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러브 앤 프렌즈
루크 그린필드 감독, 존 크라신스키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영화 『우리, 사랑일까요?』에서 애쉬톤 커쳐는 아만다 피트의 집 앞에 찾아가 '본 조비'의 노래, [i'll be there]를 부르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애쉬톤 커쳐는 '나중에 늙어 할아버지가 됐을 때 고백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고백을 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애쉬톤 커쳐와 꼭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것이 받아들여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에게 그토록 좋아했던 감정을 말하는 것이 말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을거라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았던 까닭이기도 할 것이고 또 고백한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내 고백의 타이밍은 조금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결과는 달라졌을거라 확신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자꾸만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을 곱씹으며 조금 더 일찍 고백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혼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확실히 그때 내 고백의 타이밍은 늦었다.
It's too late.
이 영화속의 여자도 고백을 했다. 안된다고 생각하고 혼자 끙끙대면서 6년전에 자신이 고백하지 않아서 놓쳐버린 그를 떠올리며 다시 뒤돌아 비를 맞고 흠뻑 젖어서는 큰 마음을 먹고 사실은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고백하기까지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고 수만가지의 가능성을 머리에 떠올려봐야 한다. 거절 당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안해볼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게 고백했다고 해서 그것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는 상대 나름의 이유로 나를 거절하기도 한다. 내가 힘들게 고백했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을 반드시 예스라고 할 이유는 없다. 여자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힘들게 고백했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남자는 이미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까.
It's too late.
영화의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나는 이 영화가 무척 슬펐다. 이미 다른 여자-그것도 여자의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하기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너무나 슬퍼서. 그 남자로부터 사랑한다는 속삭임을 듣는 그 달콤함에 푹 파묻혔다가도 금세 다시 그를 약혼녀에게 돌려보내야 하는 그 마음이 안타까워서. 하루에도 열 두번씩 그와는 끝내는게 맞다고 결심하다가 이내 다시 무너져버리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잊어야한다고 생각하다가도 바로 눈 앞에서 친구와 다정한 그 남자를 보는 여자의 마음은 대체 어땠을까. 남자 역시 마찬가지.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연애했던 여자와 결혼을 약속했고 그것은 순탄해 보였으나, 한 순간을 계기로 6년전에 자신이 사랑했던 그 여자도 자신을 사랑했었음을 알게 되고 갈등하게 된다. 이미 결혼을 하겠다고 모두에게 밝혔지만, 그의 눈이 좇는건 약혼녀가 아니다. 약혼녀가 아닌 여자를 만나고 싶고 그러나 약혼한 여자가 있고. 그런 남자가 우유부단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 그 상황에서 어느 누가 우유부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지 않을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우유부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고 우유부단은 내 성격에 별로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내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한 상황에서, 내가 사랑을 고백했던 상대가 나타나 나를 뒤흔든다면, 결혼을 뒤집을 수도 없고(나의 선택이었으니!), 이 남자를 만나는 것도 도무지 포기가 안되서, 약혼자에게도 그리고 남자에게도 못할짓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사람은 반드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쇼윈도의 마네킹과 똑같은 옷을 입고 싶다면 칼로리가 높은 근사한 저녁식사를 포기해야 한다.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노는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양쪽을 모두 선택할 수 없고 양쪽을 모두 손에 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속 남자에게도 그리고 영화속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에게도, 선택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결정을 빨리 하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다.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뻔한 결말에 이르지는 않지만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는 지나치게 뻔한 우연들이 존재한다. 쳇, 마음의 찜찜함을 덜어주려는 설정이군, 하고 시큰둥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특별할 것 없는 영화지만 영화의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높은 빌딩 사이를 돌아다니는 바쁜 사람들, 집 앞에 찾아온 남자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거리, 친한 친구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벤치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지금 현재. 이런 것들이 내게는 몹시 사랑스럽다.
덧붙이자면,
고백은,
상대로부터 It's too late 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하지 않는것 보다는 하는게 낫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