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본문은 345페이지에서 끝나는데 나는 192페이지까지 읽다가 포기했음을 미리 밝힌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의 일기다. 그녀는 소련 외교관인 S 를 만나는동안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를 만나면서 그녀가 경험하게 되는 욕망과 집착과 불안과 고통에 대한 것들. 아니 에르노는 역시나 자신의 감정을 밝히는데 거침이 없다. 그녀는 그녀의 다른책에서 그랬던것처럼 이 책에서도 더할나위없이 솔직하다. 불편할만큼.

 

그녀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별난 감정을 가져서 불편한게 아니다. 나는 그녀가 쓰는 감정이 내가 갖게 되는 감정과 지나치게 같아서 불편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는 거침이 없어, 하고 읽어가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다. 이토록 솔직한 글들을 '더는' 읽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에 대한 기억들이 '허구'가 아니어서 더 불편하다. 그녀가 기록한 것들에 '그 남자의 아내'에 대한 묘사가 있는것이 나를 못견디게 만든다. 내가 하지 않아도 좋을 걱정들이 자꾸 생긴다. 맙소사. 적어도 S 와 S 주변의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얘기인지 혹은 누구의 얘기인지 알 수 있을텐데. 이 책을 읽는 S 의 아내는 어떤 기분을 느껴야할까. 나는 아니 에르노가 느낀 감정에 내 감정을 덧씌워 읽으려다가도 자꾸만 튕겨져 나오고 만다. 이토록 솔직한 책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걸까. 나는 겨우 절반을 가까스로 읽어내고 이 책을 읽기를 포기했다.

 

 

오래전 나의 연인은 내게 '지나치게 솔직한게 좋은건 아니야' 라고 했다. 아니, '솔직한게 꼭 좋은것만은 아냐' 라고 했던가. 아니 에르노는 나를 불편하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닌데 나는 불편한 것처럼, 나 역시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의 솔직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들에 가끔 놓이게 된다.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더, 나와 같은 아니 에르노의 감정들을 읽어내기 버거운건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이 책을 읽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int236 2012-10-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를 포기한 다락방님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은 그런 경험이 있어서 책 읽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거든요.

다락방 2012-10-08 09:53   좋아요 0 | URL
책을 포기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죠. 이번처럼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대체적으로는 재미 없어서 포기하곤 하죠. 저는 재미없다는 이유로 책을 포기할 때가 여러번 있었어요. ㅎㅎ

blanca 2012-10-0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지독하게 솔직하죠. 때로 민망할 정도로요. 혼자 읽고 있는데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저도 주변 인물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런 류의 책을 처음 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하여 담담하게 읊조리던 아니 에르노와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끝가지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해요. 눈물나는 결말이랍니다.

다락방 2012-10-08 09:53   좋아요 0 | URL
윽, 블랑카님. 이 솔직한 누군가의 일기를 이만큼 읽은것도 많이 읽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단순한 열정] 이나 [집착] 정도의 분량이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탐닉]은 정말이지 너무 길더라구요. 그런데 눈물나는 결말이라니..궁금해지잖아요!! 흐음..다시..시도해볼까요? 휴..

프레이야 2012-10-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도 회자하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않아서 더 호기심 나요. 이 책은 전에 불랑카님 리뷰인가로도 담아두긴 한 책인데 다락방님이 그만 뒀다는 그 이유가 더 끌리게 만드네요. 역시 불편할까요ㅠ

다락방 2012-10-08 12:04   좋아요 0 | URL
소설이었다면, 허구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더 잘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레이야님. 실제의 이야기, 실존 인물이라는 게 자꾸만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아서 내내 불편하더라구요. 아니 에르노의 글은 죄다 이렇게 솔직하거든요. 그나마 [집착]과 [단순한 열정]은 분량이 얇아서 읽어내기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이 [탐닉]은 그것들의 두 배 분량이에요. 누군가의 지독하게 솔직한 일기를 그만큼 읽어내기가 제게는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런데 블랑카님의 댓글을 보니 마저 읽어보는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프레이야님도 한 번 읽어보세요. 아니 에르노의 글을 프레이야님은 결코 싫어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오히려 그녀의 내면을 아주 잘 캐치하실 것 같아요.

moonnight 2012-10-0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을 때 참 괴로웠던 기억이 나네요.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 안 남. 단지 괴로웠던 것만 -_-;;;

다락방 2012-10-08 13:44   좋아요 0 | URL
끝까지 읽어야하나 지금 또다시 망설이고 있어요. 너무 솔직한 글이 분량이 많으니까 참 지독한 기분이..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