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구한 술을 마시는 곳은 주로 야외였다. 도시에서 사는 우리가 야외에서 술을 마실 일이 얼마나 있을까? 대학교 때 잔디밭에서, 혹은 한강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어본 경험 외에는 언제나 시끄럽고 컴컴한 공간에서 술을 마셨다. 이런 우리와 달리 라다크 친구들은 대부분 밖에서 술을 마셨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왜 안에서 마시냐는 게 친구들의 생각이었다. 차를 몰고 가다 경치가 좋은 곳이 있으면 어디에고 내려서 술을 마시는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특별한 장소를 가지고 있었다. 사막의 공터, 개울가 주변, 강 어귀, 룽따(티베트를 상징하는 오색 깃발. '바람의 말' 이라는 뜻)가 휘날리는 다리 근처, 모든 곳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였다. 라다크 친구들에게는 라다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술집인 셈이다. 너른 땅에 앉아 탁 트인 공간에서 술을 마시면 금세 호기로워져 이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앗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기운이 내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술에 취하는 것보다 자연의 정기에 먼저 취했다.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이나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월식이나 강 내음, 시원한 바람은 일종의 안주였다. 세상에 이런 호사스러운 술자리가 또 있을까? (p.105)

















그러고보니 나도 야외에서 술을 마신 경험이 별로 없다. 대학 축제 때 캠퍼스에서 마신 적은 있지만 사실 별로 축제에 참가하는 쪽이 아니어서 다른학교 남자들이 놀러왔을 때 한 번..이었나. 그리고는 올림픽공원에서 몇 번 마신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이기도 했고 혼자이기도 했다. 올림픽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좋은 이유는, 바로 근처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는 친구가 메신저를 통해 저 문장들을 사진 찍어 보내줬을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술을 마시고 싶다고, 나무들이 우거진 숲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싶다고, 그건 참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금세 화장실은?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란 여자, 낭만을 깨부수는 여자.. 야외에서 술을 마시려면 내게 깔끔한 화장실은 필수다. 난 술집에서 화장실 정말 중요해 흑흑 ㅠㅠ 어쩔수없어 ㅠㅠ 그래서 재작년인가, 같이 술마시던 남자가 '여자랑 둘이 술 마실 때는 화장실 깨끗한 집으로 가려고 하죠' 라고 말했을 때, 마음이 살짝 콩콩 거렸엇어...하아. 



여행기를 별로 읽지만 이 책의 저자들(두명이다)은 글솜씨가 빼어나서 읽기에 좋았다. 무엇보다 나는 신기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나는 '라다크'라는 지역이 있다는 것도, 그것이 인도 북부의 도시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됐는데, 나보다 훨씬 젊은 이들은 그런 라다크에서 까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세 번의 라다크 방문 끝에 카페를 열었다고 했는데, 라다크라는 도시는 사진으로 보는것과 책에서 읽는걸로는 내게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고 가보고 싶은 곳도 아닌데, 이 둘은 그곳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고, 또 뜻하는 바가 같아 함께 여행하고 함께 그곳에 정착하다니(지금은 아니지만), 정말 신기했다. 여행이라는 게 친하다고 아무나와 같이 할 수 있는게 아닌데, 정말 대단히 친하고 잘 맞는 친구 사이인가 보다. 나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나에게 라다크에 함께 가서 살자고 해도 일 초의 고민 없이 '아니'라고 말할텐데. 설사 현빈이 와서 그러자고 해도 나는 싫다고 하고 그와 헤어질텐데. 그래서 삶의 방향이 같은 쪽을 향하는 사람을 만나서 인생을 설계하는게 중요한 것 같다.





"승려들이 추는 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어?"

"글쎄, 승려들이 추는 춤이니까 부처님하고 과련이 있는 건가?"

"그것보다도 훨씬 깊은 뜻이 있어. 참을 통해 우리가 죽은 후에 보게 되는 것들, 그 무서운 형상들을 미리 보여주느느 거야. 죽은 후에 걷게 되는 길 위에서 헤매지 않도록."

"죽음을 연습한다고?"

"말하자면 그런 거지. 사람은 죽은 후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깨닫게 되거든. 지금부터 머릿속에 넣어두면 죽은 뒤에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게 되는 거야. 이전에 몇 번 보았던 것들이라면 아무리 무서운 모습이라도 두렵지 않을 것 아니야? 익숙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데려와서 참을 보여 주는 거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릊만 죽고 난 이후에는 자신이 생전에 모았던 것들을 기억해낼 수 있거든."

"그럼 참도 여러 번 보면 그만큼 더 연습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pp.135-136)



승려들이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을 '참' 이라고 하는데, 거기엔 죽음을 연습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영혼의 존재를 믿거나 혹은 믿지 않거나, 연습할 수 있다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참 이란건, 한 번쯤 봐두는게 좋지 않을까? 보고나면 어쩐지 마음이 조금 더 덤덤해지고 두려움을 조금쯤 몰아낼 수 있을것 같다. 그렇다해도 이 춤을 보기 위해 내가 라다크로 날아가고 싶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다면, 내 눈앞에서 승려들이 가면을 쓰고 죽음을 연습하는 춤을 추는 그 공간에 있다면, 나는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될까? 조금 두근거리게 될까? 그 춤을 눈 앞에서 보고 싶다.








그건그렇고, 엊그제였나, 나비님 덕에 보관함에 담긴 책들의 리스트를 보면서 중고가 등록되어있는지 확인할 수 있단걸 알게됐다. 예전엔 미처 몰라서 혹시 이거 중고떴나, 궁금하면 그 책 검색해서 중고 확인했는데, 보관함 리스트를 보니 중고등록 2건 뭐 이런식으로 표기가 되어 있더라. 덕분에 어제 또 나에게 책이 한 박스가 도착......아, 이건 나비님 덕이라고 하지 말고 '탓' 이라고 해야겠다. 모르는게 나았어요. 흑흑. orz




기침이 며칠째 떨어지지 않아 약을 먹고 있는데, 엊그제부터는 닥터가 약을 바꿔줬다. 이 약 탓인지 모르겠는데, 어제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붓는다. 쌍커풀은 풀어지고 눈은 튀어나오고 뜨고 있기가 힘들다. 오늘은 특히 더해서, 사무실에 왔는데도 가라앉질 않고있다. 힘들어...이따 닥터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나, 이게 약 탓이냐고..쩝...오늘 저녁에 친구랑 맥주를 마시기로 했는데 이 눈탱이로 어떻게 나가나. 오후에도 이 눈이 변함없이 이 지경이라면, 친구한테 다음에 만나자고 해야겠다. ㅠㅠ 나는 날씨가 구질구질해도 또 몸이 아파도 약속을 취소하진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내가 취소하는거 싫어한다), 부은 눈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아- 차라리 스타킹이 빵구난거라면 좋을텐데. 그럼 새로 사서 신으면 되니까. 에잇, 짜증나. 




어제 친구와의 대화.


나: 나쁜 남자 상권 다 읽었어요. 친구: 나쁜 남자예요? 웃는 남자가 아니고요?

하아- 친구의 말을 채팅창으로 읽고 빵터졌다. 위고의 위대한 작품을 내가 삼류로맨스로 바꿔버렸...orz 




오늘 아침 가장 친한 직장동료와의 메신저 대화.


동료: 좋은 아침입니다~ ^^

나: 너 누구냐, 너 e양 맞냐, 사기꾼이지.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을 대봐.


그동안 동료는 말을 걸 때 저런식으로 한 번도 말을 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잠깐 의심했던것. 메신저 사기꾼이군, 하면서. 그리고 이어진 대화.



동료: 하하하하. 둘만 아는 비밀 없는데요?

나: 그럼 e 양 맞구나. 





선물 받은 향수를 뿌렸다. 향이 아주아주 좋다. 그러면 뭐해. 눈이 이모양인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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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3-29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ㅋㅋ 달려가서 이 책을 사야겠군요!!!

다락방 2013-03-29 12:40   좋아요 0 | URL
오 뽀 ㅋㅋㅋㅋ 뭡니까 이 알바틱한 댓글은. 뽀답지 않아! ㅎㅎㅎㅎㅎ

라로 2013-03-2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시간을 많이 절약하신 건 제 덕??ㅠㅠ

저도 저 책 보관함에 담아요,,당장 달려가 살 여력은 안되어,,쿨럭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혹시 저 두 작가 레지비언?????3==3=3=3=3=33333
아침부터 상상력이 너무 불량해~~~~흑

다락방 2013-03-29 12:43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책을 다 읽어보고 말씀드리는데 둘 사이에 '로맨스'는 없어보이던데요. 살짝 '견제'가 있는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요. ㅎㅎ 여행기를 비롯해서 에세이는 그래서 전 읽기가 좀 꺼려져요. 저자에 대해 공감이 되는 반면 금세 반감도 생기게 되거든요. 역시 소설이 짱인듯.. ㅎㅎ

금요일이지만 내일 출근이라 기분이 좋질 않아요. 그래도 흐음. 점심 먹고 힘내야죠. ㅠㅠ

에르고숨 2013-03-29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갖고 싶은 중고책 페이지에서 ‘중고등록알림신청’해 놓으면 심지어 전화문자로 꼬박꼬박 연락도 받을 수 있답니다. 혹시 모르시나 싶어서 글 남깁니다. 라다크는 <오래된 미래> 이후 다시 듣는 반가운 이름이네요. 저도 곧 지르지 싶어요, 소개 고맙습니다. 어서 쾌차하시고요(눈이 부은 게 혹시 새 향수 때문은... 아니겠지요?)!

다락방 2013-03-29 16:44   좋아요 0 | URL
지하생활자님. 저 이 댓글 읽고 지금 제 보관함에 가서 아주 여러권에 대해서 중고등록알림신청 해두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우. 전 정말 알라딘을 몇년간 이용하면서도 아주 무지하네요. ㅎㅎㅎ부끄럽습니다.

지하생활자님은 [오래된 미래]를 읽으셨군요.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오래된 미래]를 자주 언급하거든요. 지하생활자님은 이미 오래된 미래를 읽으셨으니, 저보다 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시겠네요.

눈이 부은건 향수 때문은 아니에요. 향수를 뿌린건 나오기 직전이고 눈은 일어나자마자 부어있었어요. 이 약이 독하거나 안좋은건가봐요. 피부도 썩고있는 기분이에요. orz

2013-03-29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30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핑키 2013-03-3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나쁜남자 ㅋㅋ 빵터졌어요ㅋㅋ 오!오?오. 중고 알람기능까지 되는줄 지금 알았어요ㅋ 헤헤 늘 다락방님께 고급정보 얻어갑니다ㅋ 감사해용ㅋ

다락방 2013-03-30 09:06   좋아요 0 | URL
저란 여자는 역시 삼류로맨스랑 어울리는 여자인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중고알람기능 설정해뒀으니 우린 앞으로 더 많이(!!) 지르겠군요. ㅎㅎ

mira 2013-03-30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책도 궁금하고 메신저 대화도 웃기고 다락방님 눈부은것 구경도 하고 싶어지는데요. 죄송합니다

다락방 2013-03-31 19:49   좋아요 0 | URL
ㅎㅎ 약을 끊었더니 눈 붓는건 이제 없어졌어요. 다만 피부가 울퉁불퉁해져서 속이 쓰립니다. ㅠㅠ 그것 때문에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는. ㅠㅠ 하아- 2013년이 너무 가혹하네요, 제겐. 여러의미로다가.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