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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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말하면서 폭력을 미화시키는 작품들도 있지만 한창훈의 『꽃의 나라』는 폭력을 말함으로써 폭력의 단절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점이 몹시도 고마웠고 그리고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때리고 맞는것이 일상인 삶을 그려내는데, 그 안에서 내가 보는건 대체 이것을 어떻게 멈추게 한단말인가, 하는거라니! 역사적 사실을 가져다 소설을 쓸 때, 그 사실에 빚지고 있는 소설들은 소설 자체의 중심을 잡기 힘들다고 생각된 적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한창훈은 달랐다. 한창훈은 일단 그 역사적 사실에서 멀리 떨어졌던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창훈이 태어나기 오래전의 일이 아닐뿐더러 한창훈이 살고있는 곳과는 동떨어진 먼 어느 나라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중심을 단단히 잡고 그 일들을 이야기한다. 군인들이 도시에 들어와서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고 하는 그 일들을.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 노인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도시 이곳저곳을 파괴하는 일들을 그는, 중심을 잡고 묘사한다. 나는 그 일들을 읽어내려가며 지하철안에서 몇번이고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한창훈은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친구를 잃고 연인을 잃고 가족을 잃고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을 그려내면서, 그는 여전히 중심을 잡는다. 한창훈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는게 아닐까. 


소설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그저 재미있어서 소설을 읽는다고 말을 하지만, 그러나 소설이 내게 주는것은 비단 재미뿐만은 아니다. 나는 그 안에서 정의를 보고 불의를 본다. 행복을 보고 불행을 본다. 고통과 상처를 보고 치유와 위안을 본다. 그 속에는 삶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리고, 역사가 있다. 그 역사는 내가 이미 알고있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잘못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것일때가 많다. 그것들을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알아간다.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많은 감정을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많은 일들을 나는 소설속에서 보며, 느끼며, 알게된다. 나는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지 않았으면서, 그 사람들을 만난것도 아니면서 그들중의 누군가가 되어 함께 울거나 웃는다. 바로 그때, 소설속의 그 일들은 '나의 일'이 된다. '나의 경험'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는 내가 가진 단편적인 지식들에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이제는 더할 수 있게 됐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는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총기난사가 벌어지기 전에 구스 반 산트가 보여주는 건, 그 학교 학생들의 일상이다. 한 명 한 명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그는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니, 그들의 삶은 저마다에게는 특별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은 무차별 죽음을 당한다. 그런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창훈의 이 소설도 처음엔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때리고 맞는 일상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시절, 그것은 정말로 '리얼'한 일상이지 않았던가. 게다가 한창훈은 초반기에 그러면서도 그들이 웃고 사는 삶을 드러내준다. 나는 이 책을 펼치고 나서 몇번이고 피식거렸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난 너에게 시집간대."

"왜?"

"오줌 누고 있는 니 고추를 봤다고 말했거든."

"근데 나도 네 것을 봐야 결혼하는 것 아니야?"

진숙이가 대답했다.

"내 것은 저 속에 있어서 잘 안보여."

그 말을 들었을 때 나와 인호는 책상을 때리며 웃었다. (P.51)


초등학교 삼학년 아이들의 대화였다. 게다가 이런 부분을 읽었을 때는, 나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게 될까, 하는 것을 평화롭게 상상하고 있기도 했다.


'방이씀'은 교회 옆 전봇대에서 붙어 있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종착지는 골목과 공터 너머 오래된 스레이트집이었다. 주인은 늙은 할머니였다. 그녀는 마루에 앉아 마늘장아찌를 앞에 두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P.10)


나도 늙은 할머니가 되면 깍두기와 소주를 앞에 두고 혼자 홀짝이고 있게될까? 그때는 그리 많은 안주가 필요하진 않겠지? 나는 혼자 마시게 될까? 아니면 늘 함께 소주를 마셔줄 누군가가 있을까? 나는 어떻게 늙어가게 될까?


그 때 그 시절, 그 사건들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주인공인 소년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이제 막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성욕과 그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소년이었고, 맞는게 지겹다고 생각하는 소년이었다. 처음으로 소주를 마시고 오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생물 교사를 좋아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되풀이되는 교사와 선배의 폭행속에서 그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군대 이야기에서 때렸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얻어맞기만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려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때린 것보다는 맞은 것을 오래 기억했다. 그래서 교사들은 우리를 그렇게 때리는 것이다. 많이 맞은 사람이 많이 때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되풀이를 끊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맞기만 하고 때리지는 않는 첫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 (p.55)


그들 모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그래서 자신들을 때리는 군인들이 '아군' 이라는 사실에 크게 당황한다. 왜 맞아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총을 맞고 쓰러져야 하는지, 왜 옷이 벗겨진채로 뒹굴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책 속의 생물선생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나도 내 선생님에게 여쭤보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침을 삼켰다.

"그분도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알래스카의 개 이야기를 하셨다."

"알래스카 개라뇨?"

"썰매 끄는 개 말이다."

"영화에서 본 것 같아요."

"그분의 말에 따르면 에스키모들이 썰매에 개를 묶을 때,"

생물교사는 잠깐 동안 말을 끊고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에 귀를 기울이다가 다시 이었다.

"젊고 튼튼한 개들 사이에 늙고 병든 개 한 마리를 끼워넣는다고 한다."

"‥‥‥"

"그리고 채찍질을 하는데 그 늙고 병든 개만 집중적으로 때린다는 거다."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으나 그사이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형체만 실루엣처럼 보였다. 이러고 있자니 그는 교실에서 보았던 생물교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던 사람이 갑자기 가까워졌을 때 그 사람은 참으로 낯설게 보였다.

"그 개는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게 되지. 그 개의 처절한 비명이 다른 개들에게 공포심을 준다는 거야. 그래서 찍소리 못 하고 썰매를 끌게 되는 거야."

"‥‥‥"

"에스키모들은 어느 때 어떤 공포심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거지."

"그러면 우리가 그 개라는 말인가요?"

"아무튼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좀 되었다."

"‥‥‥"

"사람들이 물러가라고 외치는 사령관 있지?"

"예, 들었어요."

"그 사람이 만들어낸 짓이라는 거야."

"‥‥‥"

"그 사령관은 그게 필요한 거야. 공포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혼란이." (pp.203-204)


나는 창피하게도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공포와 혼란의 장소에 있지 않아서, 그것들을 내가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내가 군인들의 발에 짓밟히고 내 가족들이 총에 맞아 쓰러질 수 있었을지도 모를, 바로 거기에 내가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웠다. 나는 우리나라 언어로 쓰여진, 이해하지 못할 문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어렵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느껴야 했는지 모른다. 


이 책의 마지막은,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스포일러, 이렇게 끝난다.


오래지 않아,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 (p.272)


흐느껴 울지 못한 내 자신이 싫어지는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보다 더 가슴 아픈건 채 반페이지도 되지 않는 '작가의 말'이다. 그가 하는말이 너무나 절절해서, 나는 내가 여태 읽어온 '작가의 말'중 가장 슬픈 작가의 말로 이 책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이 책은 '작가'가 해야 할 일과 '소설'이 해야 할 일을 모두 충실하게 해냈다는 것도 덧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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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u 2012-01-03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감해요!
전 이 책을 너무 떨며(!) 읽었는데...
다락방님의 말씀처럼 '정의와 불의' '행복과 불행' '고통과 상처' '치유와 위안'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말이죠.
말죽거리 잔혹사니, 예전에 나온 그곳의 이야기와 뭐가 다르냐는 식으로 생각해버리고 말아 무척 안타까웠답니다.
학교 폭력? 울겨먹기? 또 광주? 그건 아닌데...비유가 웃기지만 왜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건지 안타까워요(-.-)

다락방 2012-01-04 09:24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소설이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리뷰에도 밝혔듯이 한창훈이 꽤 중심을 잘 잡고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학교 폭력', '또 광주' 인건, 그렇게 본다면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저는 이 소설은 읽어두는것이 좋은,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초반에 소년이 성장할 가능성과 일상을 배치해두고 뒷부분에 광주사태를 넣어둠으로써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식으로 작용했는가도 잘 보여주었고요. 전 좋았습니다, 리더수님. :)

moonnight 2012-01-05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는 거 자제하려고 했었는데!!! 다락방님 때문이에요. (라며 떠넘기기;;;)
한창훈 작가는 다락님 덕분에 알게 되었죠. 그리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이 책도 읽어볼께요. ^^

다락방 2012-01-05 14:10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은 이 책 읽으시다가 후반부에 폭풍 눈물 흘리실 것 같아요. 물론 초반부에는 엄청 웃으실거구요. 재미있어요, 문나잇님. 손에 쥐면 팔랑팔랑 책장이 잘 넘어가는 책입니다. 물론 내용까지 팔랑거리는 건 결코 아니구요.
헤헷 :)

버벌 2012-01-0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달 생활비가 없어요. 책.... 사고싶다.

다락방 2012-01-09 18:26   좋아요 0 | URL
카드가 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