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 -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
문현아 지음 / 지식노마드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다 처음이듯이, 나도 너를 통해서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인 거다. 네가 새롭게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런 아이를 가진 엄마로, 그렇게 처음 엄마가 되는 거니까." (p.58)



당연히 엄마도 엄마가 되는게 처음인데, 우리 모두는 마치 엄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줄 아는 것 같다. 당연히 엄마의 역할로서.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여동생을 옆에서 보아오면서 엄마라는게 정말 힘들다는 걸 깨달아가던 내게, 그래서 차마 그건 내가 못할 것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내게 '나도 너를 통해서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인거다' 라는 문장은 구원처럼 다가왔다. 그래, 그렇지. 이 당연한 말을 왜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 너무 당연해서인가, 아니면 그들 모두 그걸 모르는채로 지내는 편이 더 편했기 때문인가?



여동생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체력이 많이 약해졌고 몸무게도 많이 줄었다. 아이를 막 낳고 나서는 행복과 슬픔 사랑과 절망 그리고 분노까지 그 많은 감정들을 순식간에 왔다갔다했다.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서 육체적으로도 힘겨워했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이겨내느라 우울증까지 걸렸었다. 그토록 원하던 순간순간들이었는데,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제 동생은 많이 안정을 찾았고 어떻게 자신을 돌봐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잠든 후에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면서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갖기도 하고, 과외선생님을 하면서 자신이 녹슬지 않았음을 깨닫고 기뻐하기도 한다. 



여동생이 아이를 낳고 힘들어할 때 무엇보다 그런 여동생을 더 힘들게 한건 주변 어른들의 한마디 말이었다. 야, 옛날 엄마들은 애를 여럿 낳았다, 남들도 다 하는데 너는 왜 유난이냐, 하는 그런 말들. 세상에 그렇게 무식한 말이 어딨을까. 남들도 다 해낸 일이니 나 역시도 쉽게 해내야 한다는 건 대체 어디서 온 논리일까. 누구는 애를 열을 낳았고 누구는 하나를 낳았다고 해서 그게 힘들지 않은건 아니다. 열을 낳든 하나를 낳든 힘들다. 똑같이 둘을 낳았다 해도 누군가에겐 더 벅차고 힘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가 같은 과정을 거치고 같은 경험을 하면서 받게 되는 고통의 강도는 다 다르다. 물론 기쁨의 강도도 다르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각자가 나름의 위치에서 애쓰고 있는데 거기에 '남들도 다 했어' 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그 힘겨움을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쪽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남들도 다 했어, 라니. 그럼 못하는 나는 병신이란 말인가?



그런차에 이 책, 『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는 꽤 반가웠다. 무엇보다 그런 엄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아서 무척 안심이 됐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는 엄마가 처음인 사람들의 편에 서려고 한다는 것, 그들이 괜한 엄살을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나도 한 편이 되어 응원해주고 싶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 과정에서 당연히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그 과정이 행복하기만 하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갖는 환상 아닐까. 그 과정이 왜 무섭지 않겠는가, 왜 두렵지 않겠는가. 나의 스케쥴이 내가 아니라 다른 생명으로 인해 정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먹고 싶은걸 내가 아니라 다른 생명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끔찍하게 두렵지 않은가 말이다. 내 생활이 그동안 몰랐던, 알지 못했던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지다니, 그걸 마냥 환영하고 기뻐하기에는, 사실, 엄마인 당사자 말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먹지 않아야 하고, 자지 못하게 되고, 참아야 하는 것들이 왜 모두 엄마의 역할인걸까. 그런데 왜 그것들을 감당하는 것을 그토록 당연스럽게 여겨야 한단 말인가. 



뒷부분에서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부담도 나온다. 왜 강남 엄마는 있고 강남 아빠는 없는것일까. 왜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들 교육에 더 도움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와야 하는걸까. 왜 할아버지의 재력이 아이의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농담아닌 농담이 돌아야 하는걸까. 왜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만 존재하고 바짓바람을 일으키는 아빠는 존재하지 않는가. 그들은 돈을 벌기 때문에? 그렇다면 돈을 버는 엄마는 교육에서 무관심해도 좋은가? 엄마가 직장생활을 하든 하지 않든 가정과 사회는 아이들의 교육을 당연히 엄마가 책임지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몇몇 엄마들은 그것이 엄마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 탓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엄마들을 보는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지금 당장 그들이 액션을 취하는게 아니라도, 일단 그들은 '내 잘못' 혹은 '내가 엄마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야'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교육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걸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게 좋아서. 일류대를 보내려는, 인 서울을 하려는 엄마들을 만나는 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이 사회가 그런 대학만을 위에 올려놓았으니까. 거기에 가야만 살아남는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인용된 신문기사들을 보더라도 끔찍한 교육으로 아이들을 몰아넣은건 모두 엄마들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멍청하기 짝이없다.



엄마가 아닌 저자가 엄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터뷰를 하고 책을 쓰려는 의도도 좋았고, 무엇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반가워서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지만, 오타가 지나치게 많다. 툭툭 어색한 문장도 튀어나온다. 게다가 재미도 없다. 육아서적도 그리고 엄마의 아이덴티티에 관한것도 읽고나서 위로가 될만하다 싶으면 여동생에게 건네주는데, 강남 엄마에 대한 부분부터는 의미는 있으되 재미는 없어서 책장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읽어보라 권하지를 못하겠다. 단어와 문장을 조금 더 손보았다면, 그리고 음, 좀 더 '재미있게' 썼다면 약간 찝찝한 별 넷이 아니라 확실한 별 넷을 줄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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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2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게 쓸려 그랬는데 또 길어졌어..병인가..orz

비로그인 2012-09-2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육아관련서적이라곤 오직 베이비위스퍼 하나뿐인 엄마사람인데 이런 책도 읽으시는 다락방님 일단 존경합니다... 진작에 읽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육아서적을 앞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지금으로선 다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 자기계발서적과 마찬가지로 쉽게 손이 안가요...다른 사람들의 의견보다도 아이들 키우며 스스로 정립해나가는 걸 더 소중히 여기게 되네요. 아이들을 대하는 기본은 사랑임이 당연하고 같은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것, 그렇지만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 자신을 아이들보다 하찮게 여기지 말 것 등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데...가끔 불필요한 조언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럼 니가 키워봐"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못된?? 엄마네요,저는.ㅎㅎㅎ

다락방 2012-09-24 11:16   좋아요 0 | URL
저도 몇 권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도 육아서에 대한 언급이 있거든요. 아이들마다 다 다른데 육아서대로 어떻게 키우느냐는 거죠.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조차도 성격과 취향이 다 다르잖아요. 그 애들한테 대응하는게 다 달라야 하고요. 육아서는 참고할 순 있어도 유일한 혹은 유능한 지침서는 결코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만약 제가 엄마였다면, 혹은 제 여동생이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육아서를 읽지 않는 여자사람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제 여동생이 엄마가 되었고, 저는 여동생이 엄마라는 역할을 함에 있어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여동생보다 제가 더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요. 읽는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이왕 여동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한다면 가급적 재미도 있었으면 좋겠구요.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요. 비혼이고 아이도 낳지 않았지만, 그런 언니지만, 아이를 가진 여동생의 훌륭한 동무가 되고 싶어요.


아른님 댓글중에 '같은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제 마음과 같아요. 아이들에게도 약속을 잘 지키는 어른이 되는것이 중요해요. 아이라고, 금세 까먹을거라고 말만 내뱉는 건 정말 나쁜것 같아요. 예의를 지키자고 생각하는 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치니 2012-09-2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아서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제가 읽은 교육론(?) 중에는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 저, 이적 어머니죠)이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기억이 있어요. 시대가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엄마 역할에 대해서 너무 모르거나 너무 힘을 주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힘든데, 기본적으로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싶어요. 기억이 가물한데, 아무튼 박혜란 씨가 여성학자이자 세 아들의 엄마로서 주지한 것 역시, 엄마라고 다 해줄 필요는 없다, 일단 아이를 인격체로서 믿어라, 니까요. 이적이 이미 패닉으로서 성공한 이후 나왔다는 게 함정, 이긴 하지만. ㅎㅎ

윗분 말씀대로 다락방 님은 참 부지런하고 배움을 두려워 않는 미덕을 갖춘 분. 동생분이 든든할 것 같습니다. :)

다락방 2012-09-26 12:19   좋아요 0 | URL
치니님의 댓글을 읽고 검색해봤는데 품절이네요. '여성학자'라는 본인의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면서 이적의 어머니이기도 하군요.

부지런하다뇨..전 게으름의 화신인걸요!! 무언가를 배우기엔 노력하는 성향도 없고..부족한 인간인겁니다. 흑흑. 이제 점심 먹을거에요!

dreamout 2012-09-2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책꽂이엔 남편.이 놓여 있네요. 엄마,, 남편,, 아. 손님.도 있네요. ㅎㅎㅎ

다락방 2012-09-26 12:55   좋아요 0 | URL
ㅎㅎ 전 아직 엄마가 되지 않았고 남편도 없으며 절 찾아온 손님도 없네요. ㅎㅎㅎㅎㅎ 책들 다 갈아치워버렸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