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볼 줄 몰라서 그래요. 선 말이에요. 그녀와 나 사이에 그어진 선도 못 보고, 그녀와 힐리 사이에 그어진 선도 못 보고."
(중략)
"그런 선은 존재하지 않아. 리로이의 머릿속에만 있지. 흑인과 백인 사이에도 없어. 어떤 사람들이 오래전에 꾸며낸 거지. 백인 쓰레기나 사교 모임 여자들이 그걸 이어받은 거고."
(중략)
"그러면 가정부와 주인 사이에도 선이란 게 없다는 말이에요?"
아이빌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체스를 둘 때처럼 놓인 위치가 다를 뿐이지. 누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지는 아무 의미 없어."
(2권, pp128-130)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존재하는 한, 이 책은 그보다 더한건 줄수 없었다고,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내 친구는 말했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캐스린 스토킷'의 『헬프 1,2』는 아름답고, 분통터지고, 화가나고, 눈물나지만 묵직하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앵무새 죽이기의 스카우트가 '히틀러를 나쁜놈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왜 자기나라 사람에겐 비열하게 행동하는지'를 오빠에게 물었던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어린 스카우트의 그 말은 그 책을 읽을 당시 꽤 인상적이었으니까. 그러나 『헬프 1,2』는 다른식의 의미를 준다. 소설이 끝나가면서, 그들에게 절망만 남은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니까.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문제가 있고, 그것을 문제라고 '혼자' 말하는 것은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지만, 누군가가 용기를 내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들을 고쳐나갈 수 있는거라는 걸 이 소설은 알려준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한다. 쉽지는 않을것이고 빠르게 진행되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조금씩은 나아질 수 있을것이다. 어떤 형태로 그 문제를 터뜨리든간에. 

 

그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던 여자에게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반지를 주고 청혼을 한다. 그녀는 그 반지를 받아들고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다고, 기다리겠다고 말한바가 있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속삭이는 것을 듣지 못한척 했으며 사실이 아닐거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입밖으로 꺼냈을 때, 그는 그녀의 생각을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한다. 그는 왜 들쑤셔서 문제를 일으키려는 거냐고 말하고 그녀는 이미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반지를 주고받던 그 밤, 그 얘기들로 인해 그들은 서로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자가 가진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다른 것들을 보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생각을 조율하며 함께 살아가느냐, 혹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아 함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으면서 남은 나날을 보내게 될 거야." (2권, p.241) 

남은 나날을 그 문제를 바로잡으면서 사는것을 택하든지, 혹은 바로잡을 문제따위는 서로가 없다고 생각하는 채로 사는것을 택하든지, 그것은 당사자들의 문제이다. 남자와 여자가 앞으로 함께 살아야 할 날들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그들이 '덜 사랑했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느냐 혹은 사랑하지 않느냐와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갈 날들이 어떤 날이 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반드시 정답이 있는것은 아니니까. 

결혼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랑 살게 될 날이 어떤 날들이 될지를 미리 알려주는 것, 그래서 상대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것은 이상적이다. 그리고 남자가 그녀의 집 포치(porch 현관, 베란다)에서 말하는 것도 이상적이다. 나는 도시를 좋아하지만 '공원'과 이 소설에 혹은 숱한 외국영화에 등장하는 '포치'에는 유독 약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그가 그 아늑한 장소에서, 늘 내가 꿈꾸던 장소에서 다시 반지를 거둬들여야 하는 상황이 된것이 안타까웠다. 전원생활의 필수는 베란다가 아닌가.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장소. 내가 앞으로 살게 될 날들은 이런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곳. 

저녁마다 저기에 술 들고 나가서 앉아있으면 정말이지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좋을까..  낭만적이야...

 

     

 

 

 

 

 

 

 

  

줄로 만들어놓은 의자는 불안해서 만들고 싶지 않군. 금세 끊어져버릴 것 같아. 쿠션도 싫다. 그러나 날이 쌀쌀할 때 무릎담요 정도는 괜찮겠지. 앞에 호수나 강이 있어도 좋을것 같다. 근사해. 

 

 

9월달에 육포를 한박스나 선물받고(무려 열봉지가 들어있었다!!) 헤벌쭉 입이 찢어져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선물은 육포가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우먼스타이레놀을 선물 받았다. 아 정말 완전 좋아. 이 세상에 선물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싶지만, 그럴수는 없고, 뭐 여튼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선물은 육포고 나를 가장 평온하게 만든 선물은 타이레놀이다. 나는 육포랑 타이레놀이 다이아몬드 보다 좋다.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가버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실패한 기억밖에 없지만 그래도 여름이니까. 자꾸만 자꾸만 생각을 반복했던 여름이니까. 나는 또 그럴테니까. 

시간을 돌린다면, 그래서 다시 이번 여름이 된다면, 그렇다면 너는 그 실패할것이 뻔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거니? 

아니, 나는 똑같이 했을거야. 그리고 역시 실패했을거야. 그건 삼년뒤에 물어도 삼십년뒤에 물어도 그럴거야.

 

 

 

우연히 마주친 그날 이후 온통 니생각 뿐이야 아침에 일어나 두팔 쭉뻗어 기지개를 켤 때도
깜박거리는 신호가 빨간불로 바껴버릴 때도 니 손에는 반짝이는 반지가 있다는 걸 알아도
I just can't stop thinking about you 계속 니 생각이 나 계속 니 생각이 나

운명이라 말하기엔 너무나도 새빨간 거짓말 열 손가락 다 접어도 나 하나 아니란 걸 알아도
한번쯤 뒤돌아 보지 않을까 기대를 해봐 니 귓가에 속삭이는 그녀가 있다는 걸 알아도
I just can't stop thinking about you 계속 니 생각이 나 계속 니 생각이 나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계속 니 생각이 나 계속 니 생각이 나 계속 니 생각이 나 계속 니 생각이 나 니 생각이 나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11-10-2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정말 최고에요. 지금도 가끔 진이 아빠에게 물었던 질문이나 선생님에게 물었던 질문 또는 혼자 생각했던 질문들이 떠올라요. 만약 내가 그런 질문들을 받았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생각 또 생각.



다락방 2011-10-27 10:22   좋아요 0 | URL
헬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헬프는 단순히 차별받던 유색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담긴 관계라든가 태도라든가 하는 것들, 그걸 작게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죠. 헬프를 읽으면서도 분명 울컥 했어요. 영화를 보고 한 장면에서 울기도 했지만.
:)

dreamout 2011-10-2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
포치다. 이 소설 읽으며 이 말뜻 몰라 스마트폰에서 찾은 기억 나네요. 유일하게 찾아본 단어. ㅋ
읽다가 1권 중간 즈음에서 멈춰버려서.. 다시 시작하긴 해야 하는데..

다락방 2011-10-27 10:23   좋아요 0 | URL
저는 읽으면서 내용상 저 베란다가 그려졌는데 '포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해서 구글에 넣어봤어요. 이 포치가 내가 생각하는 저게 맞나 싶어서 말이죠. 아니나다를까 맞더라구요. 왜 포치라고 번역했을까요? 저도 포치가 뭐냐..했어요.
한번 멈춰버리면 다시 시작하기 힘들지 않아요, 드림아웃님? 저는 그렇던데. ㅎㅎ

dreamout 2011-10-28 10:09   좋아요 0 | URL
중간에 멈춘 책 다시 시작하기.. 네 어렵죠. 적어도 몇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네요..

... 2011-10-26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벌써 다 읽었어요???

"그러나 『헬프 1,2』는 다른식의 의미를 준다." ==> 이 말에 완전 동감. 헬프는 앵무새 죽이기와는 또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 다른 이야기를 하기위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약간 가볍게 선택한 것 같구요. 의도적인 묵직함은 없어도, 저는 나름 좋았어요. 주인공이 포치에서 가족이나 연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도 사랑스럽구요. ^^

다락방 2011-10-27 10: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떻게 다 읽지 싶었는데 다 읽었네요. ㅋㅋㅋ 이게 생각보다 책이 술술 넘어가요. 어려운 것도 아니라 그런가.
네, 헬프는 다른식의 의미를 주죠. 저도 괜찮았어요. 괜찮긴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문학작품, 이라는 범위안에 껴 두지는 못할 것 같아요. 포치에서의 장면들은 정말 아름답죠. 저는 에이블린하고 미니가 전화통화하는 것도 좋았어요. 그런 사사로운 장면들이요.
책으로 읽다가 특히 좋아서 페이퍼에 언급하려다가 못한 장면이 있는데, 남자가 여자의 집에 함께 토크쇼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장면이었어요. 오와, 그장면이 참 좋더라구요. 서로 다른곳에서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함께 보기 위해 만난다는 것. 굉장히 따뜻하고 훈훈했어요. 마음이 움직이더라구요.

2011-10-26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6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10-2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요는 듣지 않는데...올려 주신 노래는 괜찮네요^^ 예~ 들을수록 좋은데요~ㅎ 3번 연속들었어요~

헬프는...영화로 나온 <헬프>의 원작 소설인가욤??

다락방 2011-10-27 10:33   좋아요 0 | URL
네, 영화로 나온 헬프의 원작 소설입니다, 야무님. 영화를 어제 보기로 해서 그 전에 책을 읽은거에요. 저도 오늘아침에 자꾸 니 생각이 나~ 하는 이 노래를 세번이나 반복해서 들으며 왔답니다. 훗 :)

moonnight 2011-10-2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적과의 동침인가 줄리아로버츠가 남편에게서 도망쳐나와 작은 집을 얻어 사는데 포치에서 저런 그네의자에 앉아 행복한 표정을 짓던 장면이 떠올라요. 퇴근하고서 맥주 한 잔 들고 저런 곳에 앉아있으면 진짜 좋겠네요. ^^

다락방 2011-10-27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문나잇님처럼 그런 장면을 떠올리고 싶었거든요. 포치에 앉아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런 장면. 그런데 저는 그런 영화가 뭐가 있더라, 하고 곰곰 생각해봐도 딱 떠오르는게 [노마진 앤 마릴린]에서 이모부다 노마진을 포치에서 불순한 의도로 만져대던 그 장면이 떠올라요. 짜증나요 ㅠㅠ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리고 싶은데.
그냥 제가 앉아있는 장면 떠올려야겠어요. 저는 저런데서 와인 마시면서 재이슨 스태덤의 어깨에 기대어 있으면 완전 천국에 있는 기분 들것 같아요. 아우..

2011-10-27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0-2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앵무새 죽이기] 그렇게 좋아요, 다락방님? 여기만 다녀가면 늘 읽고 싶은 책이 하나씩 늘어나요. 중고등학교 때 도서실에서 [앵무새 죽이기]를 되게 많이 스쳐지나갔는데, 책이 낡고 부서져내릴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빌리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지나쳐버린 고전이 많은 것 같아요. 이제는 정녕 고전을 읽어야겠어요 +_+

그리고 친구에게 선물로 준 책은 다락방님이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는 바로 그 책이에요. (레오!) 저도 아직 읽지 않았는데, 해야 할 일들을 해치우고 읽으려구요. 내가 읽지도 않은 책을 선물한다는 게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그래도 그 내용을 알고 지금 그 친구의 상황과도 맞고, 또 다락방님이 추천하신 책이고, 그래서 이 책으로 정했어요. 며칠 뒤에 반응이 오겠지요 ㅎㅎ

'HELP' 영화 먼저 봐야겠네요!

다락방 2011-10-30 01:20   좋아요 0 | URL
[앵무새 죽이기]는 그렇게 좋아요, 수다쟁이님. 정말 좋아요. 우리는 가장 명백한 진리를 놓치고 살고 있다는걸 그 소설은 아주 쉽게 이야기해 주고 있어요. 앵무새 죽이기는 도서관에서 너무 낡은책을 비치하고 있다면 소장용으로 사서 읽어도 전혀 후회가 없을거에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는 띠지광고를 본 기억이 나는데, 저는 성경은 안읽고 앵무새 죽이기만 읽었습니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수다쟁이님,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제가 제일 처음 그 책을 말해주지 않은게 후회스러울 정도로요.
그동안 수다쟁이님의 영화 페이퍼로 생각해보건데, 수다쟁이님은 헬프를 [중앙역]보다는 조금 덜 좋아할 것 같은데요?
:)

메르헨 2011-10-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앵무새 죽이기...
읽을 때마다...다른 감동이 있더라구요.
어릴 때와 또 몇년전에 읽을 때의 감동이 달라 ... 생소하면서도 충격적이었던...
지금 읽는다면 또 다르겠죠.
헬프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니...살짝 궁금합니다.^^

다락방 2011-10-30 01:21   좋아요 0 | URL
메르헨님. 힘없는 사람은 늘 어느시대에나 존재했던 것 같아요. 흑인이 그렇고 여성이 그랬죠. 지금은 돈없는 사람이 그렇구요. 힘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힘이 센 사람도 존재한다는거죠.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일인 것 같아요. 어떤 책들은 쓰여졌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