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 - 정규 1집 스페셜 리패키지 Paradise
인피니트 (Infinite) 노래 / 울림 엔터테인먼트(Woollim)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더이상 중고샵에 팔 책이 없어서 시디를 팔기 시작했다. 아, 시디를 사주는 중고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체 예전에 내가 듣던, 그러나 더이상 듣지 않게 된 시디를 팔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가진 여덟장의 '신화'의 시디를 팔지는 못했다. 아니, 팔지 않았다. 더이상 듣지 않을게 거의 확실하지만, 그 시디를 파는 것은 어쩐지 아쉬워서. 그들의 음악이 아쉬운게 아니라, 그 음악을 듣던 내 젊은 날의 추억을 팔아버리는 것 같아서. 언제고 쉰 살이 됐을때 시디진열장을 둘러보다가, 아, 내가 이십대에 이 음악들과 더불어 살았는데, 이때는 이 음악이 내게 큰 힘이었어, 하게 될 것 같았으며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노래방에 가서 그 어린날, 얼마나 [해결사]를 불러댔던가! 내 주변의 모두가 H.O.T 에 열광하고 있을 때, 나는 늘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신화의 노래를 따라불렀던 것이다. 시디를 사는 일은 그래서 단순히 그 음악을 사는게 아니라 그 음악을 듣던 한 시절을 보관하는 일인 것이다.

 

신화가 마지막이었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아이돌의 시디를 사지 않게 되었다. 내 삶의 백뮤직에 아이돌은 없었다. 굳이 아이돌이 껴들 일도 없었다. 세상에 음악은 넘치듯 많았고, 그 안에는 내가 들으며 좋아할 만한 음악이 당연히 무수히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요즘의 내게 인피니트의 음악은 힘이었고 위로였다. 나는 '검정치마' 에게서도 '노 리플라이'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그냥 내 마음대로 닥치는대로 비교) 인피니트로부터 받았다. 오! 어젯밤엔 술취해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인피니트의 영상을 찾아 보고 들으며, 아, 스마트폰의 최대 장점은 인피니트의 영상을 언제나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고 기계의 발달에 건배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니 망설이던 인피니트의 시디를 사는일이 내게는 필요했다. 더이상은 뒤로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근두근, 아이돌의 시디를 주문해놓고 나는 설레였다. 그런데, 배송되어 온 박스가 크다. 으응? 왜 시디하나 책 한 권을 샀을 뿐인데 이렇게 넓적한 박스에 오지? 그리고 상자를 풀자 거기에선 보통의 시디보다 큰 박스가 나왔다. 오, 이게 뭐야! 그 박스를 풀었더니 시디 케이스 대신 얇은 책자가 한 권 나온다.

 

 

 

 

 

(크기 비교를 위해 실예 네가드의 시디를 얹어 보았다.) 보통의 시디케이스보다 훌쩍 큰 저 책자는 대체 무엇인가, 화보집인가 가사집인가, 시디는 대체 어디에 들어있는가, 하고 열어보니, 맨 뒷장의 책날개에 시디가 꽂혀있다. 케이스도 없이! 케이스도 없이!!!

 

 

 

 

보이는가. 오른쪽에 저 '꽂혀있는' 시디가! 아...얘네들이 장난하나. 시디를 이렇게 종이 사이에 끼워주면 나더러 보관을 어떻게 하란말이야! 나는 화가났다. 예쁜 일흔 살의 할머니가 되어서 시디진열장 앞에 서서 시디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중에 하나를 빼어들고, 아, 나의 삼십 대 중반, 그 우울의 끝에 있을 때 그 때 이 아이들의 시디가 내게는 위로였지, 그땐 그랬어, 라고 되뇌이고 싶었는데, 이렇게 커가지고는 다른 시디들과 함께 꽂을수가 없잖아! 대체 종이에 꽂힌 이 시디를 어떻게 보관하란 말이야! 아..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책자를 넘겨보니 이것은 가사집인 동시에 화보집이다.

 

 

 

 

 

 

 

 

 

내가 이들의 영상을 즐겨본다한들, 이들의 사진을 넘겨보고 싶은 마음은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다. 아...화나...게다가 박스 안에는 접혀진 종이도 한 장 들어있다. 나는 이건 무엇? 하고 펼쳐보았다. 거기서는 대빵 큰 포스터가 나왔다.

 

 

 

왼쪽 아래에 실예 네가드의 시디 케이스와 이들의 화보집이 보이는가. 포스터는 이렇듯 크다. 나는 대부분의 시디에 딸려오는 포스터를 심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포스터를 방에다 붙여놓고 좋아하고 만족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내게 오면 그 포스터들은 재활용으로 분리수거 될 뿐, 종이 낭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시디구매 이벤트로 포스터를 주는 것은 제발 선택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만족이고 행복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나는 아니란 말이다, 쫌! 아니나 다를까, 이 큰 종이는 재활용으로 분리수거 되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당장 별 두개짜리 리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엊그제 읽은 육아서에서 그랬잖은가. 한 시간만 하루만 참아보라고. 나는 충실하게 나의 화를 다스렸고, 그들의 시디를 내 방 안의 미니 컴포넌트에 넣어 재생시켰다.

 

오오, 신났다. 역시 좋았다. 내꺼하자 도 좋고 패러다이스는 보석같다. 패러다이스는 힘이 넘친다. 물론 너 힘든거 보기 싫으니 이젠 그만 내꺼하자 라고 하는 그들의 가사는 유치하기 짝이없지만 그래도 일곱명의 남자들의 목소리로 그 노래를 들으니 설거지 하는데 덜 짜증난다. 거실과 부엌을 걸레질하면서 듣는 패러다이스는 모든 행동을 멈추게 한다. 아, 좋아. 니가 있어야만 여기가 패러다이스~ 하는데 진짜 미치게 좋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나 혼자만 있는 집에서 이들의 시디를 크게 틀어놓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퍽 만족스럽다. 그 두곡 말고도 그들의 노래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뜻 모를 노래들이 아니다. 유치하지만 최소한 알아들을 수는 있다. 심지어 패러다이스의 가사에는 깊게 감명받기도 하니까. 오후에 sbs 인기가요를 보는데 다른 아이돌들의 가사를 하나도 알아먹을수가 없는거다. 영어 가사만 계속해서 반복해서 읊어대니 그들이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지를 모르겠는거다. 그러나 인피니트의 노래는 알아들을 수가 있더란 말이지. 게다가 히든트랙은 예상외로 피식 웃음이 나게 만든다. 그들의 중얼거림은 오글거려서 으윽, 이러지마, 소녀팬들은 이런걸 좋아하는거니, 싶었지만 오, 그런데 중얼거림 뒤로 나오는 노래는 괜찮네? 상큼해. 너희들, 노래도 쫌 하는구나!

 

 

그래서 이 시디의 별점은 다시 상승한다. 시디는 역시 음악으로 평가받아야 하니까. 이 시디의 음악들은 누가 뭐라해도 나에게는 지금 힘이고 위로니까. 그리고 가만히 다시 살펴보니 이 시디는 내가 살 때도 분명히 옆에 표시되어 있었다. special repackage 라고. 그러니까 이건, 이런 사이즈로, 이런 화보로 이 시디를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을 타켓으로 만든 시디렸다. 그들이 이 앨범을 만들 때 삼십 대 중반의 어느 이름 모를 한 여성을 타겟으로 하지는 않았을 터. 그러니 내 불만은 이들의 시디가 아니라 이 사회로 향해야.....는 아니고...........아, 내 불만을 누구 탓으로 돌려야하나. 어쨌든 내가 그들-인피니트와, 인피니트의 앨범을 제작하는 모든 관계자들-의 타겟이 아니었음은 분명할테지. 그러니 이런걸로 시디의 점수를 깎는 일은 하지 않는쪽이 바람직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새로이 별을 준다. 뭐, 별이 크게 소중한 것 같진 않지만. 

 

케이스는 영 마음에 들질 않지만(화보도 필요없고!), 이들의 시디를 중고샵에 팔지는 않겠다. 먼훗날 돌이켜보면 지금의 이 시디에 대한 감상도 웃으며 떠올리게 되겠지.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2-03-1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다락방님을 볼때마다 양미경이 주연을 맡았던 '주부 김광자의 제 3활동'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양미경이 주부로 나오는데 딸은 사춘기라 자신에게 늘 까칠하고, 남편도 무관심합니다. 그렇게 여느 주부처럼 외롭게 살아가다가 한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서는 힘을 얻게 되었어요! 이분도 아이돌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를 들으며 삶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를 풀고, 다락방님도 그렇겠지요!

비로그인 2012-03-18 21:49   좋아요 0 | URL
오.. 그런 드라마가 있었나요? 찾아보고 싶은 충동이!!

이진 2012-03-19 06:24   좋아요 0 | URL
아마 특집극으로 꾸며진 1부작 일거랍니다!! 찾아서 보세요. 가슴 따뜻해지는 내용이랍니다...

다락방 2012-03-19 15:3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저는 아이돌을 좋아하기도 해요. 인피니트 일곱명이 양복입고 춤추고 노래부르는 거 보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면서................................. 이런 아이돌은 여태껏 없었다! 하는 마음이 되어가지고 가슴에 봄이 찾아와요. ㅎㅎㅎㅎㅎ

LAYLA 2012-03-18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년에 주황겅쥬☆ 셨어요?ㅋㅋㅋㅋ

다락방 2012-03-19 15:31   좋아요 0 | URL
저 주황겅쥬 검색해봤어요. ㅋㅋㅋㅋㅋ 아뇨, 라일라님, 저는 팬클럽과는 거리가 먼 여자사람. ㅋㅋㅋㅋㅋ 아 검색해보고 완전 빵터졌네요! ㅎㅎㅎㅎ

dreamout 2012-03-1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가리키는 바가 아주 의미심장하군요. ㅋㅋ

다락방 2012-03-19 15:31   좋아요 0 | URL
저는 타겟이 되고 싶은걸까요? ( '')

2012-03-19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9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2-03-2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 사셨군요~ 우우`~ 사셨군요~~~ ㅋㅋ 갖고싶어. ㅠㅠ

다락방 2012-03-22 14:45   좋아요 0 | URL
저는 인피니트랑 같이 살고 싶습니다! ㅎㅎㅎㅎㅎ

2012-03-28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8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