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베송'은 자신의 책 『포기의 순간』의 사인회를 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었다고 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모두에게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불의의 사건이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그 불의의 사건이 '나'라는 사람 하나에게만 불의의 사건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이 영화, 『앤젤스 셰어』를 보고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속의 남자 주인공은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자신안의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한다.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상대를 잡아먹기에 안달하는 원수같은 놈도 있는데, 폭력전과가 있는 그로서는 이제 한 번만 더 폭력을 휘두르면 감옥에서 오랫동안 살다 나와야 한다. 이런 그에게 아들이 태어나고, 그는 그 아들에게 자신의 삶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해 '정신을 차린다'.
그러나 그가 정신을 차리기까지, 그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또 좋은 남편과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까지, 그 전에 그에게는 불의의 사건이 있었다. 코카인 중독으로 묻지마 폭력을 저지른 게 바로 그것인데, 피해자는 갑자기 길 한바닥에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했다. 한 쪽 눈은 실명했고 대인기피증에 걸렸으며 직업도 여자친구도 잃고 집에만 갇혀 있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런 피해자를 보는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는 만남의 날, 그는 자신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어머니를 보며 자신도 눈물을 흘린다.
그가 잘못을 깨달았다는 걸, 뉘우쳤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래야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이전의 사건은 돌이킬 수가 없다. 그는 앞으로 혹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한 가족을 우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커다란 실수 혹은 실패는 찾아오고, 시간이 흘러 그것이 큰 후회로 가슴에 남게 될 지도 모른다. 내게도 그런 일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 해피엔딩, 이라고 하면 다 끝나는 일이 될까?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이 영화는 분명 재미있고 따뜻하다. 남자친구가 끊임없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데도 그 때마다 옆에 있어주는 여자친구의 존재는 감히 내가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게 느껴진다. 켄 로치 감독이 분명히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의 앞으로의 밝은 삶 보다는, 그렇게 되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 입혔던 기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자유로운 세계』에서도 그랬으니까. 그 영화속에서도 여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대신, 자신의 처지와 같았던 자들을 지옥으로 밀어넣었으니까.
한 사람은 몇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몇 개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될까. 그는 자신에게 위스키를 알려준 해리에게 천사의 몫인 위스키를 선물해서 감동을 안겨주지만, 그러나 분명 다른 곳의 다른 사람에겐 한 가정을 파멸시킨 폭력범이고 가해자이다. 앞으로 잘 살려고 최선을 다해도 불쑥불쑥 시력을 잃고 내 앞에서 울던 피해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따뜻하고 행복하지만 아픈 영화다.
어제 아침에 라디오를 듣다가 나오는 노래가 좋아서 오, 좋네, 하면서 음악검색으로 찾아보니 져스틴 팀버레이크의 노래였다. 저녁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식당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가 좋길래 오 좋네, 하면서 찾아보니 아침의 그 노래였다. 이 자식, 새 노래 냈나, 여기저기서 나오는구나, 했다.
아...또 노래 부르는 져스틴을 보니 포르투갈의 인적이 드문 한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히 마주치고 싶어진다. 나는 그를 알아보지만 거기에 있든 말든 흥, 하며 심드렁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그는 몇 번이나 까페에서 나를 보고 말을 걸고...우리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유롭게.............암튼 시디 살까? 어뜨카지... 근데 시디를 내면 하나만 내지 뭘 저렇게 다른 버젼으로 두 개나 내고 난리야...뭘 고르라는 거야...져스틴 팀버레이크랑 술을 마시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다가, 뭔가 그는 방탕하게 놀 것 같아서 내 취향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포르투갈의 까페에서 우연히 만나기엔 좋은 상대는 아닌걸까. 내가 그에 비해 너무 순진한 건 아닐까..그는 내게 불의의 사건이 되지는 않을까. 관두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 너무 뜨거워서 얼음을 두 개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