이 한 곳에 공존한다. 국민들은 갈팡질팡하며 아침마다 찾아오는 정부 요원들 때문에 무섭고, 그럴수록 일인분에 스무개나 되는 도넛을 먹어야 한다.......
아주 무서운 소설이다.
어제는 집에 가서 배가 너무 고파 김치에 밥을 먹을랬는데, 냉장고에 비엔나 소세지가 보이는 거다. 나는 마늘과 양파를 썰어 넣고 비엔나 소세지를 넣은뒤 살짝 볶아서 후추를 뿌린다. 근사한 요리가 완성됐다. 악. 이걸 이대로 밥 반찬으로 허비할 수 없지, 나는 냉큼 방에 들어가 옷장에 숨겨둔(응?) 화이트 와인 한 병을 꺼내온다. 이제 남은 와인은 이게 전부다. 밥 한 공기와 비엔나 소세지와 와인을 앞에 두고 엄마랑 결국 와인 한 병을 다 비워냈다. 하하하하하. 그러다가 엄마가 감자를 구웠는데 뜨끈뜨끈하다며 두 개를 꺼내서는 손으로 호호 불며 쪼개는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가 무척 맛있어 보인다. 나는 취하고 배부른데도 그걸 보고 또 참을 수가 없어서 냉장고를 열어 치즈를 꺼낸다. 그리고 치즈를 잘게 찢어서 뜨거운 감자 위에 올려두었다. 사르르~ 치즈가 녹아갈 때 감자를 먹었다. 맛있었다. 아아, 나란 인간은 어쩔 수가 없는걸까.
그렇게 배가 부르자 갑자기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던 책 덕 시티가 생각나는거다. 이 책속의 주인공처럼 체지방이 72프로 나가고 그러면 어떡하지, 이 책 속의 도널드처럼 200킬로가 넘어가면 어떡하지, 갑자기 나는 무서워진다. 안되겠다. 이대로 잘 순 없어. 나는 먼지가 뽀얗게 싸인 스텝퍼를 거실에 꺼내둔다. 그리고 컬투의 베란다쇼를 틀어두고 스텦퍼 위에 올라가 잇차 잇차 움직인다. 마침 베란다쇼의 주제는 다이어트....................
아직 저 책의 절반도 채 읽지 않았지만 정말 흥미진진하다.
오늘 아침에는 그다지 색다른 반찬이 없었다. 열무김치와 총각김치(사실 집에서는 딸랑무라고 부른다), 갓김치와 김치찌게가 반찬의 전부였다. 어젯밤 잠을 잘 못주무셨다며 엄마는 밥은 니가 퍼먹어, 하고는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는 커다란 그릇에 밥을 퍼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훗. 오늘 반찬은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맛있게 먹을 수 있지. 나는 그릇에 고추장을 넣고 열무김치를 넣고 슥슥 비빈다. 아, 너무 맛있어서 밥이 금세 없어졌다. 출근하지 않고 이렇게 계속 밥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아, 그러면 나는 덕 시티의 시민이 되겠지.. ㅠㅠ
도널드뿐 아니라 다른 근로자들도 임금으로 인슐린을 받았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장에서 나오는 불량품들을 공짜로 먹었다. 당뇨병 환자들에겐 돈보다 인슐린이 훨씬 더 중요했다. 12세 이상 덕 시티 시민들 중 92퍼센트가 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을 앓았다. 그래서 근로자들에게 돈 대신 인슐린을 지급하는 것은 존이 운영하는 기업의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었다. 존은 생것으로 먹기보다 튀김옷을 입히든 그냥 튀기든 튀김을 먹어야 인슐린이 더 적게 들어간다고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기름으로 튀겨야 소화 시간이 길어져 혈당이 더 천천히 오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몇몇 저명한 영양학자들이 그의 이론에 이견을 밝혔지만) 그의 제품들이야말로 덕 시티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 즉 나라 전체를 땅 밑 암흑으로 끌어내리는 혈당 상승에 대항하는 무기였다.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