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이대로 한 두 시간쯤 더 누워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지독하게 간절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정도로 잠이 쏟아지려는 걸, 간신히 일어나 라디오를 켜면서, 아 생리전이라 이렇구나, 했다. 몸도 개운하지 못한데 출근해서는 마음도 개운하지를 못했다. 나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 마음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상대에게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멘트』는 짜증날 정도로 재미없어서 절반을 읽은 지금 이걸 그만 읽고 팔까, 아니면 뒷부분까지 참고 읽어볼까 하고 있는 와중에, 기분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고, 나는 자꾸만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의 한 구절만이 생각났다. 울면서 잠들게 하는 사람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문장이었다. 나는 번번이 상처받으면서도, 그렇게 한없이 깊은 우물속으로 풍덩- 빠져들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또 힘겹게 우물위로 올라온다. 왜 나를 간혹 우물속에 빠뜨리는 상대를 나는 달로 보내버리지 않는걸까. 왜 혼자 푹푹 한숨만 내쉬고 있는걸까. 절교해 버릴거야.
그런참에 오늘자 경향신문을 넘겼다. 오늘은 서민님 칼럼이 실리는 날이니까. 수학에 대한 서민님의 칼럼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는 그 옆에 실린 [한창훈의 거문도편지]를 읽게 됐다. 앗, 원래 한창훈의 이런 코너가 있었나? 나 왜 그동안 몰랐지?
[한창훈의 거문도 편지]
우리
섬에는 마을이 여섯 개 있다. 마을마다 스킨스쿠버숍이 있는데 내 외가가 있는 덕촌마을에서는 민교라는 청년이 운영을 한다. 그는 강원도 인제
출신이다. 북쪽 산동네에서 태어나 남쪽 끝 섬에 와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친구가 이번에 스킨스쿠버용 레저선을 하나 마련했다. 새 배가 생기면
고사를 지내는 것은 오랜 관례. 이런 경우 보통 왁자한 사내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동종 업자들이 그렇고 주고객들이 그렇다.
그런데
특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지팡이를 짚고, 유모차를 밀고, 또는 친구 손에 의지한 채 동네 꼬부랑 할머니들이 모여든 것이다. 할아버지들도 가장
좋은 옷을 꺼내입고 모자를 쓰고 참석했다. 아마도 운신이 조금이라도 가능한 노인들은 빠짐없이 모였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새하얀 봉투가 하나씩
접혀져 있었다. 거친 사나이들의 현장이 졸지에 경로잔치풍으로 변한 것이다. 고사가 아니었다면 민교는 정선아리랑이라도 한 대목 불러야 했을지도
모른다. 걔중에는 해녀 출신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인과 스킨스쿠버는 섞이기 힘든 대상이다. 노란 줄무늬 다이빙 슈트를 입은 팔십대
파파 할머니를 떠올려보면 그렇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 자리에 와서 십시일반 부조를 하고 축하를 했다. 이유는 물론 따로 있었다.
우체국,
농협, 수협과 미장원, 잡화점, 중국집은 모두 면소재지 마을에 있다. 전기와 수도 요금을 내고 4인 일색의 파마를 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마을 앞바다를 건너야 한다. 산다는 것은 무언가가 끊임없이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덕촌마을과 면소재지는 교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는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거리가 좀 있다는 소리.
나는
아침마다 민교가 운전하는 승합차에 노인들이 가득 타고 있는 것을 봐왔다. 버스도 없고 다리 힘도 없는 그들에게는 노총각의 승합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런저런 일로 젊은 사람 손이 필요한 곳에는 그가 늘 있었다. 듣자니 지난 10년간 그렇게 해왔다고
한다.
유월
햇살은 뜨거운데 제 올리고 절을 하고 축원을 하고 음복을 하는 내내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잘 되야 할건디
말이여.’ 인사말을 민교는 수십번 들어야 했다. 그 횟수만큼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역시 사람 마음은 갈 만한 곳으로 저절로
간다. (출처:경향신문 2012년 06월 27일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o137)
마지막 줄, '역시 사람 마음은 갈 만한 곳으로 저절로 간다' 를 읽는데 마음이 평온해지고 있었다. 세상에는 억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마음에 관련된게 아닐까. 새벽 세시의 레오가 그랬던 것처럼, 달로 뻥 차서 날려보내고 싶었다가 도로 가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내가 억지로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한게 아니잖아. 그게 저절로 그렇게 되어버렸기 때문이잖아. 신경질을 내다가 화를 내다가 서운해하다가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그러면서도 끝내 절교란 말을 내뱉지는 않는건,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저절로 그 친구를 받아들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상처와 상처 사이 더 많은 웃음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보같고 병신같은 내 자신이 한심해서 어쩔줄을 모르면서도 계속 여기에 있는건, 늘 있었던 자리에서 늘 하던대로 하려고 하는건,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갈 만한 곳'으로 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뜻하지 않은 것으로 상처를 받을때가 있다면, 뜻하지 않는 곳에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오늘 경향신문 한창훈의 거문도 편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위로였다.
그래, 마음은 갈 만한 곳으로 저절로 간다. 몸음 먹을 만한 것을 저절로 찾는다(응?). 나는 내 마음이 저절로 가는 사람을 그냥 좋아할 것이고, 몸이 저절로 원하는 음식을 양껏 먹어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