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엄청나게 잘 읽힌다. 만약 손에 잡는다면 앉은 자리에서 끝장 낼 정도다(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는 눈물이 맺히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며, 그래서 이 이야기는 독자를 빨아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똑똑하다.
작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떤 식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또 어떤 문장으로 보여줘야 독자들이 좋아하고 슬퍼하고 웃고 울 수 있는지를. 그걸 잘 풀어내고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문장을 만들어내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걸 아주 잘 해낸다면 그 작가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작가(혹은 작품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작가보다는 작품이 먼저 보여야 한다. 똑똑한 작가가 멋진 소설을 쓸 수는 있겠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작가 보다는 이야기와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에서 안나가 되고 브론스키가 되고 버려진 아이가 되고 사냥하는 개가 되기도 했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이 책 뒤에 톨스토이 있다, 라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책에서 나는 에미가 되고 레오가 되고 3초후에 올 이메일을 기다리며 설레었지, 다니엘 글라타우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자꾸만 김애란이 뒤에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와, 똑똑하구나, 잘 썼구나, 하고 자꾸만 작가가 보이는거다. 독자들이 감동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짚어낸 작가가 바로 이 책 속에 함께 있다는 그 느낌. 이것은 그런 작가가 철저히 '창조하고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느낌. 아, 이 아이는 지금 어떻겠구나, 이 삶은 어떻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작가가 떠오르다니.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가 사람들을 빨아들일 이야기이며, 또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지지만, 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책장을 속히 넘기기도 했지만, 결코, 사랑할 수는 없다. 책을 덮고 나자 아름이는 사라졌다. 나는 김애란의 다음 이야기를 별로 기대하게 될 것 같지도 않다.
이 책을 읽다가 책 속에서 포스트잇이 붙여진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발견했다. 내게 이 책을 빌려준 책 주인에게 혹시 당신이 넣어둔거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포스트잇에 떡볶이 사먹으라는 말을 쓴다는 걸 깜빡하고 붙이기만 했다며.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난 또 완전 좋아가지고 배를 들썩이며 웃었다. 곱게 지갑에 넣어뒀다. 떡볶이 사먹어야지. 만 원 어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야, 순대도 사 먹어야 해. 허파도 달라고 해야지. 허파는 쫄깃쫄깃 너무 맛있어.
이른 아침 출근길에 눈이 내렸다. 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는 조금 내렸는데, 강남역에 도착하고나니 제법 눈이 많이 내렸다. 그리고 오전에 외근을 나가는데 눈은 더 많이 내렸고, 나는 공진솔이 생각났다. 함박눈이 내리고 쌓이자 기쁘다고 소리치는 그녀. 눈이 오는 날 사랑하는 남자와 단 둘이 고립됐다, 고 소리치며 좋아하는 그녀. 그것은 그녀의 소원이었으므로.
그러나 오늘 눈은, 양떼처럼 많이 내리진 않았다.
12월달에는 책을 전혀 사지 않겠다고 또 언제나 그렇듯 결심했는데-책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은 마치 다이어트 하겠다는 결심과 닮아있다-, 알라딘 머그컵 행사를 한다. 제기랄. 알라딘 머그컵은 책을 사고 받는게 진짜, 그것이 진실한 것. 나는 해당도서는 뭐가있나 보다가 훗, 별로 없다는 걸 알고서는 안도했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거나, 읽은 책이거나, 관심없는 책들뿐이었다. 그런데 으윽,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젠장. 내가 지난주에 경향신문 북섹션에서 보고 메모해두었던 바로 이 책.
톨스토이,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그 『안나 카레니나』의 톨스토이가 쓴 어린이 책이다. 아, 궁금해 궁금해. 나는 오래전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가 대기실에서 톨스토이가 쓴 그림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혹시 이 톨스토이가 그 톨스토이인가 하고 갸웃했더랬었다. 그런데 그 책도 아마 이 톨스토이가 맞는가보다. 학교에 간 필리포크. 아, 궁금해 궁금해.
알라딘의 책소개
어린이를 향한 톨스토이의 따스한 관심과 큰 사랑이 가득한 이야기를 러시아 국민화가 파호모프가 대담한 선과 색으로 그려낸 교육 그림동화이다. 이제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이들이 읽기와 쓰기를 생활 속에서 익히며, 창의력.판단력.상상력을 길러 주는 이야기들을 가려 뽑았다.
한 줄 또는 길어야 몇 문장의 짧은 이야기이지만 어린이들에게 삶을 사랑하고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소중한 지혜를 선사한다. 좀 긴 이야기는 선악을 분별하고, 용기.효도.사랑.희생 등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가게 도와준다.
아마도 나는 12월달에 책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박살내버리고 내년에는 책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한 두권 쯤 읽어보고 이제 이 작가의 책을 안 읽어도 되겠구나 싶은 작가가 몇 있는데, 내게 그런 작가는 기욤 뮈소와 더글라스 케네디이다. 빠르게 책장이 넘어가고 재미있지만 그정도만 읽어도 충분하다 싶은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해당도서중의 『모멘트』를 장바구니에 넣어놓긴 했지만, 아마 결제할 때는 빼버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게 될까. 조금 더 생각해봐야지. 신중해 져야지. 오늘 아침에도 읽지 못한 책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졌었으니까.
아, 근데 머그컵 안받아도 되는데. 집에 머그컵 열나 많은데. 깨버리고 싶을 정도로 많은데 왜 자꾸 받고싶지. 나는 완전 컵욕심 없는 여자사람인데. 밥그릇에다 커피 마셔도 아무 상관 없는데. 국그릇에 물을 따라서 마시기도 하는데. 대체 왜 머그컵 이벤트는 쿨하게 넘어가지 못할까. 하아-
아, 나 정말 이 책 때문에 미치겠다. 1/5 정도 읽고 멈췄는데, 읽기를 포기했는데, 중고샵에 가서 팔아버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그런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고, 나는 그 영화를 보고 싶고, 그렇다면 책을 읽고 싶은거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건데 아 너무 짜증이 나서 못읽겠어. 그래서 멈췄는데 영화를 볼거니까 책을 읽고 싶고. 그런데 책을 못읽겠고. 아 대체 어떡해야 하지. 안 읽을거니까 신간일 때 팔아버려야 되는데, 그런데 영화 개봉하면 후회할 것 같고. 그런데 읽자니 정말 여자 남자 다 짜증나고. 그렇다고 영화만 보자니 어쩐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미친 생각이 들고. 아 짜증나. 이 책이 내 책장에 널브러져 있는게 너무 짜증나서 스트레스 받는다. 하아-
누가 내게 이 책이 절반쯤 지나면 정말 매우 잘 읽히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불후의 명작이 될지도 모른다고. 아..이 책이 나를 구속하고 있어. orz
아, 나는 오늘 너무 할 일이 많다. 그러니까 이제 페이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