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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손길 ㅣ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11
샬레인 해리스 지음, 송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이름만 듣고 신뢰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이 그 이름의 가치일 것이다. 하루키가 썼다고 하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고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주연이라면 그 영화를 보고 싶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라면 당연히 그 영화를 찾아보고 싶고. 그들이 작가, 배우, 감독이었다면, 캐릭터로는 수키가 있다. 나는 수키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99프로 공감하고 동의했던 바, 수키의 이야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읽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금요일이었는데, 우울했고, 그래서 좀 걸었다. 한 시간 가량을 걷는 동안 바람은 몹시 찼고 손은 시려웠다. 그날따라 유독 발바닥도 아팠다. 그리고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는 책이 많고 온기가 있었다. 스르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침 그날따라 알라딘에서 7만원어치의 책을 결제해둔터라, 서점에서는 그저 구경만 하고 나오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 책, 『죽음의 손길』을 보게 됐다. 우앗, 이게 뭐야. 언제 나왔어!! 나는 거침없이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아까 알라딘에서 결제했잖아, 왜 또 사려고 그래. 그러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수키잖아, 수키라고!
수키는 그간의 시리즈에서 나를 울리고 웃겼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수키가 냉장고에서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들려다가 울어버렸을 때, 그때 나도 지하철 역 벤치에 앉아 함께 울고 싶었다. 수키가 일상을 살면서 느끼는 실망감과 사랑, 그 모든게 온전히 내게도 스며들었다. 수키가 사랑하는 남자를 나도 사랑했고, 수키가 좌절하고 실망하면 나 역시 좌절하고 실망했다. 수키가 힘들 때 나도 힘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너무도 잘 알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수키는 자신의 감정에 얼마나 솔직한가. 자신이 상대에게 느끼는 욕망을 그대로 뱉어내고, 누군가가 싫을 땐 거침없이 욕도 한다. 그런 수키의 새로운 이야기라니. 내가 아무리 알라딘에서 책을 샀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사야 한다. 앗. 그러나 책을 살펴보니 이 이야기는 단.편.집. 이다. 단편집이라고? 그게 가능해? 가능한가보다. 작가는 수키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집을 써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사지말까 잠깐 또 고민했다. 그러다가 역시 수키의 이름이 이겼다. 이야기는 가벼웠다.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이야기들 다섯 편이 실려있는데, 하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수키는 여전히 수키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가장 재미있었을지도 모를 마지막 단편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어떻게 수키를 기쁘게 했는지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실망시켰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은 중딩을 위한 것인가 싶어졌다. 책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수가 현저히 적다. 이걸 기존의 포인트, 기존의 행간으로 했다면 책의 두께는 엄청나게 줄었을 것이고 책 값 역시 저렴해지지 않았을까. 수키를 사랑하는 기존의 독자들이라면 마치 소품처럼 이 책을 장식해두어도 좋겠지만, 그리고 이 속에서도 수키는 충분히 톡톡 튀며 살아있지만, 소품은 그저 소품일 뿐이고 나는 소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읽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을 소품 같은 이야기가 한 페이지에 몇 개 안되는 글자로 넓적하게 들어가있다. 열린책들에서 이런 행간을 쓰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ttb 광고를 읽지 않은 책이나 보지 않은 영화로는 하지 않겠다는 주의였고 그것들 중에서도 스스로 매긴 별점이 별 넷 이상인 것만 걸어두고자 했었다. 그러나 수키는..수키니까, 내가 읽기 전에 해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이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내 ttb 광고가 부끄러워졌다. 앞으로 다시는 읽기전에 광고 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말자.
작가가 단편을 쓴 것은 좋다. 그러나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수가 이정도인 것은 실망이다. 물론 가장 큰 실망은, 위에도 언급했듯이, 수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해 어.떻.게. 행복했는지의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터, 부족하다, 부족해. 수키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내가 삼십 년 이상을 살아오며 받았던 그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우월했는데, 최상이었는데!! 수키는 정말 좋은 할아버지를 두었다. 이런 할아버지는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